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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49 :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발롱도르~]

40편 하극상의 시대, 전국시대

41편 : 오다 노부나가 제 1편

42편 : 오다 노부나가 제 2편

43편 : 오다 노부나가 제 3편

44편 : 오다 노부나가 제 4편

45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46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중심 정책

47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기독교

48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

 

-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오로지 실력으로 천하 통일에 성공하였다.

 

그는 일반 농민 출신의 최하급무사인

지자무라이(地侍) 집안에서 태어난 미천한 출신이었고,

 

때문에 지역적 기반도, 인적 기반도 전혀 없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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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렇기에 그는 다이묘에게 양자를 보내거나 삼고

서로 간 혼인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자 노력했고

 

행정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5명의 대신으로 구성된 5봉행(五奉行)을 두어

지방에 세력을 둔 5명의 다이묘로 구성된 5대로(五大老)와 함께

정무를 분담하고 합의하여 운영하도록 하였다.

- 5봉행과 5대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6회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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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로와 5봉행

(사진 출처 : https://twitter.com/kojodanjp/status/757017552480530432?s=20)

 

또한 토요토미의 시동(侍童)으로서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에서 공을 세운 7명의 휘하 무사들을

'시즈가타케의 칠본창(賤ヶ岳の七本槍)'이라며 과대 선전해 띄워주면서

그들을 유력 가신으로 삼으려 하여 세력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 시즈가타케 전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5회차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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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사진 출처 : http://7yari.shop-pro.jp/?mode=f1)

 

그러나 토요토미의 통일 정권이 정착을 하면서

행정을 담당하던 5봉행 세력들의 권력이 커지게 되었고..

 

철저히 히데요시의 완전한 부하로서 군무만을 맡았던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세력들은 무공을 세울 일이 없어져

세력이 밀리게 되자 불만을 갖게 되었고,

 

결국 5봉행 중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를 중심으로 한 문치파 세력과

칠본창 세력들을 중심으로 한 무단파 세력으로

파벌이 나뉘게 된다.

 

이 대립은 문록·경장의 역(文禄·慶長の役; 임진왜란) 때

이들이 한 전장에서 모두 같이 뛰게 되면서

더욱 부딪히며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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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왜성 전투

 

그런데 히데요시는 이런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늦둥이인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가 태어나자

본래의 후계자였던 조카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를 숙청하면서

히데츠구의 측근으로 있었던 다이묘들까지 숙청하려고 하였다.

- 토요토미 히데츠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본 콘텐츠 46회차 참조 -

 

다행히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중재에 의해

유력 다이묘들이 숙청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토요토미 정권에 반감을 갖고

훗날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말았다.

 

결국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경장의 역에 참전했던 무사들이 열도로 돌아오면서

이들의 갈등은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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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토미 히데요리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기 전, 자신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가 걱정되어

실력 있는 다이묘들인 5대로에게 히데요리의 보좌를 부탁하며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5대로 중 하나인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곧 야심을 드러내며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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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 이에야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과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최측근으로서

미카와(三河; 현재의 아이치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미카와 지역 사람들의 높은 신임을 받고 있던 다이묘였다.

 

그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형성 과정에서

히데요시에 반대하던 관동지역의 호죠씨(北条氏)를

멸망시키면서 큰 공을 세웠으나

 

히데요시는 미카와 지역에 있는 그의 큰 세력을 견제하여

그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호죠씨의 영지가 포함된 현재의 도쿄(東京) 주변 지역의 땅으로

그를 전봉(転封; 영지를 바꿔버림)시켜버렸다.

 

그러나 무작정 전봉만 시키면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카와 때보다 코쿠다카(石高)의 수를 엄청나게 늘려주었지만

- 코쿠다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6회차 참조 -

영지 수를 늘리더라도 일단 기존의 세력기반을 초기화 시키는 것이기에

히데요시에게는 이에야스의 전봉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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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관동지방

 

이때부터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관동지방에 정착하여

문록·경장의 역에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출병하지 않고

에도성(江戸城)을 중심으로 영국경영에 충실하며

힘을 축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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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성 천수각을 나타낸 병풍 그림

 

그렇게 조용히 힘을 키워오던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이후

 당시 존재하던 다이묘 간 사적으로 혼인을 금하는 히데요시의 정책을 깨고

정략결혼을 통하여 자신의 세력을 급격히 성장시켰다.

 

동시에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같은

무단파들과 연합하며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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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토 키요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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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마사노리

 

그러자 문치파이시다 미츠나리는 이들에 맞서서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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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다 미츠나리

 

 처음에는 5대로 중 한명이자 원로격 인물로서

엄청난 무게감을 갖고 있었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토쿠가와에게 제동을 걸며 두 세력을 중재하였으나...

 

1599년,

그가 사망하면서

두 세력이 다시 충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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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다 토시이에

 

결국 두 파벌 간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어

카토 키요마사를 비롯한 무단파 세력들이

이시다 미츠나리를 죽이려고 습격하고 만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주하여 자신의 저택에 은거하였는데,

이 사건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개입하여 중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의 신변을 보호해 주는 조건으로

그를 5봉행해서 파직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시다 미츠나리는 실각하고 만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렇게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세력을 규합하며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쯤...

 

앞서 사망한 마에다 토시이에의 장남

마에다 토시나가(前田利長)를 중심으로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세웠다는

밀고가 들어오게 된다.

 

이에 이에야스는 암살 음모에 연루된 마에다 가문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하였는데...

 

마에다 가문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토요토미 가문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았지만

거절을 당하였고,

 

결국 마에다 토시나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인질로 보내면서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종하면서

마에다 가문을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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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다 토시나가

 

한편,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적대적이었던

또다른 유력 다이묘가 있었는데...

 

바로 5대로 중 하나로

아이즈(会津; 현재의 후쿠시마현) 지역에 기반을 둔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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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스기 카게카츠

 

우에스기 가문의 가로(家老)였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이시다 미츠나리와 친밀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새 성을 쌓고 군비를 증강하고 만다.

 

이에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를 해명하라면서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교토로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는데,

 

나오에 카네츠구가 '나오에장(直江状)'이라는 서간을 보내서

오히려 도발을 하며 이를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우에스기 토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아이즈로 향한다.

(아이즈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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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에 카네츠구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이즈 정벌에

약간의 병력만을 교토에 남겨둔 채 

본인이 총대장으로 직접 출전하였는데..

 

앞서 실각한 이후 조용히 반 토쿠가와 세력을 규합하던 이시다 미츠나리

5대로 중 한 명이었던 모리 테루모토를 포섭해

그를 대장으로 내세우며 거병하였다.

 

때문에 아이즈 정벌을 나서던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시 군사를 돌려 이시다 미츠나리를 향해 진격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미노(美濃; 현재의 기후현)의 세키가하라(関ヶ原)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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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 전투를 묘사한 병풍도

 

1600년 음력 9월 15일...

 

이시다 미츠나리, 모리 테루모토,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중심으로

토쿠가와에 반대하는 약 11만 명 정도의 서군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카토 키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이 합류한

약 8만 5천 명 가량의 동군

 

세키가하라에서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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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가하라 전투 개전 직전 포진도

(사진 출처 : https://historystory.tistory.com/476)

 

양군의 배치는 서군이 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일명 학익진을 펼친 형태로

동군을 완전히 포위하여

골짜기에 가둬놓은 모습이었다. 

 

즉, 군사의 수와 양군의 포진도만 놓고 본다면

누가 봐도 서군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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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합 약 20만명이 참여한 이 대규모 전쟁은

교전 시작 후 약 3시간 정도 만에....

동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19.jpg

 

이는 바로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동군과는 다르게

서군은 서로 간의 불신과 내분, 배신이 판을 쳤기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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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양군은 진을 치고 약 2시간 동안 대치만 하다가

동군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마츠다이라 타다요시(松平忠吉)

서군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군을 향해 발포하면서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성격을 갖고 있던 모리 테루모토

문록의 역 당시 행주산성에서 권율(權慄)에게 완전히 털린 것으로 유명할 정도로

군사적인 능력이 형편 없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

결속력 자체가 매우 약했기 때문에

교전이 시작되었음에도 전투를 방관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전 초반에는

서군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던 탓에

서군이 효과적으로 밀어붙이는 듯 했으나...

 

약 2시간 뒤 정오가 지나면서 서군의 군사들이 점점 지쳐가는 상황에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서군을 배신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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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사실 토쿠가와 이에야스

서군의 결속력이 약함을 미리 알고 있었고

서군의 장수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또한 전투 며칠 전부터

동군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서군을 배신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 넘어오기로

약속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확실한 마음이 서지 않아

양쪽 사이에서 고민을 하느라

교전 참전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전황이 서군측에게 점점 우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망설이자

답답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아키가 진을 치고 있던 곳에 위협사격을 가하고 만다.

 

이 위협사격에 놀란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결국 동군에 가담하기로 결단하고 서군을 배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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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 막바지의 세키가하라 전투 포진도

(사진 출처 : https://historystory.tistory.com/481?category=493582)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배반의 스타트를 끊자 마자

간보고 있던 여러 서군 장수들이 추가로 차례차례 배반하였고...

 

이로 인해 순식간에 전황이 역전되어

약 3시간의 교전 끝에

동군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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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키가하라 대전투> 스틸컷

 

전쟁 이후 이시다 미츠나리와 코니시 유키나가는 참수되었고,

수많은 서군의 다이묘들의 영지는 개역(改易; 영지 몰수) 또는 감봉(減封; 영지 삭감)되었다.

이때 몰수된 영지는 동군의 장수들에게 나눠 들어가며

이렇게 동군의 다이묘들은 코쿠다카가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이 전투를 통해 일본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에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직을 하사 받으며

쇼군에 취임하게 된다.

 

쇼군이 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근거지인 에도에 막부를 개창하며

에도막부의 시대가 시작되게 된다.

 

image.png.jpg

▲ 에도 막부의 문장

 

전투 이후 쇼군에 취임하였고,
1603년에 자신의 근거지인 에도에서 새로운 막부를 수립하였다.

 

 

 

번외)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백이 아닌 쇼군직을 하사 받은 이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혈통상의 이유로 쇼군이 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관백'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음.

- 위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5회차 번외편 참조 -

따라서 토요토미 정권은 '관백'이 최고 권력으로서 운영되던 정권이었는데..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아직까지도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향수와 충절을 지속하고 있는 다이묘들과

오사카 성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관백의 칭호를 받으려 하지 않음.

 

더욱이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혈통적으로 쇼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였기 때문에

히데요리나 다른 다이묘들과 경쟁하는 것을 피하고

온전히 무가의 동량으로서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관백이라는 자리를 그대로 두고 본인은 쇼군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음.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일본 중세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51801979

 

39편 오닌의 난 https://www.flayus.com/51772867

40편 전국시대 https://www.flayus.com/51890068

41편 오다 노부나가 1 https://www.flayus.com/54997662

42편 오다 노부나가 2 https://www.flayus.com/56780855

43편 오다 노부나가 3 https://www.flayus.com/56837236

44편 오다 노부나가 4 https://www.flayus.com/59269096

45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https://www.flayus.com/64602578

46편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중심 정책 https://www.flayus.com/70145227

47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기독교 https://www.flayus.com/70371785

48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 https://www.flayus.com/76669596

댓글 9

best 켕거루 2021.08.03. 20:46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규모나 크기에 비해 확실히 양상자체는 심심하긴 한데
그 안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이합집산의 과정들은 쫄깃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부족한 전쟁의 맛은 나중에 오사카성 전투에서 다 채워주기도 하고
best 켕거루 2021.08.03. 21:01
대정봉환까지 연재하시는 걸로 믿겠습니다!! ㅋㅋㅋ
best 게이 2021.08.03. 21:13
님 왠일로 글 씀? 도망침?
best 켕거루 2021.08.03. 20:46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 규모나 크기에 비해 확실히 양상자체는 심심하긴 한데
그 안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이합집산의 과정들은 쫄깃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부족한 전쟁의 맛은 나중에 오사카성 전투에서 다 채워주기도 하고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8.03. 21:00
 켕거루
굉장히 흥미로운 전투이죠 ㅋㅋ
다음 회차는 오사카성 전투로~
댓글
best 켕거루 2021.08.03. 21:01
 안유진
대정봉환까지 연재하시는 걸로 믿겠습니다!! ㅋㅋㅋ
댓글
척사광 2022.05.06. 01:42
 켕거루
그것보다 더 가야죠 ㅋㅋ
댓글
best 게이 2021.08.03. 21:13
님 왠일로 글 씀? 도망침?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8.03. 21:14
 게이
어제 백신 맞아서 오늘까지 쉬는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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