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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47 :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기독교[발롱도르~]

40편 하극상의 시대, 전국시대

41편 : 오다 노부나가 제 1편

42편 : 오다 노부나가 제 2편

43편 : 오다 노부나가 제 3편

44편 : 오다 노부나가 제 4편

45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46편 :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중심 정책

 

-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이

신항로를 개척하여 해외무역을 확대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다.

 

image.png.jpg

 

이시기 유럽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이 일어난 시기였는데,

때문에 입지가 흔들리게 된 구교 신자들이

해외 무역을 하면서 기독교 포교를 함께하였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각각 필리핀과 말레이반도를 점령하면서

동아시아에 진출하게 되는데...

 

image.png.jpg

 

그 중에서도 포르투갈은 명나라의 마카오를 점거하면서

무역 거점 구축을 시작하였고,

결국 명으로부터 영구임대를 승인받아

그곳을 동아시아 무역의 기지로 삼았다.

 

image.png.jpg

▲ 1639년 마카오 반도의 지도

 

이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명나라는

조공무역(감합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와 교류하고 있었으나,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취하였기에 조공무역 외의 사무역은 일절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중개무역 형태의 밀무역이 상인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고,

16세기부터 여기에 동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인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image.png.jpg

 

특히 포르투갈은

 

당시 일본에

납과 은이 섞인 은광석에서 녹는점 차이를 이용해

순은만 분리시키는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이

조선에서 도입되어 은의 생산이 증대되고 있었던 것을 알았고..

 

일본에서 귀하게 여겨졌던 중국산 생사를 사서 일본에 팔고

그것을 일본산 은과 교환하는 중계무역을 실시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image.png.jpg

 

image.png.jpg

▲ 일본 이와미 은광에서 연은분리법을 활용하여 은을 제련하는 그림

 

이후 자신의 식민지인 마닐라와 멕시코 간의 갈레온 무역과

중국과의 교류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스페인도

포르투갈을 따라 일본에 내항하여 일본과 무역을 개시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 포르투갈인과 스페인인을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의 남만인(南蠻人)이라 불렀고

이들과 행했던 무역을 남만무역(南蛮貿易)이라고 하였다.

 

이 남만무역은 주로

동남아에 거점을 둔 남만인들이 도달하기 쉬운

큐슈지방(九州地方)에서 이루어졌다.

 

nanbangroup_nahoii.jpg

▲ 일본에 방문한 유럽 선교사와 흑인노예 1

 

남만무역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 선교사의 포교 활동과

일체화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만무역은 경제적인 활동과 동시에

포교 활동이 같이 행해지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역선에는 선교사들이 함께하고 있었고,

남만인들은 이 선교사들을 인정해주는 다이묘령의 항구에만 입항하여

그 다이묘들과만 수교하였다.

 

image.png.jpg

▲ 일본에 방문한 포르투갈 선박

 

일본에서는 이 기독교를

키리시탄종(キリシタン宗), 천주교(天主敎), 야소교(耶蘇教) 등으로 불렀고,

 

선교사들을 지칭할 때에는 '사제'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빠드레(Padre)'를 따서

'바테렌(伴天連, バテレン)'이라고 불렀다.

 

남만 무역에 맛들인 다이묘들은

선교사를 보호하고 포교에 협력하였다.

 

여기에 세례를 받은 일명

‘키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도 등장하였다.

 

image.png.jpg

▲ 텐쇼견구소년사절(天正遣欧少年使節)로 로마에 파견된 4명의 일본 소년과 예수회 선교사

 

남만인들과 통교한 다이묘 중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과 대립했던 불교 세력들은 극혐하고 탄압하였지만,

새로 들어온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불교 세력에 대한 견제 때문인지...

존중해주었다.

 

그렇다고 오다 노부나가가 기독교를 신앙한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들은 오다 노부나가를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그와 다양한 교류를 하며 선교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image.png.jpg

▲ 일본에 방문한 유럽 선교사와 흑인노예 2

 

한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라는 이름에 맞춰서

오다의 많은 정책들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다처럼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큐슈 정벌을 가면서 그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은 180도 바뀌고 만다.

 

image.png.jpg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에서 키리시탄 다이묘들이

하늘에 봉헌을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나가사키(長崎; 오늘날의 나가사키현)에

예수회 깃발이 마구잡이로 꽂혀있는 것도 보고 말았다.

 

즉 기독교의 급속한 포교 속도와

그로 인한 위협을 직접 느끼고 온 것이다.

 

image.png.jpg

 

기독교는 주군에 대한 충성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강조하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기독교가 퍼지면 자신이 통치를 하는데 불리할 거라 생각하였고...

 

결국 1587년 '텐쇼 15년 6월 15일의 각서(天正十五年六月十八日付覚)'를 발표하여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각서를 바탕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바테렌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일본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파괴하기 때문에

바테렌들이 일본 땅에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선교사들의 추방을 요구하였다.

(바테렌 추방령)

 

image.png.jpg

▲ 바테렌 추방령

 

그리고 다이묘들의 기독교 신앙을 신고제로 바꾸어

허락만 맡으면 신앙하는 것은 인정해주었지만,

농민들을 강제 개종시키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이렇게 포교는 금했지만..
무역선과 상인의 내왕은 인정하면서 장려하였다.

 

즉, 종교의 포교는 막고 싶었지만 남만무역은 계속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종교와 무역을 분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image.png.jpg

 

또한 1588년에 해적취체령(海賊取締令)이 발포되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기대와는 다르게
기독교는 더욱더 확대되는 사태가 생겨나고 말았다.

 

무로마치 막부 후기 막부의 권위가 하락하면서
우리가 흔히 왜구(倭寇)라고 불리는 해적들이 판치게 되었는데,

 

이들은 일본 주변 바다를 휘저으며 한반도나 중국을 습격하기도 하였고,
다이묘와 결탁하여 다이묘의 수군으로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어업을 같이 행하는 경우가 많아 어민들과 함께 민란에 가담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해외 무역을 하는 외국 상인 뿐만 아니라
일본 상인도 습격하여 약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image.png.jpg

▲ 명군(좌측)과 왜구(우측)의 해상 조우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해적들이
다이묘와 결탁하여 다이묘의 세력이 커지는 것과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적들도 토요토미 정권에 복종시켜

카타나가리(刀狩り)를 행해 병농분리를 시행하고자 하였다.

- 카타나가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화 참고 바람. -

 

또한 해적들을 복속시켜 조선 출병 시

해상 운송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해상 물류를 장악하고 싶어하여
해외 무역을 장려하였기에
해적들을 소탕해서

상인들이 안전하게 동아시아로 도항할 수 있게 하고자 하였다.

 

image.png.jpg

 

이러한 이유 등으로 시행된 것이 해적취체령으로,
이를 통해 히데요시는 해적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토요토미 정권 체제에 복속시켜버렸다.

 

문제는 이렇게 해상의 평화가 찾아오자
서양 무역선들이 더욱 일본에 수월하게 들어오게 되었고...


일본 상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남방무역을 하게 되면서
서양인들과 접촉하며 기독교가 오히려 더욱 확대돼버리게 되었다.

 

image.png.jpg

▲ 예수회 선교사(검은 옷)와 프란시스코회 선교사(회색 옷)

 

그러던 1596년 스페인 선박인 산 펠리페 호(San Felipe)가

토사(土佐; 오늘날의 시코쿠 코치현)에 표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선원 중 하나가 스페인이 세계 정복을 위해 선교사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 현지인들을 개종시키고 점령한다는 말을 떠벌리고 다녔다.

 

히데요시는 이 소문을 듣고 빡쳐서

스페인계의 프란시스코회에 속한 선교사와 신자 26명을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묶어 놓고 처형해버렸다.

(산 펠리페 호 사건)

-그런데 이 시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일본과의 무역을 두고 경쟁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쪽에서 스페인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일부러 퍼뜨린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산펠리페호.jpg

▲ 산 펠리페 호 사건을 표현한 그림

 

이 사건 이후 히데요시는

더욱더 확실하게 반 기독교적 정서를 갖게 되었고..

 

이로써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하게 실시하게 되었다.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일본 중세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51801979

 

39편 오닌의 난 https://www.flayus.com/51772867

40편 전국시대 https://www.flayus.com/51890068

41편 오다 노부나가 1 https://www.flayus.com/54997662

42편 오다 노부나가 2 https://www.flayus.com/56780855

43편 오다 노부나가 3 https://www.flayus.com/56837236

44편 오다 노부나가 4 https://www.flayus.com/59269096

45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https://www.flayus.com/64602578

46편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중심 정책 https://www.flayus.com/70145227

 

 


 

------------------------------------------------------

 

급하게 썼더니.. 횡설수설한 느낌..

 

그리고 다음은 임진왜란인데...

임진왜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들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다음화는 일본의 관점에서 간단하게만 다루고 넘어갈 생각입니당

댓글 14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28
금은이 녹아있는 납을 큐벨(?) 이라는 접시에 올리고 공기를 통하게 하면서 800~850도로 가열하면,
납은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연이 되고 큐벨에 흡수되고
금과 은의 합금만이 방망이 모양으로 큐벨 위에 남는다.

라고 예전에 보던 일본 책에 적혀있네 ㅋㅋㅋ

그렇게 어려운 기술은 아닌 듯
애초에 이 방법 발명도 양인 한명이랑 노비 한명이서 한거라...
best 펨국 2021.01.01. 15:08
회취법 볼때마다 떠오르는건데
우리나라 책에서는 회취법이 조선 전기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파됐다고하는데
일본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함?? 회취법 자체가 나름 기술이 필요한건데 도요토미 시대에 이르러서 상용화 됐다는게
그 짧은 시기에 상용화된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건지 아닌건지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22
일본에서도 똑같이 조선에서 직접적으로 전래됐다고 배움 ㅋㅋ
조선에서 장인을 초빙해서 기술도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 기술 배우기만 하면 시스템 구축은 금방 하기 때문에 상용화시키는게 어렵지는 않았을듯
이와미 은산에서 이게 성공하니까 이제 너도 나도 따라서 하면서 이게 전국으로 퍼지고...
이게 16세기 초중반의 이야기니 토요토미 이전 전국시대부터 상용화됐다고 봐야 됨
슬기 2021.01.01. 14:47
이때 일본에서 별사탕 먹고 그러지 않았나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01
 슬기
ㅇㅇ 별사탕도 이때 들어옴 ㅋㅋㅋ
댓글
슬기 2021.01.01. 15:03
 안유진
노부나가의 셰프 졸라 재밌었는데..
댓글
best 펨국 2021.01.01. 15:08
회취법 볼때마다 떠오르는건데
우리나라 책에서는 회취법이 조선 전기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파됐다고하는데
일본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함?? 회취법 자체가 나름 기술이 필요한건데 도요토미 시대에 이르러서 상용화 됐다는게
그 짧은 시기에 상용화된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건지 아닌건지
댓글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22
 펨국
일본에서도 똑같이 조선에서 직접적으로 전래됐다고 배움 ㅋㅋ
조선에서 장인을 초빙해서 기술도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 기술 배우기만 하면 시스템 구축은 금방 하기 때문에 상용화시키는게 어렵지는 않았을듯
이와미 은산에서 이게 성공하니까 이제 너도 나도 따라서 하면서 이게 전국으로 퍼지고...
이게 16세기 초중반의 이야기니 토요토미 이전 전국시대부터 상용화됐다고 봐야 됨
댓글
펨국 2021.01.01. 15:23
 안유진
그렇구만요 납을 태워서 은을 추출하는게 금방 상용화 되나보네요
기술알못이라서 잘 몰랐음 ㅋㅋㅋ 답변 ㄳㄳ
댓글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28
 펨국
금은이 녹아있는 납을 큐벨(?) 이라는 접시에 올리고 공기를 통하게 하면서 800~850도로 가열하면,
납은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연이 되고 큐벨에 흡수되고
금과 은의 합금만이 방망이 모양으로 큐벨 위에 남는다.

라고 예전에 보던 일본 책에 적혀있네 ㅋㅋㅋ

그렇게 어려운 기술은 아닌 듯
애초에 이 방법 발명도 양인 한명이랑 노비 한명이서 한거라...
댓글
펨국 2021.01.01. 15:33
 안유진
항상 광업파트만 들어가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회취법도 비슷한 맥락으로 머리가 지끈거림 ㅋㅋㅋㅋㅋㅋㅋ
이와미 은광같이 세계의 1/3이 나오는 큰 광산에서도 회취법이 손쉽게 사용된다면
조선에서도 분명 많이 사용됐어야 했는데, 애초에 조선에서 은의 수요도 적을걸 차치하더라도, 가성비 때문에 회취법 자체가 상용화될 정도로 쓰이지는 않았고
거기다가 중앙집권적이지 않았던 당시 일본에서 어떻게 점역(店役)을 시행했을지 등등등
광업만 들어오면 머리아픔 ㅋㅋ 문돌이라 그런가 ㅋㅋㅋㅋㅋ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5:40
 펨국
조선은 은광 개발 자체를 제한하지 않았나 ㅋㅋ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또 조선은 은광이 자체도 적기도 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은 캐볼라고 회취법을 만든 거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댓글
펨국 2021.01.01. 15:42
 안유진
ㅇㅇ 맞음 국가에서 제한하기도 하고, 은광 자체도 적고, 조선전기에는 은 수요도 적었고, 회취법이 가성비가 떨어지기도 하고 ㅋㅋㅋㅋ
댓글
아마 2021.01.01. 16:44
카게무샤 보면 오다가 막 서양 갑옷 입고 그러던데 실제로도 그랬나요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1. 17:09
 아마
넵 워낙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이었던 인물이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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