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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42 : 본격적인 통일 사업의 시작 (오다 노부나가 제 2편)[발롱도르~]

40편 하극상의 시대, 전국시대

41편 : 오다 노부나가 제 1편

 

-

 

교토로 상경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더욱더 천하포무를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전국시대 통일을 위한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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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막부 내에서의 영향력이 커지자

새로운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이제 그를 견제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에 요시아키는 아사쿠라씨(朝倉氏)와 타케다씨(武田氏)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대놓고 그를 견제하는 티를 냈고...

 

이때부터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와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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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카가 요시아키

 

 

아네가와 전투(姉川の戦い)

 

그러던 1570년..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편에 서있는 다이묘들을

확실히 파악 하고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전국의 다이묘들을 교토로 불러들이도록 명하게 된다.

 

그러나 에치젠(越前; 현재의 후쿠이현)의 아사쿠라씨가

끝까지 이 명령을 거부하고 교토로 상경하지 않아

노부나가와 대립각을 세웠고...

 

여기에 빡친 노부나가는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데리고

아사쿠라씨를 토벌하기 위해 에치젠으로 출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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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 이에야스

 

에치젠.png.jpg

▲ 에치젠의 위치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사실 혼인 동맹을 맺고 있었던 오다씨와 아자이씨(浅井氏) 사이에

동맹의 조건으로 아사쿠라씨를 공격하지 말라는 내용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자이씨는 오래 전부터 아사쿠라씨에게 군사적 원조를 받으며 성장했기에

두 가문은 아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부나가가 이 동맹의 조건을 깨버리고

아사쿠라씨를 토벌하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노부나가의 매부였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는 그를 배신하고

아사쿠라씨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와 연합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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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이 나가마사

 

아자이 나가마사는 에치젠을 공격하는 오다 군의 뒤를 제대로 쳐 버렸다.

 

결국 오다 군은 큰 타격을 받고 후퇴하고 말았고

이마저도 힘든 퇴각전을 펼치면서 겨우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카네가사키 전투)

 

이 때 이 퇴각전에서 노부나가의 후위를 자청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키노시타 히데요시(木下秀吉; 훗날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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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1592>에서 이정현 배우가 연기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청년시절

 

수치스럽게 후퇴하고 만 오다 노부나가는

보복을 위해 군사를 재정비 하고

다시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하여

아자이씨의 영지인 북오우미(北近江; 현재의 시가현)로 쳐들어 간다.

 

이에 아자이씨는 아사쿠라씨에게 얼른 지원 요청을 했고

오다-토쿠가와 군과 아자이-아사쿠라 군은

아네가와(姉川)라는 강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아네가와 전투)

 

image.png.jpg

▲ 아네가와 전장 유적

 

전투는 토쿠가와 군 vs 아사쿠라 군

오다 군 vs 아자이 군의 구도로 벌어졌다.

 

그런데 토쿠가와 군과 아사쿠라 군의 싸움에서는

이유는 불명이지만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전선에 직접 나오지 않았고..

때문에 아사쿠라 군 병사들의 사기가 낮아져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본대가 도달하자 아사쿠라 군은 격파되고 말았다.

 

반면 오다 군 vs 아자이 군의 상황에서는

초반에 아자이 군은 오다 군을 거의 쓸어버리다시피 하며 승승장구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겨우 목숨만을 건지며 패배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오다 군에게는 계속해서 지원군이 파견되었고

먼저 아사쿠라 군을 격파한 도쿠가와 군도 여기에 합류했다.

오다 군은 이에 힘입어 반격에 성공하여

아네가와에서 아자이 군을 격파하는데 결국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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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쿠라 군과 토쿠가와 군, 아자이 군과 오다 군이

아네가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

 

image.png.jpg

▲ 전투 진행 중의 대형

 

아네가와 전투에서 양 세력은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은

핵심 무사들이 상당 수 전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히에이산 엔랴쿠지(比叡山延暦寺)와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 같은 사원세력들과 연합하여

 오우미, 에치젠 주변에서 계속해서 오다 군과 공방전을 펼쳤다.

 

엔랴쿠지 근본중당.png.jpg

▲ 히에이산 엔랴쿠지 근본중당

 

image.png.jpg

▲ 이시야마 혼간지 복원 모형

 

히에이산 엔랴쿠지는 일본에 천태종을 개창한

오우미 출신의 사이쵸(最澄)가 8~9세기에 세운 사원으로,

시간이 갈 수록 점점 확대 성장하여 일본 천태종의 중심이 된 사원세력이었다.

 

이시야마 혼간지는 15세기 렌뇨(蓮如)에 의해 세워진

정토진종계의 사원세력이었다.

 

이 사원 세력들이 계속해서

노부나가에게 저항하고 적대세력에 가담하자

빡친 노부나가는 결국 히에이산에 불을 질러버리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곳의 사람들을 학살해버렸다...

(히에이산 소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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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에이산 소각 사건을 그린 <태합기>의 삽화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

 

천하통일을 표명한 노부나가의 힘이 쎄지면서

사실상 권한을 빼앗긴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1572년, 가이(甲斐; 현재의 야마나시현)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출병을 요청하였다.

 

image.png.jpg

▲ 타케다 신겐

 

사실 타케다씨는 오다씨와 혼인 관계에 있었기에

동맹관계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쇼군이 노부나가 토벌령을 내리자

결국 3만의 군대를 데리고 출병했고

 

이들은 오다씨와 토쿠가와씨의 거점이었던

미노(美濃; 현재의 기후현), 미카와(三河; 현재의 아이치현),

토오토우미(遠江; 현재의 시즈오카현) 등 각지로 나뉘어서 쳐들어갔다.

 

타케다 군은 미노 동부를 차지했고,

토오토우미의 히토코토자카(一言坂)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에서

오다와 토쿠가와의 연합군을 격파하며 승승장구 했다.

 

一言坂.png.jpg

▲ 히토코토자카 전장 유적

 

三方ヶ原.png.jpg

▲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묘사한 그림

 

이듬해인 1573년에는 타케다군이

토쿠가와의 영지인 미카와까지 쳐들어가는 데에 성공하였고...

미카와의 노다성(野田城)까지 공략해버린다.

 

또한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와 연합하여

교토에서 거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궁지에 몰린 노부나가는 결국

급하게 천황에게 가 화해의 칙령을 받고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화친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그런데....

 

며칠 뒤 갑자기 노다성을 먹은 타케다 신겐이

갑자기 지병이 악화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급사하게 된다..

 

이에 타케다 군은 급하게 본거지 가이로

철수하게 되었다...

 

자신들을 위협하던 타케다 신겐의 군대가 철수하자

노부나가는 전력을 다듬어

쇼군이 거주하는 니죠성(二条城)을 치고,

자신의 적대세력의 배후에 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시켜버린다.

 

요시아키의 쇼군직 자체는 박탈되지 않았으나

그는 강제로 출가하게 되어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이로서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오우미와 에치젠을 다시 공격해

아자이씨와 아사쿠라씨도 멸문 시키는 데 성공한다.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

 

한편 타케다 가문에서는 신겐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가 당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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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케다 카츠요리

 

그런데 신겐의 죽음이 알려졌을 경우

가문이 대내외적으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겐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고...

 

신겐이 카츠요리에게 당주를 물려주고

은거하였다는 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타케다씨의 가신이었던

오쿠다이라 사다요시(奥平定能)와

그의 아들 오쿠다이라 사다마사(奧平定昌)는

신겐의 죽음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들은 타케다씨를 배신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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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이라 사다마사

 

이때 오다 노부나가와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후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타케다 가문을 정벌할 필요가 있었고

계속해서 군세를 정비해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귀순해 온 오쿠다이라 사다마사에게

나가시노성(長篠城)의 수비를 맡게 하여

혹시 모를 타케다 군의 침략을 견제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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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시노성터 유적

 

한편 타케다 카츠요리도 아버지 신겐의 뒤를 이어

세력 확장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미노의 아케치성(明智城)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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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케치성 유적

 

미노는 노부나가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후다닥 출병을 하였지만

미노에 도착하기 전 이미 아케치성이 타게다씨에게 넘어간 바람에

다시 철수하게 된다.

 

아케치성을 먹는데 성공한 타케다 카츠요리는

신겐이 함락시키려다 끝내 달성하지 못했던

토오토우미의 타카텐진성(高天神城)의 함락마저 성공하게 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타케다 카츠요리는

그를 배신한 오쿠다이라 사다마사가 있는 나가시노성을

1575년 드디어 공격하러 간다.

 

나가시노.png.jpg

▲ 나가시노 전투를 나타낸 그림

 

타케다 카츠요리는 약 1만 5천명 가량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시노성을 둘러싸 포위해버린다.

 

나가시노성 안에는 당시 약 500명 정도의 병력 밖에 없었지만

나가시노성이 해자가 3중으로 설치돼있어서 방어력이 높았던데다가

성 안에 조총이랑 대포를 다량 보유하고 있어서

사다마사는 수적 열세에도 선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기고가 불타면서 상황이 위험해지자

사다마사는 이에야스와 노부나가에게 지원요청을 했고...

 

이때 도합 3만이 넘는 오다-토쿠가와 연합군이

지원군으로서 나가시노에 도착한다.

 

오다 군은 나가시노에서 주변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시타라가하라(設楽ヶ原)에 터를 잡고

적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군사들을 나눠서 띄엄띄엄 배치시켜놓은 뒤

 

image.png.jpg

▲ 시타라가하라 평원

(사진 출처 : http://ss-yawa.sakura.ne.jp/menew/mikawa/shiseki/higashi/shitaragahara.k/shitaragahara.k.html)

 

산속에 해자를 직접 파서 경사를 내거나

렌고강(連吾川)과 같은 작은 시내를 해자로 삼고

강 양쪽에 비탈길을 만든 뒤 제방을 설치하고

마방책(馬防柵)이라는 울타리를 세워서 진지를 구축하였다.

 

나가시노 진영.png.jpg

▲ 나가시노 전투의 진영도

 

타케다군은 두배가 넘는 수적 열세에 질 게 뻔하였지만...

카츠요리는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굳이 철수하지않고 결전을 택하였고..

 

결국 오다-토쿠가와 연합군에게 처참히 깨지고 만다..

 

사실 이 전투와 관련해서 잘 알려진 것은 '삼단철포(三段鐵砲)'라는 전술일 것이다.

 

image.png.jpg

▲ 오다 노부나가의 철포 부대

 

삼단철포 전술이란 조총 부대를 세 열로 차례로 줄 세우고

1열대가 먼저 쏠 동안 2, 3열대가 바로 뒤에서 불을 붙인 채

기다리고 있다가 이어서 총을 쏘는 방식으로

조총의 치명적 결점이었던 장전 시간을 보완한 전술로써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신전술로 채택하였다고 잘 알려져 있는 것인데...

 

사실 이에 대해선 명확한 근거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상황이나 기술로는 불가능한 전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도 마방책을 이용해 타케다군이 전진을 못하게 하고

그 뒤에서 철포부대를 세워 사격을 해댔다는 것은 사실이고,

굳이 삼단철포 전술이 아니어도 그 수많은 군대가

집단 사격을 하면 엄청난 위력을 보였을 것...

 

그리고 위의 그림처럼 조총부대 뒤에는

궁수들을 두어 철포의 장전시간을 메꾸려고 했던 듯하다.

 

어찌됐든.. 이 시기는 유럽인들이 신항로를 개척하며

해외무역을 확대하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image.png.jpg

 

이들이 동아시아에도 진출하여 일본과도 무역을 하면서

포르투갈로부터 철포(조총)가 도입되어

일본 사무라이들의 전법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사무라이 전법은

서로 한명씩 말타고 나와서 이름 대고 1:1로 싸우는

잇키우치(一騎打ち)라는 대결법이 관습적으로 쓰였다.

한마디로 일기토 방식...

 

image.png.jpg

▲ 잇키우치

 

그런데 유럽에서부터 조총이 유입되면서

이것이 다이묘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어

조총을 사용한 상비군을 조성하는 등의

새로운 전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타케다 가문도 격파하고,

오우미와 에치젠도 평정한 노부나가는

이듬해인 1576년 오우미에 아즈치성을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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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즈치성의 복원 모형


 관동에서 교토로 들어가기 위해선 오우미 지역을 거쳐야 됐기 때문에

오우미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지였고,

그렇기에 이곳에 성을 세운 것이다.

 

이 아즈치 성은 혼노지의 변 때 불타 없어졌지만,

그 천수각은 미에현(三重県) 이세시(伊勢市)에 있는 아즈치모모야마문화촌에 모형으로 복원되어 있다.

 

image.png.jpg

▲ 미에현 이세시 아즈치모모야마문화촌에 있는 아즈치성 모형 천수각

 

 

 

(다음 회차에서 계속...)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일본 중세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51801979

 

39편 오닌의 난 https://www.flayus.com/51772867

40편 전국시대 https://www.flayus.com/51890068

41편 오다 노부나가 1 https://www.flayus.com/54997662

댓글 10

best 요시그란도시즌 2020.05.27. 02:18
오다 -> 도요토미 -> 도쿠가와 흐름 이해하고 꼴리는 다이묘 선택해서 보면 잼있음
best 서윤경 2020.05.27. 00:48
성이 come인데 이름은 out이네
best BTID 2020.05.27. 00:45
일본도 역사가 복잡하네
서윤경 2020.05.27. 00:44
오다 노부나가...이름이 참 아이러니해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0.05.27. 00:47
 서윤경
놀부 나가
흥부 들어와
댓글
best 서윤경 2020.05.27. 00:48
 안유진
성이 come인데 이름은 out이네
댓글
best BTID 2020.05.27. 00:45
일본도 역사가 복잡하네
댓글
best 요시그란도시즌 2020.05.27. 02:18
 BTID
오다 -> 도요토미 -> 도쿠가와 흐름 이해하고 꼴리는 다이묘 선택해서 보면 잼있음
댓글
BTID 2020.05.27. 02:20
 요시그란도시즌
오호..
댓글
에스덥 2020.05.27. 03:15
아즈치성을 원래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복원시켜 놨군요..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0.05.27. 03:23
 에스덥
넹 원래 있던 자리는 성터만 남아있고 미에현에 있는건 아즈치모모야마시대 테마파크 조성하면서 만든거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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