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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35 : 남북조의 동란 1[발롱도르~]

34편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https://www.flayus.com/40359803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에게 밀려

결국 천황직을 유타히토(豊仁)에게 양도하고 물러나고 만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

 

1.png

▲ 고다이고 천황

 

마지못해 천황직을 양도한 고다이고 천황은

교토의 한 절에 유폐되어 있다가

 

1336년 12월..

교토를 탈출한다.

 

2.png

 

고다이고는 요시노(吉野; 현재의 나라현 요시노정)로 도망쳐

자기가 유타히토에게 양도한 삼종신기는 사실 가짜였으며

진짜는 자신에게 있으니 천황의 정통성도 자기에게 있다며

요시노에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 삼종신기에 관한 내용은 본 콘텐츠 26회차 참조 -

 

즉..

일본에는 교토 조정과 요시노 조정,

두개의 왕조가 생기고 만 것이다.

 

3.png

▲ 교토와 요시노의 위치

 

이후 2년 뒤에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쇼군에 임명되면서

북조는 무로마치 막부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향후 60년 간 막부와 남조의 대립이 이어진다.

 

 

남조 실세들의 사망

 

남북조 시대가 시작된 직후 몇년간

교토를 탈환하려는 남조와

이를 지키려는 북조의 교전은 계속되었다.

 

고다이고 천황의 최측근 무사이자 충신이나 다름 없었던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와 키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도

당연히 남조의 무사로서 이 교전들에 참여했는데....

 

그러다 이 둘은 같은 해 교전 중 전사하고 만다.

 

image.png

▲ 닛타 요시사다

 

image.png

▲ 키타바타케 아키이에

 

설상가상으로 남조의 고다이고 천황마저

병으로 쓰러지게 되었고

 

결국 노리요시 친왕(義良親王)에게 남조 천황직을 양위하고

 역적 타카우지를 토멸하고 교토를 되찾으라는 유언을 남긴채

사망하고 만다.

 

image.png

▲ 노리요시 친왕

 

그러나 고무라카미 천황(後村上天皇)으로 즉위한 노리요시는

당시 12세의 나이에 불과하였다.

 

이렇게 강력한 무장들 같은 실세들이 다 사망하고

어린 천황이 이끌어 가게 된 남조는

당연하게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군사력과 같은 요소에서도

북조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1348년 1월 벌어진 시죠나와테 전투(四條畷の戦い) 등에서

남조는 막부군에게 크게 패해 멸망 직전에까지 이르게 된다.

 

 

막부 내분의 시작

 

그러나 이번엔 북조에서 혼란이 시작된다.

 

바로 막부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쇼군으로서

무로마치 막부를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타카우지는 1인 통치체제를 확보하지 못하고

동생인 아시카가 타다요시(足利直義)와 권한을 분할하여

북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image.png

▲ 아시카가 타다요시

 

타카우지는 전국의 무사와 맺은 주종관계를 통괄하면서

사무라이도코로(侍所)를 중심으로 군사적인 권한을 장악했다.(군사의 장)

- 사무라이도코로에 대한 상세 설명은 본 콘텐츠 27회차 참조 -

 

타다요시는 오로지 소송을 비롯한 정무만을 담당하였고

정치적 통치자로서의 권한을 장악했다.(정사의 장)

 

그러나 이 둘 사이에서 군사를 우선으로 할지

정사를 우선으로 할지를 놓고

대립이 생기게 시작하였다.

 

신흥 무사층들과 강력한 무가정권을 원하던 무사들은

타카우지를 지지하면서 이들은 혁신파로 불리게 되었고

 

보수적인 무사층들과 문치를 중시하는 무사들은

타다요시를 지지하면서 이들은 보수파로 불리었다.

 

그런데 고다이고 천황 사망 후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고다이고 천황을 등진 것을 후회하며

잠시 출가를 하는 등 거의 유령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기에

혁신파에서는 타카우지의 최측근이었던

코우노 모로나오(高師直)가 행동대장의 역할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1024px-Ashikaga_Takauji.JPG

▲ 코우노 모로나오

 

하지만 모로나오가 이끌던 무사들은 주로 혁신파의 신흥 무사들이었기에

가문과 신분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고,

법에 의한 질서를 따르지 않고 여러 사건들을 많이 일으켜

보수파 무사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혁신파 무사들은

재판을 담당하는 타다요시에 의해

처벌당하는 일이 허다했으며

이로서 양 파 간 대립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남조가 갑자기 교토를 탈환한다고 쳐들어와

교토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타다요시가 이를 막기 위해 보수파 무사들을 파견했지만

그가 파견한 무사들은 다 패하고 말았다.

 

결국 코우노 모로나오가

동생 코우노 모로야스(高師泰)와 함께 출동하여

남조군을 쓸어버리고 아예 요시노까지 가서

남조를 멸망 직전까지 만들어버린다.

- 이게 위에서 말한 시죠나와테 전투 -

 

이 사건으로 인해 코우노 모로나오를 따르는 세력이 늘어났고

막부 내에서의 타다요시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쫓겨나는 아시카가 타다요시

 

이에 위협을 느낀 아시카가 타다요시 세력들은

코우노 모로나오 일당을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 위해

쇼군 타카우지에게 그를 면직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우곤 상황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면서

모로나오를 암살할 계획 까지 세운다.

 

하지만 모로나오는 동생 모로야스와 함께

군사를 몰고 역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에 성공하였고

이 때문에 타다요시는 형인 타카우지 집으로 피신을 가게 된다.

 

2.png

 

모로나오의 군대는 쇼군 집을 포위한 채

타다요시의 옆에서 간언을 하는 놈들을 없애야된다면서

타다요시의 양 팔이나 다름없던 무사들을 처형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타다요시는 이를 거절하면서 버텼고

그럴수록 모로나오의 포위망은 더욱 조여져 갔다.

 

결국 이를 지켜보고 있던 스님 무소우 소세키(夢窓疎石)가

타다요시의 양 팔인 우에스기 시게요시(上杉重能)와

하타케야마 타다무네(畠山直宗)를 유배시키고

아시카가 타다요시는 막부 정권에서 손을 떼고 출가하는 것을

중재안으로 권유하였고,

 

결국 이것이 받아들여져

모로나오의 쿠데타는 무마되었고

타다요시는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Muso_soseki.jpg

▲ 무소우 소세키

 

타다요시의 뒤를 이어서 정무를 맡게된 이는

타카우지의 아들인 아시카가 요시아키라(足利義詮)였다.

 

그런데 이렇게 권력 싸움으로 막부가 난리가 나고 있음에도

쇼군인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아무런 입장표명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쇼군으로서 중립을 지킨 것인지,

그저 정세를 지켜볼 생각이었는지,

아직도 고다이고 천황에 대한 죄책감에서 못빠져나오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모로나오와 쿠데타 음모를 짜놨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이 사태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배갔던 우에스기 시게요시와

하타케야마 타다무네가 암살을 당하게 되면서

코우노 모로나오와 아시카가 타다요시 사이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게 되는데...

 

 

(다음 회차에서 계속...)

 

 

번외) 북조가 남조를 일거에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

 

사실 남조는 유망한 무장들과 실세들이 초창기에 떼로 죽었기 때문에 북조가 맘만 먹으면 다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북조가 섣불리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한 세가지로 추려볼 수가 있다.

 

1. 남조의 수도이자 거점이었던 요시노는 중요한 요해지 중 하나였다.

요시노의 지형은 대다수가 산맥이고 요시노 강이 흐르는 지역만 평지이기 때문에 쉽게 쳐들어가기 힘든 구조임.

그리고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형에 대해 해박하고 침략에 대해 획기적이고 다양한 전술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쳐들어 갔다가는 아무리 군사력이 우위에 있더라도 자칫하면 대패를 당할 수도 있음.

 

제목 없음.png

▲ 구글 지도로 본 요시노의 지형

 

2. 남조는 이세·기이의 수군세력을 통해서 동국지방과 서국지방에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남조는 요시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이세국(伊勢国)과 기이국(紀伊国)의 수군 세력을 통해 큐슈나 동북지방의 수군세력들과 해상 연락을 취하고 있었음.

따라서 북조를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막부를 달가워 하지 않는 지방 무사들이 해상을 통해 남조를 지원하러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요시노에 쳐들어갈 수 없었음.

 

800px-Old_Japan_Kii.svg.png

▲ 이세, 기이, 요시노의 위치

 

3. 삼종신기로 상징되는 남조 정통 이념이 존재했다.

고다이고 천황이 북조에 넘긴 삼종신기는 가짜이고 남조가 갖고 있는 삼종신기가 진짜라고 표명했기 때문에 남조의 정통성이 도드라졌음.

삼종신기는 천황가의 보물이자 천황가의 혈통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있어야 정통 천황으로 인정 받을 수가 있었음.

그렇기에 삼종신기를 남조가 갖고 있는 한 남조의 천황을 공격할 경우 정통 천황을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북조 천황을 모시고 있더라도 섣불리 공격하기가 꺼림칙해지는 것..

그리고 잘못 공격했다간 원평합전때처럼 또 삼종신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26편 원평합전 https://www.flayus.com/33694971

27편 가마쿠라 막부 성립 https://www.flayus.com/34560949

28편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죽음 https://www.flayus.com/34738407

29편 호죠씨의 실권 장악 https://www.flayus.com/353141

30편 죠큐의 난 https://www.flayus.com/35781686

31편 원나라 침입 https://www.flayus.com/36255042

32편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https://www.flayus.com/37120539

33편 고다이고 천황의 독재 https://www.flayus.com/38545837

34편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https://www.flayus.com/40359803

 

--------------------------

 

남북조 동란에 관한 내용은 길이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나눠서 올릴게여

 

 

댓글 5

best 수달에테몬 2019.09.08. 22:02
언제나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best 수달에테몬 2019.09.08. 22:02
언제나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
나상호 작성자 2020.01.03. 03:39
 OhMyGirl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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