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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연재) 공상의 시간 - 명절 그리고 친척들의 질문공세[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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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오는 명절 설날과 추석은 한 해의 메인이벤트라고 생각한다. 설날은 상반기 추석은 하반기. 어떻게 보면 터닝 포인트이자 브레이크 타임인 셈이다.)

자영업자들 중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 

 

#1 내 어린 시절의 명절.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가 많다. 아버지는 5남매였고 어머니는 4남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에 조모님, 외조부모님 댁에 가면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내 밑에 사촌만 4명이고 내 위로 있는 외사촌만 5명이었다. 심지어 얼마전에 2명 더 늘었으니... 아무튼 그래서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명절에 가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물론 어릴 적 내 입장에선 두 집은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었다. 외조부모님네 댁은 어쨌든 도시에 있는 집이라 방이 많았다. 그래서 좀 넓찍한 느낌이 드는 곳에 머무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외조부모님 댁에서 치뤄지는 명절은 딱 외삼촌 외숙모들과 외조부모님 그리고 외사촌들이 전부였다. 다들 멀리 떨어져사시는 지라 교류가 잦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 어머니가 막내셔서 나역시 나이상 막내라인인지라 외사촌들이 드럽게 많이 괴롭혔다 정도가 있겠다. 어릴 때 나는 진짜 순진한 순둥이여서 여러모로 놀리기 좋은 타겟이었다고 한다.

 

조모님댁은 시골에 있는 집이었다. 엄청 오래된 집인데. 양옥으로 개조한지도 이제 30년이 넘었다. 곧 있으면 사람 없는 빈집이 될 터이지만 그 집에도 나름 많은 명절의 추억들이 담겨있다. 일단 조부모님 사는 동네 자체가 집성촌이라고 해야하나? 걸어서 3분거리안에 친척집이 2집이나 있어서 같이 차례 전날에 모여서 먹고 놀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육촌 어르신 분이 영덕 사시는데 진귀한 해산물 많이 가져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매년 명절마다 대게를 제사상에 올리셨는데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거랑 이제 바다장어였나 그걸 나 중학생 때 가져오셔서 마당에서 석쇠에 구워주셨는데 그게 진짜 엄청 기억에 남는다. 그 때 살면서 처음으로 술이라는 것을 먹어봤다. 아마 복분자 술로 기억한다.

 

이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명절이면 정말 좋겠지만. 명절하면 피할 수 없는 그런게 있으니 바로 친척들의 근황질문 공세라고 할 수 있겠다.

 

 

 

"거 펨네붕이는 요새 어떻게 지내니? 대학은 잘 갔고? 우리 애는 요새 OO대 간다고 준비중인데... 혹여나 도움 줄 수 있음 좀 주고받고 하려무나"

"펨네붕이 요새 대학 졸업하고 취업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성과는 좀 있었니? 어디 누구는 어디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더라"

"펨네붕이야 이제 너도 나이가 찼는데 슬슬 결혼 준비해야하지 않겠니? 뒷집 명식이는 참하고 이쁜 아가씨랑 결혼해서 오손도손 잘 살던데"

 

인터넷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친척들의 질문 콤보들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나마 양반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2 친척들의 질문공세.

 

솔직히 필자는 아직까지는 저런 질문공세를 제대로 당해본적은 없다. 학생 때도 워낙 알아서 하는 모습으로 친척들에게 각인된 상황이었고. 실제로 진로 선택이라던가 대학 입시까지 필자 스스로해서 대학을 간 케이스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거기도 했다. 물론 친척들 중에 공부 잘 하는 친척들이 있기도 했고 관심이 없는 친척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질문이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능수능란하게 잘 대처한 편이었다. 순도 90% 구라여서 문제였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질문이 별로 안 들어온 이유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워낙 집안에서 막강한 분들이시다 보니 그런 질문이 생각보다 안 들어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보기도 한다. 특히 할머니가 필자를 장손이라고 아껴주셨던 기억이 좀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넷상에서 이야기하는 친척들의 저런 질문 콤보는 학생시절이 끝나고 성인으로 가서야 본 단계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필자가 받은 질문공세는 새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친척들이 모여서 저런 질문 공세를 하면서 보내는 것일까? 요즘 핵가족화로 인해서 자주 못 보다보니 오랜만에 봐서 궁금한 것도 많고 걱정도 되고 하니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근황을 알아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주려고 하거나 위로하거나 축하할 일 있으면 위로해주고 축하해주려는 심리로 질문공세를 하는 것 아닐까?

 

깨놓고 이야기 해서 우리가 명절을 보내는데 괜히 한 곳에 모이는 이유가 있겠는가? 현대 사회에서 핵가족화는 심해지고. 서로 먹고 살기 바빠서 전화로 연락하는 것도 힘든 시기다. 그럴 때 시간이 나니 잠깐 모여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는 의미로 모이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 근황을 묻는 질문 공세는 할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명절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세 중 하나인 오지랖스러운 질문하면서 자기 집안 자식자랑하고 남의 자식과 남의 집안 돌려까기로 질문공세가 들어올 수도 있다. 근데 이런 경우는 그냥 그 집안이 병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집안이라면 근황을 묻고 이야기를 하면서 도와주거나 챙겨줄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챙겨주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슬픈 일 안 좋은 일 있으면 위로해주는게 맞는 것인데. 저런식의 질문 공세는 명절에 모인 이유를 퇴색시키는 매우 잘못된 행위라고 보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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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명절에 멀리사는 친척들까지 다 모여서 지내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그런 것도 점차 줄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3 이제는 그리워져가는 친척들의 질문공세.

 

시간이 흘러가면서 친척들이 대대로 많이 모이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이 많으신 친척분들이 한 분 두 분 영면하시면서 구심점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핵가족화가 점차 진행되가면서 친척들이 명절에도 얼굴 보기 힘들어지는 것도 맞다.

 

아무래도 집안과 집안의 거리감이 대를 이어가다보면 살아가는 터전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만나기 힘든 경우가 많아지고 따로 제사를 지내고 나중에 만난다던지 하는 경우가 잦아지더라. 아니면 성묘때만 잠깐 만난다던지 말이다. 그걸 자라면서 많이 느꼈다.

 

어릴 때 조모님댁에서 명절을 보낼 땐 세배드릴 친척이 많아서 어린 마음에 일찍 일어나는게 피곤해서 칭얼거린적도 있었다. 근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 둘 세배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척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질문을 하던 친척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계속 보는 친척들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하나 둘 늙어가는게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또래 친척들이나 동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도 눈에 보이고.

 

그리고 나도 조금씩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질문들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낀다. 어릴 땐 그저 밥 잘 먹고 지내냐는 질문들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요즘 성적은 어떻니?로 변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이제 어떤 대학에 어떤 과를 갈거나고 물어보기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니 이제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냐고 물어보는 그런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의미에서 명절에 만난 친척들의 질문공세가 꼭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오랜만에 볼 수록 이것저것 물어보고 서로 도와야한다는 그런 '정'문화가 그래도 아직까진 한국 정서에는 남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져가는 사회가 되가는 만큼 더 반갑고 더 그리웠기에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근에 가까운 친척들을 떠나보내면서 느낀 것은 막상 떠나보낼 때는 큰 느낌이 안 드는데. 막상 나중에 가면 허전하다고 느낀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던. 아니면 예정된 죽음이던. 떠나보내고 나서야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절에. 언제나 계실거라고 여겼는데. 안 계신걸 보면 참 어색하다. 과연 이런 어색함을 더 느껴야하는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을 지도 두렵다.

 

그렇기에 더욱 친척들의 질문공세에 대해서 이제라도 좀 더 성실하게 답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글을 마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자갤러들 및 펨네인들도 즐거운 설 연휴 됐기를 기원한다.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갈 시간이다. 

 

부디 이 휴식을 반등점으로 삼아 좋은 상반기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댓글 16

장원영 2021.02.14. 23:45
그러고보니 2년동안 못내려갔네...
댓글
타나카미쿠 작성자 2021.02.14. 23:52
 장원영
전화라도 꼬박 꼬박 드리면 된거죠.
댓글
장원영 2021.02.14. 23:56
 타나카미쿠
좀 걱정되는건 저희 세대가 성인이 되었을때 지금같이 모일 수 있을까? 하는거
예전보다 많이 멀어지기도 했고
친척이라는 느낌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라서 약간 슬픔
댓글
타나카미쿠 작성자 2021.02.15. 11:42
 장원영
연락이라도 꾸준히 하면 언젠간 꼭 만날겁니다.
댓글
오버핏 2021.02.14. 23:54
형 글 어떻게 잘쓰게됫어여?
댓글
타나카미쿠 작성자 2021.02.15. 11:46
 오버핏
진짜 글 잘 쓰는 사람이 천지에 널렸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거지 잘 쓰는 건 아니야.
댓글
타나카미쿠 작성자 2021.02.15. 19:47
 메리미리마리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luve 2021.03.06. 12:21
ㄹㅇ 발롱 이네
댓글
luve 2021.03.06. 13:30
 타나카미쿠
그러엄
우린 원래 안가고 안왔지만
공감은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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