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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55 : 시마바라의 난[발롱도르~]

49편 :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

50편 : 토요토미 가문의 완전한 몰락

51편 : 막번체제의 성립과 다이묘에 대한 통제

52편 : 에도 막부의 통치 조직

53편 : 에도 막부의 신분제도

54편 : 에도 시대의 도시

 

-

 

전국시대 때부터 일본에 전래되어
다이묘들과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점차 세력이 넓어지던 기독교...

 

이를 경계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바테렌 추방령(バテレン追放令)과
산 펠리페호 사건(サン・フェリペ号事件) 등을 통해
 기독교인들을 탄압했지만
기독교 세력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 바테렌 추방령과 산 펠리페호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7회차 참조 -
 

image.png.jpg

▲ 산 펠리페호 사건

 

막부 또한 처음에는 기독교를 묵인해주는 듯했으나...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니
기독교 때문에 큰일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특히 막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인들이
일본에 대한 침략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고,

 

큐슈(九州)와 킨키(近畿)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크리스찬들이
서로 결탁하여 막부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결국 1612년,
2대 쇼군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는
막부직할령에 금교령(禁敎令)을 내리게 되었다.

 

image.png.jpg

▲ 토쿠가와 히데타다

 

이 금교령은 이듬해인 1613년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과 국외 추방을 실시하며
개종강요와 박해를 가했다.

 

1614년에는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 등의 300여명이
마닐라(Maynila)와 마카오(Macau)로 추방되었고,
1622년에는 나가사키에서 55명의 선교사와 신도들이 처형되었다.

 

우콘.png.jpg

▲ 타카야마 우콘

 

이런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분위기는
결국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이라고 하는
농민봉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실 시마바라의 난은 민중탄압으로 인해 일어난
농민들의 저항운동이었지만,
종교적인 이슈와 크게 얽힘으로써
이 난 이후로 일본에서 크리스트교는 뿌리가 뽑히게 되어 버린다.

 

 

 

<시마바라의 난>

 

큐슈 북서부에 위치한 반도 시마바라(島原; 현재의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시)...
기독교는 본래 큐슈지방을 중심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 주변은 일본 기독교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시마바라.gif

▲ 시마바라의 위치

 

시마바라 또한 다른 큐슈지역과 마찬가지로
키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였던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의 영지였다.

 

아리마 하루노부는 금교령이 내려지기 전
아들인 아리마 나오즈미(有馬直純)를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증손녀와 결혼시켜
막부와 사돈관계를 맺었고,
그 힘을 이용해 남만무역을 전개하여 번영하였다.

 

막부가 초반에 기독교를 묵인해준 것도
아리마 하루노부의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image.png.jpg

▲ 아리마 하루노부

 

그런데 1609년...
하루노부는 남만무역을 위해
대만과 마카오에 무역선을 파견해 영업을 뛰고 있었는데,
하루노부의 가신들과 마카오에 있는 포르투갈 애들 사이에서
싸움이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하루노부는 막부의 허가를 받아
포르투갈 선박을 박살내버렸고,
막부로부터 이 공을 인정받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비극의 서막이 시작된다...

 

image.png.jpg

▲ 에도시대의 공인 무역선이었던 주인선(朱印船)

 

하루노부는 본인의 공을 인정받자
오래전부터 가문 간 싸움으로 잃어버렸던 영지들을
자신의 공에 대한 보상 형식으로 돌려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는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하루노부는 막부에 이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때 막부의 로쥬(老中)였던 혼다 마사즈미(本多正純)의 가신인
오카모토 다이하치(岡本大八)가 이 사실을 알고
하루노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 로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콘텐츠 52회차 참조 -

 

오카모토 다이하치는 하루노부에게
자신이 막부에 잘 이야기해서 원하는 영지를 되찾아주겠다면서
이를 위한 자금을 요구했다.

 

땅에 눈이 멀었던 하루노부는 여기에 홀라당 넘어가서
다이하치에게 돈을 있는대로 다 갖다 바쳤는데..

 

이 정치적 뇌물수수 및 로비행각이 막부에 딱 걸려버리고 만다...

 

image.png.jpg

 

결국 이것 때문에 다이하치는 화형 당했고,
하루노부는 할복을 명 받았으나
크리스찬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자결할 수 없어서
가신들에게 목이 썰리는 것으로 처형을 대신하였다.

 

이것이 1612년의 일이었고,
이 사건 때문에 막부는 키리시탄 다이묘들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고
그들이 막부권력에 위협이 될까봐 무서움을 느끼고
금교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image.png.jpg

 

아리마 하루노부는 이렇게 죽게 되었으나,
이미 막부의 가족이 된 하루노부의 아들 나오즈미는
영지의 상속권을 인정받아 시마바라의 영주가 될 수 있었다.

 

나오즈미는 지금 분위기상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면
자신도 큰일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영지 내에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기독교를 믿는 자신들의 가족마저도 다 죽여버렸다.

 

그러나 이미 시마바라는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가 기본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농민들에게까지도 기독교가 뿌리박혀 있었고,
나오즈미의 탄압 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에 나오즈미는 막부로부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마바라를 지배하는 것에 GG를 선언..
큐슈 남부의 노베오카(延岡; 현재의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로 전봉하게 되었다.

 

image.png.jpg

▲ 게임에서 묘사된 아리마 나오즈미

 

아리마 나오즈미가 노베오카로 전봉되자,
아리마씨의 대타로 마츠쿠라씨(松倉氏)
시마바라에 입봉하게 되었다.

 

마츠쿠라씨는 새로 부임한만큼 기강을 빡세게 잡기 시작했는데,
먼저 기존의 성들을 폐하고 새롭게 시마바라성(島原城)을 건립했다.
사실 시마바라는 코쿠다카(石高) 4만 3천석 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마바라성은 거의 10만석짜리 영지에나 있을 법한 규모였고,
따라서 영민들에게 미친 듯이 세금을 착취하였다.
- 코쿠다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6회차 참조 -

 

뿐만 아니라 막부에서 에도성을 개축하겠다고 하자
“쇼군님 충성충성 ^^7”을 외치며
번의 자금을 에도성 짓는 데에도 갖다 바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뜯게 된다.

 

또한 당연히 기독교에 대한 탄압도 거세게 진행했고,
세금을 안 내거나 개종을 하지 않을 경우
상상도 못할 고문들을 영민들에게 실시하였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시마바라 영민들 2만여명이 들고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시마바라의 난이다.

 

image.png.jpg

▲ 시마바라의 난을 묘사한 병풍 그림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나자
곧 근처의 아마쿠사(天草; 현재의 쿠마모토현)에서도 난이 일어나
시마바라 반군들에 합세하게 된다.

 

아마쿠사 또한 원래 키리시탄 다이묘로 유명했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영지였는데,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이후 코니시 유키나가가 처형되면서
그곳에 테라자와(寺沢)씨가 입봉하게 되어 폭정을 행하였다.

 

때문에 아마쿠사 영민들 또한 시마바라와 함께
봉기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image.png.jpg

▲ 코니시 유키나가

 

이 반란의 주된 원인은 과중한 세금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일반 농민들이 중심이 된 봉기였다.

 

그렇지만 그 농민들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이었고,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郎)처럼 
키리스탄 다이묘였던 아리마씨와 코니시씨를 섬겼던 낭인 출신들도 합류하여
대략 3만명 이상의 크리스찬들이 반군에 참여하였다.

 

아마쿠사 시로.JPG

▲ 아마쿠사 시로

 

시마바라 번군은 반란군에 참패를 당했고,
심지어 번군에서도 세금폭탄에 반발하여 반란군으로 넘어가는 자들도 있었기에
마츠쿠라 가문은 손쓸 새 없이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시마바라 영주는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지 않고
반란세력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결속한 것을 구실 삼아
이 반란을 기독교인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며
막부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막부는 12만 5천명에 달하는 군사를 보내
반군이 점령한 성을 포위하여 총공격하였고,
결국 반란군은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전멸하였다..
(그 한 명은 막부의 내통자였다..) 

 

image.png.jpg

▲ 반군이 점령한 하라성(原城)을 공격하는 막부군

 

이후 막부는 기독교를 완전히 혐오하고 금지하게 된다.
막부는 크리스찬이 많은 큐슈 북부의 신도들에게
예수나 마리아 상을 주석으로 조각한 후미에(踏絵)를 밟도록 하는 처벌을 내렸는데
이를 '에후미(絵踏)'라고 한다.

 

후미에.jpg

▲ 후미에

 

또한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도 두려움을 갖고
카마쿠라 시대의 승려 니치렌(日蓮)이 창시한 불교 종파인
일련종(日蓮宗) 또한 금지시킨다.

 

image.png.jpg

▲ 니치렌

 

기독교와 일련종의 공통점은 세속적인 막부의 권력보다
본인들의 종교적 권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이들이 막부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막부의 권력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막부에게는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즉, 막번권력보다도 종교를 우선시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탄압을 받은 것이다.

 

이후 근세에는 막번권력에 복종하는
일반 불교와 신토(神道), 슈겐도(修験道), 온묘도(陰陽道)
같은 종교들만이 그 존재가 허용되었다.
 

image.png.jpg

 

막부의 기독교 박해에서 살아남은 크리스찬들은
이후 외딴 곳에 숨어서 몰래 기독교 신앙을 이어나갔는데,
이들을 숨겨진 크리스찬이라는 뜻의
'카쿠레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이라고 부른다.

 

막부는 이런 숨겨진 크리스찬들을 발색해내고
금지된 종교의 신앙과 포교를 감시하고 차단하기 위해
'테라우케제(寺請制)'라는 것을 실시하게 된다.
 

테라우케제는 모든 백성들이 불교 사찰에
신자로 등록하는 것을 의무화한 제도인데,
각 지역마다 단나데라(檀那寺)라고 하는 절을 두고
그 곳에 모든 백성의 이름과 신분을 등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두가 단나데라에서 경조사를 행하도록 함으로써,
단나데라가 백성들의 생로병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불교는 일본의 주된 종교가 되었다.

 

image.png.jpg

 

막부는 더 나아가서 불교를 막부가 관리하고 통제하기 쉽도록
'본말제도(本末制度)'라는 것을 도입했다.

 

본말제도는 막부가 각 불교 종파의 가장 큰 절을 본산(本山)이라고 하는 본사로 정하고,
그 종파의 절들을 모두 그 본산 밑에 말사(末寺)라고 하는 잡사로 편입한 것이다.

 

이는 모든 종파의 사원들에 적용이 되었으며, 
1665년에는 ‘제종사원법도(諸宗寺院法度)’라는
각 불교 교단들을 통제하는 법령을 반포하면서,
막부는 불교를 전국적으로 조직화시키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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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일본 중세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51801979

 

49편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 https://www.flayus.com/83112872

50편 토요토미 가문의 완전한 몰락 https://www.flayus.com/90566729

51편 막번체제의 성립과 다이묘에 대한 통제 https://www.flayus.com/92339695

52편 에도 막부의 통치 조직 https://www.flayus.com/98095806

53편 에도 막부의 신분제도 https://www.flayus.com/98580452

54편 에도 시대의 도시 https://www.flayus.com/99116649

 

댓글 12

best 안유진 작성자 2023.04.30. 13:25
동쪽은 주로 토쿠가와 방계나 측근이었던 신빤, 후다이 다이묘들의 영지여서 후원 엄청받음 ㅋㅋ
유키카 2023.04.30. 08:28
에도 막부가 서쪽 지역에 대한 반감 스택을 진짜 꾸준히 쌓긴 했구나... 좋은 글 개추
댓글
리눅스 2023.04.30. 13:11
 유키카
동쪽은 잘 대해줬는감
아이즈 번(現 후쿠시마현)은 마지막까지 막부를 수호하려고 했다는데
댓글
best 안유진 작성자 2023.04.30. 13:25
 리눅스
동쪽은 주로 토쿠가와 방계나 측근이었던 신빤, 후다이 다이묘들의 영지여서 후원 엄청받음 ㅋㅋ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3.04.30. 12:53
 88번이태석
다 돈이지
댓글
리눅스 2023.04.30. 13:15
저래서 개신교의 전파도 늦었는감
그럼에도 천주교 신자(아소 다로), 개신교 신자(하토야마 유키오)가 한번씩 총리를 해본 ㄷㄷ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3.04.30. 13:26
 리눅스
저런 탄압에 더해서 이제 불교 신토 같은 다신교들이 뿌리내리다보니
유일신 종교의 포교가 완전 힘들어짐 ㅋㅋㅋ
댓글
유키카 2023.04.30. 14:52
 안유진
그래서 이런 요인 때문에 일본이 채식국가로 분류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Slazenger 2023.05.01. 09:41
이런 좋은 글이 묻히는게 슬프네요....
댓글
Kevinhoogjansson 2023.05.09. 04:49
잘 읽고있습니다..
일본학을 전공중인 저에게 있어 이 일본사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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