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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51 : 막번체제의 성립과 다이묘에 대한 통제[발롱도르~]

49편 :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

50편 : 토요토미 가문의 완전한 몰락

 

-

 

막번체제(幕藩体制)는 근세 일본의 사회체제를 말하는 역사학적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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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막부는 다이묘에게 ‘번(藩)’이라고 하는 영지를 주고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막부는 이러한 번들과 봉건적 주종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체제를 마련했고,
이것을 막번체제라고 한다.

 

일본의 봉건적 무사사회는 12세기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때부터 형성되어 왔지만,
막번체제라는 구조는 에도시대 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막부와 번의 관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든 이 막번 체제는
1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때부터
3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 때까지
점진적으로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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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 이에야스

 

 

다이묘의 기준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대에 확립된

코쿠다카세이(石高制)를 기초로 결정되었다.
- 코쿠다카세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콘텐츠 46회차 참조 -

 

다이묘는 코쿠다카가 1만석 이상인 영주 중
쇼군으로부터 직접 영지를 하사받는 자를 뜻했는데,
에도 중기인 18세기 초반 기준으로 약 260~270명 정도가 존재했다.

 

 

 

 

 

 

 

 

 

이 다이묘들은 쇼군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세 부류로 나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① 신빤 다이묘(親藩大名)

오와리, 기이, 미토 등 토쿠가와씨 일문의 다이묘.

이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방계로서 성장하였음.

 

②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이들은 신빤이나 토자마에 비해서 코쿠다카가 낮음.

이들 대부분은 토쿠가와가 미카와(三河; 현재의 아이치현)에 있던 시절부터

전통적인 토쿠가와의 가신들이었음.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이전에는 37가 뿐이었지만

나중에 막부의 신뢰가 깊은 자들이 후다이에 들어오게 되어

막말(19세기)에는 145가문이 후다이 다이묘로 산정되었음.

이들은 중요한 에도주변 관동지역에 포진하였음.

이들은 막부의 주요 직책들을 맡고 있었지만 고쿠다카는 고작 5만석 내외였음.

 

③ 토자마 다이묘(外様大名)

이들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토쿠가와씨에게 신종한 자로,

에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강력한 세력이고 코쿠다카가 굉장히 높았음.

ex) 가가의 마에다(102만석), 사츠마의 시마즈(73만석), 무츠의 다테(56만석)

 

 

 

 

 

 

 

 

막번체제 하에서는
에도막부가 모든 무사의 정점 및 최고의 통치기관으로서 작용하지만
각 다이묘는 각각의 영지에서 어느 정도 독립한 통치기구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방정부를 다스리는 이 다이묘들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막번체제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막부는 이를 위해서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았고
이를 어길시 개역(改易), 전봉(転封), 단절(断絶) 등의 처벌을 내렸다.

 

① 개역 : 영지를 몰수해버림

② 전봉 : 영지를 바꿔버림

③ 단절 : 가문을 아예 없애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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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책들 가운데 대표적인 3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1. 1국1성령

 

먼저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1615년에 '1국1성령(一国一城令)'을 발표하여
하나의 국(国)에는 하나의 성만 세울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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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즈번(会津藩; 현재의 후쿠시마현)의 번청이었던 와카마츠성(若松城)

 

 

이는 각 국의 본성을 제외한 지성을 파괴함으로써
막부에 대항하는 군사적 거점이 될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공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1국1성령은 오히려
영내의 지성을 거점으로 하여 다이묘에게 대항할 능력을 가진
지방의 유력 무사들도 약체화 시키는 효과를 냈기 때문에
다이묘들에게도 이득이 되어 다이묘들도 환영하는 정책이었다.

 

 


2. 무가제법도

 

막부는 또한 오로지 무사들에게만 적용되는 법인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라는 것을 제정하여
다이묘를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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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가제법도 전문

 

이 무가제법도를 통해
이전까지 사적인 주종관계였던
막부와 다이묘들의 관계를 법으로 제정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공적인 정치관계로 전환되게 되었다. 

 

1615년 7월 7일, 2대 쇼군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는
다이묘들을 교토(京都)의 후시미성(伏見城)으로 불러 모은 뒤
막부의 측근이었던 승려 이신 스덴(以心崇伝)에게
이를 낭독하게 하면서 다이묘들에게 막부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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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 스덴

 

히데타다가 이때 발표한 무가제법도는 총 13조였는데,
이름 바탕으로 8대 쇼군 토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때까지
쇼군이 교대할 때마다 개정이 이루어져
조항이 조금씩 추가되었다.

 

 


3. 참근교대제

 

토쿠가와 히데타다의 뒤를 이어
3대 쇼군이 된 토쿠가와 이에미츠는
히데타다의 무가제법도(원화령; 元和令)를 개정하여
19개조의 새로운 무가제법도(관영령; 寛永令)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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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쿠가와 이에미츠

 

이때 이에미츠의 새로운 무가제법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제도화 된 '참근교대제(参勤交代制; 산킨코타이세이)'였다.

 

'참근(参勤)'이란 무사가 일정기간 동안
주군에게 출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기간이 차면 주군으로부터 휴가를 받아
다시 영지에 돌아가서 정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두고 '교대(交代)'라고 한다.

 

즉, '참근교대(参勤交代)'란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와

주군인 쇼군이 머물고 있는 에도를
일정 기간을 간격으로 왕복 교대하는 것
을 의미한다.

 

이는 이전에 가마쿠라 시대 때부터
쇼군에 대한 다이묘의 복속 의례로 존재했던 문화이지만,
이에미츠는 이를 무가제법도에 명시하면서
모든 번의 다이묘를 대상으로 제도로서 실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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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에도까지 왔다갔다하는 모든 비용은
전부 다이묘가 부담해야했다.


즉, 참근교대제는 다이묘에게 출비를 강요하여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모반을 억제하기 위해서 실시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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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근교대를 행하는 다이묘의 행렬도

 

대부분은 1년 단위로 교대를 하는데
매년 4월을 교대기로 정하여
전국의 다이묘의 절반은 에도에,
나머지 절반은 영지에 있어야 했다.

 

大名・小名在江戸交替相定ムル所ナリ
毎歳夏四月中、参覲致スベシ。
다이묘와 소영주는 자신의 영지와 에도의 교대 근무가 정해진다.
매년 4월 중에 참근해야 한다.

 

- 무가제법도 관영령에 명시된 참근교대제에 관한 조문

 

그래서 우수년(짝수년)에 에도에 오는 그룹과
기수년(홀수년)에 오는 그룹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이웃하는 영지의 다이묘들은 다른 그룹에 속했는데,
이는 이들이 영지나 에도에서 만나 담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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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대략 1년 정도 에도에서 지내도록 정해진 다이묘가 많았지만,
관동지역 대부분의 다이묘는 반년마다 영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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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관동 지방

 

그리고 에도시대에 나가사키(長崎)는
거의 유일한 무역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인근의 번은 이 나가사키를 경호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그게 후쿠오카번(福岡藩, 현재의 후쿠오카현)과

사가번(佐賀藩; 현재의 사가현, 나가사키현)이었는데...
이들은 1년 단위가 아니라 2년 단위로 참근교대를 실시하여
약 100일 간 에도에 지내도록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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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의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또 대마도(対馬島)와 같이 아주 먼 경우에는
3년에 한번 씩 오도록 하였고,

 

미토번(水戸藩, 현재의 이바라키현) 같이 에도와 아주 가까운 경우에는
처음부터 에도에 거주를 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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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미토번주 토쿠가와 미츠쿠니(德川光圀)

 

에도막부는 다이묘가 참근을 잘 이행하게 하기 위해
인질로 다이묘의 장남과 정처를 에도성에 강제로 거주시켰다.

 

다이묘의 처자식들은 에도성 밖을 단 한 발짝도 나오면 안됐다.

 

그래서 다이묘의 후계자는 제도상 전원이 에도에서 자라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영지와의 결착이 약해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봉건적인 막번체제 하에서도 
다이묘들을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image.png.jpg

▲ 17세기 전반의 에도성의 모습

 

그리고 다이묘들이 에도로 갈 때는
당연히 무기를 지참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다이묘들은 자신의 세력과시와 경호를 위해
많게는 수천 명의 가신들을 이끌고 참근하였다.
때문에 이들이 가는 길목을 중심으로
도로와 숙박시설, 시장 등 상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image.png.jpg

 

 

 

번외) 사실 '번'이라는 명칭은 공식 명칭이 아니었다?


사실 학계에서 '번'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에도시대 때부터 '번'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에도시대에 '번'이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진 않았음.

 

에도시대 때 다이묘의 영지를 부르는 공식 명칭은 '령(領)'이었고, '번'은 향후 막부가 멸망하고 난 뒤에서야 공식적으로 사용되게 됨.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다이묘들이 일본 천황에게 영지와 영민을 돌려주는 '판적봉환(版籍奉還)'이라는 걸 실시하게 되는데,
이때 봉환된 구 다이묘 령을 ‘번’으로 공식적으로 칭하기 시작하였고,


1871년, 번을 없애고 현을 설치하는 ‘폐번치현(廃藩置県)’이 실시되면서 ‘번’이 완전히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
과거의 다이묘들의 영지를 '번'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게 된 것.

 

다만 에도시대 유학자들은 중국에서 쓰던 '번국(藩國)'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
그래서 민간에서는 어느 정도 통용되었던 말이었던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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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편 토요토미 가문의 완전한 몰락 https://www.flayus.com/90566729

댓글 19

best 백곰따까리 2022.02.10. 22:03
안머장 글은 개추야
best 유키카 2022.02.10. 22:12
이제 일본사에 가장 평화로운(?)시기가 시작되는군요
best 송하영 2022.02.11. 01:09
어디서 많이 뵙던 분이 나오네요
best 유키카 2022.02.10. 22:12
이제 일본사에 가장 평화로운(?)시기가 시작되는군요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2.02.10. 22:51
 유키카
평화롭지만 정체와 활황이 모순적으로 공존했던...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2.02.10. 22:52
 평행우주
일본인 ㅇㄷ
댓글
2022.02.10. 22:26
킹 이스 (불) 백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2.02.11. 00:00
 연희바다성은얏따
댓글
best 송하영 2022.02.11. 01:09
어디서 많이 뵙던 분이 나오네요
댓글
송하영 2022.05.06. 07:07
 척사광
중간에 갑옷 입은 움짤이 히토미라고
전 아이즈원 멤버예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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