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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50 : 토요토미 가문의 완전한 몰락[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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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편 :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

 

-

 

1605년...

에도에 새롭게 막부를 개창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쇼군의 자리를 자신의 3남인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에게 물려주면서

오로지 쇼군의 자리는 토쿠가와 가문에만 세습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직을 양위하고

자신은 오오고쇼(大御所)가 되어

슨푸(駿府; 현재의 시즈오카현)에 은거하여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image.png.jpg

▲ 토쿠가와 이에야스

 

 

그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인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가 여전히 오사카성에 살고 있었다.

 

히데요리는 실권은 잃었지만

천하통일을 이뤄낸 히데요시의 아들이라는

근본 충만한 칭호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계속 오사카성에 두는 것은

에도막부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image.png.jpg

▲ 토요토미 히데요리

 

 

그리고 에도막부에서 새로 체제를 정비하고 영지를 나누면서

낭인이 된 사람이 많았다.

 

이 낭인들은 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서군의 사무라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에도막부에 대한 반감과

히데요시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히데요리에게 붙어서 재기하려 했는데...

 

그렇기에 이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은

에도막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

 

따라서 에도막부는 히데요리를 처단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호코지의 종명사건

 

에도막부는 히데요리와의 싸움을 위한 명분으로

호코지(方広寺)의 종명사건(鐘銘事件)을 내세웠다. 

 

image.png.jpg

▲ 쿄토 호코지

 

 

호코지는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착공되어 1595년 건립되었으나

1596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다시 히데요시에 의해 복원이 시작된 절이다.

 

1612년이 되어서야 본당 재건이 완료되고,

이후 1614년에 이 절에 거대한 범종이 만들어졌는데...

 

이 범종이 문제가 되었다.

 

공사를 감독하던 카타기리 카츠모토(片桐且元)는

승려였던 분에이 세이칸(文英清韓)에게

이 종에 들어갈 문구 작성을 의뢰했었다.

 

이윽고 문구 선정이 완료되고

대불개안공양식이 열릴 것이라는 일정이

슨푸의 이에야스에게 보고되었는데...

 

이에야스는 해당 문구 중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 자손은창(子孫殷昌)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글귀를 문제 삼고

대불 공양을 연기하였다.

 

 image.png.jpg

▲ 호코지 범종에 쓰여진 실제 문구

 

이에야스는 성리학자였던 하야시 라잔(林羅山)과 함께 이를 해석하였는데...

 

'국가안강(國家安康)'에서의 家와 康은 이에야스(家康)의 이름의 글자와 동일했기에,

'이에(家)'와 '야스(康)' 사이에 安을 넣은 것(家安康)은

이에야스의 이름을 安을 넣어 갈랐다고 해석했는데

安은 편안, 안정의 뜻이 있으므로

'이에야스를 갈라서 파하여 안정을 꾀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군신풍락(君臣豊樂)' '신풍(臣豊)' 토요토미(豊臣)로 해석하였다.

 

이에야스는 이를 종합하여 

위 문구를

이에야스를 파하여 국가를 안전하게 하고, 토요토미를 군으로 하여 자손 은창을 바란다.’

라고 이해하면서

히데요리가 의도적으로 새겼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야스는 이것은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여

오사카성을 공략하여 히데요리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오사카성 전투

 

image.png.jpg

▲ 오사카성 천수각

 

오사카성은 과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공략했던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가 있던 자리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청으로서 세웠던 성이다.

- 이시야마 혼간지에 대한 내용은 본 콘텐츠 43회차 참고 -

 

오다 노부나가가 이시야마 혼간지를 치는 것을 성공할 때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했는데...

그만큼 오사카성이 있는 부지는

예전부터 천의 요새였기에 매우 뚫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방어를 위해 성곽 주위에

환호의 형태로 해자(堀, ほり)를 미친듯이 뚫어놨으니...

 

때문에 에도막부도 오사카성을 공략할 때

1614년 겨울과 1615년 여름

이렇게 두번으로 나눠서 공략하였다.

 

① 1차 전쟁 : 오사카 겨울의 진(大坂冬の陣) → 1614년 11월

② 2차 전쟁 : 오사카 여름의 진(大坂夏の陣) → 1615년 5월

 

image.png.jpg

▲ 오사카 겨울의 진 포진도


오사카 겨울의 진 때는 안그래도 뚫기 어려운 오사카성에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단절돼 낭인이 된 자들이

토쿠가와에 복수심을 품고 히데요리 측에 가담해 더욱 더 고전하고 말았다. 

 

추운 겨울에 오사카성을 포위한 채로 진을 치고 힘든 전투를 계속 단행하자

장수도 병사도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도쿠가와 측은 화친을 요청하기로 결정한다.

 

토요토미 측은 처음에는 화친 수락을 고민하였으나,

에도막부 측이 심리전을 펼쳐

병사들에게 야습을 일으킨 것처럼 소리 지르게 하고

대포를 쏴서 협박하는 모습을 보이자

 결국 화친을 수락하였다.

 

image.png.jpg

▲ 오사카성 포격에 사용되었던 컬버린포와 반캐넌포

 

오사카 겨울의 진의 결과로 맺어진 화친 조약에는

막부측에 의해 오사카 성 성곽을 둘러싼 해자를 메운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 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토요토미 측에서는 바깥 해자만 메운다고 해석하였고

막부 측은 모든 해자를 메우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다시 한번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논쟁이 진행되는 도중에 막부 측은 독단으로 공사를 시작해

바깥쪽과 안쪽 해자를 전부 메꾸고 성곽까지 파괴시켜버렸다.

이는 오사카성의 방어 시설을 없애버려 향후 공략을 도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image.png.jpg

▲ 오사카 여름의 진 그림 병풍

 

그러나 토요토미 측은 이런 막부의 독단적인 행동에 분노하였다.

이에 다시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기 시작한다.

 

화친 이후 슨푸에 돌아가 있던 이에야스에게도

이 소식이 들려왔다.

 

오사카 성에서 해자를 다시 복구하고 있으며,

오사카에 낭인들이 판을 치며 도적질을 하고,

그들이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에 방화를 일으키는 등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에 이에야스는 다시 한 번 오사카성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1615년 5월...

그는 9째 아들 토쿠가와 요시나오(德川義直)의 혼례를 핑계로 교토로 상경한다.

그리고 후시미성에 다이묘들을 모이게 하여 15만명 가량의 전력을 준비하여

그대로 오사카로 출병하게 되면서

오사카 여름의 진이 시작된다.

 

image.png.jpg

▲ 오사카 여름의 진 포진도

 

다시 막부군이 쳐들어 오자

토요토미 측에서도 총력전을 펼쳐

치열한 교전이 여러차례 지속되었으나... 

 

막부군의 1/3 가량의 병력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고,

해자를 모두 매립당해 벌거숭이나 마찬가지였던 오사카성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막부군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결국 히데요리와 히데요시의 부인이었던 요도도노(淀殿)가 자결하면서

오사카성에서의 전쟁은 끝이나게 되었다.

 

이로써 에도막부는 토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몰락시켰고

에도막부가 천하의 주인임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s://www.flayus.com/mystery

일본 고대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33935902

일본 중세사 요약 정리 https://www.flayus.com/51801979

 

49편 토요토미의 시대가 끝나다 https://www.flayus.com/83112872

댓글 22

best 서윤경 2022.01.01. 02:24
best 애플체리드링크 2022.01.01. 15:45
저 파휘들을 실제로 저런 의도가 담겼다는 토요토미측의 증언들이 있었나요 아니면 도쿠가와측에서 그리 생각했다는 기록들이 남은건가요?
best 조보아 2022.01.01. 03:02
머야 아조씨 돌아옴?
LEE_SEO 작성자 2022.01.01. 02:25
 서윤경
펨네콘 사게 뽀찌좀
댓글
백곰따까리 2022.01.01. 08:29
머장님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ㅠㅠ
앞으로 글들 좀더 성실히 쓰겠습니다!
댓글
유키카 2022.01.01. 09:27
오사카성의 저 해자건은
뭔가 웃기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A.C.Milan 2022.01.01. 12:10
시즈오카의 자랑 이에야스쿤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2.01.01. 12:41
 A.C.Milan
집에서 야스하면?
이에야스

엌ㅋㅋㅋ
댓글
안유후진 2023.05.08. 23:22
 안유진
선생님....개노잼입니다.....
댓글
best 애플체리드링크 2022.01.01. 15:45
저 파휘들을 실제로 저런 의도가 담겼다는 토요토미측의 증언들이 있었나요 아니면 도쿠가와측에서 그리 생각했다는 기록들이 남은건가요?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2.01.01. 15:55
 애플체리드링크
후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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