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설정

축구정보/칼럼 축구칼럼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팀[발롱도르~]

함부르크 SV (Hamburger SV)

 

 

창단: 1887년 9월 29일

소속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연고지: 독일 바이에른 주 오버바이에른 현 뮌헨

홈구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독일 분데스리가: 3회 우승 (1978-79, 1981-82, 1982-83)

독일 챔피언쉽: 3회 우승 (1922-23, 1927-28, 1959-60)

DFB 포칼: 3회 우승 (1962-63, 1975-76, 1986-87)

DFL-슈퍼컵 (DFB-리카포칼 포함): 2회 우승 (1972-73, 2003-04)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982-83)

UEFA 컵위너스컵: 1회 우승 (1976-77)

UEFA 인터토토컵: 2회 우승 (2006, 2008)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울리 슈타인
출생년도: 1954년 10월 23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80~1987, 1994-95
분데스리가 기록: 228경기 266실점 73클린시트
통산 기록: 292경기 344실점 92클린시트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한 골키퍼로 20년간 프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과 뛰어난 반사신경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1980년대 함부르크에서 활약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어간 그는 함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2연패와 유리피언 컵 우승, 그리고 포칼 컵 우승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으며 1983-84 시즌에는 라이벌 하랄트 슈마허를 제치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슈타인은 함부르크에 있던 시절 키커 랑리스테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무려 11번이나 선정되었다, 그러나 경기장 내외에서 자주 기행을 일으켰으며 특히 대표팀 감독이자 독일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인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조롱한 사건으로 인해 대표팀에는 거의 뽑히지 못했다.

 

리베로

 

이름: 빌리 슐츠
출생년도: 1938년 10월 4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활약 기간: 1964~1977
분데스리가 기록: 211경기 3골
통산 기록: 247경기 3골

 

서독 최초의 리베로로 후대의 베켄바우어나 잠머와는 달리 공격적인 부분보다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더 돋보였던 선수로 냉철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커버플레이와 센스 있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1960년대 분데스리가 초창기 시절의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으며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진 못했지만 1966-67 DFB 포칼 준우승과 1967-68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 컵에서의 퍼포머스를 인정받아 1968년에는 발롱도르 12위에 올랐다.

비록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빌리 슐츠는 함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6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6회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이나 선정되었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베켄바우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했다.

 

센터백

 

이름: 디트마어 야콥스
출생년도: 1953년 8월 28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0cm

활약 기간: 1979~1989
분데스리가 기록: 323경기 27골
통산 기록: 405경기 37골

 

다재다능한 대기만성형 수비수로 주로 소화하는 역할은 스토퍼지만 스토퍼와 리베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리베로로 활약할 시에는 공격적인 베켄바우어 류의 역할과 수비적인 체사레 말디니 류의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함부르크에서 활약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어간 그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는 포칼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야콥스는 함부르크에 머물던 시절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일곱 번이나 선정되며 독일을 넘어 유럽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던 수비수였음을 증명했으며 디 만샤프트에서도 중용되었다.

 

라이트백

 

이름: 만프레트 칼츠
출생년도: 1953년 1월 6일
포지션: 라이트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71~1989, 1990~1991
분데스리가 기록: 581경기 76골
통산 기록: 732경기 101골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으며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직접 득점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디 로토센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은 물론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으며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두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기도 했다. 구단 역대 최다 출전 및 구단 분데스리가 누적 득점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칼츠는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3회 선정,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3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두 번 선정되며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드 옹즈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두 번 선정되었다.

다만 우수한 실력과는 별개로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자책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레프트백

 

이름: 위르겐 쿠어브윤
출생년도: 1940년 7월 26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1kg

활약 기간: 1960~1972
분데스리가 기록: 242경기 10골
통산 기록: 406경기 12골

 

1960년대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대인 수비에 능했으며 팀 역사상 몇 안 되는 원 클럽맨이다.

디 로토센 군단에서 쿠어브윤은 1962-63 시즌 포칼 우승을 기록했으며 1967-68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4강과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1963-64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풀백 부분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2등을 받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볼프강 롤프
출생년도: 1959년 12월 26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신체조건: 키 179cm

활약 기간: 1982~1986
분데스리가 기록: 129경기 24골
통산 기록: 156경기 29골

 

1980년대 디 로토센 군단의 황금기에 마침표를 찍은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터프한 태클은 물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 그리고 우수한 킥력을 두루 겸비한 미드필더였다.

1982-83 시즌에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함부르크의 리그 우승과 유러피언 컵 우승의 더블을 이뤄냈으며 특히 유러피언 컵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8강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는 블로힌을 꽁꽁 묶어냈으며 4강 레알 소시에다드 전에서는 1차전 동점골을, 결승 유벤투스전에서는 에이스 미셸 플라티니를 꽁꽁 묶어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이때의 퍼포먼스로 키커 랑리스테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선정되었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펠릭스 마가트
출생년도: 1953년 7월 26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키 172cm

활약 기간: 1976~1986
분데스리가 기록: 306경기 46골
통산 기록: 388경기 63골

 

23세에 처음 프로 무대에 진출한 대기만성형 선수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반까지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롱패스 능력과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스테미너를 기반으로 왕성한 수비 가담 능력도 겸비했다.

마가트는 디 로토센 군단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세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는데 특히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유벤투스의 명 골키퍼 디노 조프를 상대로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디 로토센의 첫 빅이어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가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이룬 개인 수상 실적도 대단한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1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8회를 기록했으며 키커지가 선정하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는 두 번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를 기록했으며 역시 같은 해에 아르헨티나의 저명지 엘 그라피코에서 뽑은 세계 최우수 선수에서 6위를 기록했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게르트 되어펠
출생년도: 1939년 9월 18일
포지션: 레프트 윙

활약 기간: 1959~1972
분데스리가 기록: 224경기 58골 47도움
통산 기록: 423경기 144골
신체조건: 키 170cm

 

1960년대 함부르크를 이끌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날렵한 몸놀림은 물론 뛰어난 킥력을 앞세운 득점력을 겸비한 측면 공격수였다.

디 로토센 군단에서 우베 젤러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으며 1960년에 독일 챔피언쉽 우승에 공헌했으며 포칼 우승과 컵 위너스 컵 준우승에도 공헌했다.

함부르크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1965년에는 헨토를 제치고 프랑스 풋볼지 선정 유럽 최고의 레프트 윙에 이름을 올렸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기도 했으며 함부르크 구단 최다 출전 5위와 구단 누적 득점 6위에 기록되기도 했다.

되어펠은 아버지와 삼촌, 동생이 모두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축구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단지 취미로만 즐기는 수준이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디 만샤프트 소집을 두 번이나 거절하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케빈 키건
출생년도: 1951년 2월 14일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 윙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활약 기간: 1977~1980
분데스리가 기록: 90경기 32골
통산 기록: 114경기 42골

 

197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로 체격은 작았으나 공격수로서 부족함이 없는 만능 공격수였는데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마저 겸비했다.

리버풀에서 잉글랜드 무대와 유럽을 평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당대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았던 분데스리가로 이적해 활약했으며 함부르크에서도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퍼리언 컵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키건은 함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두 번의 발롱도르 1위를 기록했으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 그리고 키커 랑리스테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4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2회에 선정되며 개인으로도 최전성기를 누렸다.

 

스트라이커

 

이름: 우베 젤러
출생년도: 1936년 11월 5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활약 기간: 1964~1977
분데스리가 기록: 239경기 137골 36도움
통산 기록: 587경기 507골

 

196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우리들의 우베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170cm의 단신임에도 헤딩에 매우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백 헤더와 백힐 패스, 바이시클 킥 등 고급적인 기술들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선보였으며 천둥과도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스피드도 빨랐고 강력한 리더십마저 보유했다.

은퇴한 이후 코크 시티에서 한 경기를 뛴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전부를 디 로토센 군단에서 보냈으며 함부르크의 오버리가 노르트 9회 우승과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 1960-6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4강에 진출했으나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탈락했으며 1962-63 시즌 포칼 우승도 이끌어냈다. 비록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하며 우베 젤러의 활약은 당대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기에 레알 마드리드와 인터 밀란에서 영입을 타진했으나 젤러가 함부르크에 대한 충성심으로 거부했다.

우베 젤러는 함부르크 역대 최다 출전 2위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 14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1회를 기록하며 프란츠 베켄바우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아낸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 번의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섯 번의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서 네 번이나 10등 안에 들었으며 1960년에는 3위를 기록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호어스트 흐루베쉬
출생년도: 1951년 4월 17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2kg

활약 기간: 1978~1983
분데스리가 기록: 159경기 96골
통산 기록: 211경기 132골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함부르크의 전성시대를 이끈 스트라이커로 헤딩에 특히 능해 헤딩 야수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당대에 유명세를 떨쳤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야수가 바나나를 먹으면 골이 터진다고 했을 정도로 강력한 콤비였다.

오랫동안 하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8세의 늦은 나이로 함부르크에 입단해 활약한 대기만성형 선수로 그가 디 로토센 군단에서 이룬 족적은 어마어마한데 분데스리가 우승 3회와 유리피언 컵 결승 진출 2회와 우승 1회, UEFA컵 결승 진출 1회를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0-81 시즌 포칼 득점왕과 1981-82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이뤄냈다.

흐루베쉬는 각종 개인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이뤄냈는데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4회 선정되었으며 해외에서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두 차례 뽑혔으며 1980년에는 6위를 기록했으며 옹즈 드 옹즈 2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세계 베스트 일레븐 1회 선정 등 1980년대 초반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감독

 

에른스트 하펠

1925년 11월 29일

1981~1987

 

이미 페예노르트와 클럽 브뤼헤, 그리고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우승 청부사로 이름을 떨치던 명장으로 함부르크가 대권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구단의 1차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알콜 중독으로 부진하던 브란코 제베치를 경질하고 하펠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용병술, 그리고 파격적이면서도 구단의 상황에 적합한 전술 운용 능력을 토대로 함부르크에서도 분데스리가 2연패와 포칼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디 로토센 최고의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주제 무리뉴의 상위 호환 격의 감독으로 악조건 속에서도 트로피를 따냈으며 펩 과르디올라의 상위 호환 격의 감독으로 불리는 리누스 미헬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선정 함부르크 SV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서브 명단


골키퍼

 

루돌프 카르구스: 골라인 안에서의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했던 골키퍼로 페널티킬러라 불렸을 정도로 페널티킥 선방에 능해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페널티킥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그는 분데스리가와 포칼에서 각 1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1976-77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개인적으로도 1975-76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호어스트 쇠노르: 함부르크 SV 역대 최다 출전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골키퍼로 오베르가 노르트 10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우승 및 포칼 우승을 경험했으며 유러피언 컵 4강 진출에 공헌하기도 했다. 우베 젤러, 빌리 슐츠, 위르겐 쿠어브윤 등과 함께 초창기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중앙 수비수

 

피터 노글리: 1970년대 함부르크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로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함부르크 역대 누적 출전 6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분데스리가 우승과 포칼 우승 각 1회를 이뤄냈으며 컵 위너스 컵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키커 랑리스테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2회를 기록했다.

요제프 포지팔: 1950년대 함부르크를 이끈 수비수로 본 포지션은 센터 하프지만 라이트백도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오버리가 노르트 8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두 번의 독일 챔피언쉽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55년 첫 랑리스테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고 이후에도 세 번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기도 했다. 베른의 기적을 이끈 선수 중 하나다.

이반 불리안: 1975년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던 수비수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함부르크에서 라이트백으로 활약했다.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마르첼 얀센: 키가 191cm에 달하는 수비수로 장신의 키에 맞지 않게 빠르고 공격적이며 왼쪽 모든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유틸리티 자원이며 피지컬 또한 우수했는데 차두리가 말하길 "얀센 선수는 몸싸움이 대단하다. 로봇이라 불리는 저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라며 언급했다. 함부르크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2008-09 시즌 UEFA컵 4강 진출에 공헌했다. 현재는 함부르크의 회장으로 구단을 위해 일하고 있다.

 

3선 미드필더

 

아스비요른 할보르센: 1920년대를 빛낸 명품 센터하프로 168cm의 작은 신장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탈환한 볼을 재빨리 공격 진영으로 이동시켜 팀의 빠른 역습에 윤활유가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과 북독일 챔피언쉽 9회 우승을 이뤄냈다.

지미 하트빅: 함부르크의 황금기를 이끈 흑인계 독일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터프한 수비로 이름을 날려 1979년에는 흑인 최초로 디 만샤프트에 콜업되기도 했다. 디 로토센 군단에서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UEFA컵 2회 준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1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트레콰르티스타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

 

토마스 본 헤센: 로토센 군단에서 1980년대 황금기와 이후 암흑기를 모두 겪어본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그리고 1986-97 시즌 포칼 우승에 기여했다. 함부르크에서 역대 최다 출전 4위와 누적 득점 10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분데스리가에 한정해서는 역대 최다 출전과 누적 득점 모두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메흐디 마다비키아: 2000년대 초반 아시아 최고의 오른쪽 측면 자원이자 이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뛰어난 크로스 능력을 지녔으며 측면 수비수부터 측면 공격수까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2002-0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도움왕과 키커 랑리스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측면 미드필더 1위에 올랐으며 디 로토센 군단의 인터토토컵 우승에 기여했다.

세르게이 바바레즈: 2000년대 초반 함부르크를 이끈 윙 포워드로 함부르크에서 6년간 203경기 71골을 기록했다. 2000-0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시즌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인터토토컵 우승에 기여했다.

케스퍼 메머링: 1970년대 함부르크에서 활약한 미드필더로 좌측면의 모든 자리는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뛸 수 있었다. 그는 우수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크로스를 통해 공격의 활로를 뚫었으며 전술 이해도가 높았으며 미드필더 지역에서 수비 가담 능력도 우수했다. 그는 디 로토센 군단에서 분데스리가 우승 2회와 포칼 우승 1회, 그리고 컵 위너스 컵 우승 1회와 유러피언 컵과 UEFA컵에서 결승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구단 역대 최다 출전 9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앙 공격수

 

루돌프 노아크: 나치 독일 시절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으며 인사이드 레프트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도맡았음에도 득점력이 뛰어나 193경기에서 233골을 기록했다고 한다. 함부르크에서 북부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과 가울리가 노르트마르크 우승 4회를 기록했으며 구단 누적 득점 3위에 올라있다.

오토 하르더: 1919년부터 1931년까지 활약한 함부르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키 190cm에 몸무게 87kg라는 탄탄한 신체를 자랑했으며 강력한 피지컬뿐만 아니라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발과 머리를 모두 잘 써서 득점하는 우수한 공격수였으나 활동량은 적은 편이며 페널티 박스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함부르크 소속으로 387골을 득점해 역대 누적 득점 2위에 올랐으며 북독일 챔피언쉽 8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을 기록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스쿼드

 


기타 추가할만한 선수들

 

토르난테 선정 함부르크 SV 역대 올스타 팀 리저브 멤버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기록은 주로 트렌스퍼마켓을 참조합니다. 잘못될 경우 다른 기록을 참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있으면 공식 홈페이지 우선

댓글 5

2022.05.09. 19:37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3/24 시즌 결산 이벤트 정산] 리무루 484 4
공지 [2024년 신년인사 겸 첫 공지] 9 리무루 771 4
공지 국내기사 전문 혹은 대부분을 긁어오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는 이유 1 김수윤 4530 14
공지 축구정보/칼럼 갤러리에서 글 쓰실 때 제발 공지사항을 꼭 읽어주세요 김수윤 3919 17
공지 FMNATION 축구정보/칼럼 갤러리 공지사항(2020. 9. 13~) Giallorossi 3965 51
공지 축구정보/칼럼 갤러리 연재 시리즈(2019. 10. 16~) 6 Giallorossi 5361 17
오피셜
이미지
VIVIZ 192 15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204 10
오피셜
이미지
Noel갤러거 117 11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93 10
축구칼럼
이미지
FCU회장 532 11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146 10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172 11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107 14
축구칼럼
이미지
축구43번지 181 13
오피셜
이미지
강미나 172 13
오피셜
이미지
Noel갤러거 169 13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138 10
축구칼럼
이미지
FCU회장 292 10
축구칼럼
이미지
FCU회장 285 14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147 10
오피셜
기본
정진솔 340 21
번역기사
이미지
히꼬작가 190 21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327 18
카타르 월드컵
이미지
뚜따전 553 18
번역기사
이미지
Noel갤러거 7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