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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역사창작물 자작소설) 제갈량 5화.

 

[5화. 빛나는 소녀(5)]

 

 

 

.

 


“오라비가 무엇을 놓고 가셨소이까?”

 


그 소리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여인이 학당에 찾아 올 일은 사내가 무언가를 흘리고 갔을 때뿐이라고 미리단정하고 묻는 노인의 태도에 기가 막혔던 것이다.

 

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세를 끝내고 싶은 자 누구든 오라고 쓰여 있던 벽보의 내용 때문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헌데,

 

학당의 노비조차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소녀가 그런 생각을 하던지 말던지, 

 

소녀의 감정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이는 노인은 그저 제 답이 틀렸는가 하며 제 머리만 북북 긁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소녀의 복장을 긁는 질문을 내놨다. 

 

“그럼 아버님이 무엇을 놓고 가셨소?”

 

그 소리에, 

 

소녀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그 울컥한 느낌을 토해내진 않았다. 

 

대신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평범한 난세의 여인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시대는 여인에게 시체처럼 살아가기를 권하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어차피 마주해야할 편견이었다.

 

금세 평정심을 되찾은 소녀는 자신의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기로 마음먹고는 입을 열었다. 

 

“아뇨, 그런 연유로 온 것이 아니라 학당에 입학하고자 왔습니다.”

 

소녀의 음성에, 

 

노인네의 얼굴에는 아니꼬운 표정이 자리 잡혔다.

 

“남녀의 일에는 구별이 있음을 이  천한 늙은이도 알고 있는데, 어찌 이 수경학당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그것을 모른단 말이요?”

 

노인의 말에는 함정이 있었다.

 

남녀의 일에 구별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 계집이기 때문에 학당에 들어갈 수 없게 되고,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면, 학당에 들어올 기본조차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뭐, 어찌됐든, 노인이 전하는 말은 계집이 올 곳이 아니니 돌아가라는 소리.

 

그치만 소녀는 뜻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에 짊어진 죽음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소녀는 고민했다.

 

‘저 말속에 돋아있는 함정들을 어찌 피해야 할까?’ 

 

잠시간의 고민을 마친 소녀가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압니다. 해서, 칼을 잡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게 아니겠습니까? 난세를 끝내고 싶은 자 누구든 오라 쓰여 있던데요?”

 

소녀는 남녀에 구별이 있음을 인정했다. 

 

단, 그것은 신체에 국한됨을 돌려 말해 노인의 말을 보기 좋게 파헤쳐냈다.

 

그러자, 

 

노인네의 얼굴에 돋아있던 아니꼬움이 순식간에 노기로 바뀌었고, 말투는 명백한 하대로 변했다.

 

“좋은 말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구나.” 

 

노기 섞인 음성으로 운을 뗀 노인은 우악스런 손길로 소녀의 삼단 같은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마구 흔들며 입을 열었다.

 

“칼잡이는 무섭고 학당은 우스워보이나?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난세. 저 문은 그 난세를 끝내겠다는 각오로 세워졌지, 저 안은 전쟁터보다 치열하면 치열했지 덜하지는 않다. 고로, 혓바닥만 낭창한 계집아이가 치렁한 머리칼을 살랑이며 분내를 풍길 공간은 저 문 안에는 없느니라.”

 

노인은 말을 마치며, 소녀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아무렇게나 놓았다. 

 

덕분에 어지럼증이 밀려온 소녀는 풀썩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소녀를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던 소녀의 언니는 자기도 모르게 제 입술을 씹었다.

 

그녀가 소녀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소녀의 뜻을 확실히 꺾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동생은 예부터 총명했었다.

 

사내로 태어나 가문을 이어받게 될 오라버니와 막둥이보다 훨씬 더 총명했다.

 

무엇이든 보는 즉시 줄줄 외웠고, 가르쳐 주지도 않은 하나를 어디서 주워 듣고는 열을 깨쳤다.

 

하여, 그녀는 소녀에게 더욱더 엄히 여인의 본분을 가르쳤고, 공부를 못하게 막았다. 

 

여인이 글을 읽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배우면 배울수록 상실감만 늘어갈 터, 

 

꿈이 짓밟히는 것보다는 아예 꾸지도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겼다. 

 

헌데,

 

못 보던 몇 년간 어디서 헛바람을 들이켰는지 학당에 나가겠다는 소리를 하기에, 제대로 짓밟아 소녀의 헛된 희망을 꺾어 놓으려 이곳에 데려온 것이었다. 

 

하여, 

 

지금의 상황은 그녀가 바라는 그대로였다. 

 

이제 자신이 한마디만 더 보태면 되는 것 이었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자! 이제 돌아가자!’

 

그 말을 뱉고, 

 

어리석은 동생의 손을 잡아 끌기만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헌데, 막상 소녀가 박대를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러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원래의 목적을 잊은 그녀는 사박사박 걸음을 내딛어 주저앉은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안정을 되찾은 소녀는 제 언니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노인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만히 집구석에 처박혀 애나 낳고! 밥이나 하고! 전장에 나간 서방과 자식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평생을 살아야 합니까? 싫은데요?”

 

“뭐, 뭐라?!”

 

소녀의 활화산 같은 기세에 당황한 노인이 말을 저는 사이 소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계집이 얼씬할 곳이 아니니 물러가라고요?! 허면 고작 계집인 내가 왜 이곳에 나오게 만들었습니까? 저 같은 계집이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결국 당신들이 만든 난세가 아닙니까?”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수염을 쓸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소녀는 덜 끝난 자신의 말을 맺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만든 난세의 칼날이 계집이라 하여 피해가는 것이 아닐 저인데! 어찌하여 계집이라 하여 아니된다합니까!? 수경선생인가 먼가 하는 사람을 불러주세요. 정녕 이 학당의 뜻이 그러한지 물어볼 것입니다.”

 

소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그러자, 

 

수염을 쓸던 노인이 다시금 머리를 북북 긁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수경인가 먼가 하는 사람인데?”

 

노인의 음성에, 

 

“??”

 

소녀의 얼굴위에서 당황과 분노 경멸 같은 감정들이 자리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이 수경임을 밝힌 노인 사마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소녀의 가슴에 똬리를 틀려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의 맥을 정확하게 집었다. 

 

“그리고 계집이라 무작정 안 된다고 한 것은 아닌데? 혓바닥만 낭창한 계집이 있을 자리는 없다했지.” 

 

그러자, 소녀의 얼굴에서 자리다툼을 벌이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날아가 버리고 오직 당황만이 남았다.

 

“어,,”

 

노인은 그런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들어 소녀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허니, 그 말은 사내새끼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

 

좀 전까지 울분을 토해내던 총명한 소녀는 이제 어버버 하며 입만 뻐끔거리게 되어버렸다. 

 

그런 소녀를 보며 사마휘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장 소녀의 언니 쪽으로 몸을 돌려 읍(소매를 붙여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는 인사)을 했다.

 

“사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난세입니다. 재능이 있다하여 계집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에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지요. 하여, 과격한 방법으로 시험을 좀 해보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했군요. 송구합니다.”

 

“결례라니요, 일리 있는 말씀이시니 당치도 않습니다.”

 

사마휘의 사과속에 들어있는 진심을 깨달은 소녀의 언니는 불쾌했던 마음을 풀고는 빙긋 웃었다.

 

덕분에 가슴속의 미안함을 털어낸 사마휘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껄껄껄, 좋소이다! 좋아요!” 

 

그리고, 

 

다시금 소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래, 소녀야, 어떠냐? 아직도 이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냐?”

 

사마휘의 질문은 수경학당에 소녀가 입학해도 좋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소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답을 내놓았다.

 

“네!”

 

헌데, 

 

사마휘가 또다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면, 뭘 하고 있는고? 내가 수경선생이래도?”

 

사마휘의 음성에, 

 

소녀는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못마땅해 보이는 사마휘의 표정을 보며, 소녀는 이것이 또 다른 시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여, 좀 전처럼 당황하고 싶지 않았던 소녀는 사마휘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기 시작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숨은뜻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여 소녀는 그렇게 한참을 미간만 좁히고 있었다. 

 

그에,

 

보다 못한 소녀의 언니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 절을 올려야지.”

 

“아!”

 

언니의 음성 덕분에, 소녀는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기본적인 것을 놓쳤음을 깨달은 소녀는 외마디 탄성을 내뱉고는 곧바로 사마휘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자,

 

사마휘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구나! 좋아!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성은 제갈, 이름은 량. 자(字)는 아직 없습니다.” 

 

“어디보자 량이면,, 빛날 량자를 쓰느냐?”

 

“예. 그러합니다.” 

 

제 이름만큼이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소녀를 보며 사마휘는 또다시 크게 웃었다.

 

“껄껄껄 이름대로 빛을 뿜어내는 아이로고! 자는 내가 지어주마 공명(孔明 : 대단히 밝음) 공명이 좋겠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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