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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역사창작물 자작 삼국지 소설) 제갈량 2화

 

 

 

[빛나는 소녀(2)]

 


.

 

 

 

달그닥-

 

달그닥-


붉게 물든 사수 한복판에서 혼절을 했던 소녀는 규칙적으로 귀를 괴롭히는 달그닥 소리에 눈을 떴다.

 

곧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

 

소녀가 혼절한 곳은 사수의 한복판이었으니, 

살아 눈을 떴다면 강가 여야 할 터인데,,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소녀는 가만히 누어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쌓인 포목과 가죽더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텁텁하고 퀴퀴한 냄새,

 

달그닥 거리며 움직이는 공간,

 

세 가지 증거를 통해 이곳이 짐마차의 안임을 깨달은 소녀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 몸을 살폈다.

 

욕이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를 살핀 것이다. 

 

그렇게 자동반사적으로 제 몸을 살피던 소녀는 옷이 함뿍 젖어있는 것 말고는 별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소녀가 안도감을 느낀 것은 잠시였다.

 

소녀는 그러다말고 제 나이와는 전혀 맞지 않는 표정으로 쓰게 웃었다. 

 

깨어나자마자 정조걱정부터 한것도 멍청하게 느껴졌고, 이 판국에 그게 또 뭐라고 안도를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이에, 소녀는 머릿속으로 합리화를 시도했다. 

 

어쨌거나 내 몸을 걱정한 것이라고! 

 

이건 전부다 여인이라면 목숨보다 정절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훈육한 숙부님과 두 언니의 탓이라고!

 

허나, 그런 얄팍한 합리화로는 스스로를 향한 비웃음을 걷어낼 수 없었다.

 

하여,

 

소녀는 생각을 고쳐 무엇보다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사람을 떠올렸다. 

 

제 목숨을 던져 저를 살린 사람.

 

‘운랑은 살아계실까.’

 

스스로의 물음에, 그녀의 영특한 머리는 지난밤에 지켜보았던 살육의 도가니를 굳이 재생시켜주었다.

 

허나, 이번에는 소녀도 제 영특함에 굴하지 않았다.

 

소녀는 머릿속을 스치는 논리적인 생각들을 무시하고 가슴속의 희망을 꼭 쥐었다.

 

‘살아 계실거야!’

 

하지만, 그녀의 영특한 머리는 소녀가 희망을 쉬이 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수라귀들의 틈바구니에서?

 

사방에는 적이 뒤에는 강이 있었는데?

 

살아남는 게 가능해? 

 

진짜?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생각들에 소녀는 굴하지 않았다. 

 

허나, 아직 심신이 덜 영근 소녀가 버텨내기에 쉬운 일도 아니었다.

 

하여, 소녀는 그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버렸다.

 

“으으,,”

 

그러자, 

 

짐마차 밖에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워~ 워~”

 

그 낯선 음성에 따라 짐마차는 달그닥 거리기를 멈췄다.

 

그에, 소녀는 속으로 아뿔싸를 외쳤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좀더 면밀히 살피고, 

 

기회를 노려 짐마차를 모는 사람은 누구인지도 좀 살펴보고, 

 

그러고 나서 기다 싶으면 소리를 내고 아니다 싶으면 몰래 마차에서 뛰어내렸어야 했다.

 

소녀는 아둔했던 자신을 자책 하며 늦게나마 주변을 살폈다. 

 

빠르게 살펴보니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긴 있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그녀의 몸을 결박돼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젖은 옷 위로 이불 삼기 좋은 두터운 포목이 덮여 있었다는 점.

 

허나, 포목이야 짐더미에서 떨어진 것을 저가 마음대로 덮고 잔 것일 수도 있었고,

짐마차의 주인이 생각하기에 열 살배기 소녀를 제압하는 데에는 굳이 결박 따위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소녀의 머릿속에 그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는데, 

 

짐마차의 앞켠에 위치한 가죽휘장이 걷히며 짐마차의 주인이 고개를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일어 나셨소?”

 

짐마차의 주인의 상은 그다지 인자해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 곳곳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있었고 음성은 그런 얼굴만큼이나 건조했다.

 

소녀는 일말의 경계심을 뱃속에 단단히 품고선 입을 열었다. 

 

“···예.”

 

그러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운이 좋았소.”

 

소녀가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까스로 조조군의 흉포한 칼날을 피했고, 

 

강위에서 혼절했으나 물에 빠져죽지도 않았고, 

 

아직 누군가에게 핍박을 받지도 않았고, 

 

또 욕을 보지도 않았으니,, 

 

그래. 

 

운이 좋은 것은 사실 이었다. 

 

허나, 그 말은 그녀가 듣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말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신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고 도망을 치다 잡혀 죽는 광경을 봐야했고, 

 

정인의 목숨을 강 너머에 담보를 잡혀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었으니까.

 

소녀는 울컥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눌렀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건넨 사람이 소녀의 숙부나 자매형제 혹은,,, 그녀의 정혼자였다면, 소녀도 짜증이든 울음이든 터트렸을 테지만, 

 

눈앞의 중년인에게 그런 감정을 드러낼 연유는 전혀 없었다. 

 

소녀는 그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대인 덕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순간 나이와 성별을 모두 초월한 소녀의 의젓한 모습에, 

 

마차의 주인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갈 곳은 있소?” 

 

“예.”

 

“어디요? 가는 길이 같다면 내 데려다 주겠소.”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자, 

 

소녀는 뱃속에 남겨두었던 일말의 경계를 내려놓았다. 

 

지금상황에서 저 중년인이 아무리 악한 생각을 품었다 해봐야 사례금을 원하는 정도일 터였다.

 

더 나쁜 짓을 하려했다면 여기까지 이르지 않았겠지, 

 

경계를 내려놓은 소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근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짐마차의 행선지는 보통 형주나 양주 둘 중에 하나였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그녀가 택할 수 있는 행선지였다. 

 

형주에는 언니들이 시집을 가있었고, 양주의 예장군에는 소녀의 숙부가 태수(주를 구성하는 군을 다스리는 수령)로 있었다.

 

문제는 어느 곳을 말하는 게 좋은가 였다.

 

사실 답은 쉬웠다. 

 

‘대인께서는 어디로 가시는지요? 저는 양주와 형주 양쪽 모두 지인이 있습니다.’ 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소녀는 지금 예장으로 향하고 싶었다. 

 

예장 쪽이 운랑이 자신을 찾으러 오기 쉬울 테니까. 

 

소녀가 양주로 가면 예장태수를 곧바로 찾아오면 되지만, 

소녀가 형주에 가있게 되면 운랑은 아마 그녀의 언니들을 수소문 하는 것에서부터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 남의 부인을 수소문 하다 마주하게 될 결과란 고금을 막론하고 정해져있는 법이었다. 

 

소녀는 고민 끝에 형주로 갈 마차도 양주로 돌리고 싶게 만드는 말을 떠올려 냈다.

 

“숙부님께서 예장태수로 계십니다. 혹 양주로 가시는 길이시라면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사례는 두둑이 해 드리겠습니다.”

 

소녀의 음성에, 

 

짐마차의 주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가죽휘장을 다시 내렸다.  

 

그러자, 

 

짐마차가 다시금 달그닥 거리기 시작했다. 

 

“···휴.”

 

그 소리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쓰게 웃었다.

 

저 소리가 거슬려 깨어났건만, 이번에는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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