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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정보/칼럼 축구칼럼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발롱도르~]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2년 4월 25일 기준입니다.

 


15위 김보경


생년월일: 1989년 10월 6일
A매치 기록: 38경기 4득점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2010년대에 활약한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윙어다. 드리블이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나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카디프 시티에도 진출해 활약했다. 아시아로 돌아와서는 전북 현대에서 맹활약했으며 특히 2019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으며 2021 시즌에는 K리그 도움왕을 이뤄냈다.

유망주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서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한 경기도 출전하지는 못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주전으로 나섰으나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대표팀과는 멀어졌다.

 

 

14위 남태희


생년월일: 1991년 7월 3일
A매치 기록: 54경기 7득점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알 두하일 SC

 

카타르에서 이름을 날렸던 대한민국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신체 능력은 뛰어나지 못하지만 볼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며 드리블 능력만큼은 2010년대 대한민국 선수 중 최고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선수다.

울산 현대 유스팀과 레딩 유스팀에서 활약하다가 발랑시엔에서 프로 입단을 했으며 발랑시엔을 떠난 이후에는 줄곳 카타르 리그인 알 두하일과 알 사드에서 활약하며 카타르 스타스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6-17 시즌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2011년부터 활약했으나 2014년까진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해 구자철과 김보경에게 밀렸다. 하지만 슈틸리케 체제에서는 구자철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지만 이후 신태용호에서는 구자철과 이승우, 문선민에게 밀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다. 벤투호에서도 자주 선발되었으나 월드컵이 다가오자 다른 2선 자원에 밀려나며 월드컵과는 악연으로 끝날 비운의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13위 최문식


생년월일: 1971년 1월 6일
A매치 기록: 38경기 9득점
신체조건: 키 174cm
주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로 불리며 특히 사포에 능해 대한민국 축구에서 사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해 1992 시즌 K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1993 아시안컵 우승에도 공헌했다. 다만 포항이 아시아 무대에서 위용을 뽐낼 때 상무로 입대해 그 영광을 같이 누리진 못했다.

프로 데뷔 직후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에 뽑혀서 활약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도 명단에 뽑혔지만 전술적인 이유로 주전으로 기용되지는 못했다.

 

 

12위 박병철

 

생년월일: 1954년 11월 25일
A매치 기록: 55경기 7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해군 축구단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힘이 넘치고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으며 특히 킥력이 뛰어나 세트피스 상황을 도맡아 처리했으며 롱 스로인에 아주 능해 30m 이상의 쓰로인으로 또 하나의 공격 루트를 만들어냈다.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한 이래 대표팀에서도 계속 활약했으며 1974 아시안 게임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독일의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 그를 노렸지만 병역 문제로 입단하지 못했고 해군 축구단에 입단한 뒤 홍콩에서 활약했다.

대표팀 합숙 도중 무단이탈을 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문정식 감독과는 사이가 나빠 대표팀 소집을 거부한 전적도 있으며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에는 홍콩에서 활약했고 선수 생활 막바지에 럭키 금성으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11위 이차만

 

생년월일: 1950년 9월 30일
A매치 기록: 50경기 6득점
신체조건: 키 171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키는 작았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악착같은 근성,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과 영리한 움직임을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72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가 방한해서 경기했을 때 뛰어난 체력과 수비력을 겸비했기에 그들을 마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1년과 1972년 KFA 올해의 팀으로 선정되었으며 실업리그 시절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훌륭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는 박상인과 이영무라는 더 훌륭한 미드필더가 있어서 대표팀에서 오래 활약하지는 못했다.

 

 

10위 윤정환


생년월일: 1973년 2월 16일
A매치 기록: 40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부천 SK (現 제주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빠르면서도 정확하며 창의적인 패싱력, 그리고 우수한 킥력을 보여줬으나 동시에 약한 피지컬 능력으로 강도 높은 압박에는 고전했다.

동아대학교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뽑혔으며 졸업하고 유공에 입단해 발레리 니폼니시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K리그 역사상 화려함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니포 축구를 보여줬으나 이후 세레소 오사카에서는 노정윤과 모리시마 히로아키에게 밀려났다.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에는 소집되어 4강 신화를 경험했으나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9위 김두현


생년월일: 1982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62경기 12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양발을 모두 잘 쓰며 뛰어난 킥력과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선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지원하는 완성형 공격형 미드필더로 팬들은 그를 한국의 제라드라 부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합류했다. 이후 고종수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2004 시즌 K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 중앙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를 전전하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성남으로 이적했다.

2005년 성남으로 이적해서는 3회 연속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06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 WBA에서는 팀의 챔피언쉽 우승에 기여하고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으나 부상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이후에 국내로 복귀했다.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월드컵 예선에서는 활약했다. 다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으며 2007 아시안컵 이후로는 메이저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8위 박상인


생년월일: 1952년 11월 15일
A매치 기록: 70경기 16득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할렐루야 독수리

 

 

대한민국의 요한 크루이프라고 불렸던 선수로 데뷔 초에는 마른 체구를 약점으로 지적받았지만 이를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극복했으며 경기를 설계하는 능력과 뛰어난 창의성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한 우수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한국상업은행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하다가 1975년부터는 이차만을 밀어내고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KFA 올해의 팀에 무려 다섯 번이나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이적을 타진했으나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에 의해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대신 서독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했으나 부상과 현지 적응 실패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할렐루야 독수리의 초대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리그 베스트에 선정되었다, 이후 현대 호랑이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7위 고종수


생년월일: 1978년 10월 30일
A매치 기록: 38경기 6득점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0년대 하반기 대한민국 축구계를 뒤흔들던 앙팡 테리블로 윤정환, 최문식과 함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테크니션으로 활약했으며 번뜩이는 창의성과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교묘한 패스는 물론이고 특히 왼발 킥력이 대단해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그리고 최문식, 윤정환하고는 다르게 경합 능력도 나쁘진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했으며 1998년과 1999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1998년에는 리그 MVP와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고 1999년에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리그와 두 개의 리그컵, 그리고 슈퍼컵을 우승하며 4관왕에 올랐으며 특히 아디다스컵 3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대표팀에서도 1997년 1월 18일에 노르웨이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1주일 후에 치러진 뉴질랜드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연소 데뷔골 기록을 세웠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했고 히딩크호 초반에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1년에 일어난 십자인대 파열과 개인의 불성실함이 겹쳐지며 고졸수는 전성기에서 내려오며 천재는 몰락했다. 롱런했으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선수.

 

 

6위 이재성


생년월일: 1992년 8월 10일
A매치 기록: 63경기 9득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현세대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판단력이 우수해 기술을 화려하게 사용하진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간단한 방향 전환과 팬텀 드리블로 상대를 벗겨내며 활동량과 수비 가담도 적극적이며 유사시에는 박스 침투도 적극적인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다.

전북 현대에서 데뷔해 K리그 4회 우승을 이룩했으며 201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공헌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 선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영 플레이어상을, 2017년에는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이후 2. 분데스리가의 홀슈타인 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현재는 1. 분데스리가의 마인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021-22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공격형 미드필더 부분 내셔널 클래스 10등을 받았다. 분데스리가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순위다.

대표팀에서는 슈틸리케호에서 처음 뽑혔으며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세 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벤투호에서도 핵심 선수로 중용받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활약과 앞으로 분데스리가 마인츠에서 어떤 모습을 얼마나 더 보여주냐에 따라 잘 풀리면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반등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다.

 

 

5위 황보관


생년월일: 1965년 3월 1일
A매치 기록: 37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유공 코끼리 (現 제주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중거리 슈터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전반 43분에 프리킥 기회를 얻어 최순호의 볼을 받아찼는데, 무려 114km/h의 캐넌 슛을 넣었다. 이후로 황보관 하면 캐논 슛, 캐논 슈터 하면 황보관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상대 골키퍼는 바르셀로나 역대 최고의 골키퍼 안도니 수비사레타였으며 이탈리아 월드컵 때 베스트 골 5에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1988 아시안컵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전승을 거두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유공에서도 활약하며 1988년 K리그 신인상과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으며 1989년에는 유공의 유일한 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94년에는 리그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일본의 일본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에 이적하여 활약하다 은퇴하고 그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대표팀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4위 신태용


생년월일: 1970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23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선수생활 대부분을 일화 천마에서만 보낸 천마의 왕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영리한 판단력을 활용한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플레이메이커로 전방에 볼 배급하는 능력도 뛰어났고,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득점력 또한 훌륭하였던 선수로 세트피스에도 굉장히 능했다.

일화에서의 업적은 K리그 역사상 최고로 평가받는데 두 번의 왕조 시절을 모두 주전으로 경험했으며 박종환 체제에서는 리그 3연패와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준우승 각 1회 경험했으며 차경복 체제에서도 리그 3연패와 2004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이 과정에서 신태용은 K리그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회 연속으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총 아홉 번 선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신인상, 1996년에는 리그 득점왕, 1995년과 2001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다.

다만 플레이 스타일상 전권이 주어저야 빛을 발하는 선수라 대표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있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예 소집도 되지 못했다.

요약하자면 K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라 할 만 하지만 대표팀에서 이룬 업적이 거의 없기에 위상에 비해 평가가 낮았던 선수다.

 

 

3위 이영무


생년월일: 1953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85경기 27득점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지구력이 강한 선수로 평가받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드넓은 활동반경을 보여줬으며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뛰어났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포항제철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대표팀에서는 1978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KF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한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한국 최초로 '기도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2위 박창선


생년월일: 1954년 2월 2일
A매치 기록: 34경기 9득점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20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을 모두 활용한 정확한 패스와 가공할만한 슈팅력, 그리고 간결한 탈압박 스킬을 모두 겸비한 마에스트로라 평가받았다.

실업리그인 포항 제철 축구단과 육군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1979년 대표팀에 데뷔해 1984 아시안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참가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월드컵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이후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K리그에서는 1983년에는 포항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리그 도움왕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4년에는 대우로 이적해서 리그 우승에 공헌하고 MVP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K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한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1위 구자철


생년월일: 1989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76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아우크스부르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탄탄한 기본기와 영리한 공간 지각 능력을 활용한 기회 창출 능력과 페널티 박스 침투 능력을 통해 공격 포인트를 쌓아서 구파드라고 불렸다.

2007년에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2010 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도움왕을 석권했으며 이후 2010-11 시즌 후반기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볼프스부르크에 합류했으며 이후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었다가 볼프스부르크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부진한 활약을 펼쳐 마인츠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특히 2015-16 시즌 후반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IM WEITEREN KREIS(리그 내 경쟁력 있는 수준) 등급 5등을 받기도 했다. 이 등수는 해당 시즌에 무려 같은 항목에서 평가받았던 마리오 괴체, 티아고 알칸타라, 막스 마이어, 카가와 신지와 같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보다도 높은 등수였다.

대표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2011 아시안컵에서 득점왕과 올스타팀을 석권했으며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타냈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마지막 독일전 승리에 공헌하며 월드컵의 부진을 끊어냈다. 2019 아시안컵이 끝나고 은퇴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구단 최고의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선수로 이흥실, 김기동 같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댓글 11

FCU회장 작성자 2022.04.26. 00:51
 귀차늠
처진 공격수죠 안느는
댓글
귀차늠 2022.04.26. 08:18
 FCU회장
마리텔이나 유튜브에서 나온 드립 말한건데 ㅠㅠ
댓글
Rocket 2022.04.27. 15:04
 귀차늠
마리오아저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머구아재 2022.04.26. 14:53
잘봤습니다. 다른 항목들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종수 항목 마지막줄에 '고졸수' 오타가 있네요~
댓글
고라파덕 2022.04.26. 15:46
잘보고 있습니다, 내 순위에서는 윤정환이 좀 더 많이 높을듯.
엄청 예전 선수들까지 늘 봐도 대단스...
댓글
천사시체 2022.04.29. 19:27
윤정환 뛰는거 한번만 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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