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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정보/칼럼 축구칼럼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발롱도르~]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2년 4월 5일 기준입니다.


*아직 커리어 완성까지 많이 남은 김민재와 같은 프로경력이 7년이 되지 않는 젊은 선수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20위 안익수

 

생년월일: 1965년 5월 6일
A매치 기록: 5경기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일화 천마 (現 성남 FC)

 

1990년대 K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고2 때 축구를 시작한 늦깎이로 노력형 선수로 알려졌다. 초년에는 파이터형 수비수의 면모를 보였으며 베테랑이 된 이후에는 커맨더형 수비수로 전향해 팀의 수비 라인을 이끌었다.

K리그에서는 일화 천마에서 활약했으며 박종환 감독의 휘하에서 일화 천마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어내며 대표팀에도 소집되었으며 이후 일화 천마가 그를 포항으로 보냈으며 포항에서는 수비라인의 리더 역할을 맡아 이영상, 공문배, 노태경 등과 함께 짠물 수비를 보여주며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2연패를 이끌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96-97 시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최우수 수비수와 최우수 선수를 동시에 석권했다.

다만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1994년에 다섯 번 나온 게 전부이며 홍명보를 보좌하는 스토퍼 자리 경쟁에서도 최영일과 박정배에게 밀린 비운의 선수다.

 

 

19위 조민국

 

생년월일: 1963년 7월 5일
A매치 기록: 47경기 7득점
신체조건: 키 182cm
주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 (現 FC 서울)

 

198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베로 중 한 명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수도 소화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다.

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고 1988년 아시안컵에서도 팀의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와서 실축한 것은 아쉬운 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K리그 우승 1회와 준우승 1회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1986년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상을 보여줬다.

 

 

18위 조용형

 

생년월일: 1983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42경기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커맨더형 수비수로 정교한 롱패스와 뛰어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상대방의 패스 지점을 예측해 미리 차단하는 능력이 뛰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활약했으며 한때 홍명보가 '자신의 후계자라고 언급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는 조용형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만 피지컬과 스피드가 떨어지고 대인마크가 허술하다는 단점이 있어 파트너의 수비력이 많이 부각되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정수와의 조합은 훌륭해서 대표팀의 첫 원정 16강을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했으나 예선전에서 강민수와 조합을 맞췄을 때에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주의 전신인 부천 SK에서 데뷔했으며 데뷔 첫 해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플레잉 코치 시절을 포함해 총 네 번 뛰면서 총 여덟 시즌을 보냈다.

 

 

17위 김현수

 

생년월일: 1973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3경기
신체조건: 키 186cm
주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現 성남 FC)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K리그 정상급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포지션이 센터백임에도 퇴장을 한 차례도 당하지 않을 만큼 파울을 거의 범하지 않는 깔끔한 수비수였으며 정확한 예측력과 깔끔한 커버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왼발 킥력을 활용해 프리킥과 페널티킥을 전담하기도 했으며 단 한차례의 페널티킥도 실축하지 않았다.

부산 대우 로얄즈와 성남 일화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팀 수비라인의 리더로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부산에서는 1997년 리그와 두 번의 리그컵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에서 모두 우승하는데 공헌했으며 성남에서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4년간 활약하며 리그 3회 연속 우승은 물론 4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K리그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대표팀 운이 없었는데 이는 김현수와 비슷한 스타일이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 불리는 홍명보였던 불운이 크다.

 

 

16위 이민성

 

생년월일: 1973년 6월 23일
A매치 기록: 6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K리그 정상급 수비수 중 하나로 스피드가 빠르고 신체 능력이 뛰어나 대인 수비 능력이 뛰어나며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수비형 미드필더나 라이트백으로도 뛸 수 있었으며 상무 시절에는 아예 고교시절 포지션인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1997년 도쿄 대첩 때 역전 결승골로 유명해졌으며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에도 김태영과 최진철의 백업으로 출전해 독일전에 교체 출전했으며 터키와의 3.4위전에도 출전했으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후 2004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K리그에서 김현수와 수비 조합은 견고하기로 유명했으며 부산 대우 로얄즈가 황금기를 누리는데 공헌했다. 1997년에는 1997년 리그와 두 번의 리그컵인 아디다스컵과 프로스펙스컵에서 모두 우승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FC 서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5위 홍정호

 

생년월일: 1989년 8월 12일
A매치 기록: 42경기 2득점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힘과 지능을 겸비한 현세대 K리그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제공권과 몸싸움에 강점이 있고, 스피드도 준수하며 적재적소에 상대의 패스를 차단할 수 있으며 빌드업 능력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K리그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전북 현대, 그리고 분데스리가인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아쉽지만 국내 무대에서의 활약은 매우 뛰어난데 데뷔년도인 2010년에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전북으로 돌아와서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세 번 연속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21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한국이 동메달을 따낸 런던 올림픽은 부상으로 참가하지도 못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전해 알제리전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여주며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장현수와 김영권에게 밀렸고 결국 신태용호에서는 마지막 기회였던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도 실수를 연발하며 최종 명단에서도 탈락해 대표팀과 멀어지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리그에서의 준수한 활약과 브라질 월드컵 이전까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빅리그인 분데스리가에도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4위 곽태휘

 

생년월일: 1981년 7월 8일 
A매치 기록: 58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1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 넣는 수비수로 키도 크고 체격도 단단하며 점프력도 뛰어나 제공권 능력이 뛰어나며 2010년 3월의 평가전에서는 코트디부아르의 드로그바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중앙 수비수임에도 꽤나 공격에 가담하기도 하며, 오버래핑 식으로 공간이 보이면 직접 공을 몰고 올라와 패스를 뿌리기도 하며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다.

FC 서울에서 데뷔하였으나 김진규와 트레이드되어 전남으로 떠나 허정무 체제의 전남에서 활약했으며 포항 스틸러스와의 2007 FA컵 결승전 1차전에서 곽태휘는 후반 43분에 프리킥 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으며 2차전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전남 드레곤즈의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후 교토 상가를 거쳐 돌아온 울산 현대에서도 2011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해 공격진의 부진에도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팀의 무패 우승에 공헌했으며 특히 결승전에서는 헤딩 선제골까지 기록했다. 이후 알 힐랄과 FC 서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2016년에는 서울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부상이 잦아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음에도 울산에서는 두 번의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AFC 챔피언스리그 드림팀에도 무려 세 번이나 들었다.

대표팀에서는 다소 불운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부상으로 날렸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김영권과 홍정호에 밀려 벤치를 지켰다. 그래도 2015 AFC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팀의 결승행에 공헌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13위 박정배

 

생년월일: 1967년 2월 19일
A매치 기록: 36경기 2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LG 치타스 (現 FC 서울)

 

최영일과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정상급 스토퍼로 평가받았으며 악착같은 맨마킹과 준수한 헤딩 볼 경합 능력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스피드도 상당히 빨랐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 능력도 준수했다.

대표팀에서 홍명보, 최영일과 함께 3백의 스토퍼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는데 뛰어난 맨 마킹 능력으로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의 핵심 공격수인 스페인의 살리냐스와 독일의 클린스만을 마킹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비록 그들에 의해 실점했지만 독일전에서는 황선홍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이전의 실책을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

K리그에서는 LG 치타스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92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나 최전성기였던 1994년에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했으나 그 당시에는 대표팀에서 부르면 소속팀 일정이 있음에도 응해야 했기에 정작 대우 로얄즈에서는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12위 최영일

 

생년월일: 1966년 4월 25일
A매치 기록: 55경기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박정배와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정상급 스토퍼로 평가받았으며 악착같은 대인마크가 특기로, ‘수갑’, ‘진드기’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상대팀의 공격수들을 괴롭혔으며 상대 공격수의 등 쪽 유니폼을 계속 잡고 다닌다거나 공과 상관없는 곳에서는 슬쩍 발을 밟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심판의 시야 밖에서 교묘하게 반칙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특히 대표팀 한일전에서 일본의 주전 스트라이커 미우라 카즈요시를 매우 잘 막아내 일본에서는 ’미우라의 그림자‘라는 별명이라고도 불렸다.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처음 발탁되어 주전으로 올라섰으며 미국 월드컵에서 홍명보, 박정배와 함께 3백 수비 라인을 구성해 전 경기에 출전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참가했다.

K리그에서는 1990년대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울산의 첫 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후 부산으로 가서도 이민성의 백업으로 리그 우승과 아디다스 컵과 프로스펙스컵 우승에 공헌했다.

 

 

11위 이정수

 

생년월일: 1980년 1월 8일
A매치 기록: 54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알 사드

 

박성화, 곽태휘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사를 대표하는 골 넣는 수비수로 탄탄한 체격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과 맨마킹 능력이 탁월하며 발이 빨라 라이트백도 볼 수 있다.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으나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창단 멤버로 활약했으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2008년에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교토 퍼플 상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카타르의 알 사드에서 2011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2012-13 시즌 리그 우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보냈다.

K리그보다는 대표팀에서 더 활약한 선수로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준수한 수비는 물론 첫 경기 그리스전에 선제골을 넣었으며 나이지리아 전에서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한국의 원정 첫 16강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개인적으로 더 높은 순위를 주고 싶은 수비수이나 K리그에서의 상복이 없는 게 매우 아쉬운 선수

 

 

10위 박성화

 

생년월일: 1955년 5월 7일
A매치 기록: 107경기 26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할렐루야 독수리

 

이정수, 곽태휘와 함께 대한민국 축구사를 대표하는 골 넣는 수비수로 리베로와 스토퍼는 물론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수비적으로도 그의 태클은 당대 이름을 날렸다.

대표팀에서는 1975년 성인대표로 발탁된 후 1979년 한일전에서는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1980 AFC 아시안컵에서는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으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는 부상으로 참가하지는 못했다.

1979년에 KFA 최우수 선수로 뽑히기도 했으며 1983년 K리그 개막 이후에는 할렐루야 독수리의 리그 초대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이듬해에도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87년에는 포항제철 아톰스로 돌아와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한다.

 

 

9위 김호곤

 

생년월일: 1951년 3월 26일
A매치 기록: 124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1970년대 하반기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센터백 치고는 키가 굉장히 작지만 불굴의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악착같은 대인 수비 능력으로 아시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는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1978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75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1998년에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FIFA에서 발표한 아시아-오세아니아의 20세기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8위 김영권

 

생년월일: 1990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9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광저우 헝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간판 수비수로 적절한 위치 선정과 좋은 타이밍에 실행되는 수준 높은 커팅 능력은 물론 볼터치가 부드럽고 왼발 킥력이 우수했으며 전성기에는 주력도 빠른 선수였다.

J리그에서 경력을 시작해 도쿄와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활약하다가 광저우 헝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광저우 헝다에서 중국 슈퍼리그 6연패를 기록했고 두 번의 FA컵 우승을 거뒀으며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팀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선정되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두 번의 AFC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으며 2015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드림팀에 선정되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2015년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홍정호, 장현수, 김민재 등과 호흡을 맞췄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부진했고 이후에도 좋지 않았고 이란전 직후 인터뷰로도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파트너인 장현수와는 다르게 준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카잔에서 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7위 김호

 

생년월일: 1944년 11월 24일
A매치 기록: 84경기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제일모직 축구단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스토퍼로 열정적이고 몸을 불사르는 수비로 정평이 나 있었으며 리베로 김정남과의 수비 조합은 당대 아시아 최고라 불렸다.

실업 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1969년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김정남과 함께 중앙 수비라인을 이뤄내 1970년에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을 따냈으며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한국의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에서 2002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0년 한국의 축구 잡지사인 베스트일레븐이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6위 김정남

 

생년월일: 1943년 1월 28일
A매치 기록: 67경기
신체조건: 키 170cm
주 소속팀: 양지 축구단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리베로로 파트너인 김호와는 반대로 냉정하고 침착한 플레이 스타일로 적절한 상황 판단 능력과 뛰어난 수비라인 지휘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호와의 수비 조합은 당대 아시아 최고라 불렸다.

1969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1970년에는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을 타냈으며 실업 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1971년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나 이후 부상이 심해 은퇴했다가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플레잉 코치로 복귀했다.

한국의 여론조사 단체인 한국갤럽에서 2002년에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0년 한국의 축구 잡지사인 베스트일레븐이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5위 조영증

 

생년월일: 1954년 8월 18일
A매치 기록: 113경기 1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럭키금성 황소 (現 FC 서울)

 

 

1980년대 대한민국 수비를 대표했던 선수로 코끼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몸싸움에 능했으며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전술안과 판단력을 겸비했으며 패싱력과 득점력도 뛰어났다.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경력을 시작해 훌륭한 활약을 펼쳐 1977 K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해군 축구단을 거쳐 미국의 포틀랜드 팀버스에서 활약하다 구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며 시카고 스팅으로 이적하여 활약했는데 1982 북아메리카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북미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다.

K리그로 돌아와서는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스트라이커로도 뛰었고 1984년 6경기 연속골을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돼 장기 합숙에 들어갔기 때문에 럭키 금성에서 활약할 기간이 적어 1985년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4위 김태영

 

생년월일: 1970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105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아파치라고 불렸던 거친 수비수로 한일 월드컵 당시 코뼈 부상으로 착용한 타이거 마스크로도 유명했다. 거친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이 없을 정도로 지능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줘 겁을 주는 등 심리전에도 능했다.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발이 빨라 측면 수비수로도 뛰었다.

K리그 드래프트에 대한 반감으로 실업 리그에서 뛰다가 고향팀인 전남 드래곤즈의 창단 멤버로 활약하며 프로리그에서는 전남 원 클럽맨으로 남으며 1997년에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 그리고 아디다스 컵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으며 1999년에는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대표팀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는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번갈아가며 맡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왼쪽 스토퍼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타이거 마스크로 대변되는 투지는 한일 월드컵 이후 그의 상징이 되었다.

은퇴한 뒤인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최진철

 

생년월일: 1971년 3월 26일
A매치 기록: 65경기 4득점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큰 키와 탄탄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제공권 능력과 강력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던 수비수로 슬라이딩 태클에도 강점을 보여줬다.

25세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단했으며 숭실대학교 졸업 이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이후에는 전북 현대에서만 쭉 활약한다. 프로 데뷔 초반엔 공격수로 활약했다가 김도훈이 전북으로 돌아오자 수비수로 복귀한 뒤에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전북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전북의 방패라는 별명을 얻었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전북을 AFC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으로 올리고 대회 MVP에 올라섰다.

대표팀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파울레타, 비에리, 모리엔테스를 그럭저럭 잘 막아내며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수비라인의 리더로 출전해 토고의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막아내며 원정 첫 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2위 정용환

 

생년월일: 1960년 2월 10일
A매치 기록: 86경기 3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홍명보 이전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던 선수로 꾸준하고 성실한 몸관리로 만든 신체능력이 특히 우수했는데 키가 178cm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연구하며 성실하게 연습한 결과 키가 197cm에 달하는 외국인 선수와의 공중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경악스러운 점프력을 지녔으며 대한민구에서는 대인 방어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로 생활 11년 동안 단 한차례의 레드카드와 자책골도 기록하지 않았던 안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프로팀 입단 이전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혔으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1987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했고 1988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가도 했으며 1988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했고 1994 미국 월드컵 출전까지 노렸으나 부상으로 아쉽게 낙마했다.

K리그에서는 대우 로얄즈에서 활약하며 세 번의 K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우승한 해인 1984년, 1987년, 1991년 모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88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와 아시안컵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91년에는 K리그 MVP에 뽑히는 등 프로팀에서도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

1994년 대우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1995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풀럼 입단을 노렸으나 워크퍼밋 문제로 불발되고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는 판단에 은퇴했다고 전해진다.

 

 

1위 홍명보

 

생년월일: 1969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136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아톰스 (現 포항 스틸러스)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대인 수비 능력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두 스토퍼들을 커버하며 볼을 차단하고, 중앙에서 수비 라인을 리딩 하는 리베로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판단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뛰어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아시아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다.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네 번의 대회에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으며 아시안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프리킥 골을 득점하며 따라붙어 무승부에 공을 세웠고 독일전에서도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팀의 리베로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이고 유럽과 남미 국적의 선수가 아닌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이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뛰었다가 포항에 입단해 입단 첫해인 1992년에 포항에게 K리그 우승을 선물하고 자신은 리그 MVP를 석권했으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무려 다섯번이나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AFC 선정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선정되었으며 일본에 건너가서도 가시와 레이숄에서 활약하며 2001년 J리그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으며 말년에는 포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난 LA 갤럭시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은퇴 이후 2004년에는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에는 베스트일레븐지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아시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대한민국의 센터백 레전드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많아서 20명을 뽑았지만 여기에 뽑히지 못한 이임생, 김평석, 윤덕여, 장현수, 김상식, 김영철, 이영상, 이종화 등 아쉽게 제외시킨 선수도 많았습니다.

댓글 11

best 2022.04.05. 18:44
best 달리 2022.04.05. 19:09
아버지들이 많네
best 달리 2022.04.05. 19:09
아버지들이 많네
댓글
수국화 2022.04.05. 19:11
언젠가 민재도 저 명단에 있기를...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2.04.06. 16:34
 수국화
김민재는 이번 월드컵 16강가고 3년정도만 지금폼 유지해도 2위 무난하다고 봐요
댓글
리눅스 2022.04.05. 20:08
곽태휘는 내가 경남때만 봐서 그런지 안 좋은 기억만...
댓글
바치 2022.04.06. 01:20
홍명보는 진짜 14월드컵 급하게 맡은것만 아니었어도 선수로나 감독으로나 길이길이 남을 레전드인데..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2.04.06. 16:33
 바치
그게 아쉬웠죠.. 안정환인가 이동국인가랑 가진 술자리에서 한국은 날 버렸다했나 그랬다네요
댓글
정해림 2022.04.06. 07:42
김영권은 저기 낄급은 아닌가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2.04.06. 16:33
 정해림
8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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