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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1990년대 수상 총 결산

안녕하세요, 축구 역사 매니아 레드 아카이브입니다. 

 

이번에 저와 같은 축구 역사 매니아이자 축구 블로거이신 토르난테님과 함께 대형 프로젝트를 합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가 속한 크리에이터 팀, FCU의 이름을 걸고 연도별로 가상의 상을 시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연도별 최고의 자리에게 주는 상이 많지 않았으며, 상이 있어도 당시에 상을 받은 선수들의 명예와 인지도가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수상 결과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있어도 이를 재평가한 자료가 적어서 '과거에는 누가 최고였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축구 역사를 연 단위로 끊어서 최고의 자리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하고, 여러 부문에서 최고를 직접 선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평가 부문은 연도별 최고의 선수, 최고의 감독, 특별상(최고의 골키퍼, 최고의 유망주,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최고의 공격수, 최고의 주장),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최고의 팀이며 최상위권의 순위와 후보 노미네이트까지 진행합니다. 

 

시작은 1950년부터이며, 하는 김에 2022년까지 쭉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뒤에는 더 이전 시대에도 동일한 평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저희 평가자 2인의 주관(축구를 보는 관점,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등)이 반영되었으며 각 평가자의 성향은 글 하단에 간략히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각자의 주관에 맞게 스스로 평가해보시면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저희도 그러한 의견 교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연도별 최고의 선수는 두 평가자가 합동으로 평가하였고, 최고의 감독, 특별상,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은 토르난테님께서 맡아주셨고 최고의 팀은 제가 맡아서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설명을 비롯한 아래의 본문은 토르난테님께서 작성하셨고 서문과 공유는 제가 전담하였습니다. 

 

그럼 즐거운 감상과 소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1990년대가 마무리된 기념으로 1990년대 수상의 총 결산을 진행해보겠습니다. 

 

 

블로그 원문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m/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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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89-90 시즌부터 1998-99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90 시즌부터 1999 시즌까지로 잡았으며 1990년 1월 1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포인트 합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선정- 1p 추가
최종 노미네이트 30인 선정- 1p 추가
토르난테 선정 TOTY 선정- 1p 추가 

올해의 선수 10위 선정- 1.5p 추가
올해의 선수 9위 선정- 2p 추가
올해의 선수 8위 선정- 3p 추가
올해의 선수 7위 선정- 4p 추가
올해의 선수 6위 선정- 5p 추가
올해의 선수 5위 선정- 6p 추가
올해의 선수 4위 선정- 7p 추가
브론즈볼 선정- 9p 추가
실버볼 선정- 10p 추가
골든볼 선정- 12p 추가

*특별상 부문은 추가 점수 없음

즉 골든볼에 선정하면 앞 최초 노미네이트, 최종 노미네이트, TOTY는 무조건 선정되기에 최대 15포인트를 받는데 이게 한 해 만점.

3-2. 감독

골든 바통- 10p 추가
실버 바통- 6p 추가
브론즈 바통- 3p 추가
노미네이트- 1p 추가

3-3. TOTD 선정 방식

모든 부문은 상술한 포인트 부분을 따릅니다.

골키퍼-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센터백- 최고 득점자 2명 선정

사이드백- 라이트백과 레프트백 부문 각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단 양측면으로 분류된 선수는 좌우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지만 한쪽 측면으로 고정된 선수의 경우에는 해당 측면에서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미드필더: 최고 득점자 3명 선정, 단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최소 1명 이상 있어야함.

포워드- 최고 득점자 3명 선정

3.4 플레티넘 보이 및 플레티넘 암밴드 선정 방식

골든 보이 수상자 10명 중 신인상 수상 해에 퍼포먼스가 다들 비슷하기에 U-21 선수 중 최고의 폼을 보인 선수를 선정합니다.

4. 이번 랭킹의 선정 기준은 특별상과 최고의 국가대표팀 부문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포인트 합산으로 선정합니다.

5. 건조폼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입니다.

 


1. Red Archive 선정 199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플래티넘 클럽팀

 

 

 

 

유벤투스 FC
 

업적

세리에 A: 3회 우승 (1994-95, 1996-97, 1997-98)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1989-90, 1994-95)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우승 (1995, 1997)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995-96)
UEFA 컵: 2회 우승 (1989-90, 1992-93)
UEFA 슈퍼컵: 1회 우승 (1996)
인터콘티넨탈컵: 1회 우승 (1996)
UEFA 인터토토컵: 1회 우승 (1999)


여러 팀들이 스쿠데토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던 1990년대의 세리에 A에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냈고 경쟁 끝에 밀란 제너레이션을 끝내고 이탈리아의 패권을 다시 한번 잡았다. 동시에 유럽 무대에서도 지배력을 보여주었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3번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치열한 리그 중 하나로 꼽히는 당대의 세리에 A와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무대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최강의 팀으로 군림한 것은 비록 그 기간이 길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위대한 업적이다.

또한 유벤투스가 강세를 보인 1990년대 후반은 남아메리카 클럽 축구의 하향세로 인하여 유벤투스가 유럽의 왕관과 동시에 세계의 왕관을 확실하게 쓸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 이전 유럽 축구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AC 밀란과 바르셀로나 등의 팀들은 끝내 브라질의 상 파울루와 아르헨티나의 벨레스 사르스필드를 넘지 못하며 전 세계의 왕좌에 앉지 못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들 이후 남아메리카의 왕을 자처한 팀들은 유벤투스와 아약스를 비롯한 유럽 클럽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따라서 유벤투스는 1990년대에 가장 오래 세계 축구의 정상에 머물렀던 팀이다. 1990년대 내에 유벤투스보다 더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었던 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정점에 가장 꾸준히 근접했던 것은 단연코 유벤투스이다.

 

 

1위 플래티넘 국가대표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업적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동메달
1996 북중미 골드컵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998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9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1990년대 내내 꾸준하게 우승에 근접한 성적을 낸 브라질을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했다. 신의 재능을 가지고 셀레상에 강림한 두 천재 호마리우와 호나우두는 상대에게 공포 그 자체를 심어주었고, 화려한 삼바 축구라는 팀 컬러 못지않게 둥가, 마우루 시우바 등이 이끄는 중원의 탄탄함도 빛났으며 공수를 넘나드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카푸의 존재도 매우 강력했다. 

FIFA 올해의 국가대표팀에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압도적인 강자로 군림하였다. 이렇게 화려함과 실속을 겸비하여 왕좌에 오래 머무르며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축구는 곧 브라질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이 시절의 셀레상에게는 그 어떤 찬사도 과하지 않다. 특히 자국민들에겐 다소 저평가받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세계 축구 전술사에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아우베르투 감독은 4백 체제였음에도 좌우 양측에 공격형 사이드백을 활용하면서 좌우 측면 미드필더들이 중원싸움 및 중앙 공격에 가담하는 전술을 보여줬는데 이 전술은 이전에도 없지 않았지만 이 전술이 유럽과 남미, 그리고 아시아 축구계까지 유행시킨 장본인은 1994년의 브라질 감독 아우베르투였다.

 


2.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골키퍼

 

 

 

 

이름: 피터 슈마이켈
출생일: 1963년 11월 18일
국적: 덴마크
평가 기간 소속팀: 브뢴뷔 I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골키퍼는 덴마크의 유로 우승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이라는 대업을 세운 피터 슈마이켈을 선정했다.

덴마크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인 슈마이켈은 주로 머물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998-9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 및 FA컵 3회 우승을 이뤄냈다.

1992년에는 유고슬라비아 대신 참가한 덴마크의 유로 우승을 이끌며 데니쉬 다이너마이트의 기적을 이뤄냈고 1995년 킹 파드컵 우승 및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1980년대 최고의 골키퍼 선정 결과

 

 

 

 

센터백

 

 

 

 

이름: 프랑코 바레시
출생일: 1960년 5월 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센터백 첫 번째 자리에는 사키와 카펠로 시대의 전성시대를 누린 밀란제너레이션의 핵심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를 선정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수비라인 지휘를 훌륭하게 수행한 바레시는 지난 10년 동안 무패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4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레시 개인도 1999년에 AC 밀란 세기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 및 1994 미국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마라도나,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와 같은 훌륭한 공격수들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센터백

 

 

 


이름: 마티아스 잠머
출생일: 1967년 9월 5일
국적: 동독 → 독일
평가 기간 소속팀: 디나모 드레스덴, VfB 슈투트가르트, 인테르 밀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센터백 두 번째 자리에는 마지막 리베로라 불리는 사나이로 스리백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며 스리 백 시스템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천재 마티아스 잠머를 선정했다.

동독 출신의 잠머는 독일이 통일된 이후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테르를 거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분데스리가 2연패 및 1996-9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며 2년 연속으로 독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유로 1996 우승을 이끌며 초대 공식 MVP를 수상했으나 1997-98 시즌에 당한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며 월드컵에서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던 부분이 아쉬웠다.
 

 

1990년대 최고의 센터백 선정 결과

 

 

 

 


라이트백

 

 

 

 

이름: 카푸
출생일: 1970년 6월 7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상 파울루, 레알 사라고사, 파우메이라스, AS 로마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트백은 같은 국적의 자우마 산투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버래핑 상황과 수비 상황에서 모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의 교과서로 불렸던 카푸를 선정했다.

특히 텔레 산타나가 이끄는 상 파울루에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인 카푸는 1991년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더블 우승,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연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 및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유럽무대 공격축구의 대표주자인 FC 바르셀로나와 수비축구의 대표주자인 AC 밀란을 모두 꺾어내는데 공헌했고 특히 1993년에는 1992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챔피언인 크루제이루와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격돌해 승리하며 우승을 이뤄냈고 역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클럽끼리 열리는 왕중왕전인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파우메이라스와 AS 로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에서 교체 멤버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에 소폭 기여했고 1997년 컨페드컵 및 코파 아메리카 더블 우승, 1998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낸 뒤, 둥가에게 주장 완장을 물려받으며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레프트백

 

 

 


이름: 파올로 말디니
출생일: 1968년 6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레프트백은 로쏘네리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인 말디니를 선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군림한 말디니는 AC 밀란에서 리그 5회 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디니 개인도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가리지 않고 압도적인 수비력을 보이며 팀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 1994 미국 월드컵 준우승 및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이라는 굵직한 성적을 냈다.

 

 

1990년대 최고의 좌우 사이드백 선정 결과

 

 

 

 

 

미드필더

 

 

 

 

이름: 미카엘 라우드루프
출생일: 1964년 6월 15일
국적: 덴마크
평가 기간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비셀 고베, AFC 아약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드필더 첫 번째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켰음은 물론 펄스 나인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던 미카엘 라우드루프를 선정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중핵을 맡아 전성기를 누리며 라리가 4연패, 1991-92 시즌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새웠지만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해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개인 통산 라리가 5연패를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일본과 네덜란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91-92 시즌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 라우드루프는 대표팀에서는 감독과의 갈등으로 유로 1992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후 갈등을 봉합하고 1995년 킹파드컵 우승 및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수훈갑을 세웠다.

 

 

미드필더

 

 

 

 

이름: 로타어 마테우스
출생일: 1961년 3월 21일
국적: 서독 → 독일
평가 기간 소속팀: 인테르 밀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드필더 두 번째 선수는 1980년대에도 이미 최고의 3선 미드필더였으며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이후에도 리베로로서 엄청난 경기영향력을 선보인 마테우스를 선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마테우스는 인테르의 UEFA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와서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 및 UEFA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실버볼을 수상해 조국 통일의 선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바쳤으며 이후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지난 10년 동안 FCU 올해의 선수상 골든볼을 2회 수상한 로타어 마테우스는 1990년과 1999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미드필더

 

 

 


이름: 지네딘 지단
출생일: 1972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평가 기간 소속팀: AS 칸, 지롱댕 보르도, 유벤투스 FC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드필더 세 번째 선수는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한 지네딘 지단을 선정했다.

AS 칸에서 데뷔해 지롱댕 보르도에서 UEFA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지단은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는 델 피에로와 함께 유벤투스의 공격을 이끌며 세리에 A 2연패 및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준우승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냈고 특히 1996-97 시즌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7-98 시즌에는 UEFA 올해의 미드필더를 수상했다.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때 비신사적인 행위로 레드카드를 받아 16강전에 나오지 못했으며 8강 이탈리아전에서는 복귀하자마자 5회의 키패스를 기록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아예 직접 두 골을 득점하며 브라질을 침몰시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 개인도 공식 올스타 스쿼드는 물론 5개의 매체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199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선정 결과

 

 

 

 

 

포워드

 

 

 

 

이름: 호나우두
출생일: 1976년 9월 18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크루제이루, PSV 에인트호번,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 첫 번째 선수는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뛰어난 슈팅 능력을 모두 겸비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무릎 꿇리며 압도적인 득점력은 물론 플레이메이킹까지 겸비한 호나우두를 선정했다.

1993년 크루제이루에서 데뷔해 데뷔 시즌에 역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이 치르는 경기인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소속팀의 준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8골을 득점하며 대회 득점왕에 오른 호나우두는 PSV 에인트호번을 거쳐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라리가 준우승 및 코파 델 레이와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라리가 득점왕, 유러피언 골든슈, 돈발롱 선정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 등 여러 상을 이뤄냈으며 순수하게 활약 자체로도 크루이프로부터 "1974년 게르트 뮐러보다 3배 잘한다."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대단한 괴력을 선보였고 인테르 밀란에서도 세리에 A 준우승에 그쳤지만 호나우두 개인은 47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득점한 호나우두는 특히 UEFA컵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알토란같은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결승전에서는 라치오가 자랑하는 수비수였던 네스타를 완벽하게 압도하며 팀의 세 번째 골까지 득점했다.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결승전 MOM은 물론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94년에 데뷔해 벤치에서 첫 커리어를 우승으로 시작했으며 1997년에는 호마리우와 함께 투톱을 이루며 펠레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A매치 20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한 호나우두는 특히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했고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볼리비아를 만나 결승골을 득점하며 3-1 승리를 이끌며 MVP를 수상했다. 컨페드컵에서도 호마리우와 함께 결승전에서 만난 호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맹폭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골든볼을 수상했고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히바우두와 함께 팀의 우승을 견인하며 공동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포워드

 

 

 

 

이름: 로베르토 바조
출생일: 1967년 2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FC, AC 밀란, 볼로냐, 인테르 밀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 두 번째 선수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중 한 명이자 아주리의 판타지스타 계보를 이끈 장본인으로 현란한 발재간과 창의적인 패싱력과 뛰어난 슈팅 스킬을 보여주며 뛰어난 온 더 볼 능력을 보여준 말총머리의 스타를 로베르토 바조를 선정했다.

피오렌티나를 거쳐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2-93 시즌 UEFA컵 우승과 1994-9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91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UEFA컵과 세리에 A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인해 FCU 골든볼을 수상했고 1995-96 시즌에도 세리에 A 도움왕에 올랐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경쟁자 만치니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공격진을 이끌며 5골을 득점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지만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가 실축함으로써 팀은 패했고 월드컵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 받은 것과는 다르게 대중들에게 그간의 공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1994년에 그가 결승전 직전까지 보여줬던 활약상은 축구계로부터 인정받았다.

 

 

포워드

 

 

 

 

이름: 호마리우
출생일: 1966년 1월 29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FC 바르셀로나, 플라멩구, 발렌시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공격수 세 번째 선수는 동물적인 감각을 앞세워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려 득점했으며 신체 밸런스와 양발 사용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볼 컨트롤과 뛰어난 드리블 실력까지 자랑했던 골의 왕, 호마리우를 선정했다.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지만 PSV 에인트호번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득점왕 3회 수상을, 후자의 클럽에서는 1993-94 시즌에 30골을 터트리며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브라질 리그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활약했으며 남미 무대에서도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브라질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대회 골든볼 및 실버슈를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호나우두와 함께 투톱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드컵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컨페드컵에서는 7골로 동료 호나우두마저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1997년 한 해 동안 A매치 17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했다.

 

 

1990년대 최고의 포워드 선정 결과

 

 

 

 

 

1990s TOTD 베스트 일레븐

 

 

 

 

 

 

1990s TOTD 세컨드 일레븐

 

 

 

 


3. 토르난테 선정 1990년대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글러브

 

 

 

이름: 피터 슈마이켈
출생일: 1963년 11월 18일
국적: 덴마크
평가 기간 소속팀: 브뢴뷔 I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보이

 

 

 

이름: 호나우두
출생일: 1976년 9월 18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3년에 이미 골든 보이를 수상했지만 만 21세인 1997년에 골든볼을 수상한 호나우두를 플레티넘 보이로 선정했다. 이유는 상단에서도 밝혔듯이 1990년대 골든 보이를 수상한 선수들이 대부분 퍼포먼스가 비슷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소속팀 바르셀로나에서 공식전 49경기에 출전해 47골을 기록한 호나우두는 라리가 준우승 및 코파 델 레이와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라리가 득점왕, 유러피언 골든슈, 돈발롱 선정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 등 여러 상을 이뤄냈으며 순수하게 활약 자체로도 크루이프로부터 "1974년 게르트 뮐러보다 3배 잘한다."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호마리우와 함께 투톱을 이루며 펠레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A매치 20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한 호나우두는 특히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했고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볼리비아를 만나 결승골을 득점하며 3-1 승리를 이끌며 MVP를 수상했다. 컨페드컵에서도 호마리우와 함께 결승전에서 만난 호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맹폭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쉴드

 

 


이름: 마티아스 잠머
출생일: 1967년 9월 5일
국적: 동독 → 독일
평가 기간 소속팀: 디나모 드레스덴, VfB 슈투트가르트, 인테르 밀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렌즈

 

 

 

이름: 로타어 마테우스
출생일: 1961년 3월 21일
국적: 서독 → 독일
평가 기간 소속팀: 인테르 밀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에로우

 

 

 

이름: 로베르토 바조
출생일: 1967년 2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FC, AC 밀란, 볼로냐, 인테르 밀란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암밴드

 

 


이름: 둥가
출생일: 1963년 10월 31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피오렌티나, 페스카라, VfB 슈투트가르트, 주빌로 이와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90년대 최고의 주장은 1994년, 1997년에 골든 암밴드를 수상한 둥가를 선정했다.

1994년에는 원래 주장이었던 하이에게 대회 도중 주장완장을 물려받은 둥가는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통솔했는데 주축 베베투마저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저 놈을 따라가야 된다.”라고 팀원들에게 말했을 정도로 지휘 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터프한 카리스마의 둥가 덕분에 브라질 대표팀은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1997년에는 주빌로 이와타 선수들이 패배에도 웃는 모습을 보이자 "웃지 말라고 바보들아!"라고 일갈하며 팀의 위닝 멘탈리티를 자극해 J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셀레상에서도 호마리우, 호나우두 등 브라질의 개성 넘치는 스타들을 원 팀으로 묶는 라커룸의 리더이자 중원 사령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20경기 가까운 A매치를 소화해 혹사로 지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모두 우승할 수 있게 정신력을 다잡아줬다.

 

 

북중미 플래티넘 플레이어

 

 

 

이름: 호르헤 캄포스
출생일: 1966년 10월 15일
국적: 멕시코
평가 기간 소속팀: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나시오날, 아틀란테, LA 갤럭시, 크루스 아슬,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나시오날

 

1990년대 북중미 최고의 선수로는 단신 골키퍼의 성공 사례로 불리는 선수로 키 170cm가 되지 않았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반사신경의 소유자였으며 간혹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던 괴짜 골키퍼 호르헤 캄포스를 선정했다.

UNAM과 크루즈 아슬에서 활약하며 개인 통산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멕시코 리그 골든글러브를 5회 수상했으며 미국의 시카고 파이어에서는 MSL 컵과 US 오픈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멕시코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나섰으며 골드컵 2회 우승과 1999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화려하면서도 개성있는 플레이는 물론 멕시코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활약을 펼치며 좋은 성과를 냈기에 북중미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

 

 

아시아 플래티넘 플레이어

 

 

 

이름: 마제드 압둘라
출생일: 1959년 11월 1일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평가 기간 소속팀: 알 나스르

 

1990년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축구계를 아시아의 중심으로 올리는데 큰 공을 새운 압둘라를 선정했다.

188cm의 큰 키와 오리엔트의 펠레라 불렸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던 공격수 마제드 압둘라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비록 득점은 없었지만 주장으로서 조별 리그에서 2경기 선발출전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16강 진출을 견인하는 활약을 펼쳤다.

 

 

아프리카 플래티넘 플레이어

 

 

 

이름: 조지 웨아
출생일: 1966년 10월 1일
국적: 라이베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AS 모나코, 파리 생제르맹, AC 밀란

 

1990년대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로는 199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조지 웨아를 선정했다.

파리 생제르맹과 AC 밀란에서 커리어 하이를 보낸 그는 PSG의 리그 앙 우승 1회와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이뤄냈으며 AC 밀란에서는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96년에는 FCU 올해의 선수 브론즈볼에 선정되었다.

 

축구 외교관상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가시마 앤틀러스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은 세계 축구계에서도 미국, 중국 다음으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까지는 세계적인 수준은 물론이고 아시아 내에서도 이웃나라 대한민국이나 서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을 보여줬다.

그러나 1992년, 일본의 프로축구무대인 J리그가 출범하며 상황은 바뀐다. J리그 출범을 바탕으로 일본의 축구는 도약했고 결국 1998년에는 월드컵 본선에도 참가했다. J리그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을 튼 선수는 지쿠였다.

1989년 플라멩구에서 현역에서 물러난 지쿠는 1991년에 일본이 실업리그였던 시절 스미토모 금속공업팀에 들어간다. 단순히 한 팀의 선수로 들어간 것이 아닌 J리그 출범을 돕기 위해 들어간 지쿠는 J리그 출범 뒤에는 스미토모 금속공업의 후신인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뛰며 J리그의 활성화 및 홍보에 크게 기여했다.

지쿠가 홍보하는 J리그는 일본의 자본력까지 더해지며 둥가, 미카엘 라우드루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게리 리네커 등 여러 레전드 선수들을 끌어모았음은 물론 이웃국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인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노정윤과 같은 선수들까지 끌어모으며 세계 축구 시장의 콘손으로 자리잡았디.

축구계의 잠재력 높은 미개척지인 일본 시장을 개척한 지쿠의 공을 높게 평가해 그에게 특별상, 축구 외교관상을 수상한다.

 

 

자유의 축구인상

 

 

 

이름: 장마르크 보스만
출생일: 1964년 10월 3일
국적: 벨기에

 

1990년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RFC 리에주 소속의 장마르크 보스만이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새 팀인 프랑스 됭케르크 구단으로 이적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됭케르크 구단이 보스만에 대한 이적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였고, 외국인 쿼터제에 걸려서 보스만은 이적에 실패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보스만은 계약이 만료되어 더 이상 리에주 1군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봉도 대폭 삭감되었다.

이에 보스만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선수 계약이 만료된 구단은 선수에 대한 소유권이 소멸된다.'와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EU 영역 내 국가로 취업이 가능하다.'라는 골자의 명분으로  자신이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소송을 걸었고, 5년간의 공방 끝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선수들은 한층 더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었으며 유럽연합 가맹국 국적이 있는 선수들은 다른 유럽연합 가맹국 소속팀에서 뛰더라도 용병이 아닌 자국선수로 처리되며 유럽연합의 원칙인 하나의 유럽에도 더욱 가까워졌다.

비록 보스만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했지만 그의 소송으로 많은 선수들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킬 수 있었기에 자유의 축구인상을 수상한다.

 

 

공로상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직책: 브라질 체육부 장관

 

20세기 후반, 브라질은 최악의 부패 국가였으며 그러기에 브라질 축구계도 당연히 엉망이었다. 축구계는 ‘큰 모자’를 쓴 지배자들이 지배했다. ‘큰 모자’를 ‘카르톨라스’라고 부른다. 이들은 협회 수뇌부, 구단주, 조직폭력과 연계된 클럽 간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펠레의 위상은 범 세계적이었고 본인이 원한다면 카르톨라스에 가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상징 권력을 갖게 된 이후 펠레는 이들과 결탁하지 않고 오히려 맞섰다. 그리고 1994년 브라질의 민주화 운동가 페르난두 카르도수는 대통령에 올랐고 축구계의 부패 권력과 싸워온 펠레를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펠레는 일명 펠레 법이라 불리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을 바탕으로 축구협회와 각 클럽의 회계를 투명하게 하고 무엇보다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힘썼다. 부패한 상류층으로부터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한 펠레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토르난테 선정 1990년대 최고의 축구감독

 

 

1990년대 최고의 축구감독 선정 결과

 

 

 

 

토르난테 선정 1980년대 플래티넘 바통

 

 


이름: 마르첼로 리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체세나, 루케세, 아탈란타, SSC 나폴리, 유벤투스 FC

 

업적

유벤투스 FC

1994-95 세리에 A 우승
1994-95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5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6 UEFA 슈퍼컵 우승
1996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96-97 세리에 A 우승
1996-97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7-98 세리에 A 우승
1997-98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8-99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개인상

1994-95 판키나도르
1995-96 판키나도르
1995-96 유럽 시즌의 축구감독
1996 제프 헤어베어거 어워드
1996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
1996-97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1997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1997-98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1997-98 UEFA 올해의 감독
1997-98 유럽 시즌의 축구감독
1998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

 

1990년대 최고의 갑독에게 수여하는 플레티넘 바통의 주인은 전반과 후반을 다른 컨셉으로 운영하며 불리한 경기흐름을 뒤집는데 능한 여우 마르첼로 리피를 선정했다.

치밀하고 냉철한 면모와 경기 도중 메인 전술을 갈아치웠을 정도로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동시에 갖췄으며 높은 라인에서의 압박과 라인을 내려 수비하는 부분에서 모두 능했으며 빠른 공격 전개를 위주로 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점유하는 플레이를 적절히 섞는데 능해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린 리피는 커리어 초창기에는 이탈리아의 하부리그 및 세리에 A 하위권에서 전전했으나 나폴리에서 기회를 잡아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올라섰다.

유벤투스에서 밀란으로부터 리그의 패권을 뺏어오며 스쿠테토를 3회나 들었으며 1995-96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회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1990년대 하반기의 감독상을 거의 독식한 건 두 말할 것도 없다. 리피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감독임을 부정할 수 없다.

 


5.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9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199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선정 결과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90년대 플래티넘볼

 

 

 

 

이름: 로베르토 바조
출생일: 1967년 2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FC, AC 밀란, 볼로냐, 인테르 밀란

 

199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FCU 어워드 골든볼 1회 수상
199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FCU 어워드 올해의 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7회 선정
1990년대 토르난테 선정 FCU 어워드 Team Of The Year XI 3회 선정

 

총 45 포인트를 획득한 로베르토 바조가 42포인트를 획득한 로타어 마테우스와 미카엘 라우드루프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990년대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플레티넘 볼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록 바조는 이전에 플레티넘볼을 수상한 디 스테파노, 펠레, 베켄바우어, 마라도나에 비해 경쟁자들을 크게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가장 오래 정상급 폼을 유지했기에 고점에서의 기량은 호나우두나 마테우스에 비해 부족했을지언정 포인트 합산에서는 압도할 수 있었다.

바조는 FCU 어워드 올해의 선수에서 1993년에 골든볼, 1994년에 브론즈볼을 수상했으며 FCU 선정 TOTY 월드베스트 일레븐에는 3회 선정되며 공격수 자리가 유독 치열했던 1990년대에 공격수 포지션에서는 가장 많이 선정되었다.

이하 로베르토 바조의 업적은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9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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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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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rchive Football

축구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응원팀에 대한 생각도 전합니다. 업로드 주기가 불규칙적이고 느린데, 규칙적이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red-archiv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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