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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11 : 천황의 동생 vs 천황의 아들, 임신의 난[발롱도르~]

을사의 변(乙巳の変)과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의 주도 세력이었던 나카노 오오에 황자(中大兄)는 결국 668년 천황 자리에 올라 텐지 천황(天智天皇; 천지천황)이 된다. - 즉위년도가 661년이라는 설도 있지만 대다수는 668년 설을 지지한다. -

 

300px-Hyakuninisshu_001.jpg ◀ 텐지 천황

 

그는 비와호 부근의 오우미(近江; 지금의 시가현)로 수도를 옮기고 중국으로부터 율령제도를 최초로 도입하고, 오우미령(近江令)이라는 법령을 발하였다.

또한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를 최측근에 두어 중앙집권화를 위한 개혁을 계속해서 시행하였다.

 

이런 정책들로 호족들의 불만과 원성이 자자했음에도, 텐지 천황은 뒤도 안돌아보고 그들의 기반을 완전히 리셋시켜 버렸기에...

천황으로서의 그의 권력은 계속 치솟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가현.png ◀ 비와호와 시가현의 위치

 

하지만 그런 텐지 천황도 후계자 선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과거 일본에는 황위 계승권이 황족이나 유력 호족 출신 황후에게서 태어난 황자에게만 주어져야 하고,

천황에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있을 경우 형제 상속을 원칙으로 하는 관례가 있었다.

 

따라서 텐지 천황에게는 오오아마(大海人)라는 친동생이 있었기에, 기존에 관례대로라면 오오아마가 후임자가 되었어야 했고 실제로도 그가 황태제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율령제의 확립을 계속해서 추진하던 텐지 천황은 이 관례를 무시하고 당나라의 율령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부자간 세습을 하기를 원했다.

 

텐지 천황이 계속해서 자신의 아들인 오오토모(大友)를 황태자로 삼으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오오아마는 텐지 천황을 찾아가 스스로 천황직에 뜻이 없음을 전한 후 직접 오오토모를 황태자로 추천하고 출가하였다.

 

오오아마는 오우미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요시노(吉野; 현재의 나라현)으로 가족을 이끌고 가 은거하였고, 오오토모는 황태자가 되었다.

 

Emperor_Kōbun.jpg ◀ 오오토모 황태자

 

오오토모가 황태자가 된지 얼마 안된 671년 12월, 텐지 천황이 사망하였다.

 

오오토모가 24살의 나이로 자연스럽게 천황이 되었지만, 문제는 텐지 천황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호족들이었다.

그들은 텐지 천황이 오우미 천도를 강행한 것, 백제 부흥 지원군 파견 실패, 호족 억압 정책 등을 가지고 정치적 경험이 얼마 없었던 오오토모를 흔들어댔고, 오오토모 정권은 급격히 위태로워졌다.

 

한편 오오아마는 텐지 천황이 죽자 조정으로 부터 엄청난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오오아마는 반란을 결의하고, 미노(美濃; 현재의 기후현)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현지인들을 모아 거병하였다.

 

오오아마는 이틀 뒤 요시노를 떠나 이가(伊賀; 현재의 미에현 서부), 이세(伊勢; 현재의 미에현 중앙부)를 거쳐 미노로 이동하였다.

미노로 향하는 도중에 조정에 불만을 갖고 있다가 오우미에서 탈출한 다른 황자들, 그리고 각지의 호족들이 합류하였다.

 

Old_Japan_Mino.png

▲ 이가, 이세, 미노의 위치 - 다이카 개신때 국군제(国郡制)가 도입되면서 당시 일본의 행정구역은 국(国)과 군(郡)으로 이루워져 있었음. 따라서 여기서 국(国)은 현대처럼 '나라'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보단 우리나라의 도(道)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

 

오오아마는 미노에 있는 두 관문인 후와관(不破關)과 스즈카관(鈴鹿關)에 진을 치고 병사를 모아 군을 정비했다.

 

동국(東国; 수도로부터 동쪽 지방)의 군사를 모아 어느 정도 병력이 강해진 오오아마는 대대를 둘로 나누어 1대대는 야마토로 돌아 들어가게 하고 2대대는 오우미로 다이렉트 진격시키면서 반란이 시작되게 되었다.

 

425px-Old_Japan_Yamato.svg.png

▲ 야마토, 오우미의 위치

 

오오토모도 이 소식을 듣고 전국의 호족과 지방관에게 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동국의 호족들은 이미 오오아마에게 협력한 상태였고,

기존의 지방호족이라고 조정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던 지역의 호족들은 협조 요청을 거절해 오오토모는 제대로된 병력을 모으지 못하였다.

 

오오토모는 간신히 인접 국(国)에서 병력을 모아 진압군을 편성하여 오오아마 군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오우미의 인접국이었던 야마토에서는 평소 오오아마를 흠모하던 오오토모노 후케이(大伴吹負) - 야마토국 아스카에 기반을 둔 오오토모씨(大伴氏) 가문의 사람. 오오토모(大友) 황자랑 한자가 다름 - 가 협조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군사를 일으켜 오오아마를 도와줌으로써 조정의 군대는 더욱 힘들어졌다.

 

ilhashihaka.png ◀ 오오토모노 후케이의 야마토 전투를 그린 삽화 (사진 출처 : 아스카-토비라 닷컴)

 

후케이군과 오우미 조정군이 처음 부딪혔을 때는 후케이 군이 조정군에 밀려 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오오아마군은 미노에서부터 수만명의 군대를 후케이에게 보내주었고,

후케이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조정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오오토모는 조정군이 밀리자 아예 오오아마군의 진지인 미노로 군사를 보내버린다.

하지만 미노로 향하는 조정군의 지휘관들이 합이 맞지 않았고, 결국 미노로 가지도 못하고 다 막혀버린다...

 

한편 조정군의 병력이 최약체의 수준까지 가자 오우미로 바로 진격하던 오오아마군 2대대는 거듭 승리를 거두어나갔다.

특히 비와호를 넘어 황궁으로 갈 수 있는 다리인 세타바시(瀨田橋; 뇌전교)에서의 전투는 조정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전투였다.

 

다음날 2대대는 1대대와 합류하여 황궁을 포위하였고, 승산이 없다고 느낀 오오토모는 자살했다.

 

이 내란을 학계에서는 임신년(672)에 일어났다 하여 '임신의 난(壬申の乱)'이라고 한다.

 

세타바시.png

▲ 세타바시와 오츠 황궁의 위치

 

이렇게 내란은 오오아마 황자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오오아마는 야마토의 아스카에서 즉위해 텐무 천황(天武天皇; 천무천황)이 되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기에 텐무 천황의 힘은 강력할 수 밖에 없었고, 호족들은 알아서 그에게 복종했다.

 

텐무 천황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중앙집권화를 완성하였으며, - 텐지 천황은 디지도록 할라 해도 잘 안됐는데... -

도읍을 다시 아스카로 옮기고 관제를 새롭게 하고, 성씨를 정비하는 등의 개혁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도 텐무 천황 때 처음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번외 1) 오오토모 황자는 근대에 들어서야 천황으로 인정됐다?

 

오오토모 황자의 천황 재위 기간은 671년 12월 5일부터 672년 7월 23일 까지임.

그러니까 약 8개월 정도만에 임신의 난으로 텐무 천황에게 황위를 뺏긴 것.. ㄷㄷ

 

따라서 텐무 천황은 오오토모 황자를 천황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천황으로 인정받지 못했음..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 국뽕(?)의 영향으로 천황의 족보를 확실히 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고,

그제서야 천황으로 인정받게 됨. (1870년..)

 

그가 바로 고분 천황(弘文天皇; 홍문천황).. - 사실 엄청 짧게 재임한 데다가 학계에서도 보통 오오토모 황자로 불리기 때문에 첨듣는 사람들이 더 많을 듯.. -

 

 

번외 2) 천황이라는 칭호의 시초는?

 

본 콘텐츠 8회차에서 말한 적 있듯이 천황의 명칭을 누가 처음 시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두가지 설이 존재한다.

 

  • 1. 텐무 천황 설 : 다이호 율령이 제정되기 직전인 텐무 천황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 현재의 통설이다.
  • 2. 스이코 천황 설 : 일본 제국 시대 때의 식민 사학자였던 츠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에 의해서 주장된 것으로 정미의 난 이후의 스이코 천황 때부터 천황이라는 명칭을 진작에 사용되었다는 설.

 

주류 사학계에서는 텐무 천황 설이 통설로 받아지고 있고, 필자도 마찬가지로 이에 동의하고 있으나..

'오오키미(大王)'이라는 표기가 한국인에게는 생소 할 수 있어서, 필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스이코 천황 대부터 천황이라는 명칭으로 표기하고 있음..

오오키미라고 치는 것보다 천황이라고 치는 게 필자에게 더 편하기도 하고...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8. 불교의 수용을 두고 일어난 싸움

https://www.flayus.com/27537385

 

10. 쿠데타로부터 시작된 다이카 개신

https://www.flayus.com/28868194

 

 

댓글 15

A.C.Milan 2018.08.14. 00:06

비와호ㅋㅋㅋㅋ 시가현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이 비와호의 물을 먹고 사는줄 안다함ㅋㅋㅋ

사실은 아닌데

댓글
슈퍼루키나상호 작성자 2018.08.14. 12:06
 A.C.Milan
ㅋㅋㅋ 오사카는 모르겠지만 쿄토까지는 옛날에 수로터널 만들어서 비와호에서 상용수 공급한 적은 있다고 알고 있음
그것땜에 그렇게 생각하나 ㅋㅋㅋ 지금은 전혀 아닐텐데


댓글
송하영 2021.01.04. 10:41
궁금한게 있습니다
천황의 형제가 한 명 있다고 가정하고 천황을 1, 천황의 형제를 2라고 했을 때 1이 죽으면 2가 천황이 된다는건 알겠습니다
그럼 2가 죽으면 1의 장자가 천황이 되는건가요 아님 2의 장자가 천황이 되는건가요?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22
 송하영
고대에는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웬만해선 2
댓글
송하영 2021.01.04. 21:25
 안유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D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28
 송하영
근데 천황 계보를 다 외우고 있는건 아니라서 ㅋㅋ 유명한 천황들 생각해보면 2인거 같음
옛날엔 마구잡이로 왔다갔다해서 퇴임한 천황이 다시 즉위 하는 경우도 있고
황후가 천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부자 직계로 상속했다가 다시 윗 세대 황족이 천황이 하는 경우도 있어서 마구잡이였음 ㅋㅋ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43
 송하영
계보 찾아보니까 그냥 지멋대로 인듯 ㅋㅋㅋㅋ

헤이안 시대 천황 중에 몬토쿠 천황이 있는데 아들인 세이와 천황, 손자인 요제이 천황 한테로 계승됐다가
요제이 천황 다음에 다시 몬토쿠 천황의 동생인 코우코우 천황한테 감...
그리고 코우코우 아들인 우다, 손자인 다이고 천황, 증손자인 스자쿠 천황으로 이어지는데

스자쿠 천황 다음엔 그 동생인 무라카미 천황이 계승하고 (형제 상속)
무라카미 다음엔 스자쿠의 아들이 아닌 자기 아들 레이제이 천황이 계승함 (2의 방식)

레이제이 천황 다음엔 다시 그의 동생인 엔유 천황이 계승했는데 (형제 상속)
엔유 천황 다음은 또 레이제이의 아들인 카잔 천황임 ㅋㅋㅋ(1의 방식)

카잔 다음은 엔유 천황의 아들인 이치조 천황이 계승했고 (사촌 간 상속)
이치조 천황 다음엔 카잔의 형제인 산조 천황이 계승함 (사촌 간 상속)

그 다음은 다시 이치조 천황 아들인 고이치 천황인데.. 사촌을 형제관계로 본다면 이것도 1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고.
고이치 다음은 동생인 고스자쿠(형제 상속)

고스자쿠 다음엔 다시 그의 아들인 고레이제이 천황..(2의 방식)
고레이제이 다음엔 동생인 고산죠(형제 상속)

고산죠는 자기 아들인 시라카와 한테 줬고(2의 방식)
그다음 부터는 원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쭉 직계가 우선이다가

다시 1방식 썼다가 2방식 썼다가 왔다갔다하네 ㅋㅋㅋ

그냥 그때그때 다르다는 표현이 맞는듯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46
 안유진
근데 또 직계이냐 방계이냐 차이도 있는데 직계면 부자 승계가 되고 방계면 그 대에서 끝나는게 원칙이라서
배다른 형제인 경우 형이 직계고 동생이 방계라고 치면 형의 자식이 계승하고 그랬을거임
고대사 전공이 아니라 정확한 승계 원칙이 어떤지 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일본은 분가를 해서 왕가를 여러개 만들어서 상속하기도 해서 그때그때 합의를 통해서 정했던 것 같음
댓글
송하영 2021.01.04. 21:53
 안유진
이렇게 자세하게 답변까지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제멋대로네ㅋㅋㅋ 권력이란게 나누기 쉽지 않은건데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계승할수도 있구나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2:00
 송하영
일본 자료 찾아보니 다이카 개신 이전에 황위 계승 원칙에 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게 없고 설이 엄청 많은 듯 ㅋㅋㅋ

그런데 질문 준 내용에 관련된 설이 하나 있긴 한데

井上光貞の大兄相続説 : 大兄(おおえ)(同腹中の長子)からその兄弟,ついで大兄の子の順に継承反復したとする説。
이노우에 미츠사다의 오오에 상속설 : 오오에(동복 중의 장자)로부터 그 형제, 이어서 오오에의 자식의 순서로 계승 반복 했다는 설.
(1의 방식)

天智朝に至り,中国より継受した嫡長子相続主義にもとづく皇位継承法が定められた。
텐치조에 이르러, 중국에서 계수한 적장자 상속주의에 의거한 황위 계승법이 정해졌다.

이걸 보면 1의 방식이 원칙이라는 것 같은데
근데 막상 또 직접 계보 봐보면 꼭 그런것 같지는 않고... ㅋㅋㅋㅋㅋ
댓글
송하영 2021.01.04. 22:05
 안유진
구속력이 약해보이긴 하지만 원칙이 있긴했네요ㅋㅋㅋ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2:09
 송하영
근데 이것도 많은 설중에 하나인거라 ㅋㅋㅋ 확실한 건 아님...

내가 고대 계보 볼때는 2의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한데...
저 이노우에 미츠사다가 연구한 사료랑 이런걸 봐봐야 어떤 근거로 1로 주장했는지 알 수 있을 듯.
이노우에가 유명한 고대 사학자라 근거 없이 주장하진 않았을텐데 ㅋㅋㅋ

결론은 고대엔 형제상속이 가장 많았고, 기본 원칙이었던 것 같은데, 그 밑 세대로의 승계는 지멋대로 였다..? ㅋㅋㅋㅋㅋㅋㅋ
고대사 전공이 아니라 확실하게 모르겠음 ㅠㅠ
댓글
송하영 2021.01.04. 22:13
 안유진
단순한 궁금증으로 질문한건데 이렇게 자세히 답변해줄줄 몰랐음
이렇게 보니까 답변만 가지고 미갤글 하나 써도 될듯ㅋㅋㅋ
덕분에 하나 알아갑니다
댓글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2:14
 송하영
ㅋㅋㅋㅋ 질문 듣고 보니 저두 궁금해져서 막 찾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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