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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10 : 쿠데타로부터 시작된 다이카 개신[발롱도르~]

소가씨(蘇我氏) 가문은 천황 바로 밑의 최고 권력직인 오오오미(大臣; 대신)직을 세습해 나가며 막강한 권력을 유지해 나갔다.

소가노 이나메(蘇我稻目) -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 소가노 에미시(蘇我蝦夷) -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 로 오오오미 직의 세습이 4대째 이어지면서,

황실 주위에서도 서서히 천황 중심으로 국정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메이 천황(舒明天皇; 서명천황) 사후, 그의 부인이었던 코교쿠 천황(皇極天皇; 황극천황)이 천황이 되었다.

 

d301305e2000177f4a47e5216d0ae5d142ea016f16570759dd98f6fc534b43d6ad8ff60c0eee661a5f2e160d2dff29a8bb43acb25e5e290b9a5f526b7b4.jpg ◀ 코교쿠 천황

 

그러나 당시에는 여성 천황을 임시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곧바로 코교쿠 천황의 후계자를 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쇼토쿠 태자의 아들(聖德太子; 성덕태자)이었던 야마시로노 오오에(山背大兄) 황자였다.

 

Prince_Shotoku.jpg ◀ 쇼토쿠 태자 일가족, 우측 인물이 야마시로노 오오에로 알려져 있음.

 

야마시로노 오오에는 이전에도 조메이 천황과의 황위 계승 싸움에서 진 적이 있었기에 이번 황위 계승 논쟁이 더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야마시로노 오오에는 소가씨의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당시 오오오미였던 소가노 에미시가 조메이 천황을 밀어주는 바람에 에미시 일가에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었다. - 에미시가 당시에 반 소가씨 세력이나 호족들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에 야마시로노 오오에를 안 밀어 줬던 것 같음. -

오오오미 직이 에미시의 아들인 이루카에게 넘어가면서 그도 다시 소가씨의 힘을 받아 황위에 오르는가 했으나....

소가노 이루카는 그와 더 가까운 친척인 후로히토노 오오에(古人大兄) 황자를 추대하고자 하였고, 야마시로노 오오에와 소가씨 가문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게 된다.

 

이들 외에도 후로히토노 오오에의 이복 동생인 나카노 오오에(中大兄) 등이 후보직에 있었으나...

가장 유력했던 건 후로히토노 오오에와 야마시로노 오오에였고, 황위 계승 분쟁은 이들의 대립 구도가 되었다.

소가노 이루카는 후로히토노 오오에를 황위 계승자로 확정 짓기 위해 야마시로노 오오에를 비롯한 쇼토쿠 태자 가문에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버린다.

 

결국 야마시로노 오오에와 쇼토쿠 태자가의 사람들은 전부 자살을 하게 된다.

이로써 후로히토노 오오에가 소가씨를 등에 없고 황위 계승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이 사건은 많은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의 쿠데타 (을사의 변)

 

이러한 정세를 이용해서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가 소가씨 타도를 계획한다.

 

300px-Fujiwara-Kamatari.jpg ◀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야마토 조정의 중급 호족이었는데,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유학했던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기에 중국 문물에 밝았다.

그렇기에 그는 당과 같은 율령국가를 본떠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수립하려는 야망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천황 옆에서 최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소가씨 같은 넘들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이루카 덕분에 소가씨에 대한 여론이 안좋아지자 이를 이용해서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한 것이다.

 

이에 카마타리는 먼저 세력확보를 위해 황위 계승 후보 중에 하나였던 나카노 오오에 황자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뜰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나카노 오오에를 찾아가서 그의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 진짜임.. 일본서기에 나와있음.. 현대식 축구랑은 좀 다르긴 한데..-

그런데 나카노 오오에가 공을 차다가 잘못해서 신발이 멀리 날라가버린다..

그걸 카마타리가 재빠르게 주워 나카노 오오에에게 달려가 무릎 꿇고 신발을 전해줬는데.. 거기에 나카노 오오에가 감명 받았고, 그 뒤 둘은 엄청난 절친이 된다.

 

8d989746.jpg

▲ 일본식 축국(蹴鞠) 경기 장면 

 

이후 카마타리는 소가씨 내부 분열로 이루카에게 반감이 있던 소가노 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石川麻呂) - 이름이 너무 길다 - 까지 꼬셔서 쿠데타를 실행한다.

 

날짜는 645년 6월 12일, 삼국의 조(三国の調) 행사가 준비된 날로 계획했다.

삼국의 조란, 당시 한반도의 삼국이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들이 예물과 함께 가져온 문서를 천황 앞에서 읽던 행사로 당시 일본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천황 앞에서 문서를 낭독하는 행사였기에 오오오미인 이루카도 반드시 참여해야 했고, 그를 죽일 타이밍을 잡기 좋았기 때문에 이 날로 확정되었다.

 

이들은 소가노 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가 낭독을 시작하면 자객을 시켜 이루카를 베어버릴 계획을 세우고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낭독이 시작됐음에도 자객이 주저하며 계획을 시행하지 못했다..

카마타리가 빡쳐서 자객을 꾸짖었지만, 자객은 계속 쫄아서 우물쭈물 했고..

낭독하던 이시카와마로도 계획이 지체되자 불안해져 목소리가 흐트러지고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이루카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이시카와마로에게 "왜 떠냐?"라고 물었을 정도였다고....

 

시간이 계속 지체되자 결국 답답했던 나카노 오오에가 직접 이루카를 베어버렸다.

눈앞에서 사람의 목이 날아가는 걸 보고 당황한 천황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나카노 오오에는 "이루카는 황족을 멸하고, 왕위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의 시체를 비가 쏟아지던 바깥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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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노 오오에 황자가 소가노 이루카의 목을 베는 장면을 그린 에도시대 그림

 

그 다음날 쿠데타 세력들은 이루카의 아버지였던 소가노 에미시를 죽이기 위해 에미시의 저택을 찾아가 포위했고, 이에 에미시는 본인의 저택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이렇게 소가씨의 시대는 단 이틀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쿠데타를 학계에서는 을사의 변(乙巳の変)이라고 부른다.

 

 

다이카 개신

 

코교쿠 천황은 쿠데타 이후 자신의 남동생인 카루(經) 황자에게 천황직을 양도하고 자리에서 내려온다.

 

본 컨텐츠의 8회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일본에는 케가레(穢れ)라고 하는 부정(不淨) 또는 금기가 있었는데 이 케가레에는 피나 병, 죽음 등이 속했다.

그리고 만약 이와 관련되게 되면 부정이 옮기 때문에 은둔이나 격리로써 이를 씻어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 최악의 케가레는 죽음이라고 믿었었는데, 이루카가 천황 눈 앞에서 대가리가 썰려서 죽어버렸으니... ㄷㄷ

코교쿠 천황은 이 케가레를 씻기 위해 황위를 양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孝徳天皇.jpg ◀카루 황자

 

카루 황자가 코토쿠 천황(孝徳天皇; 효덕천황)이 되고, 나카노 오오에 황자는 황태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나카노 오오에는 오오오미(대신)라는 직급을 폐지하고, 이를 여러개로 나누어 좌대신(左大臣), 우대신(右大臣), 내대신(內大臣) 등의 직급을 신설하였다.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국가 기밀을 담당하는 내대신 직에 임명되었다.

 

이후 처음으로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정하여 645년을 다이카 원년으로 하였고, 수도를 현재의 오사카인 나니와(難波)로 천도 하였다.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은 이 '다이카'라는 연호를 사용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일련의 개혁을 나타낸다고 보면 된다.

 

이듬해에 나카노 오오에는 '개신의 조(改新の詔)'라고 하는 것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 개신의 조
    • ① 공지공민제 : 왕족과 호족이 토지와 인민을 사유화 하던 것을 폐지하고, 이를 국유로 전환한다.
    • ② 국군제 : 국(国), 군(郡), 현(縣) 등으로 이뤄진 기존의 지방행정 조직을 정리하고, 국(国)과 그에 부수한 군(郡)을 두는 형식으로 정비한다.
    • ③ 반전수수법 : 호적과 호구 대장을 만들어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논밭을 나누어 준다.
    • ④ 조세제도 개혁 : 예로부터 내려오던 부역제도를 폐지하고, 조용조 시스템을 도입한 새로운 전·호별 조세제도를 시행한다.

 

나카노 오오에는 중국의 율령제도와 중앙집권적 정치기구를 도입하여 개혁을 함으로써 황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특히 공지공민제는 기존의 호족 세력들의 세력기반을 완전히 앗아가버리는 개혁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체제를 완전히 뒤바꿔 중앙집권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관제의 정비 등 더 다양한 개혁들이 시행되다가, 650년에 연호가 '하쿠치(白雉)'로 바뀌면서 다이카 개신은 마무리 되었다.

 

나카노 오오에는 이후에도 황위에 오르지 않고, 그의 어머니었던 코교쿠 천황을 사이메이 천황(斉明天皇; 제명천황)으로 재즉위 시켜 옆에서 보좌하였다.

이후 백제 부흥운동 등을 지원하다가 사이메이 천황이 죽고 나서야 천황에 즉위하여, 율령 국가로의 개혁을 계속 이어 나갔다.

 

+)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텐지 천황(天智天皇; 천지천황)이 된 나카노 오오에와 함께 국정을 이어나가다가 사망할 때 천황으로부터 후지와라씨(藤原氏)를 하사받아 이후부터 후지와라노 카마타리(藤原鎌足)로 불리게 됨.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8. 불교의 수용을 두고 일어난 싸움

https://www.flayus.com/27537385

 

9. 쇼토쿠 태자가 꿈꾸었던 국가는?

https://www.flayus.com/28100284

 

댓글 3

best 슈퍼루키나상호 작성자 2018.08.08. 15:27

ㅋㅋㅋㅋ 일본사 헷갈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죠 ㅠㅠ

기본적으로 음가가 긴데 거기에 고대 애들은 이름 중간중간에 이상한 거 붙이고 성 계속 바꾸고 해서 더 헷갈림..
거기다 비슷한 이름도 많어서 ㄷㄷㄷ
best 슈퍼루키나상호 작성자 2018.08.08. 15:27
 갓용수종신

ㅋㅋㅋㅋ 일본사 헷갈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죠 ㅠㅠ

기본적으로 음가가 긴데 거기에 고대 애들은 이름 중간중간에 이상한 거 붙이고 성 계속 바꾸고 해서 더 헷갈림..
거기다 비슷한 이름도 많어서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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