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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독한 형사 <2장 7화 - 악어의 눈물>

1

 

 

 

지하철역 안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마치 게임 속 세계를 살아가는 NPC처럼 그들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서서 화장하는 사람,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 등 다양했다.

그중 늘 같은 지하철 칸에서 손잡이를 잡고서 출근하는 여성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이름은 김지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는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휴대전화 속 <카xxx>을 실행시켜 상대방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 : 오늘은 야근 안 했으면 좋겠어 ㅜㅜ

불곰 : 나도 정시 퇴근이라는걸 해보고 싶어. 어디까지 왔어?

나 : 나 3정거장 뒤에 내려 ㅋㅋㅋ 자기는 일 중?

불곰 : 반장 눈치 보면서 몰래 톡 중 ㅋㅋㅋ

불곰은 남자친구의 별명이다.

김지윤은 경찰서 강력계 형사 이재웅과 연애 중이다.

그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곧 생일이니까 맛있는데 가자는 남자친구가 대견스러웠다.

다음 역에 도착했는지 전철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많은 인파가 또 열차에 올라탔다.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인파에 휩쓸려 더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그녀.

출입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내부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지하철.

비좁은 공간에서 휴대전화 행위를 하기 어렵다고 느낀 그녀는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더운 여름, 밀착된 사람들 사이로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때, 하반신 쪽에서 불쾌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불청객의 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손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그녀는 한껏 인상을 구겼다.

참고는 못 사는지라 곧장 고성을 질렀다.

 

“누구야, 내 엉덩이 만진 사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오래 가진 않았다.

구원의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돕기 시작했으니까.

이 사람이에요, 제가 봤어요!

여기 제가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놨어요!

어딜 도망가려 해!

비좁은 전철을 떠나 넓은 지하철 경비대 사무실을 들른 김지윤.

그녀 옆엔 범행을 저지르려다 붙잡힌 가해자가 앉아 있었다.

지하철 치안 경비대 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기본적인 신상정보 질문.

그녀는 바른대로 대답했다.

 

한창 조사가 이어질 무렵 갑자기 사무실 문이 덜컥 열렸다. 소식을 들은 남자친구 이재웅 형사가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누구야, 어떤 개xx가 내 여친 엉덩이 건드렸어!”

 

“째웅!”

 

“누구시죠?”

 

“아…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에게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친 데는 없어? 응, 없어!

누가 그랬어? 이 사람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여자친구를 살짝 떨어뜨린 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지윤이 재차 다가와 오른팔을 꽉 붙잡는다.

 

“야, 이 미친 xx야! 할 게 없어서 여자를 성추행해? 이 xx놈아! 놔 봐, 놔 봐!”

 

“죄…죄…죄송합니다! 제가 죽을 짓을 졌습니다!”

 

“너…시x 왜 그랬어? 야, 너는 오늘 그냥 거세하자!”

 

물증과 증언이 있는데도 끝까지 발뺌하던 가해자가, 본인 앞에 나타난 이재웅 형사를 슬쩍 보더니 헐레벌떡 의자에서 일어난다.

큰 죄를 저질렀다며 무릎까지 꿇은 채로 손을 싹싹 비는 게 화룡점정.

풍채가 다른 이를 만나자 겁먹은 게 분명하다.

상대를 두들겨 패겠다며 계속 다가가려는 이재웅을 여자친구와 지하철 경비대가 뜯어말렸다.

일이 더 커지려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니라.

가해자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싹싹 빌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있습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2

 

 

 

회사에다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 후 하루 연가를 낸 김지윤이 자신을 지켜주러 온 남자친구와 나란히 길을 걷는다. 살짝 흥분했는지 그가 입고 있던 카키색 항공 점퍼를 벗는다. 선처하겠다는 여자친구 말을 듣고서 울화가 치민 것이다.

 

“지윤아, 봐주면 안 된다니까! 저러고 또 다음 상대를 물색한 뒤 똑같이 저지른다고! 심하면 네가 위험할 수 있어!

자기 신고했다면서 찾아오면 어쩔 건데?”

 

“찾아오라지 뭐…나에겐 믿을 사람이 엄청 많고 그중 한 명이 내 앞에 있는걸?”

 

“뭐? 아니…그…너는…이런 상황에…으흠!”

 

“내가 위험할 때 도와주러 오면 되지…안 그래? 기분 풀어, 응?”

 

이재웅은 고개를 돌렸다.

위험해지면 네가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한 여자친구 칭찬을 듣자 쑥스러워진 것이니라.

별다른 말없이 양손을 주머니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텅 빈 사무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러 명의 사람들.

 

“다 조용히 앉아라!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자자, 선생님은 이쪽에! 선생님은 저쪽에! 어어, 거기가 아니죠!”

 

“빨리 못 앉냐?”

 

“어휴, 검거할 때보다 데려올 때가 더 힘드네.”

 

불법 도박을 일삼는 조직단을 검거하고 돌아온 강력팀 4인방이 저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이재웅은 말을 안 듣는 조직원에게 가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앉으라는 무언의 경고.

정 순경은 컴퓨터를 켰다.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선 데스크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남명성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축 늘어진 어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변한다.

공 반장은 자기 자리로 가서 텀블러 뚜껑을 똑, 하고 열었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켠 후 손가락으로 조직원들을 한 명씩 가리켰다.

 

“오늘 안에 진술 다 받아서 끝내는 거야. 알겠지? 자, 시작하자!”

 

3

 

 

 

그날 밤.

야근을 마친 김지윤은 혼자서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오른손엔 휴대전화가 있었다.

 

불곰 : 지윤, 오늘 나 회식 ㅜㅜ 좀 늦을 거 같아

나 : 응~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이따 연락행!

불곰 : 엉~~~

홀로 원룸에서 사는 지윤의 집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나온다.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과 CCTV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늘 음산하게 느껴졌다.

지윤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는 혼자 있었기 때문에 선명히 잘 들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 벅

 

짧지만 귓가에 들려온 또 하나의 발소리.

일정한 걸음으로 길을 걷는 그녀에게서 나는 소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황급히 돌아섰다.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겠니 싶어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 벅

 

좀 전에 들었던 의문의 소음.

그녀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뒤통수 너머로 들려온 불청객의 발걸음은, 핸드백을 쥔 그녀 왼손을 조금씩 떨게 만들었다.

얼굴을 확인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등을 돌렸다.

이번에도 역시 없었다.

야근으로 인한 피로겠지, 속으로 말한 후 돌아서는 순간!

반대편에서 갑자기 거대한 손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단숨에 입을 틀어막은 후 그녀를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다.

 

4

 

 

 

부재중 전화

 

[내 영웅]

[내 영웅]

[내 영웅]

[내 영웅]

[내 영웅]

[내 영웅]

“자, 오늘 약 6개월 만에 잡은 벚꽃 불법 도박게임 조직단 검거를 기념해서 다 같이 짠 해보자!”

 

“제가 마숑하면 드숑 때리숑이라 외치시면 되는 겁니다!”

 

“용희야, 그냥 건배하고 마시면 안 되냐?”

 

“명성이가 웬일로 바른 말을 하냐? 그래요, 반장님…용희야…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고깃집에서 울려 퍼지는 건배사.

용희가 서 있는 채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마숑!”

 

“드숑, 때리숑!”

 

공 반장, 이재웅, 남명성, 정 순경의 잔이 짠 - 하고 부딪쳤다.

이재웅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동안의 노고가 살살 녹는 기분.

 

회식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반장을 챙기겠다며 정 순경이 그를 데리고 재웅 곁을 떠났다.

남명성은 점점 멀어지는 후배와 반장의 뒷모습을 지켜보곤 말했다.

 

“나도 이제 가볼게, 어우…피곤하다…내일 보자!”

 

“그려…들어가라!”

 

딸꾹.

맥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딸꾹질이 나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1분 간격으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

모두 여자친구에게서 온 연락.

뒤늦게 통화 버튼을 눌러 그녀에게 전화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현재 고객님께서는…….

 

‘내가 너무 안 받아서 삐졌나?’

 

한 번 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의 반복.

현재 고객님께서는…….

 

따르르릉 - !

 

때 마침 걸려온 전화 한 통.

발신자는 여자친구의 남동생 [김재혁].

 

-네, 여보세요? 응?누나가 집에 안 들어왔다고? 아니…오늘은 같이 안 있었는데…분명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랬는데?

알았어…일단 계속 연락해 볼게.

 

업무는 낮에 진작 끝났는데 어째 할 일이 더 는 것 같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또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경찰서요……? 네?!

 

보아선 안 되는 것을 본 것처럼.

들어선 안 되는 것을 들은 것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손에서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울 기력조차 없었다.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 냅다 뛰기 시작하는 그.

 

5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사이렌 불빛이 멀리서 환하게 비쳤다.

그 앞으론 경찰들이 서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 앞을 지키는 경찰서 순경들.

재웅은 자길 가로막는 순경에게 신분증을 보여줬다.

순경이 슬쩍 빠졌다.

 

잔혹하다,는 말론 설명할 수가 없었다.

흰 천에 덮인 시신 한 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어찌나 참혹했는지 고인을 덮은 천에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열어선 안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하는 운명에 놓인 이처럼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천 끝을 살짝 걷히자 머리가 보였다.

피로 젖은 머리카락.

뭉개진 안면.

불어 터진 입술.

떠나간 영혼의 정체는 바로 김지윤이었다.

그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지…지…지…아..아…지…지…아…”

 

호흡이 턱 막혔다.

도무지 이름을 부를 수 없을 만큼.

 

“지…지..지윤…지윤아…지윤아..안 돼…안…돼…아니야…아니야…아니야!”

 

하얀 천에 뒤덮인 그녀를 꼭 껴안았다.

쪼그라든 얼굴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윤아…안 돼! 안 돼…왜…네가…왜…왜…네가!”

 

피해자분께서 죽는 순간까지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더라고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망치로 머리를 가격 당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휴대전화만큼은 사수하셨는데

자수한 가해자 말로는 어떻게든 뺏어보려 했는데 안 됐다고…….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관할 경찰서 문 앞까지 온 재웅은, 부술 듯 문을 열고 들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보이는 낯익은 얼굴.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지하철 성추행범이었다.

그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어? 누구세요…어어!”

 

가해자를 조사하던 경찰이 놀라서 일어섰다.

갑자기 사무실을 들이닥친 이재웅 형사가 성추행범 멱살을 잡곤 주먹을 휘두르는 것 아니겠는가.

한 대, 두 대, 세 대, 때릴 때마다 손등에선 피가 흘렀다.

폭행을 가할 때마다 눈에선 살기가 감돌았다.

급하게 다른 경찰들이 와 그를 가해자로부터 멀리 떨어뜨렸다.

 

“놔, 놔, xx! 놓으라고! 놔아아아아!”

 

찢어진 입술 사이로 비치는 하얀 치아.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죄를 짓자 미안하다며 사과한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다시 멱살을 잡았다.

쉼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왜 죽였어, 왜! 왜! 왜! 왜 그랬어! 왜! 왜!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안면을 뒤로 젖혔던 가해자가 시선을 똑바로 하더니 이내 씩 웃는다.

 

“왜 죽였냐고……? 날 신고했잖아…….”

 

재웅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납작해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

멱살을 놓더니 바닥에 주저앉는다.

 

피해자 앞에서 보인 가해자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요.

피해자 앞에서 보인 가해자의 사과는,

거짓된 사과였으니.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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