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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독한 형사 <1장 3화 - 소개팅>

 

1

 

 

조그만 방에서 홀로 전신 거울을 보고서 머리카락을 손보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나쁜 범죄자들을 잡으러 다니는 형사 이재웅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한 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휴대전화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터치 두 번하면 화면이 켜지는 기능을 사용한 것이었다.

오전 10시 40분.

휴대전화 액정 화면을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있으면 근사한 식당에서 예쁜 여성과 소개팅을 하게 된다.

거기서 만약 잘 이어진다면 연애를 넘어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는 상황.

문득 여자 좀 만나라며 화를 내는 어머니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어머니께서 크게 분노하실 테니 잘 해야겠다.

결심을 굳힌 그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승용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였다.

식당 주변에 있는 주차장에다 차를 세운 후 휴대전화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점심을 함께할 장소는 바로 파스타 가게.

조금씩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 출입문과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화끈거렸다.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렸다.

주방에서 "어서 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적힌 자리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아서 걸어가는 손님을 주방에서 쭉 지켜본

식당 주인은 서둘러 앞치마를 내려놓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조그만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네…이재웅으로 예약했습니다…오후 1시요……."

 

"팻말 치워 드릴게요…메뉴판 천천히 보시고 주문하여 주시면 됩니다!"

 

"예……."

 

그는 의자에 앉았다.

메뉴판을 열어 판매 중인 음식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메인은 파스타이지만 다른 사이드 메뉴도 팔고 있었다.

메뉴판을 쥐고 있지 않은 왼손이 꿈틀거렸다.

검지와 중지를 움직여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머릿속에선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상대가 오면 이렇게 인사하자.

상대한테 말을 이렇게 걸어보자.

상대는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때 마침 들려온 종소리.

문을 열 때 들었던 그 종이 그에게 "그녀가 오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입구에서 여성 한 명이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자신을 볼 수 있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소개받았던 이재웅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김지윤이라고 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계속 서있으면 다리 아플 테니 앉으라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여기 오기 전에 리뷰를 봤는데…이게 맛있다는데 드셔보시겠어요?"

 

메뉴판을 펼친 뒤 손가락으로 음식을 가리켰다.

음식을 골라주는 남자는 처음 만난 걸까? 그녀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실수해서 혼나는 학생처럼.

 

"제가…좀 성급했나요……?"

 

"아니요…먼저 골라주는 분은 처음이라서……."

 

하늘색 드레스 셔츠를 입고선 어두운 색의 슬렉스 바지로 포인트를 준 그녀가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웅과 지윤은 식당 주인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눈치를 살폈다.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이 마치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재웅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그…경찰 일하시면 되게 바쁘실 텐데…오늘 괜찮으신 거예요? 영화에서 보면…연락 오면 뛰쳐나가잖아요……."

 

"아…오늘은 특별히 동료들 시켜서 부탁 좀 했습니다…지윤씨는 디자인 회사 다니신 댔죠…

그럼 그림 잘 그리시겠네요……?"

 

"네…맞아요! 주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어요……!"

 

대화가 서서히 깊어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여기서 저도 그려주실 수 있나요?"

 

"어…마침 그럴까 봐…태블릿하고 펜 가져왔어요…음식 나올 때까지 그럼…그려드릴까요?"

 

"어우…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하하하하!"

 

핸드백에서 태블릿과 펜을 꺼낸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간다.

일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표정 같았다.

그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멋지게 그려주세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유머러스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주문한 파스타 두 개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그 타이밍에 맞춰 끝난 그림 그리기.

그녀가 태블릿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을 나간 도전자처럼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서로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소개팅에서 혹여 실례를 범한 건 아닐까,

내가 민폐를 끼친 건 아닐까, 오만 가지 잡념이 스쳐갔다.

그는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와…완전 저랑 똑같아요…이거 혹시 제 카xxx으로 보내주실 수 있어요? 저 소장하고 싶어요!"

 

"좋아요…저도 그럼 그림 그려줬으니…재밌는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재밌는 얘기요?"

 

"강력반에 있으면서 겪은 경험담이요!"

 

대답을 들은 이재웅,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비죽 내민다.

결코 좋은 얘기는 아닐 텐데 그런 쪽에 흥미를 갖는 그녀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녀는 태블릿과 펜을 다시 핸드백 안으로 넣으면서 말했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거든요…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추리물이라……."

 

"아…애니메이션…무슨 얘길 해드려야 하나…음…언제더라…정말 잡고 싶은 녀석이 있었어요…

와…그 얼마나 잡고 싶었냐면…어…이 파스타가 곱빼기였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그릇에 담긴 파스타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손짓을 보이면서 쭉쭉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와…근데 그 병x xx가…어이구…죄송합니다…험한 일을 하다 보니…경찰서 쪽으로 편지를 보낸 거 있죠?"

 

"편지요? 헐…배짱도 대단하다…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 또라…아니 이 멍청이가 지 지문을 편지에 남기고 만 거예요…그래서 위치 추적해서 확 때려눕혔죠!

여기…여기 왼팔에 난 흉터가…그 자식하고 싸우다 다친 거! 와나…그 미친놈이…

깨진 창문 조각으로 절 찌르려고……!"

 

"아…아…안 무서웠어요?"

 

"하하하…무섭긴요…먹고 살려면 그런 것도 다 감수하면서 살아야죠!"

 

그의 허리가 등받이에 닿았다.

그런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쳤다.

그녀는 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2

 

 

동료들이 순찰을 나간 탓에 부쩍 조용해진 강력반 사무실.

본인 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뭔가를 쳐다보던 공 반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재웅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재웅은 컴퓨터로 웹서핑하다가 옆에서 반장이 다가오자 황급히 화면을 바꾸어 일하는 척하였다.

 

"야…이재웅…여기서 골라봐…내 와이프가 어렵게 어렵게 정한 후보 다섯 명이야……."

 

이재웅과 비슷한 나이 대 여성들의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를 위로 들어 올려 반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공 반장의 양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골라봐!

 

"아…저 소개팅 안 한다니까요…저번에도 웬 이상한 여자 만났다가 저 어떻게 됐는지 기억 안 나요?

안 본다니까…억지로 봤더니만……."

 

"야, 새x야…그건 네가 밥 먹는데 더러운 얘길해서 그런 거고…이새x가 지 잘못한 거는 쏙 빼놓고…

까놓고 말해서…네가 상대를 고르는 게 낫겠냐? 상대가 널 고르는 게 낫겠냐!"

 

"참나…이래 봬도 저…아직 통하거든요?"

 

"내 마음이 다 울화통이다 인마…아 빨리 골라봐!"

 

골라봐! 싫어요! 고르라니까! 싫어요!

말다툼하는 소리가 사무실을 넘어 복도에서까지 들렸다.

그때 마침 열리는 출입문.

모두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렸다.

 

"안녕하세요…대국 일보 서유미 기자입니다!"

 

"어…당신…어제 그…기레기?"

 

"허…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저는 오늘 기레기가 아니라…당당히 기자로서 온 거거든요?"

 

"김동성 사건이면…제가 기자회견했는데…여긴 왜……."

 

곁에서 이를 지켜본 공 반장도 어이없긴 마찬가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두 형사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딱 세 달간…제가 밀착 취재를 하러 왔거든요…강력반 형사들은 어떻게 지내나…그런 거!"

 

"무…무슨…잠시 나와봐요!"

 

덥석 팔을 잡아선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둘을 가까이서 지켜본 공 반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xx 또 사고 친 거 아니야?

 

"그…혹시 보험…사기단입니까?"

 

"보험 사기요? 허…저는 정말 순수하게…기자로서 왔고…말씀드렸다시피 밀착 취재로 왔다고요!"

 

"밀착이고 접착이고…꿍꿍이가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 뭐…어제 그 휴대전화 때문에?"

 

"오우…잊지 않으셨네요? 역시 형사님이라 기억력이 좋으셔!"

 

비꼬는 듯한 말투.

그는 흠흠, 소릴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다지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맞는 것 같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갔다.

 

"저는…분명 말씀드렸어요…개인이 실수한 거로…책임질 일 없다고……."

 

"맘대로 하세요…원치 않아도…세 달간 여기서 취재할 거고…국장님이 서장님한테도 미리 연락드렸으니까요……."

 

"하…미치겠네…아니…서비스 센터 가서 수리하시면 되는걸……."

 

"그 서비스 센터 가서 하면 되는 돈을…받아야겠고…결정적으로 산 지 얼마 안 된 폰이라서요!"

 

"와…한 마디를 안 지네……."

 

뚜벅뚜벅.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메아리처럼 들리던 소음이 점점 작아진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에서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등을 돌리는 그녀.

 

"재웅이…바쁘니?"

 

지윤의 어머니가 도시락통을 들고 온 것 아니겠는가.

그는 눈길을 옮겼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서유미를 그 자리에 내버려둔 뒤 지윤의 어머니를 데리고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서 앞에 있는 정자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그는 고개를 숙였다. 뚜껑을 열어 안에 담긴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잡채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다시 고개를 번쩍 들어 상대를 응시했다.

그녀는 히죽 웃었다.

 

"재웅이…네가 좋아하는 잡채야…바쁘다고 밥 잘 못 챙겨 먹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근데…아까 그분은 새 여자친구야?"

 

"여…여…여…자친구 아닙니다…그…아무튼 있어요…그리고 어머님…이거……."

 

도시락통을 쥔 그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렸다.

가슴 한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겨우겨우 참고 있는 듯한 느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오히려…나는 재웅이…네가 하루빨리 새 출발 했으면 좋겠어…그리고 이건…아들 같아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 줘……."

 

"잘…먹겠…습니다……."

 

"자…여기 일회용 수저……."

 

밥 한 숟갈, 잡채 한 숟갈.

골고루 입안에 밀어 넣어 꼭꼭 씹어 먹는다.

먹는 내내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렀다.

코를 훌쩍거리며 숟가락으로 다시 밥을 퍼 입으로 가져갔다.

빵빵해진 입. 그럴 때마다 터져 나오는 눈물.

그는 고개를 떨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지윤의 어머니도 눈물을 훔친다.

 

밥을 먹다 우는 재웅과 그런 그를 위로하는 지윤 어머니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리.

조금 전, 재웅과 말다툼을 벌이던 서유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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