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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기인(畸人)

지난 주, 동네에서 빵 축제가 열렸다.

 

동네 빵집들이 다같이 모여 조그마한 점포를 열고 빵을 파는 행사였는데,

 

그곳에서 와이프가 터키빵이란걸 사왔고, 그 빵이 참 맛있었드랬다.

 

그래서 어제 병원을 가기 위해 휴가를 낸 김에 해서, 와이프랑 터키빵집에 가서 이것저것 사먹었다.

 

 

터키하니 대학 다닐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 하나가 생각났다.

 

같은 문학 동아리에 있던 그 선배는 나보다 한 학번 위였지만 나와 같이 동아리에 들어왔고, 

 

나는 1학년, 그 선배는 2학년이었지만 우리는 수년을 함께 동아리 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 선배는 터키를 참 사랑했다.

 

터키 이야기를 늘 줄줄 읊었으며, 심지어 가끔 터키 모자 (원기둥 모양의..)도 쓰고 왔다.

 

콧수염도 길렀으며, 신발도 이상한 장화 같은걸 가끔 신고 왔다.

 

말투가 조금 어눌한 편이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사람은 순박한 편이었기에, 이따금 놀리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보통은 잘 어울렸다.

 

 

그 선배는 군대를 갔다와서도 계속 그러고 다녔다. 그게 사실은 참 충격이었는데,

 

그 선배는 불문과였고, 대체로 취업이 어려운 과다보니, 보통은 군대갔다오면 빡세게 공부하기 마련인데,

 

그는 나날이 터키에 심취해갔고, 이따금 대화할 때 감탄사를 터키어로 말하기도 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터키 비중은 점차 높아졌고, 그러던 그는 4학년을 앞두고 돌연히 터키로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온 그는 거기서 더 심해져버렸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에서 터키어의 비중은 또 더 높아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때부터 외모도 좀 터키인 같은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터키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랬던걸까...

 

 

이후 그는 '우리 나라'라는 말로 '터키'를 지칭했고, 그의 동기들 혹은 동아리의 고학년들이 그를 무시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신입생, 혹은 2학년 집행부, 혹은 나같이 하릴 없이 공부 안하고 데모 나가자 꼬시는 사람들과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도 한계가 있는 법... 가을 쯤 되자, 신입생과 집행부도 그를 상대하길 포기했고, 

 

나중엔 동아리 내 30여명의 고정 멤버 중, 나같은 사람 한두명과만 놀았다.

 

 

그러다 나까지 학교를 떠난 뒤, 그는 동아리방에 나오지 않았고, 그의 이후 근황이 좀 궁금했었는데..

 

어느 날, 졸업생 모임에서 그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는 결국 터키 문화 관련 대학원을 갔다는 것이었고, 터키로 건너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예 그곳에서 정착을 해버린 것이다.

 

한 3~4년 간은, 그래도 사람들끼리 모일 때마다 그의 이야기를 하곤 하다가, 자연스레 잊혀졌었는데,

 

또 몇년 뒤, 우연히 카톡 프로필에서 본 그는 터키 신문과 인터뷰 내용을 메인 프로필에 올려뒀었다.

 

물론 내용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신문에도 나오고.. 성공한 것 같았다!

 

하기야 얼마나 신기했을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라온 한국인이 터키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기르고 터키로 유학가 터키어를 쓰고,

 

심지어 터키를 '우리 나라'라고 부르다니!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은 세월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젊은 터키사람처럼 보였을 따름이다.

 

 

 

터키빵을 먹다보니 잊고 있던 그가 생각났다.

 

여전히 그는 카톡 친구로 되어있지만 연락 안한지도 이젠 거의 10년쯤 되었고... 

 

이 글을 쓰며 그의 프사를 보니, 평범한 터키 사람이다. 

 

아마 나같이 그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으로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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