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서 커트 보니것의 '갈라파고스' 읽는 중

우연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한 섬에서 좌초한 덕택에 인류의 절멸을 피한 일단의 인간들이 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를 거듭한 끝에, 쓸데없이 크기만 했던 뇌를 잃고 자연에 순응해 사는 새로운 인류로 진화하게 된다는 이야기.  - YES24 소개글 중

이야기는 100만년 후의 시점에서 인류가 멸망한 1986년을 오가며 진행된다.

인류 문명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무겁거나 불쾌하지 않고 흥미롭다.

다음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일부.



웨이트는 위조한 캐나다 여권에 적힌 '윌러드 플레밍'이라는 이름으로 그 호텔에 투숙했다. 그는 사기를 쳤다 하면 성공하는 고도의 협잡꾼이었다.

오르티스에게야 그가 전혀 위험하지 않았지만, 돈 좀 있어 보이는 혼자인 여자나 남편도 없고 출산도 마친 여자에게는 분명히 위험했을 것이다. 웨이트는 이제까지 그런 여자들을 열일곱 명이나 꾀어 결혼한 뒤, 그 여자들의 보석함과 대여 금고는 물론 통장까지 몽땅 다 털고는 잠적해 버렸다.

그런 짓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치운 덕분에 그는 백만장자가 되어 북미 전역의 은행들에 이자부 예금 계좌를 여러 가명으로 개설했지만 단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었다. 그가 아는 한은 아무도 그를 잡으려고 시도조차하고 있지 않았다. 경찰 측에서는 그가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닌 열일곱 명의 불성실한 남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진짜 이름이 제임스 웨이트인 단독 상습범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모양이라고 그는 추론했다.

사람들이 제임스 웨이트만큼 사기에 대단히 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는 믿기 어렵다. 그렇지만 상기해 보면, 과거 그 당시 성인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 무게가 약 3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뇌를 지니고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런 특대형의 생각 기계로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흉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위에 답할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 바이다.

"3킬로그램짜리 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한때는 거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번째 질문도 제기하는 바이다.

"과거 그 당시, 지나치게 정교한 우리의 신경 회로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어디에서나 보고 들었던 그런 악행들이 비롯된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다른 근원은 없었다. 그 엄청나게 커다란 뇌만 뺀다면, 이곳은 아주 무해한 행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