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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1차 미소공위에 관련한 내용입니다.[발롱도르~]

안녕하세요. 이번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1차 미소공위에 대한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 광복절 작성글 https://www.flayus.com/mystery/41467991

 * 미군정과 친일 경찰글 https://www.flayus.com/48147178

  * 이승만과 김구의 귀국https://www.flayus.com/49419133

 

 정리하는 과정에서 문장이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좌우의 대립은 모스크바 3상 회의 이후 충돌이 현실화되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사항은 한국에 대한 민주주의적 임시정부 수립과 이를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미소공위는 조선의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와 협의하여 임시정부 수립안을 작성하고, 임시정부와 협의 하에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해당 논의에서 가장 핵심은 신탁통치였다.

 

 

소련은 당시 조선 내에서는 좌파들의 권력이 강했기에 한국의 공산화에 자신감이 있었으므로 즉각적인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은 즉각적인 독립이 이루어질 경우 좌파들이 곧바로 권력을 잡을 것을 우려했고 그 대안으로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신탁통치를 진행하며 친미주의자를 생성하고 이를 통해 공산세력을 견제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에서는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이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했다는 오보를 냈다. 이에 대중들은 다시 식민통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고, 우익세력들은 이를 기회삼아 반탁을 자신들의 스탠스로 고정시키며 즉각적인 반탁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임정세력은 가장 강력한 반탁의사를 표명하며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취약했던 자신들의 국내기반을 확충했다.

 

 

 

이후 반탁운동은 임정추대론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반소·반공운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1946년에는 비상국민회의 결성을 통해 우익의 결집을 주장했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미국과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반탁운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지, 찬반탁 논쟁은 우익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frame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반탁운동을 마다할 수 없었다. 미군정은 자신들이 주장한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김구와 이승만의 행보를 보고 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좌익은 처음엔 반탁운동을 진행했으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내용이 알려지자 총체적인 지지를 보냈다. 3상회의의 결정의 핵심내용은 임시정부의 수립과 그에 대한 미·소의 후견이라고 파악했고, 당대 국제정서상 신탁이 완전한 독립의 수단이라 주장하며 반탁운동은 세계정세와 북조선 사정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이후 우파의 비상국민회의 결성에 대항하여 범좌파 결집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을 결성했다. 이로 인해 좌파와 우파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지지여부 특히 비상국민회의와 민전 가입 및 활동여부에 의해 나뉘어졌다. 이후 대립은 고착화되었고 친일파 숙청 등 식민 잔재 청산의 민족적 과제는 사라졌다. 친일파들은 반탁을 애국활동이라 내세우며 민족적 정당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1946320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제1차 미소공위가 개최되었다. 소련에게 있어서 최우선 한반도정책과제는 한반도의 대소공격기지화 방지였는데, <동아일보>의 오보로 인해 반탁운동과 반공운동이 일어나자 참가자 문제에 예민했다. 미국 또한 반탁운동으로 한국에 관한 소련과의 합의물이자 자신들이 주장한 신탁이 위협받자 참가자 문제에 예민했다. 이에 소련 측은 모스크바 결정지지 정당과 사회단체만을 협의대상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반대단체까지의 포함을 주장하며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이후 미군측은 논의 지연책으로 38선 통행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논의는 더욱 지지부진해지다가 결국 5월에 제1차 미소공위는 결렬되었다. 이후 남한 내 국내정치세력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댓글로 여러분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해주세요^ㅡ^

댓글 2

리나군 2020.02.11. 01:30
사실 이 당시까지 보자면 소련측의 말이 훨씬 당위적으로 맞는 말이었죠.
글쓴 분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조금 제가 해석해보자면, 당시의 남한 사회는 좌파들이 대다수 시민사회 단체를 꾸렸던 상황이었고,
저기서 소련이 말하는 것은 그런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이야기하자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자기 편이 너무 없었으므로,
글쓴 분이 말씀하신 반대단체 (관변 단체 + 일부 시민들)까지 포함하자는 거였죠.
위에서 말한대로 소련은 자신이 있었고, 미국은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었는데,
사실 말만 놓고보면, 독립국의 자생적인 대다수 시민사회단체와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니, 소련의 말이 맞았던 것이죠.
댓글
에스덥 작성자 2020.02.11. 01:50
 리나군
확실히 당시 상황은 소련에게 유리했고 미국은 한반도가 소련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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