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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20 : 호겐의 난

1. 원정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 사후 섭정과 관백의 지위가 점점 낮아지게 되면서 섭관정치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섭관정치에 이어서 헤이안의 조정은 '원정정치(院政政治)' 체제로 운영된다.

 

원정은 '원(院)에서 다스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원'은 천황직을 양위한 상황이 거주하는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에서 다스린다'라는 말은 '상황이 다스린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원정은 천황이 황태자에게 천황직을 물려주고 상황이 된 후 천황을 대신해서 상황이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이 원정정치의 포석을 깐 사람은 바로 고산조 천황(後三條天皇; 후삼조천황)이다.

당시 섭관정치의 영향에 따라 천황의 모친은 전부 섭관가 출신의 중궁이었다.

하지만 고산조 천황의 모친은 산조 천황(三条天皇; 삼조천황)의 딸인 데이시 내친왕(禎子内親王)으로 후지와라씨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 섭관가 출신은 아니었다.

즉, 고산조 천황은 170년만에 나타난 섭관가에 외척을 두고있지 않는 천황이었다.

고산조 천황은 이로써 섭정과 관백, 후지와라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한 정책을 시행할 수가 있었다.

 

450px-Emperor_Gosanjō.jpg

▲ 고산조 천황

 

고산조 천황은 장원정리령 등을 통해서 섭관가의 기반을 급격히 약화시킨 후 아들인 시라카와 천황(白河天皇; 백하천황)에게 양위한다.

시라카와 천황의 모친도 후지와라씨이긴 하지만 섭관가 출신이 아닌 후지와라씨 지파인 한원류(閑院流) 출신이었기 때문에, 시라카와 천황 또한 섭관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시라카와 천황은 재위한지 15년도 되지 않아 8살짜리 황태자(타루히토 친왕; 善仁親王)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상황이 된다.

이후 원에 원청(院庁)이라는 정무기관을 세워서 상황이 실권을 쥐고 정무를 볼 수 있도록 하여 원정정치가 시작된다.

 

이후 시라카와 상황은 무사들을 고용하여 '직속 무사'라는 친위대를 만들어 원을 지키게 하였다.

원은 무력적 권력을 확실하게 얻게 되어 상황의 권위는 미친듯이 치솟았고 덩달아서 무사들의 권위도 증대되었다.

이에 힘입어 시라카와 상황은 세 명의 천황 위에서 43년간 군림하며 원정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2. 호겐의 난

 

스토쿠 천황(崇徳天皇; 숭덕천황) 6년, 시라카와 상황이 사망하고 토바 상황(鳥羽上皇; 조우상황)이 원정을 실시하게 된다.

그런데 토바 상황은 스토쿠 천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된 후 천황의 배다른 동생 나리히토 친왕(体仁親王)에게 천황직을 강제 양위한다.

나리히토 친왕이 코노에 천황(近衛天皇; 근위천황)으로 즉위할 때 나이는 불과 2살이었다.. ㄷㄷ

 

그런데 코노에 천황이 17살에 갑자기 죽어버린다.

코노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에게 황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왕위 계승문제를 두고 토바 상황과 스토쿠 상황 간의 대립이 일어난다.

토바 상황은 스토쿠 상황의 동생인 마사히토 친왕(雅仁親王)을 옹립하려 했고, 스토쿠 상황은 자신의 아들인 시게히토 친왕(重仁親王)을 옹립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원청의 실권을 잡고 있던 토바 상황에 의해 마사히토가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 후백하천황)으로 즉위하게 된다.

 

스토쿠 상황은 토바 상황과 고시라카와 천황에게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450px-Emperor_Go-Shirakawa2.jpg

▲ 고시라카와 천황

 

한편 섭관가에도 내분이 생겼다.

후지와라노 타다자네(藤原忠実)의 아들인 후지와라노 타다미치(藤原忠通)와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코노에 천황 때, 당시 섭정은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였다.

그런데 후지와라노 타다자네는 장남 타다미치보다 요리나가를 더 총애했기 때문에 타다미치를 해임하고 요리나가를 섭정에 임명할 것을 토바 상황에게 요청하였다.

하지만 토바 상황은 이들의 화해를 권유하며 타다미치를 관백에 임명하고, 요리나가에는 내람(内覧)이라는 직책을 주었다.

 

그러나 코노에 천황 사후에 요리나가는 내람직에서 해임되었고, 고시라카와 천황은 타다미치를 더 중용하였다.

이에 요리나가는 고시라카와 천황과 대립하는 스토쿠 상황에게 접근한다.

 

1년 뒤 토바 상황이 세상을 떠나자 이를 기회로 고시라카와 천황파와 스토쿠 상황파의 주도권 싸움이 일시에 격화되었다.

천황과 상황은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로부터 서로 자기편 무사를 모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사들도 상황파와 천황파로 분열됐다.

 

  • 천황파 :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
  • 상황파 : 타이라노 타다마사(平忠正), 미나모토노 타메요시(源爲義)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사들도 각자의 가문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서 천황파와 상황파로 나눠졌다.

천황파의 타이라노 키요모리는 상황파의 타이라노 타다마사의 조카였고, 천황파의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는 상황파의 미노모토노 타메요시의 아들이었다.

즉 타이라씨의 입장에서는 숙질간, 미나모토씨 입장에서는 부자간 싸움이 된 것이다.

 

이 싸움의 구도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호겐의난 구도.png

 

정리하자면 고시라카와 천황과 스토쿠 천황,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와 후지와라노 요리나가의 다툼이 무사들간의 대리 전쟁의 형태로 충돌한 것이다.

이를 학계에서는 이때의 연호를 따 '호겐의 난(保元の乱)'이라고 부른다.

 

이윽고 죽은 토바 상황의 초칠일 행사때 상황파 세력이 전부 불참을 하고 만다.

이에 고시라카와 천황은 후지와라노 타다자네와 후지와라노 요리나가가 장원에서 군사를 모으고 있다고 간주하여 이들의 재산을 전부 몰수해버리고, 요리나가의 저택을 점거해버린다.

 

스토쿠 상황은 자신의 세력인 후지와라노 요리나가의 저택이 천황파에 의해 점거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상황은 급하게 짐을 싸서 카모가와(鴨川)강을 건너 시라카와궁(白川宮)으로 토꼈다.

그리고 시라카와궁을 점거하고 본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강 하나(카모가와강)를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이 대치하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Kamogawa_sakura.jpg

▲ 카모가와 강

 

양 측은 각자의 본진에서 작전회의에 돌입한다.

이때 양 측의 미나모토 씨 세력들은 공통적으로 야간습격 작전을 제의한다.

그런데 상황파의 후지와라노 요리나가는 '황좌를 두고 일어나는 전투에 그런 허접한 전투를 할 수 없다'며 이 제안을 거절했고, 반대로 천황파 측은 이 제의를 받아들인다.

 

결국 다음날 새벽 4시경에 천황측의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는 약 1500명의 기마부대를 집결시켜 야습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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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겐의 난을 그린 그림 1

 

시라카와궁 주변에서 갑자기 기합소리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다그닥 다그닥 들려오자 상황파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허겁지겁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하지만 당연히 기습을 당한 탓에 상황파는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미나모토노 타메요시의 아들이자 활 잘 쏘기로 소문난 미나모토노 타메토모(源爲朝)가 미친듯한 활쏘기 실력을 뽑내며 흐름을 점점 뒤집기 시작하였다.

 

800px-Minamoto_Tametomo.jpg

▲ 미나모토노 타메토모

 

서문(西門)을 지키던 미나모토노 타메토모의 사정없는 활쏘기에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감지한 타이라노 키요모리는 급하게 일시적으로 군을 후퇴시킨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도 미나모토노 타메토모를 공격하기 위해 서문을 공략해봤지만 미친듯한 화살쇼에 막혀서 후퇴했다.

 

야간습격에 실패한 천황파 무사들은 다시 한 번 긴급회의에 들어간다.

 

긴급회의 결과 이들은 화공을 통해 시라카와궁을 전소시길 계획을 세웠고, 동이 트기 전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는 화공을 실시한다.

시라카와궁은 불타기 시작했고 때마침 바람도 솔솔 불어서 불길은 삽시간에 번졌다.

불바다가 된 시라카와궁에서 상황파 세력들은 허둥지둥 동문(東門)으로 도망나왔고, 병사들도 전부 도주했다.

그리고 탈출과정에서 후지와라노 요리나가는 머리에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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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겐의 난을 그린 그림 2

 

이렇게 호겐의 난은 천황파의 승리로 끝났고...

 

이틀 뒤 도주한 상황파 세력들이 전부 체포되었다.

이후 스토쿠 천황은 사누키국(讃岐国; 현재의 카가와현)으로 유배되었고, 타이라노 타다마사와 미나모토노 타메요시는 참수 당했다.

후지와라노 타다자네도 체포되었지만,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가 또 꼴에 아버지라고 봐주는 바람에 타다자네는 다행히 사형을 면하고 유배만 되었다.

 

결과적으로 천황과 상황의 싸움이 무사들 간의 전투로 나타나게 되면서 무사의 파워가 전국의 사람들에게 입증되게 되었다.

이로써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 중 천황파에 가담했던 인물들은 공신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이 직접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번외) 토바 상황은 왜 스토쿠 상황을 냉대했을까?

 

토바 vs 스토쿠.png

▲ 토바 상황(좌)과 스토쿠 상황(우)

 

야사이긴 하지만, 토바 상황이 스토쿠 상황을 냉대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함.

 

바로 스토쿠 상황이 토바 상황의 아들이 아니라 토바가 천황이던 당시 원정을 행하던 시라카와 상황의 아들이라는 것.

즉 토바 상황의 중궁이었던 후지와라노 쇼시(藤原璋子)가 토바의 조부인 시라카와 상황과 쿵떡쿵떡 붕가붕가를 해서 임신을 하게 된게 스토쿠 상황이라는 것임.

 

이 설은 고려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는 설과 비슷한 느낌의 야사로 받아들이면 될 듯.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19. 네 명의 딸을 네 명의 천황에게

https://www.flayus.com/32198426

 

댓글 3

best 울산현대FC 2018.11.25. 00:37
이 시리즈는 진짜 ㅊㅊ 안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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