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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18 : 무사의 등장과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발롱도르~]

이번 회차에서는 일본 역사에서의 무사의 등장과 무사 반란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1. 무사의 등장

 

일본은 다이카 개신 이후에 율령 정치를 표방했지만, 전염병의 유행과 귀족 세력의 권력 강화로 인해 제대로 된 율령체제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특히나 천연두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서 흉작이 계속되고 땅이 황폐화 되었기에 세금도 제대로 걷히질 못했다.

심지어 걷히는 세금도 귀족세력들에게 대다수 들어갔기 때문에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조세 확보를 위해 토지를 새로 개간하도록 장려하고 개간한 토지는 3대 때까지 소유권을 인정해주기로 한다. - 원래는 율령에 입각하여 모든 토지는 천황의 소유였음. -

하지만 농민들이 생각보다 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조정은 자충수를 두어 개간한 자는 개간한 토지를 영구히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간전영년사재법, 743)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귀족 세력이 더 커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바로 귀족들이 가난한 농민들을 시켜 자신의 땅을 개간시키게 하거나, 황무지를 개간하게 한 다음 갖가지 명분을 붙여서 뺏어버린 것이다.

귀족들은 이런식으로 땅을 엄청나게 키워나갔고 결국 12세기 정도엔 전국토의 60퍼센트 정도를 귀족들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귀족들의 이러한 대규모의 땅을 장원이라고 한다.

 

image.png.jpg◀ 장원의 모습

 

헤이안 시대에 접어들고, 쿠스코의 난(藥子の乱) 때 훈야노 와타마로(文室綿麻呂)가 에미시 정벌에 성공하면서 동국지방이 새롭게 일본 영토로 편입되게 된다.

 

image.png.jpg

▲ 동국지방 (사진 출처 : http://blogdetermico.blogspot.com/2011/03/terremoto-en-japon.html)


동국지방은 새롭게 편입되었기에 불모지가 많았고, 덕분에 동국의 영주들은 개간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이마저도 압박을 가했고..

이에 영주들은 귀족들에게 세금을 면제 받는 조건으로 뇌물을 바쳐서 땅을 유지하거나, 그럴 능력이 안되면 땅을 뺏기거나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태가 계속 되자 영주들은 하나 둘 씩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기 시작한다..

 

image.png.jpg

 

영주들은 스카우터를 보내 농민들 중 힘 포텐이 높은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특별 훈련을 시켜 무술을 익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사라는 칭호를 붙여주면서 우대를 해주었다.

 

이렇게 키워진 무사들은 오로지 무술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무사들은 영주에게 충성하면서 농민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무사들이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영주들의 병력도 세지자, 영주들은 다른 영주들과 전쟁을 벌여 무력으로 땅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무사들 세력도 통폐합을 거치면서 더욱더 강력하고 체계적인 '무사단'을 형성하게 된다.

 

image.png.jpg

▲ 무사단의 구조

 

이렇게 커져가던 무사단 중 몇몇은 해적 토벌 등의 경력으로 중앙의 고위 관리들의 눈에 들어 귀족들의 보디가드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이때부터 무사들은 '시종', '섬기는 자'라는 뜻의 '사부라히(侍; サブラヒ)' - 이후 점점 어형이 변형되어 16세기 쯤부터 사무라이라고 불리게 됨 - 라고 불리게 되었다.

 

무사단 간의 경쟁과 도태가 계속된 결과 칸무 헤이지(桓武平氏; 타이라씨) 가문과 세이와 겐지(淸和原氏; 미나모토씨)가 가장 막강한 무사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 미나모토씨(原氏; 겐지, 원씨)와 타이라씨(平氏; 헤이지, 평씨)는 황족에서 귀족으로 강등된 자들에게 내려진 성씨였는데, 성씨 앞에 자신의 출생을 나타내기 위해 칸무(桓武), 몬토쿠(文徳), 세이와(淸和), 사가(嵯峨) 등 천황의 이름을 붙였음. 이 강등된 황족들은 지방으로 발령되어 흩어져 무사세력으로 발전함. -

 

 

2.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칸무천황(桓武天皇; 환무천황)의 증손자인 타카모치왕(高望王)은 타이라씨를 하사받고 귀족으로 강등되어 동국지방 중 관동지방에 좌천되었다.

그리고 관동지방에서 농민들의 봉기와 지방호족들의 무장투쟁을 진압하면서,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계의 칸무 헤이지는 무사 가문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타카모치의 아들인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는 시모우사국(下総国)에 근거지를 두었는데 그의 슬하에 타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가 있었다.

 

image.png.jpg

▲ 시모우사국

 

타이라노 마사카도는 출세를 위해 15살 쯤에 일찍이 수도 헤이안쿄(平安京; 평안경)로 들어갔다.

그리고 후지와라노 모토츠네(藤原基経)의 아들로 천황의 섭정을 하면서 권력의 중심이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와 주종관계를 맺고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헤이안쿄에서 자리잡고 출세하기는 엄청 힘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인 요시마사가 사망하면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image.png.jpg

▲ 타이라노 마사카도

 

그런데 마사카도의 아버지의 땅은 그의 큰아버지인 타이라노 쿠니카(平國香)과 작은 아버지인 타이라노 요시카네(平良兼)에게 이미 넘어가 있었다.

거기에 쿠니카가 마사카도가 귀향할 때 시부야(涉谷; 현재의 도쿄도 시부야)에서 습격을 행했고, 쿠니카의 장인이었던 미나모토노 마모루의 아들들도 마사카도를 습격한다.

 

타이라노 마사카도는 이에 격분하여 세력을 모아 쿠니카와 미나모토노 마모루(源護)의 근거지와 인근 마을까지 불을 지른채 무력으로 싹다 쓸어버렸고, 이때 미나모토노 마모루의 아들들과 쿠니카는 사망하고 만다.

 

이에 미나모토노 마모루가 타이라노 마사카도를 조정에 고발하여 마사카도는 다시 중앙으로 소송되었으나 특별사면 되어 풀려난다.

 

image.png.jpg

 

마사카도가 다시 관동으로 돌아오자, 이번엔 요시카네가 다시 마사카도를 습격한다.

이때 마사카도가 개 털리고 도망쳐버렸고, 그의 처자식을 요시카네가 납치해간다. - 근데 마사카도의 처는 요시카네의 딸이었다... ㄷㄷ -

 

하지만 요시카네의 아들들이 마사카도의 처자식들을 도와서 탈출 시켜서 마사카도에게 돌려보냈고,

마사카도는 처자식과 함께 한때 주인이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일련의 상황을 다 호소한다.

 

근데 이게 먹혀서 조정에서 마사카도에게 타이라노 요시카네와 미나모토노 마모루 집안을 치라는 명을 보내왔다. ㄷㄷ 

이에 마사카도는 본거지를 이시이(石井; 현재의 이바라키현 반도시) 옮기고 요시카네를 격파하기 시작한다.

결국 요시카네의 세력은 토벌되어 급속도로 약해졌고 요시카네는 실의에 빠져 병사하고 만다.

 

이때부터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권위는 천하가 다 알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마사카도를 임관시켜 장군으로 써먹을 방법도 논의하게 된다.
 

그 무렵 히타치국(常陸国)의 호족 후지와라노 하루아키(藤原玄明)가 관아의 창고를 부순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졌다.

후지와라노 하루아키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마사카도는 이를 수락한다.

 

image.png.jpg

▲ 히타치국

 

히타치국 관아에선 당연히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후지와라노 하루아키를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오히려 하루아키가 이미 도망갔으니 체포령을 거두라고 요구하였고, 히타치국은 마사카도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하지만 히타치 관아의 병사들은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쨉도 안됐고... - 히타치에서 3천명을 파병했는데 1천명밖에 안되는 마사카도 군에게 전멸당했다고 함.. -

마사카도는 아예 히타치 관아를 점령해버린다 ㄷㄷ...

이는 국가 소속 군사를 토벌하고 국가 기관을 장악한 것이기에 빼도박도 못한 반역이었다.

 

그런데 마사카도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시모츠케국(下野国), 코우즈케국(上野国) 등 주변 8개 국을 싹 함락하고 결국 관동 전역을 점령해버린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거 스스로를 '신황(新皇)'이라고 칭하며 독자적으로 관직을 임명하고 이와이(岩井; 현재의 이바라키현 반도시)에 새로운 성을 짓는다.

즉, 관동지방은 아예 마사카도의 새로운 나라가 돼버린 것...

 

한편 같은 시기 헤이안쿄에서 서쪽에 있는 지역에서는 후지와라노 스미토모(藤原純友)가 해적(왜구)들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켜버린다.

 

220px-Fujiwara_no_Sumitomo.jpg ◀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조정 입장에서는 수도를 두고 동서로 난을 일으키니 미칠 지경..

더군다나 후지와라노 스미토모는 헤이안쿄의 코 앞까지 진군해 왔기 때문에 조정에겐 엄청난 위협이었다.

 

조정에선 후지와라노 타다후미(藤原忠文)를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훗날 쇼군)으로 임명하여 파병하였고,

마사카도를 잡는 자에게는 누구든 상관없이 귀족의 직위를 주겠다고 발표한다.

 

이에, 앞서 마사카도에게 죽은 타이라노 쿠니카의 아들이었던 타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와 시모츠케국의 호족이었던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郷)가 마사카도에 맞서 4천명의 군사를 들고 일어난다.

 

당시 마사카도의 군사는 1천명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다모리·히데사토 군이 수적으로는 우세하였다.

그래서 마사카도군은 초반에 밀렸고, 마사카도는 자신에게 유리한 그의 본거지로 유인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그 길목에 매복하면서 병사를 모집했다.

 

그러나 사다모리와 히데사토는 마사카도의 본거지인 이시이로 돌아 들어가 전역을 다 불질러버린다.

결국 마사카도의 군사는 400명밖에 안 남고 싹 사라져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군사도 모이지 않아서 결국 군사 400명으로 3천 5백명 가량의 사다모리·히데사토 군과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마사카도가 얼마나 쎈지 사다모리·히데사토 군의 병사들은 개쳐발리고 결국 3천명이 도망가버렸고, 병력이 300명 밖에 남지 않는다 ㄷㄷ

 

마사카도는 자신의 무력에 자아도취하면서 기세를 몰아 직접 반격을 개시했다.

이대로만 가면 마사카도가 이기는 상황..

 

그런데...

 

BoonArrow.png

피슝....

 

갑자기 누가 쏜지 모르는 화살이 그대로 마사카도의 이마에 꽂혀서... 죽고만다..

결국 이 난은 허무하게 끝나고, 마사카도의 목은 잘려서 헤이안쿄로 보내졌다가 관동으로 다시 돌아가 묻혀졌다.

 

Taira_no_masakado_kubiduka01.jpg

▲ 도쿄 오테마치(東京 大手町)에 있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머리무덤

 

이후 타이라노 마사카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타이라노 사다모리와 후지와라노 히데사토는 관직을 얻게 되었고,

서쪽에서 일어나는 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난도 타치바나노 토야스(橘遠保)가 이끌던 관군에 진압되면서 모든 혼란은 마무리 되었다.

 

이 난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활약했던 무사들은 전부 관직을 하사 받았고, 이때부터 그들의 자손들만 정통 무가집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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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섭관정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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