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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일본사 이야기 13 : 후지와라씨와 타치바나씨의 권력싸움 1[발롱도르~]

후지와라 사형제를 비롯한 조정에서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천연두로 사망하자 정치적 공백기가 생긴다...

 

이 정치적 공백기를 틈타 모반혐의로 변을 당한 나가야 왕(長屋王)의 아우인 스즈카 왕(鈴鹿王)과 강력한 귀족이던 타치바나(橘) 가문에게로 조정의 권력이 넘어갔다.

그리고 타치바나 가문에서도 황족 출신의 타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가 좌대신에 앉아 실권을 잡게 되었다.

 

20090430005810.jpg

▲ 타치바나노 모로에

 

 

후지와라노 히로츠구의 난

 

한편 후지와라의 4형제가 모두 죽고, 그들과 대립했던 나가야 왕 쪽 인물들이 조정의 실세가 되면서 후지와라 가문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들의 자손들이 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들은 빠르게 다시 권력을 어느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당시 조정에서는 타치바나노 모로에와 당나라 유학생 겐보(玄昉), 키비노 마키비(吉備真備)를 중심으로 후지와라 씨 등이 참관하는 식으로 국정이 운영됐다.

 

그러나 740년 후지와라노 우마카이(藤原宇合)의 아들이자 후지와라 식가(藤原宇合 式家)의 일원이던 후지와라노 히로츠구(藤原広嗣)가 큐슈의 다자이후(太宰府)에 차관으로 발령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원래 조정에서 일하던 히로츠구는 갑자기 열도 저 끝의 큐슈로 발령받자 자신이 정치싸움에서 밀려 좌천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분노하게 된다.

 

이후 그는 조정에 탄원서와 겐보와 키비노 마키비의 처분을 요구하는 표문을 보내고 난을 일으키게 된다. (후지와라노 히로츠구의 난)

 

740.jpg

▲ 《전현고실(前賢故実)》에 기록된 후지와라노 히로츠구의 모습

 

히로츠구가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천황이었던 쇼무 천황(聖武天皇; 성무천황)은 바로 군사를 풀어 그를 막게 했다.

그리고 '히로쓰구를 죽이는 자에게는 5위 이상의 관직을 내리겠다'는 내용의 칙령을 큐슈 방방곳곳에 내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칙사를 보내어 투항을 권하라 하기도 하였다.

 

칙사였던 사에키노 츠네히토(佐伯常人)는 히로츠구를 여러번 불러 회유하려 하였다.

히로츠구는 츠네히토에게 자신은 역모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겐보와 키비노 마키비의 처벌을 청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츠네히토가 그러면 대체 거병은 왜 한것인지 반문하자 히로츠구는 말문이 막혀 그냥 말을 타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이때 문답을 옆에서 듣고 있던 히로츠구 측 사람들이 히로츠구의 태도를 보고 관군에 투항해버렸다고....

 

이후에도 수많은 히로츠구군이 관군에 잇다라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투항을 하면서 히로츠구가 준비했던 전략을 관군에 다 유출시켰고, 결국 히로츠구는 교전 끝에 패전하고 만다.

 

藤原広嗣の乱.png

▲ 히로츠구 군과 관군의 교전 위치

 

히로츠구는 히젠(肥前; 현재의 나가사키현)에서 배를 타고 신라로 튀기 시작했다.

근데 열심히 제주도 근처까지 튀었는데 갑자기 역풍이 불어서 고대로 히젠으로 컴백했다고 한다...

- 바람 땜에 배를 돌린게 아니라.. 계속 한반도로 나아가려 했는데 바람에 워낙쎄서 그대로 밀려서 출발한 곳으로 우연히 가게됐다고 함... ㅋㅋ -

 

일본으로 컴백 후 숨어다니던 히로츠구는 결국 며칠만에 발각되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처형되면서 후지와라 식가는 몰락하고 만다.

 

이렇게 몇 년 사이에 나가야 왕이 변을 당하고, 천연두가 창궐해서 전국이 피해를 보고, 반란도 일어나고 하니..

쇼무 천황은 수도인 헤이죠쿄(平城京; 평성경)의 터가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 헤이죠쿄를 떠나고 만다.

 

쇼무천황은 타치바나노 모로에의 추천을 받아 현재의 쿄토인 쿠니쿄(恭仁京; 공인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kuusatu.JPG

▲ 쿠니쿄의 옛 터

 

이후 쇼무 천황은 불교에 완전 빠져버리는데...

아마도 부처의 힘을 빌려서 이 힘든 시국을 이겨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국분사(國分寺)'와 '국분니사(國分尼寺)'라는 사찰을 세워 지방의 불교 의례와 불교 행정의 거점으로 삼도록 하였다.

- 국분사에는 남자 승려 20명을 두고 국분니사에는 여자승려 10인을 두었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교를 전파하고자 하였던 것 같음. -

 

몇년 뒤 쇼무 천황은 우연히 나니와(難波京; 현재의 오사카)에서 비로자나불을 보게 됐는데, 거기에 감탄하여 대불을 조성할 계획을 세운다.

이후 쇼무 천황이 나니와로 다시 천도하는데, 아마 대불 조성 건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우미(近江; 지금의 시가현)에 '동대사(東大寺)'라는 큰 절을 지어 국분사와 국분리사를 총 관리할 계획도 세웠는데,

이 때문에 수도를 또 오우미의 시가라키궁(信楽宮)으로 옮긴다... - 대체 천도를 몇 번을 하는 것인지.. -

 

그러나 얼마 안가 다시 헤이죠쿄로 재 천도 했고... - 5년 사이에 천도만 4번... -

동대사와 대불 조성 계획은 결국 헤이죠쿄에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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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사 대불전 - 이 안에 동대사 대불이 들어있다 -

 

------------------------

 

후지와라씨와 타치바나씨의 권력싸움 파트는 두 편으로 나눠서 작성하겠습니당

 

 

 

이전 회차 모아 보기

http://www.flayus.com/mystery

 

12. 나라시대의 시작과 후지와라 사형제

https://www.flayus.com/29417710

 

 

댓글 6

best 소레나 2018.08.28. 13:37
귤씨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02
일단 일본은 천황제기 때문에 천황의 아들은 친왕, 손자는 왕이라고 칭해요.

근데 일본 황실은 성씨가 따로 없습니다. 오직 이름만 있어용. 대신에 태어난 궁궐을 어칭호로서 성씨처럼 쓰긴 하는데, 태어난 곳이 각자 달라서 이마저도 다 다릅니다 ㅋㅋ

현대로 예를 들면, 현재 레이와 천황의 이름이 나루히토인데, 왕자 시절엔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으로 불렸고, 레이와 천황의 동생은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라고 불려요. 근데 편의상 나루히토 친왕, 후미히토 친왕 이렇게 이름만 가지고 부르는 경우가 많죠 ㅋㅋ

그래서 친왕, 왕 앞에 붙는건 묘호나 시호가 아닌 이름이 온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나가야 왕이랑 스즈카 왕도 성씨가 따로 없고 묘호도 시호도 아니며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생각하시면 될거 같아요.

근데.. 이것도 확실친 않은게.. 고대에 이름이 아닌 다른 칭호(존호)를 사용해서 황족을 높여서 부른 경우도 있긴 해서... 나가야왕이랑 스즈카왕은 그게 이름인지 존호인지에 대한 기록은 따로 없긴해요. 그런데 그런 기록이 없으면 높은 확률로 존호가 아닌 이름일겁니다 ㅋㅋ

나가야왕 같은 경우는 생전에 살았던 저택에서 '나가야 친왕 궁포대지십편'이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됐는데, 이건 살아생전에도 '나가야'라고 불렸다는 것이니 묘호랑 시호는 절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고... 또 더불어서 원래 친왕이 아닌 왕인데도 친왕이라 불렸을 만큼 대접을 받았다는 증거도 돼서 권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퇴근하면서 모바일로 급하게 적은거라 횡설수설 한 거 같은데 이해 되셨으면 좋겠네여
송하영 2021.01.04. 10:55
성과 이름이 나가야 왕, 스즈키 왕인건가요? 아니면 태조왕, 소수림왕 같은 묘호(?), 시호(?)인가요?
성과 이름이라기엔 형제가 성이 다른거 보면 묘호? 시호? 같아보이기도 하고
댓글
best 안유진 작성자 2021.01.04. 21:02
 송하영
일단 일본은 천황제기 때문에 천황의 아들은 친왕, 손자는 왕이라고 칭해요.

근데 일본 황실은 성씨가 따로 없습니다. 오직 이름만 있어용. 대신에 태어난 궁궐을 어칭호로서 성씨처럼 쓰긴 하는데, 태어난 곳이 각자 달라서 이마저도 다 다릅니다 ㅋㅋ

현대로 예를 들면, 현재 레이와 천황의 이름이 나루히토인데, 왕자 시절엔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으로 불렸고, 레이와 천황의 동생은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라고 불려요. 근데 편의상 나루히토 친왕, 후미히토 친왕 이렇게 이름만 가지고 부르는 경우가 많죠 ㅋㅋ

그래서 친왕, 왕 앞에 붙는건 묘호나 시호가 아닌 이름이 온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나가야 왕이랑 스즈카 왕도 성씨가 따로 없고 묘호도 시호도 아니며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생각하시면 될거 같아요.

근데.. 이것도 확실친 않은게.. 고대에 이름이 아닌 다른 칭호(존호)를 사용해서 황족을 높여서 부른 경우도 있긴 해서... 나가야왕이랑 스즈카왕은 그게 이름인지 존호인지에 대한 기록은 따로 없긴해요. 그런데 그런 기록이 없으면 높은 확률로 존호가 아닌 이름일겁니다 ㅋㅋ

나가야왕 같은 경우는 생전에 살았던 저택에서 '나가야 친왕 궁포대지십편'이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됐는데, 이건 살아생전에도 '나가야'라고 불렸다는 것이니 묘호랑 시호는 절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고... 또 더불어서 원래 친왕이 아닌 왕인데도 친왕이라 불렸을 만큼 대접을 받았다는 증거도 돼서 권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퇴근하면서 모바일로 급하게 적은거라 횡설수설 한 거 같은데 이해 되셨으면 좋겠네여
댓글
송하영 2021.01.04. 21:06
 안유진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주셔서 쉽게 이해했어요
댓글
척사광 2022.05.06. 01:34
 송하영
오 이거 궁금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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