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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한프놈의 15일간 일본여행 - 번외편 <위험한 사람>

  • 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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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내가 머물렀던 곳은 니시나리구의 '동물원앞역' 근처에 위치한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24일부터 28일까지, 총 4박5일을 머물렀는데도 숙소값이 10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1박에 2만5천원 꼴이라는 이야기다. 

 

'통천각'과 '아베노하루카스'에 걸어서 갈 수 있고, '도톤보리'도 지하철로 금방 갈 수 있는데 이렇게 싸다고?

 

그러나 이 숙소를 잡을 당시의 나는 '싼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단지 '숙소 시설이 별로겠지'라며 간단하게 일축시켰다.

 

누군가 말했지, 문제는 뒤로 미룰수록 더 크게 돌아온다고.

 

숙소가 너무 싸다는 의문을 뒤로한 나는 24일에 숙소가 위치한 '동물원앞역'에서 하차했다. 지하철역의 플랫폼이 너무 좁았고, 색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LED등이 보편적으로 보급된 이 시대에 드물게 노란색 '백열등'을 쓰는 걸까? '슬럼'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틀린 사실은 딱 한 가지, 입구와 '같다'가 아니라 진짜 입구라는 점...?

 

아무튼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정리했다. 1박 2만5천원짜리 방 답게 좁디 좁은 방이었다. 2만5천원을 천원짜리 지폐로 바꿔 방에 깔면 방의 70%는 덮을 수 있을 정도? 

 

사건은 다음날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낮에 '통천각'을 구경한 뒤, 저녁을 먹었지만 배가 빠르게 고파져서 야식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에서 '동물원앞1번가'라는 간판이 붙은 상가(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제 저녁을 해결한 통천각에도 상점은 많았지만, 어쨌든 '관광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요리'였기에 제딴엔 현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메뉴를 찾기 위해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에 빙의했다지만(군대에서 고독한 미식가 많이 봤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걸 알 도리가 없던 나는 '배가, 고프다!'를 속으로 외치며 상가로 들어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거리에 있는 건 가라오케 기계를 들인 주점이 대부분이었고, 가게 안의 손님들 역시 어딘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취해서 그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멀쩡한 가게를 찾다 눈 앞에 보이는 산타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가게에서 준비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왜, 메이드카페같은 거 있잖아. 이쯤되면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맞지만, 인정하는 순간 몰려올 공포에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자가 내게 다가와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말을 건넨 후에야 강제로 현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오빠~ 이리와~"

 

아, 여긴 오면 안되는 곳이구나. 그보다 누님 저보다 나이 많아보이는데요. 저 아직 대학생인데. 그보다 내가 한국인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순간 소름이 돋아 재빠르게 팔을 뿌리치고 그대로 U턴해 빠져나왔다. 상가에 들어선지 채 50M도 안 된 일이었다. 상가에서 빠져나오니 눈에 들어오는 노숙자들. 그곳의 노숙자들은 어딘가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큰일 날 것 같아 모자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90°가까이 꺾어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 알갱이의 패턴을 분석하며 무사히 숙소까지 도망쳤다. 숙소의 밝은 불빛과 주인장의 친절한 미소가 마치 '세이프티 존' 같았다.

 

이건 오사카에서 떠나기 전 안 사실인데, 내 숙소 바로 남쪽이 일본에서도 유명한 슬럼가인 '아이린 지구'라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당당하게 그곳으로 발을 들인 거지.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다.

 

근데, 단지 운이 좋아서 무사했던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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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쁘게 돌아다니던 도중, '도월교'의 사진을 찍던 나는 단지 일본에서 자주 나오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끼니를 떼워보고싶어 도월교에서 걸어서 30분정도 거리인 '가스토'라는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밥을 먹고 나서 '도월교'를 한 번 더 보고싶어서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이동하고 있었다.

 

당시 시간은 저녁 7시 반 정도. 한국에서야 아직 저녁 때였겠지만, 교토에서는 아니었나보다. 가게들이 일찍이 문을 닫았고, 유동인구는 없었다. 나는 좁은 왕복2차선 거리에 드문드문 깔린 얕은 불빛에 의지해 도월교로 향하고 있었다. 주변이 관광지니까 안전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어둑어둑한 거리는 조금, 아니. 많이 무서웠다. 원래 쫄보기질이 심하다. 호러영화? 꿈도 못 꾸는 그런 성격이란 말이다. '누구 하나 없어져도 모를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저 멀리 날리려 신나는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여 억지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러던 도중, 앞에서 어떤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 순간 차가 아닌 사람이 보인 것이 반가웠지만, 그 분에게는 불청객이었을까? 그 분은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휴대폰을 꺼내고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바쁜가?' 라고 생각하던 도중, 옆에 문이 닫힌 가게의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정체 모를 빨간 옷(유니폼이다) 위에 검은 패딩, 대충 입은 검은 추리닝, 그리고 편의점에서 산 마스크와 검은 모자로 철저하게 얼굴을 가린, 아무튼 새까만 사람...

 

...내가 여기서 제일 위험한 놈이구나?

 

공격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걷는 속도를 줄였다. 여기서 내가 무섭다고 빠르게 걸으면 저 분은 더 무서워할 거니까. 다시 홀로 거리를 걸어 도월교에 도착해 잠깐 도월교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쁜 사람 아니예요. 믿기지 않겠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사실 별 생각 없기도 한다.

 

그냥, 내가 그간 멀쩡히 다닌 이유가 이거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물론 앞으로 조심해야하긴 하지만.

 

P의 무계획 여행이 이렇게 힘들다.

.

.

.

첫번째 사진은 그 거리의 사진, 두번째 사진은 그 당시 듣고 있던 노래고, 세번째 사진은 오늘 입었던 옷이다. 안다. 안 어울리는 거. '단짠단짠'이 음식에서 제일 어울리는 '달고 짠' 조합이라면, 이 조합은 떫고 단... 가히 '의도를 모르겠는 조합'이라 할 수 있겠다.

 

아, 도월교는 기대 잔뜩 하고 갔는데 별 거 없었다. 저 마지막 4번째 사진이 도월교다. 근데 왜 두 번 봤냐고? 완전 새까만 밤에 보면 좀 다를줄 알았지.

댓글 5

Hamsy 2023.12.31. 01:09
개무섭네 ㄷㄷㄷㄷㄷ
댓글
ForMen 2023.12.31. 01:13
일본 중심가는 모르겠는데 오사카는 7시 반인가 되면 술집도 문 닫는다고 함 근데 동서 거리를 생각하면 해 지는 시간이 30분 정도는 늦을 거 같은 거 같은데 모르겠네 아 오사카가 아니라 삿포로
댓글
모모의꿈 2023.12.31. 23:09
와...산타걸한테 플러팅 당하는 알파남 ㄷㄷㄷ

사실 한국에서도 조용한 주택가나 도심 외곽에 밤에 걸으면 무서움.
댓글
아람코 2024.01.01. 00:28
포켓몬고 한창 인기였을때 아무 생각없이 저녁에 신세카이 갔다가
포켓몬 잡는다고 동물원 앞쪽 갔다 마주친 노숙자들의 눈빛들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함
댓글
YOASOBI 2024.01.03. 21:58
아이린 지구는 엄두도 못내겠던데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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