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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괴담/공포 "엄마, 울지 마."

엄마, 울지 마."

 

처음 시작은 딸이 3살이 되던 해에 그린 그림이었다, 엄마 아빠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림 속의 나는 슬픈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아이 앞에서 운 적이 있던가?'

 

그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나는 뫼비우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앓고 있던 이 병은 눈을 깜빡이거나, 턱 근육을 움직이거나,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희귀병의 일종이다.

 

병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안면 근육 마비로 어릴 적 꽤나 고생했다고 들었다, 

 

장기적인 치료와 부모님의 사랑 덕에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이 병은 내 표정을 앗아갔다.

 

거울을 보며 울고 웃어보려고 해도 아무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곤 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주변에서 심한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지금에 와선 바보 같은 고민이었겠지만 우연한 계기에 희귀병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자 단체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다, 

 

더 없이 행복한 나날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부부 사이엔 큰 고민이 생겼다.

 

유전적 질병으로 인한 희귀병은 자녀에게도 옮겨갈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를 낳는 것을 오랜 기간 망설였다, 확률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둘 중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50% 가까이 된다고 얘기했었다,

 

수 년을 고민하고 걱정하고, 혹여 나처럼 되지 않을까 한참을 망설이다 내가 어릴 적, 나를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불가능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전이 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행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와 남편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주며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딸아이가 태어났고 하늘이 주신 선물인지 딸에게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신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딸이 태어난 모습을 봐도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고, 딸이 첫 걸음마를 떼고, 처음 엄마라고 부르며 말을 했을 때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가슴 깊이 박힌 대못과도 같은, 평생의 죄책감이었다.

 

같이 찍은 가족 사진에도 항상 무표정한 나였지만 혹시 그런 모습에 딸이 상처 받지 않을까 그만큼 더욱 신경 써서 사랑으로 보살폈고 딸은 그런 나의 노력을 아는 건지 착하고 예쁜 아이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나는 옛날 생각에 잠겨 멍하니 있었다, 옆에선 내가 자주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 딸아이가 어깨 톡톡 두드렸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는 운 적이 없는데 왜 이런 그림을 그렸냐고 물으니 딸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엄마, 지금도 울고 있어, 울지 마."

 

그 이후로도 딸아이는 나에게 종종 울지 말라고 얘기했다, 처음엔 혹시 하는 마음으로 걱정했지만 아이에겐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주위에 말해봐도 아이들은 순수해서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어 넘겼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고선 딸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감수성이 풍부하고 배려심 많은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딸이 5살이 되던 해,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의 광팬인 딸을 위해 돌아오는 생일에 디즈니랜드에 가자고 얘기했다.

 

아이는 너무 좋아서 침대 위에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 인형을 가지고 와 방방 뛰며 나에게 안기며 말했다.

 

"엄마, 미키마우스가 슬퍼보여. 인형도 울고 있는 걸까?"

 

나는 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그건 웃음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행복하면 웃음이 나온다고.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엄마, 미키마우스는 울고 있어. 엄마처럼."

 

그녀를 보곤 사랑하지만 표정을 통해 그 감정을 표현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딸과의 소중한 시간, 소중한 순간들을 제대로 보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딸아이는 나에게 울지 말라며 위로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딸의 생일이 다가왔고,

 

놀이 공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그 날, 오전은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는 시간 쯤에는 그친다고 예정되어 있었지만 빗줄기는 왠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딸은 비가 오는 건 신경 쓰이지 않는지 놀이 공원에 간다는 생각에 잔뜩 신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잠깐 그 모습을 눈에 담았을 때,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딸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화물을 실은 차량이 반대 차선에서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왔다,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큰 부딪힘과 함께 정신을 잃었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땐 하늘이 기적적으로 나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그 아이는 다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왜 하필 그 날은 비가 왔을까, 왜 하필 그 날 사고가 난 걸까, 왜 하필 딸을 데려가야 했을까.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자책했다, 내가 죽인 거나 다름 없다. 

 

남편은 손 쓸 방법이 없는 안타까운 사고라고 위로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매일 멍하니 누워 지내는 게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고, 밤이 되면 딸과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이 고장 난 비디오 마냥 반복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잠도 자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흐느껴 울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소리를 내며 무표정으로 엉엉 울 뿐 이었고 그건 날 거의 죽이다시피 했다.

 

그렇게 며칠 몇달을 앓고 나서야 엄마로서 항상 이렇게 쓰러져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슴이 찢어지고 온 몸에 무게 추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발 끝,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어서 주저 앉았다, 집안 어디든 빠지지 않고 있는 딸 아이의 흔적이 내 심장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온 몸을 비틀었지만 못다한 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딸의 방은 마치 어제라도 다녀간 것처럼 온기가 가득했고 나는 그 방에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너무 힘들어 남편에게 대신 부탁했다, 나는 딸아이의 물건을 마지막 상태 그대로 최대한 치우지 말고 그대로 간직해 달라고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딸의 방에 들어가 간단한 청소 외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크레파스와 책상 위 물건들은 예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열려있는 방문 너머로 그 모습들을 보면 언제라도 그림을 그리며 웃고 있고, 일기를 쓰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투영되서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부모라는 것은 자식을 위해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그 존재가 없어지더라도 굳건히 견뎌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끼니를 챙겨 먹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게 무슨 맛인지, 뭘 먹고 있는 건지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돌아올지 모르는 딸의 영혼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슬퍼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규칙적인 운동도 같이 동반하며 나는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고, 어느덧 딸과 약속한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태껏 편히 들어가 보지 못한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 일기장을 펼쳐봤다, 맛있는 걸 먹은 일, 떼를 쓰다 혼난 일, 즐거운 생일 파티 등 다양한 일이 적혀 있었다. 그 일기를 읽자마자 불가능한 건 알지만 온 힘을 다해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려고 애썼다.

 

바깥에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마치 누군가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일기는 마지막 페이지가 되었고 놀이 공원에 가기로 약속한 1년 전,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과 같은 날짜에 일기가 적혀있었다.

 

놀이 공원에 가게 되어 설렌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줄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엄마는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슬픈 일이 있는지 아주 많이 울고 있었다. 엄마, 울지 마.]

 

미안, 엄마는 너무 슬퍼도 울 수 없어. 정말 미안해.

 

이젠 세상에 없는 내 아이와 대체 어떻게 놀이 공원에 갈 수 있을까, 온기가 가득한 방 안에서 책상에 놓여있는 딸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조심스레 들어 옮겼다.

 

액자의 유리 속에 비친 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 되어 있었다, 내가 만약 슬픔에 져버려서 나를 놔버렸다면 그 기억들은 나를 계속 괴롭혔을 테고 그랬다면 딸에게 못난 꼴을 보였을 거다.

 

새로 산 딸아이의 옷도 가방 속에 넣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놀이 공원에 도착했지만 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에 조금 의아해 했다, 놀이기구들은 여러가지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인기척은 없는 듯 했다.

 

그때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인형이 나에게 다가와 어딘가로 가자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나는 이 이상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포근한 기분도 들었다,

 

이끌린 곳엔 인형의 집이 있었다,

 

그 안엔 딸이 좋아하는 온갖 캐릭터들이 가득했고 나는 거기서 주저 앉아 가방 속 액자와 새 옷을 꺼내들고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익숙한 감각에 뒤를 돌아보자 노란 병아리같은 새 옷을 입은 딸아이가 인형을 들고 서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게 현실이 아님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아니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꽉 껴안고 나를 떠나가지 말라고, 엄마랑 같이 가자고.

 

나는 딸을 꼭 껴안았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했다. 

 

이젠 그만 놔줘야겠지, 나는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눈을 마주 보고는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엄마, 울지 마.."

 

딸아이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처음 눈을 떴을 땐 머리가 너무 지끈 거리고 어지러웠다.

 

여긴 놀이 공원이 아니다, 집도 아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내 눈에 비친 시야에는 여러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황급히 들어와 내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기적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1년 전, 차 사고가 있던 그 날. 

 

기적적으로 남편과 딸은 무사했지만 나는 충격으로 인한 혼수 상태에 빠졌고, 

 

검사 결과, 깨어날 가능성은 의학적으로 0.01%도 되지 않았다고, 아니 사실 상 불가능해서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환자의 무의식 속 강력한 의지로 인해 간혹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놀란 간호사들과 의사 사이로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남편과 딸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터지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소리만 내는 슬픔이 아닌,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딸은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빠! 엄마가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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