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숙제가 밀리면 곤란하다: 2024 시즌 수원 코리아컵 춘천전 후기[발롱도르~]

평점: ★★☆☆☆ = 2.0/5.0

얻은 것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연장전에 돌입하기 전에 어떻게든 승리를 챙겼다는 것, 김현과 서동한이 수원 데뷔골을 기록했다는 것, 복귀한 카즈키와 이제 두 경기째인 툰가라가 도움을 기록했다는 것, 중원에서 유제호가 자신이 좋은 옵션임을 입증했다는 것, 이건희가 주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사실상 측면 공략까지 담당하며 분투했다는 것. 얻은 것이 얼핏 보면 많은 듯하지만 나머지는 높이 평가할 것이 별로 없다. 하프타임에 들어갈 때 빅버드 N석에서 나왔던 누군가의 한 마디를 소개한다. "이렇게 할 거면 3부로 강등돼!" 경기력만 보면 그런 말이 나와도 할 말은 없었다.

K리그2 팀들이 거둔 기대 이하의 코리아컵 성적

잠시 눈을 여기저기 돌려보자. K리그2 팀들은 코리아컵 2라운드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성남(v. 포천)과 천안(v. 양산어곡)이 거둔 승리 정도를 제외하면 3점 이상 차이의 대승은 없었고, 대부분은 쉽지 않은 경기에 휘말렸다. K리그2 주요 팀들의 이번 주말 코리아컵 결과를 살펴보자. 수원은 춘천시민축구단에게, 부천은 부산교통공사에게 각각 2:1로 신승했다. 그밖에 경남이 파주시민축구단에게, 안양이 시흥에게, 안산이 경주한수원에게 각각 1:0으로 신승했다. 서울이랜드는 대전코레일과, 부산은 울산시민축구단과 각각 승부차기까지 치른 끝에 신승했다. 충남아산은 진주시민축구단에게 1:0으로 패배했다.

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K리그2 팀들의 전력 혹은 전술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 둘째, 하부리그 팀들의 맞춤형 경기 운영이 훌륭했다. 셋째, 단기 결전에서 약자가 연출하곤 하는 이변이었다. 어떤 해석을 추구할지야 각자의 선택일 것이다. 셋째 해석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가까운 과거를 보면 작년 FA컵에서 파주시민축구단이 전북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접전을 벌였으니 말이다. 수원의 입장에서 보면 연장전으로 끌려가거나 아예 패배할 수 있었을 경기를 어떻게든 정규시간 안의 승리로 끝냈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는 정도의 위안은 얻을 수 있다. 여태까지 수원이 자주 보여준 패전 패턴의 반복인 줄 알았던 터라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결과만 잘 나왔다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원은 지금 엄청난 숙제를 여러 개 안고 있다.

선빵축구는 아닌가 보다

시즌 개막 이전 인터뷰에서 염기훈이 언급한 "선빵축구"는 그만 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즌 개막 이후 지금까지 선보인 4경기(리그 3경기, 컵 1경기)에서 점유율은 높지만 공격 전개가 답답하거나 상대 수비에 막히는 경우가 많아서 "선빵"을 할 틈조차 많지 않았다. 4경기 동안의 6득점 중 대부분은 느린 템포의 치밀한 패싱 게임을 통한 상대 수비의 붕괴에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6득점 중 4득점이 후반전에 나왔다. 염기훈이 "왜 전반전을 버리냐는 팬들의 원성이 많았다"며 "선빵축구"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막상 결과물은 여전히 "후빵축구"에 가까운 상황이다.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 경기가 답답하게 전개되어도 일단 넘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역시 모르는 일이다.

중원의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한 나름의 고뇌는 있었던 것 같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에서 1명으로 줄이고, 본인 혹은 패스의 전진이 가능한 김보경과 유제호를 배치한 점에서 그렇다. 문제는 바로 그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최성근이 예전의 호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결국 후반전 카즈키와 툰가라의 투입으로 중원의 공격성이 올라갔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최후방과 벌어지는 틈을 메워주지 못하는 문제였다. 이 부분을 유제호의 위치 후퇴로 해결하려 한 듯한데, 아무래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유제호가 최상의 활약을 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엔트리 구성에 대한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염기훈이 초보 감독 치고 빌드업에 기반을 둔 트렌디한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어차피 수원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전술을 선택했다면 그만큼 중원부터 풀어나오는 전술을 섬세하게 짤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 부분에서 염기훈이 흔히 10번으로 불리는 플레이메이커형 선수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예상은 지금까지 치른 경기, 특히 오늘 경기를 보면 적중하지 않을까 싶다. 몇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 수비를 붕괴시킨 킬패스는 카즈키와 툰가라의 발에서 나왔다. 김보경은 패스를 준 뒤에 바로 비어있는 전방 공간을 찾아 파고 드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는데, 패스 이후 그를 바라본 팀의 유기적 공격 전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중원 전술을 짠다면 메인 플레이메이커가 봉쇄당할 때, 혹은 부상이나 징계로 출장하지 못할 때 더욱 격렬하게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 경기만 본다면 왜 전진우와 이상민이 윙 선발로 나오는지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김주찬과 손석용의 투지와 헌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둘의 경기력이 최상은 아니었기에 짚어볼 뿐이다. 김주찬은 최근 타이트한 마크를 뚫거나 공간을 창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투급의 파울로 결말이 난 경기 이후의 걸음걸이를 보며 부상 의심이 들었던 것이 그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손석용은 활동량의 장점을 발휘했지만 공격 과정에서 더 확실하게 결과를 낼 필요가 있다. 잦은 턴오버와 무의미한 킥이 반복된다면 제1옵션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질적 수비 불안

최근 수원의 실점 장면은 아주 단순한 패턴에서 나온다. 측면에서 광활한 공간이 열리고, 슈팅 혹은 크로스에 적절한 각도가 생기고, 그 다음은 실점이다. 선수 하나가 모자라지 않을 때도 측면을 거의 열어주고 중앙에 밀집해서 수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려면, 박스 안의 상대 공격수에게 볼이 발 밑으로 들어오든 머리 위로 들어오든 막아낼 수 있는 수비가 필요하다. 춘천시민축구단 이대광의 동점골은 하프스페이스에서 오른발로 감아찰 각도가 열린 것이 결정타였는데, 이것도 시퀀스를 길게 보면 측면에서 공격이 들어오도록 열어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광이 2023 시즌 수원FC의 U-22 선수였고 현재 임대로 춘천에서 뛰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이외에도 양형모의 선방, 백동규와 조윤성의 허슬이 필요한 위기가 많았는데, 그 대부분은 측면에서 넘어오는 공격을 방치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측면 수비수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 벌어진 결과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슈팅 혹은 크로스가 나올 충분한 공간과 각도를 열어주는 수비 전술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축구 팬들이 "본프레레식 축구"를 기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3점을 허용하고 4점을 획득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럴 수는 있어도 매 경기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늘 수원의 수비는 헐거웠다. 춘천시민축구단이 잘 준비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보여준 측면 돌파와 크로스는 오히려 수원에서 배워야 할 수준이었다. 아무튼 수비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원하는 대로 승점을 챙겨오기는 어렵다. 무작정 달려들고 태클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슈팅 혹은 크로스가 나오지 못하게 공간과 각도를 좁히는 방식의 수비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상대에게 하프스페이스의 슈팅이나 크로스 이후의 슈팅을 쉽게 허용한다면 "본프레레식 축구"를 실제로 구현해야만 답이 생긴다.

경합에서 세컨드 볼을 따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불안이 커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가뜩이나 후방에 최소의 인원만 남겨놓고 패싱 게임을 하기 위해 대부분이 하프라인 밖으로 넘어가있는 상황에서 한 번 세컨드 볼을 놓치거나 턴오버를 당하면 그대로 후방까지 뚫리는 경우가 많았다. 선수들의 투지는 올라있는 것 같은데, 그와 별개로 판단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절실하지 않나 싶은 모습이었다.

쎄오타임에 쎄오 주니어가 득점을 하다니

쎄오타임, 수원 팬을 넘어 K리그 팬이 흔히 아는 표현이다. 나도 쓰고 있지만 대체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스럽다. 딱히 서정원 시절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서정원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동점을 허용했을 때 몰려온 익숙한 기시감, 잠시의 허탈함을 뒤로 하고 경기와 응원은 계속되었다. 쎄오타임을 극복하는 것은 수원에게 오랜 숙제이고 숙원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어쩌면 전술과 경기력보다 정신력의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대로 연장전을 가나, 이게 최선인가 싶었던 순간에 자신의 생일 다음날을 자축하듯 결승골을 넣은 것은 바로 쎄오의 아들, 서동한이었다. 역시 스텝업이 절실했던 서동한에게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후반 막판의 공격과 수비 어느 쪽에서든 집중하는 습관을 다시 한 번 모두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R4 부산전 혹은 다음 코리아컵 안산전 전망

경기력을 보면 우승 후보라는 말이 무색한 수원과 부산의 대결이 7일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의 악재는 어쨌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한 차례 치렀다는 것이다. 다만 두 팀이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과 최근 보여주는 경기력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우승에 대한 기대 혹은 압박이 큰 상황에서 두 팀의 감독 모두에게 중요한 계기가 될 경기임은 분명하다.

한편 수원은 코리아컵 3라운드에서 안산을 만날 예정이다. 안산과 한 달 사이에 두 차례 만나게 되는 셈이다. 이미 수원의 팀과 서포터즈를 한 차례 경험한 안산이고, 임관식의 맞춤형 전술이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원에게 지난 경기보다 더 힘든 경기가 될 가능성은 있다. 변수가 있다면 경기를 치르면서 점차 올라올 중앙/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적응력, 혹은 염기훈의 또 다른 선택이다. 지난 안산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2명, 이종성과 김상준을 선발로 내면서 전진성이 약한 모습이었다. 그 문제를 당시에 극복한 방법은 후반전의 선수 교체와 롱볼 병행이었다.

"선빵축구"도,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축구"도, 아니 그 어떤 축구를 하더라도, 결국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소용없다. 연승이 나오지 않는다면 염기훈을 향한 의심은 아마 걷히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