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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Under Pressure: 철저히 수원 팬의 관점에서 쓴 38라운드 수원-강원전 프리뷰[발롱도르~]

Can't we give ourselves one more chance?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 Queen, <Under Pressure>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흔히 멸망전으로 부르는 바로 그 38라운드. 공교롭게도 10위부터 12위까지 모두 38라운드의 결과에 따라 다이렉트 강등이 가능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같은 날, 수원의 빅버드와 캐슬파크에서 세 팀의 운명이 결정된다. 캐슬파크에서 수원FC에게 벌어질 일은 운명에 맡겨둔 채, 자신의 손으로 조금이라도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는 수원과 강원 두 팀에게 있다.

 

아무래도 나는 수원 팬이다 보니 수원 경기를 더 익숙하게 본 편이다. 강원 경기를 살펴본다 해도 수원 경기만큼 자주 그리고 꼼꼼히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양쪽의 상황을 최대한 아우르며 경기에 앞서 분석 내용을 풀어보려 한다. 확실히 틀이 잡힌 최근 스플릿 라운드에서 나타난 모습을 중심으로 수원과 강원을 살펴보자.

 

스플릿 라운드 성적 요약

 

수원
- 4경기 2승 1무 1패(승점 7) * 36-37라운드 2연승
- 4경기 6득점 6실점(경기당 평균 1.5득점 1.5실점)
- 경기당 평균 패스 273회, 슈팅 10.8회, 유효슈팅 4.5회

 

강원
- 4경기 2승 1무 1패(승점 7) * 36-37라운드 2연승
- 4경기 5득점 3실점(경기당 평균 1.3득점 0.8실점)
- 경기당 평균 패스 392회, 슈팅 9.8회, 유효슈팅 4.3회

 

예고된 카운터펀치

 

수원과 강원의 전술적 지향은 스플릿 라운드에 와서야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수원은 위태롭게 출발한 염기훈 감독대행 체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정착시키고 있다. 그 모습은 경기의 양상과 수량 지표를 두루 살펴본다면 대구식 역습축구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대구식 역습축구라 함은 진형은 다를지언정 2021년 이병근 체제보다도 2023년 최원권 체제에서 보인 그것과 흡사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참고자료] 수원은 4-4-2에 기반을 두고 두 줄 수비와 어떻게든 슈팅으로 마무리하려 노력하는 공격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 김주찬이 공격의 마무리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소식은 득점이 가능한 자원이 한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강원은 윤정환 감독이 마침내 현재 보유한 전력에 최적화된 전술을 구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은 4-2-3-1이다. 35라운드 동안 경기당 평균 89분을 소화하던 한국영의 부상 이후 알리바예프와 서민우로 3선을 꾸리고 있다. 2선에서 양 측면을 맡은 김대원과 유인수는 수시로 좌우 위치를 바꾸며 하프스페이스 공략이나 측면 공간 창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석연치 않게 재교체를 자주 경험하고 있지만 웰링턴도 2선에서 득점이 부족할 뿐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최전방은 이정협과 가브리엘이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

 

진형과 세부전술에 차이는 있지만 스플릿 라운드에서 보인 두 팀의 전술은 특히 공격의 용병술에서 닮은 꼴을 찾아볼 수 있다. 전반전에 상대 수비진에게 어느 정도 과부하를 강제하는 활동량과 연계 능력을 갖춘 최전방 공격수를 투입한다(수원 안병준, 강원 이정협). 후반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장점으로 골문을 위협할 수 있는 최전방 공격수(수원 뮬리치, 강원 가브리엘)이나 윙(수원 김주찬, 강원 갈레고)을 투입하여 체력이 소모된 상대 수비진을 공략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전술적 우위를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수원의 최근 공격은 라인을 전진시켰을 때 뒷공간을 자주 허용하는 강원의 수비를 허물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강원은 대전, 수원FC, 서울이 수원에게 실점한 패턴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강원은 힘, 속도, 체격에서 골고루 장점을 지닌 이정협과 가브리엘을 최전방에 시간을 나누어 쓸 수 있게 되었고, 김대원의 공격력이 최근 살아나면서 역시 상대 수비를 노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수원은 라스 같은 유형의 스트라이커에게 매우 취약했는데, 그 라스의 느낌을 적당히 나누어 갖고 있는 이정협과 가브리엘을 어떻게 막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최근 전력과 전술을 보았을 때 양 팀에게 관건은 그들의 약점이 상대의 효과적 공략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판단된다. 수원은 현재 카즈키와 이종성의 이탈로 중앙 미드필더의 구성 자체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한 팀들을 상대로도 45% 내외의 점유율을 유지했던 강원은 아마 수원을 강하게 압박하며 주도하는 축구를 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 유불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수원이 보여주는 역습축구의 핵심은 모든 수량 지표를 내던지더라도 라인을 내리고 버티다 결정적 일격을 가하여 결과적으로 상대를 위축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무리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수원은 전술적 대안이 없다. 윤정환 감독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강원도 당장 잘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수원과 강원의 38라운드 경기는 4백 역습축구와 강력한 2-3선이 주도하는 축구 간의 대결이 될 것이다.

 

마이너스와 플러스

 

수원에게는 현재 몇 가지 마이너스가 될 만한 요소들이 있다. 첫째, 앞서 언급한 중앙 미드필더의 구성이다. 현재 살아남은 붙박이 중앙 미드필더는 고승범 하나뿐, 염기훈 체제에서 중용되던 이종성과 카즈키는 일단 38라운드에 나올 수 없다. 그나마 부상으로 이탈했던 김보경이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다행이지만, 염기훈 체제의 여러 경기에서 보인 바를 떠올리면 가용 시간은 45-60분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보경이 투입된 경기에서 수비와 경기 전반의 조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종성이 보여주던 유비쿼터스 대인수비, 카즈키가 보여주던 킬패스와 과감한 전진 중 어느 한쪽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역시 희망의 영역이다.

 

사람이 자꾸 없어져서 헐거워진 수원의 중원은 수비가 더 시급하다. 이들이 4백을 보호하지 못하면 수원이 의도한 역습축구의 구현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받는 것이 한석종인데, 수원 팬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바는 그가 안과 질환으로 오래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해 리그에서 한석종은 5경기만을 소화했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18라운드였다. 경기력에 의문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일단 한석종은 37라운드 슈퍼매치에서 교체선수 명단에 들어가며 출전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다리 수술을 받았던 최성근이 부상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큰 고민을 덜 수 있겠지만 투입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제호는 최근 교체선수 명단에도 잘 보이지 않는데, 특별히 부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마 중요한 경기들에 투입하기 어려운 다른 문제가 있다고 추측된다.

 

둘째, 상대보다 극단적으로 적은 패스와 낮은 패스 성공률이다. 아래 세 그래프를 반드시 참고하기 바란다. 스플릿 라운드의 경기당 평균 패스 수에서 이미 수원은 강원에게 120회 이상 밀린다. 이것은 역습축구를 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매번 만난 상대에 비해 50%에 못 미치는 패스 수를 기록하는 것도 역습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짜임새 있는 빌드업, 변수를 만드는 킬패스나 돌파에 능한 팀을 상대한다면 패스로 풀어가는 경기 운영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토록 적은 패스의 성공률이 낮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우선 위험 지역에서 상대 공격수에게 패스가 잘린다면 중대한 찬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역습을 위해 전진하던 선수들이 어느 정도 볼을 소유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패스가 끊겨 갑자기 후퇴하여 다시 수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은 수비수에게 과부하를 유발한다. 강원은 지난 4경기에서 최소 77%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한 반면에 수원은 패스 성공률이 70%를 밑돌고 있다. 위기를 자초하지 않으려면 성공하는 패스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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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수원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수원에게도 희망은 있다. 23-24라운드 2연승에 이어 시즌 2호 2연승이라는 점은 역시 똑같이 시즌 2호 2연승을 기록한 강원과 동일한 상황이다. 또한 전력상 명백한 열세에 처했던 두 경기에서 승리를 쟁취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36라운드 수원더비는 카즈키의 퇴장이 있었는데도, 37라운드 슈퍼매치는 전력의 우위를 지닌 서울을 상대했는데도 승리했다. 스플릿 라운드, 강등권 생존투쟁의 단계에 이르면 상성과 징크스는 아무런 의미 없이 제로베이스로 돌아가서 의지의 싸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시즌 내내 의심받았던 그 의지라는 부분에서 수원 선수단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지난 몇 경기에서 증명하고 경험했다. 전력의 격차, 전술적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의지가 승부를 가르기 마련이다. 수원 선수단의 현재 의지는 크게 의심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염기훈 감독대행은 선수단 전반의 의지를 끌어올린 점에서 성과를 인정받을 만하다.

 

또한 김주찬만 막는다고 수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여러 경기에서 확인되고 있다. 김주찬이 승부를 결정하는 조커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안병준, 아코스티, 바사니가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슈퍼매치에서 바사니의 득점은 그 한 사람뿐 아니라 공격수 전반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득점을 기록한 지 오래라고 하지만 뮬리치의 움직임과 킥은 결과만 내지 못했을 뿐 훌륭한 과정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더하여 김병수 체제에서 윙백으로 투입되며 능력을 확장하던 이상민이 부상의 터널을 지나 37라운드 슈퍼매치에서 복귀를 신고하며 윙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투입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공수 양면에서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래 계산할 것이 많아지면 부담스러운 법이다. 강원의 공격수들이 무서운 것만큼이나 수원의 공격수들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앙과 좌우까지 세 방향을 모두 막아야 하는 부담을 상대 수비수에게 강제할 수 있는 공격력은 수원의 힘이다.

 

마침내 측면 수비가 안정화된 것도 수원에게 큰 힘이다. 김태환이 좌우를 번갈아가며 맡고 박대원이 좌측을, 손호준이 우측을 맡음으로써 수원의 측면 수비는 단기간에 안정을 찾았다. 이전보다 아코스티와 바사니의 수비 가담이 좋아지고 있는 점도 측면 수비에 보탬이 되고 있다. 김태환의 대인수비야 이미 김병수 체제에서 검증된 상태였고, 박대원의 풀백 기용도 우려한 것보다 긍정적 결과를 갖고 오는 점은 매우 다행인데, 지금 놀라운 것은 손호준의 성장이다. 앞선 경기들에서 속된 말로 얼타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던 손호준은 확실한 대인수비에 더하여 과감한 전진과 크로스로 우측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시즌 중반부터 수원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우측면이 빠르게 안정을 찾으면서 수원은 또 하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뜻밖의 변수가 있다면

 

날씨가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잼버리 파동을 겪지 않은 빅버드의 잔디는 상암의 것보다 현재 양호한 상태일 것으로 판단된다. 상암에서 펼쳐진 37라운드 슈퍼매치에서 수원과 서울은 모두 바디 밸런스와 볼 터치의 실수, 적극적 측면 공격의 제한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빅버드에서 펼쳐질 38라운드 수원-강원전은 37라운드 슈퍼매치와 사뭇 다른 환경에서 진행될 것이다. 결국 측면에서도 더 저돌적이고 기동력을 살린 공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두 팀 모두 운명이 걸린 경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거칠게 진행될 수 있다. 카드 수집을 불사한 파울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위험한 부분은 스트라이커-중앙 미드필더-센터백으로 이어지는 중앙 코어 라인일 것이다. 중요한 경기에서 카드 수집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헌신적 플레이를 보여온 두 팀 중앙 미드필더는 이 경기에서 카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 그리고 심각한 경우 그 카드의 색이 무엇이 되는지에 따라 승부의 추가 기우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힘, 속도, 체격을 두루 겸비한 강원의 스트라이커를 상대해야 하는 수원 수비수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체력 부담에 카드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최근 몇 경기에서 카드 때문에 살 떨리는 위기감을 느꼈던 수원은 선수가 카드를 받더라도 적정선에서 그치게 하는 것이 원하는 결과를 들고 오기 위하여 중요한 과업이다.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골이 잘 터지지 않던 공격수의 예기치 않은 활약이다. 당연한 위협으로 예상되는 공격수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36라운드 안병준의 골, 37라운드 바사니의 골은 모두 밀착수비가 없거나 약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둘은 찬스를 많이 날렸기에 비난을 오래 피하지 못한 공격수들이었다. 그러한 종류의 공격수는 강원에도 있다. 결국 두 팀의 공격수 중 의외의 활약을 할 수 있는 후보라면 나는 수원의 웨릭 포포와 강원의 웰링턴을 꼽고 싶다. 일단 웰링턴부터 말하자면, 37라운드 수원FC전에서 동료의 오프사이드로 골 취소 판정을 받은 바 있고 그밖의 슈팅도 골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뿐 위협적인 것이 많았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강원의 최전방과 2선 양 측면을 주시하는 사이 웰링턴이 페널티 박스를 직접 위협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보였다.

 

그렇다면 포포가 웰링턴에 대응할 만한 후보라고 할 수 있는가? 글쓴이는 축알못인가? 그런 평을 감수하면서 쓴 것이다. 사실 웰링턴은 전형적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그런데 포포는 도대체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일단 한동안 제 몫을 하지 못한 점은 차치하고, 37라운드에서 좋았던 모습만 두고 논의를 해보자. 수원이 포포를 영입한 이유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37라운드에서 많은 팬의 호평을 받았던 모습은 골로 결정을 짓는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수비수의 신경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고 시간을 끌면서 동료의 전진과 위치 선정을 돕는 쪽에 가까웠다. 어쩌면 포포는 본인이 직접 득점을 하지 않더라도 득점을 돕거나 그 기점이 되는 방식으로 활약할지도 모른다. 움직임이 주는 위협만으로도 어쨌든 상대 수비수 한두 명을 묶어둘 수 있다면 다른 동료의 기회 창출과 득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글을 마무리하며

 

정말 솔직하게 말하겠다. 김병수 감독 경질, 염기훈 감독대행 선임 당시 수원이 자신의 운명을 38라운드에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38라운드까지 가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가능성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서포터석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나면 온몸의 힘을 다해 광기 어린 프렌테 트리콜로의 응원에 함께했다. 놀랍게도 수원은 숱한 기회를 날린 끝에 몇 번 남지 않은, 어쩌면 이미 놓쳤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던 기회를 살려 여기까지 왔다. 물론 10-12위에게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9개의 시나리오 중 5개의 시나리오는 수원의 다이렉트 강등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여기까지 올지도 몰랐는데 미리 장밋빛 그림을 그릴 필요도, 핏빛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수원 팬들의 사랑과 낭만에 그 일부인 내가 놀랐다는 것을 또한 고백한다. 당장 나 자신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서포터석에 자리를 잡는지 몰랐다. 그렇게 숱하게 분노와 좌절을 안겨준 구단의 경기를 보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가.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위하여 이 서포터석에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있는가. 더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위하여 일반석에 자리를 잡거나 중계방송이 나오는 곳을 찾는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수들과 웃음과 눈물을 함께하고 싶은 것보다, 어쩌면 누가 보기에 못난 것들이나 다름없이 사랑과 낭만을 찾아 서포터석에 자리한 이 사람들과 함께 저 선수들의 헌신과 승리와 낭만을 이끌어내는 순간과 과정이 더 좋아서 계속 경기장에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그렇게 말과 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38라운드 수원-강원전을 현장에서 혹은 방송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K리그를 아는 자들 대다수의 시선이 빅버드를 향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더더욱 모른다. 누가 웃고 누가 울지 모른다. 2023년의 남은 경기가 사라질지, 아니면 두 경기가 더 생길지, 그것도 모른다. 하지만 빅버드에 자리한 모두는 각자 원하는 결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 단언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짧게 덧붙이는 글

 

37라운드 수원FC전에서 강원의 이정협 선수가 골을 넣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우는 것을 보았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빙부상을 당했는데 가족들이 권유하기도 했고 고인의 뜻도 그러하리라 여겨 중요한 경기에 나왔다고 말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 흘리고 몸을 떨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하던 그의 모습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한 명의 K리그 팬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해올린다.

 

강원 서포터즈 나르샤는 38라운드를 4일 앞두고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 입장문의 내용을 굳이 인용하거나 요약하지 않겠다. 직접 전문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즌 내내 그랬지만 특히 며칠 사이 마음이 힘겨웠던 수원 팬으로서 특별한 온기를 느낄 만큼 좋은 글이었다. 나르샤 앞에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며, 앞으로도 행복한 축구 팬 생활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댓글 6

나사로 2023.11.29. 14:52
수원이 수원삼성 말하는거죠? 내년에 경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ㅜㅜ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1.29. 15:25
 나사로
저는 연맹 쪽 표기대로 수원과 수원FC로 구별하는 편입니다.

경기는 계속되겠지만 그게 어디일지는 두고 봐야지요...
댓글
나사로 2023.11.30. 12:29
 고독한아길이
수원삼성이 2부가고 수원FC가 1부 남으면 헷갈리지 않겠네요. 반대되거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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