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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박동혁 약전 1부 : 신의와 실력으로 아산을 지킨 무궁화 시절[발롱도르~]

https://blog.naver.com/goldstar83_17/223272104634

이 글은 제 블로그에 같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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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충남아산FC(이하 충남아산) 팬들에겐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팀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감독이자 구단 역사에 큰 지분을 가진 박동혁 감독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박동혁 감독은 충남아산의 창단 전부터 군경팀 아산 무궁화의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고, 감독 첫 해부터 맞은 해체 위기에선 강한 의지를 갖고 팀을 우승시키고 적극적으로 창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아산 축구의 단절을 막아냈다. 시민구단 전환 이후엔 K리그2 최하위권의 예산을 쓰는 구단으로 올해만 뺀 매년 순위가 두 계단씩 오르고 개인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저력 있는 팀을 꾸렸다. 박동혁 감독의 경쟁력이 곧 충남아산 구단의 경쟁력이라는 평가도 줄을 이었다. 그런 대체불가한, 절대적인 존재였던 박동혁 감독이 아산 축구와 쌓은 7년을 되돌아본다.

 

2017년 : 울산을 떠나 맡은 창단팀의 수석코치

  박동혁 감독은 당초 울산 현대(이하 울산)의 색이 강한 축구인이었다. 선수로서는 전성기와 말년을 보낸 후 은퇴식을 치른 구단이 울산이었고, 스카우트와 코치직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한 곳도 울산이었다. 축구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팀에서 중량감 있는 활약을 펼쳤던 선수가 코치로 부임하면 잘 풀려서 오래 일하고 감독까지 맡길 바란다. 박동혁 감독도 그럴 수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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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2017년 상황이 변했다. 스카우트와 코치를 1년씩 맡으며 구단에서 육성하는 지도자의 길을 착실히 밟았던 박동혁 감독은 그해 울산을 떠나 아산 무궁화의 수석코치가 됐다. 당시 울산은 감독을 교체했고, 자연스럽게 코칭스태프 인선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동혁 감독 또한 해당 시기 감독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데다 2군 코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전 시즌 1군 코치를 맡던 입장에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박동혁 감독에게 수석 코치 제안이 들어왔다. 안산을 떠나 새 터를 잡은, 공식적으로는 신규 창단팀인 아산 무궁화의 제안이었다. 게다가 안산 무궁화를 K리그 챌린지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흥실 감독 이하 안산 시절의 코칭스태프들이 팀을 떠났기에 아산 무궁화는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전체를 새로 조각해야 했다. 대략적인 위치나 목표를 알 수 없는 신규 팀인데다 감독도, 동료 코칭스태프도 낯설어서 신중론을 펼칠 수도 있던 상황. 박동혁 감독은 지도자로서 올라설 수 있는 자질을 내비쳤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은 여럿이지만 '욕심'도 그 중 하나다. 욕심이 없으면 능력을 펼칠 자리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걸 갖고 있던 박동혁 감독은 아산 무궁화의 제안을 받고 코치 커리어 2년차에 프로팀 수석코치를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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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혁 감독은 2017년 부천 FC 1995를 이끌다가 아산 무궁화의 창단 감독이 된 송선호 감독을 보좌했다. 팀은 그해 3위를 기록했고 부산 아이파크와의 K리그2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시즌을 마감했다. 송선호 감독이 시즌 중 두 번의 퇴장을 받으며 박동혁 당시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은 경기도 있었고, 1무 1패를 기록했다. 코치진의 한 사람답게 주목받을 모습을 보인 건 아니지만 처음 맡은 군경팀 코치직에도 불구하고 팀의 특성을 빠르게 이해했고 소통 능력이 뛰어나 팀의 안정화 및 단합에 힘을 쏟았다는 구단의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계약 연장을 고사한 송선호 감독의 판단과 겹쳐 당시만 해도 마흔이 되지 않았던 박동혁 감독을 프로팀 감독 자리로 이끌었다.

 

2018년 : 감독 첫 해, 해체 논란을 이겨내고 이룬 우승과 구단 유지

  뜻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가고파했던 지도자로서의 야망은 성실하게 수석코치 직분을 수행해 얻은 인망을 만나 박동혁 감독을 이례적으로 빠른 나이에 아산 무궁화의 감독 자리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박동혁 감독 본인의 바람이나 계산보다도 빨랐을지 모른다. 부임 시점의 박동혁 감독은 K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연소 감독이었다. 더구나 아산 무궁화는 2부리그에 위치한 군경팀이라는 특성 덕에 젊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실험을 한 팀치곤 스쿼드와 시즌 전망이 무척 좋았다. 전 해부터 호흡을 맞췄던 기존 전력만 해도 한의권을 필두로 박형순(전역 후 박배종으로 개명), 이창용, 민상기, 이으뜸, 박세직, 김현 등 1부리그에서도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선수들이 포지션마다 골고루 있는 팀이었다. 여기에 그해 새로 의무경찰 입대한 선수들은 국가대표급이란 소리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월드컵 대표팀 최종명단에 '아산'이란 글자를 집어넣은 주세종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되며 해를 채우기도 전에 전역한 황인범이 신병이었고, 그런 대표팀에서도 활약하는 선수들이 이명주, 김도혁과 같은 경쟁력 있는 다른 미드필더의 존재로 인해 주전 자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1부리그에서도 정상급 측면 자원인 안현범과 승격 경험이 있는 김동진이 풀백으로 뛰었고 1,2부를 오가며 꾸준한 활약을 보인 임창균, 이한샘, 김봉래(이듬해 김지운으로 개명)도 이때 입대했다. 2018년 아산 무궁화의 스쿼드는 초보 감독이라면, 아니 경력이 좀 됐어도 스텝업이 필요했던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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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혁 감독은 이 좋은 스쿼드로 기존의 방법에 기대는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지도자 생활을 하며 세운 철학과 지난해 수석코치로 본 팀의 특성을 조합해 자신만의 틀을 짰다. 2017년 아산 무궁화의 포메이션은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할 K리그2 플레이오프를 기준으로 442였다. 박동혁 감독의 이후 인터뷰를 토대로 보면 송선호 감독 시기의 442는 역습에 주력하는 스타일이었다. 상대의 공을 탈취하거나 후방에서 공을 전개하는 등 공격 전환 상황에서 김민균, 서용덕, 조성준 같은 발빠른 측면 미드필더를 이용해 전개속도를 높이고 전방에 가서는 424 형태로 전환해 카운터 상황에서 최대한의 위협을 주는 모습이었다. 스쿼드의 질이 좋아졌기에 같은 방식을 써도 더 위협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박동혁 감독은 '좋은 미드필더가 많아졌다'는 2018년 스쿼드의 특성을 파악한 것인지 중원 숫자를 늘렸다. 4231로 전환한 것이다. 여기에 '2' 역할을 맡는 더블볼란테(주세종, 김도혁, 김선민 등이 돌아가며 맡았다)가 수비진에서의 후방 패스 전개 시 번갈아 내려오는 옵션을 취하면서 전개의 안정을 꾀하고 상대의 압박 목표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3'의 가운데 자리인 공격형 미드필더는(이명주와 황인범 등 당시 아산 무궁화의 '황금중원' 중에서도 공격성이 뛰어난 선수를 기용했다) 공격 시 계속해서 톱의 자리까지 올라가 톱과 윙을 막는 데 주력하는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이는 수비 균열을 유도함과 동시에 세컨볼 경쟁에서의 수적 우위를 가져왔다. 그러한 바뀐 팀을 이해하고 전술을 도입하는 박동혁 감독의 결정은 아산 무궁화의 승승장구로 이어졌다. 성남 FC, 부산 아이파크 등 원래 있었던 1부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있는 팀들을 적잖은 승점차로 따돌리며 1위를 마크한 것이다. 여기에 그해 같이 개최됐던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군경팀 치곤 이례적으로 대표팀 선수를 모두 배출하며 아산 축구를 알릴 수 있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필드 위에서 발전을 거듭하던 사이, 밖에서는 비상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산 무궁화는 군경팀, 즉 국방 관련 계획에 변동이 생기면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단이었다. 그게 박동혁 감독의 데뷔시즌에 화근이 되어 팀에게 돌아왔다. 아산시가 경찰 축구단을 유치할 때부터 존재했던 의무경찰 감축 및 폐지 계획이 2018년 말로 갈수록 가시화되더니, 단계적 감축이라는 의무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계획과는 다르게 2018년 전원 폐지라는 극단적 형태로 경찰 체육단에게 떨어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도 승격팀이 공중분해될 수 있는 초유의 상황에 불가피하게 "경찰청에게 선수단을 유지한다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아산 무궁화가 우승하더라도 승격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성과를 냈는데 인정받기는커녕 타고 온 배가 불타 없어질 위기가 왔을 때, 보통 사람들은 배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치거나 체념한다. 그럴 만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동혁 감독은 그 불타 재가 되려는 배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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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혁 감독은 아산 무궁화의 해체가 가시화되던 시점부터 감독에게 주어지는 인터뷰를 해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는 기회로 삼았다. "의무경찰 전체를 20%씩 감축하듯 축구단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적인 대안제시부터 "아산시와 팬들, 구단까지 뭉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결말이 해체면 너무 허탈하다"는 팀의 근간과 감정에 던지는 호소까지, 박동혁 감독이 안을 추스르는 데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없는 힘을 짜내 밖에 던진 말들에는 전략과 진정성이 모두 있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바깥을 향해 필요한 메시지를 내놓은 후엔 선수단을 다독이는 데에도 힘썼다. 1위를 지키고 있고 선수단이 좋아도 승격은커녕 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진 후엔 얼마든 다르게 흘러갈 수 있었다. 좋은 성적을 내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신이 날 사람은 없다. 박동혁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우승과 승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선수들이 이해해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프로의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우승해야 한다. 우승하면 팀이 살 가능성도 있다"는 구체적이고도 내부에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가장 필요했을 목표도 만들어 전달했다. 여기에 주장 민상기가 호응해 "우승하고 희망을 걸어보자"는 구호가 해체를 앞둬 의기소침해졌을 법도 한 선수단에게 의지의 연료로 돌기도 했다.

 

  팀이 잘나가는데 재계약이 어렵다면 감독 입장에선 선택지가 넓어진다. 2부리그 MVP가 1부리그에 진출해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것처럼 2부리그 정상급 감독이라면 1부리그에서 새 그림을 그리고픈 팀에 갈 수도 있다. 실제 박동혁 감독은 2018년 말부터 1부리그는 물론 당시만 해도 거품이 빠지기 전이어서 부임만 해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던 중국에서의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박동혁 감독의 선택은 개인의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선수들을 다독이는 게 먼저였고 기자와 만날 땐 결정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말을 준비했다. 처음 감독으로 지도한 팀이라 각별했던 건지, 무슨 일이 있어도 소속된 팀을 살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건지 아예 축구인들이 준비한 무궁화축구단 존속 요구 시위를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소속팀의 존속 여부가 불분명한데도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계속해서 좁히는 행보를 펼쳤다. 필자는 좋은 선수는 좋은 사람일 필요까진 없지만, 좋은 지도자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만 있으면 되는 자리와 선수들이 자신을 보고 따라와야 하는 자리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2018년 말의 박동혁 감독은 말이 되면서 좋은 미래가 보장되는 선택을 밀어냈다. 대신 이미 해체 계획이 발표된 구단이 살아남는다는 말도 안 되는 확률에 자신의 내년을 걸었다. 이는 지도자 박동혁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 좋지 못한 결정이었겠지만, '아산 감독 박동혁'이라는 자리와 책임을 중심에 뒀을 때 할 수 있는 멋있는 결정이었다. 박동혁 감독은 자신의 추후 커리어를 걸고 '좋은 지도자'가 됐다. 그리고 인터뷰로 구단 존속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박동혁 감독에겐 경기인 입장에서 상대를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한 마디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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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한 팀을 없애야 하나 의문이 듭니다."

  10월 27일, 쌀쌀해지던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K리그2 우승을 확정한 후 박동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승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안팎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정상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꺼낼 수 있는 설득이었다. 아산 무궁화는 해체될 수 있다는 말이 돌 때부터 경기장의 상대팀보단 스스로에게 뻗칠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트로피를 들었는데 구단이 없어지고 입대가 커리어에 결정적 악영향을 주는 걸 막기 위해 아산 무궁화에 입단했는데 전역하는 해에 경기를 뛸 수 없다면 선수들 입장에선 동기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축구장 밖의 문제를 우승이라는 결과로 극복하기 위해, 박동혁 감독은 인터뷰실과 시위 현장 등 여러 곳에서 뛰면서 기존의 감독 업무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처음부터 목표가 우승만이 아니라 우승을 통한 구단 존립 근거 마련이었기에, 우승이라는 기쁜 일이 있었음에도 우승을 재료로 팀을 지켜달라는 말을 먼저 꺼낼 수 있었다. 우승 세레머니가 있던 다음 홈 경기에서 아산 팬들 또한 "우승했는데 없애게?" 라는 손팻말을 내보였다. 축구팬들은 팬이 구단의 스피릿을 만들고 지킬 수 있다고 믿어서 축구장에 간다. 박동혁 감독은 신기하게도 반대의 일을 해냈다. 해체를 막자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온 감독이 선수단, 구단 그리고 팬들을 규합한 것이다.

 

  결국 리그가 전부 마무리된 연말, 경찰청과 프로축구연맹은 "아산 무궁화가 추가 신병을 받지 않되, 의무경찰 선수와 민간인 프로선수가 혼합된 구단으로 2019시즌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감독 첫 해에 우승과 해체 위기가 동시에 닥쳤다. 커리어를 인정받고 다른 팀으로 떠나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동혁 감독은 정반대의 선택을 해 구단이 이어지는 데 최대한으로 공헌했다. 2018시즌의 아산 무궁화에 다른 감독이 와서 시즌을 치렀다고 생각해 보자. 박동혁 감독만큼의 책임감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을까? 박동혁 감독의 행보가 없었다면 '아산의 축구가 계속되'는 것은 가능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산 팬들이 박동혁 감독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어쩌면 성적이나 재임기간 때문만이 아닐지 모른다. 기실 박동혁 감독이 아니었다면 응원팀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애정의 기반일 수도 있다. 그만큼 2018년의 박동혁 감독은 성적과 경기력뿐 아니라 팀에 대한 각별함에서도 위대했다.

 

2019년 : 의리로 지킨 아산 축구, 창단이란 열매를 맺다

  K리그2 우승을 기록했는데 소속된 구단이 좋은 전력을 내지 못할 게 기정사실화된 감독이 있다고 치자. K리그1 중하위권 팀들은 감독의 입지가 워낙 확고하거나 전력보다 좋은 성적을 냈던 게 아니고서야 거의 모두 그 감독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2018년 말의 박동혁 감독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다. 시즌을 우승으로 마친 후 다른 팀의 관심을 받았다. 더 좋은 여건을 가진 국내 구단도 있었고 축구굴기가 꺼지기 이전의 중국 구단에서도 제의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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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과 의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산에서 뭔가 더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동혁 감독의 선택은 잔류였다. 그 선택 이후에 놓여진 것은 여전히 시즌 후 해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와 우승 멤버의 전역 및 신인과 기회를 얻지 못하던 선수가 중심이 된 민간인 선수 충원으로 지난해보다 떨어진 스쿼드였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음에도, 박동혁 감독은 '의경 선수들의 거취가 불분명하다', '어려운 사정에 놓인 팀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팀에 남았다.

 

  시즌은 쉽지 않았다. 남아있는 우승 멤버와 민간인 선수 오세훈, 박민서 등의 활약이 맞물려 개막 연승을 달렸지만, 이후는 모두의 예측과 같이 가시밭길이었다. 2019년의 아산 무궁화는 2018년의 팀과 많이 달랐다. 기량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던 선수들이 나가고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을 가르쳐야 하는 선수들이 들어왔다. 유기적인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4백을 써서 중원의 우위와 많은 공격수를 통한 상대의 빈틈 노리기를 추구했던 박동혁 감독은 마지막 의무경찰 선수들이 전역할 날이 다가오자 아예 5백을 꺼내들며 전력상의 열세를 인정했다. 인정이 극복의 시작이다. 팀 스타일의 변화와 약해진 전력이 맞물리면 정상적으로 시즌을 치르기 어렵다. 아산 무궁화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해서, 마지막 기수인 1094기와 1095기의 전역식 이후에는 무승 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시즌을 앞두고 타 구단에서 방출 및 임대 결정으로 합류했거나 아예 신인을 데려오는 등 급조된 선수들이 프로 리그에서 시즌 도중에 주전이 됐음에도 팀다운 팀으로 변모해 승리를 거두는 것 자체가 성과였다.

 

 

  아산 무궁화는 마지막 전역식 이후 치러진 안산 원정에서 새로운 주전 골키퍼가 된 이기현의 대활약으로 바로 이기며 팬들에게 기대를 선사했다. 이후 입대 당시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선발 때문에 기수가 밀린 주세종과 이명주까지 전역해 완전한 민간인팀이 된 뒤론 전력 열세를 체감하며 무승과 연패를 반복했지만, 가을에 펼쳐진 전남과의 홈 경기를 최요셉(개명 전 최진호)의 결승골에 힘입어 승리로 장식했다. 하부리그 출신과 프로리그 방출 및 임대 선수, 신인 선수 등 외인구단 소리를 들어도 될 구성으로 K리그2에서 2승을 거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은 박동혁 감독의 저력이 선수를 보고 키우는 선구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후일 충남아산이 영플레이어, 득점왕 등 굵직한 개인상을 배출했기에 맞는 판단이다. 그러나 필자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고 선수와 팀을 그 의미에 가닿게 만드는 능력에서 저력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박동혁 감독의 임기 초반인 2018년과 2019년은 모두 구단의 해체가 보이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승과 승리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선수들에게 전달했고,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걸 증명하듯 선수들이 이를 달성해 팬들이 실망을 기초로 좌절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끝까지 노력하는 팀을 본 팬들은 신생구단이어서 수가 많지 않은데도, 결말이 해체일 수 있는데도 경기장을 찾고 서명운동과 시위를 전개하며 희망의 끈을 늘렸다. 이는 2부리그의 존폐 위기에 놓인 지방 구단 홈경기에 6천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오는 기적적인 그림으로 돌아왔다. 벼랑에서 올라서기로 결심한 한 초보 지도자의 호기로운 선택이 해체를 앞둔 구단에 운명을 바꿀 선순환을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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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시즌의 박동혁 감독은 또한 선수단 운영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의무경찰 선수들을 전부 경력이 더 떨어지는 선수로 대체해야 하는 악조건을 자신의 선수를 보는 선구안과 팀스피릿을 만드는 설계 능력을 보여줄 기회로 삼았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했던 오세훈(울산에서 임대)과 박민서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전까지 프로 경기 경험을 많이 쌓지 못한 오세훈은 아산에서 개막전부터 주전 톱으로 낙점됐고, 누가 봐도 팀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만큼인 30경기를 뛰며 7골을 넣어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았다. 호남대학교에서 온 신인 박민서는 데뷔 첫 시즌부터 5골 3도움을 기록해 이후 김인균-유강현으로 이어지는 박동혁 감독 특유의 좋은 선수 판단의 시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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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는 팀의 연속성을 가져가 선수단에게는 유대감을 불어넣고 팬들에게 의무경찰 선수가 전역한 후에도 같은 구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의무경찰로 아산을 거쳐간 선수들을 재영입했다. 정다훤은 센터백과 풀백을 오가며 해체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 빈약했던 팀의 수비진을 채워줬다. 박세직은 복귀와 함께 주장을 맡아 구단의 성격 자체가 변하는 과도기 속에서 전 시즌 우승했던 팀의 정신을 새 선수들에게 나누는 역할을 맡았고, 팀이 시민구단으로 바뀌고 4년차를 맞은 현재까지도 '아산의 주장'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며 충남아산의 첫 번째 레전드가 돼가고 있다. '반 시즌이면 모든 선수가 나가고 다음 반 시즌이면 해체될 수 있는 구단', 2019년의 박동혁 감독 앞에 놓인 조건이다. 없을지 모르는 미래를 생각해 포기하거나 적당히 운영할 수도 있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찾는 시도조차 포기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러나 박동혁 감독은 백지상태에서도 답을 만들어버리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좋은 선수를 찾는 안목을 길렀고, 팀의 기둥을 세우는 건축을 해냈다. 순위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지금의 박동혁 감독은 무인도에서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을 해내며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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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의리를 강조하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팀에 남은 박동혁 감독과 생업도 미루고 시위와 서명운동, 자필 문구 챌린지 등 많은 활동을 진행한 아산 팬들의 진심이 통한 것인지 아산 무궁화는 충남아산으로 명맥을 잇게 됐다. 당초 다른 시민구단 연고지에 비해 적은 인구 등으로 인해 창단에 미온적이었던 아산시가 충청남도의 지원 하에 구단 창단을 선언한 것. 2019시즌 아산 무궁화의 구단 슬로건이 '아산의 축구는 계속된다'였는데, 이는 끝내 예언이 되었다. 시즌 후 박동혁 감독은 '충남아산프로축구단'으로 간판이 바뀐 구단과 재계약했다. 아산의 축구는 계속됐고, 박동혁 감독이 아산 축구를 이끄는 임기도 계속됐다.

 

이 글은 박동혁 감독의 충남아산FC 감독 시절을 담은 2부로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아산의 레전드 박동혁, 백년지대계를 꿈꾸다> - SPORTS KU 김관형 기자

https://blog.naver.com/sportsku/222780706905

 

<프로축구 아산, 새 사령탑에 박동혁 수석코치 선임> - KBS 뉴스(원출처 연합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577031

 

<[K리그 현장] 아산 박동혁 "송선호 감독과 나는 다르다"> - 스포츠니어스 이정원 인턴기자

https://www.sports-g.com/news/articleView.html?idxno=60247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우승'밖에 없어"…1% 가능성을 쫓는 아산> - 스포츠서울 김용일 기자

https://www.sportsseoul.com/news/read/693324

 

<[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우승 앞두고 속이 까맣게 타는 박동혁 감독> - 스포츠동아 최현길 기자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20181025/92591971/1

 

<[K리그2 MD] "차마 떠날 수 없었다"...'우승 감독' 박동혁이 지킨 의리> - 인터풋볼 신명기 기자

https://star.ytn.co.kr/_sn/1402_201902261254021368

 

<[SPO TALK] '우승에도 못 웃는' 박동혁 감독 "우승 팀을 꼭 없애야 하나, 다시 생각을"> - 스포티비뉴스 이종현 기자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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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평범한일상 2023.11.22. 21:54
19년부터 작년까지 시즌권 꼬박꼬박 사고 홈 경기 다챙겨보고 원정도 처음 가봤고 이겨서 좋고 져서 x같고 재미있었다.
내 조축개죽인생에 절반이상을 차지한 팀이며 나에겐 그는 명장이었다.
best 럭키금성황소 작성자 2023.11.22. 21:55
내년에도 함께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best 평범한일상 2023.11.22. 21:54
19년부터 작년까지 시즌권 꼬박꼬박 사고 홈 경기 다챙겨보고 원정도 처음 가봤고 이겨서 좋고 져서 x같고 재미있었다.
내 조축개죽인생에 절반이상을 차지한 팀이며 나에겐 그는 명장이었다.
댓글
best 럭키금성황소 작성자 2023.11.22. 21:55
 평범한일상
내년에도 함께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댓글
요우조아 2023.11.23. 09:22
우리팀 오셨으면 하는데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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