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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도서/음악 창작 독한 형사 <1장 1화 - 고, 독한 형사>

 

1

 

 

톡, 토도독, 톡톡, 토도독.

초여름을 알리는 옅은 이슬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지붕을 때리고 지나간다.

잠시 쉬다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벤치와 그 사이에 위치한 담배 꽁초 쓰레기통.

그랬다, 그곳은 흡연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흡연석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여 담배를 피우는 한 사람.

이재웅.

그는 <도봉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강력계 형사다.

그의 오른손에 <말보로 레드> 담배가 쥐어졌다.

담배를 쥔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입 쪽으로 향했다.

종이 질감을 느끼면서 입 속으로 연기를 불어 넣었다.

 

"후……."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흡연을 이어갔다.

이제 이 꽁초를 버리면 사무실로 돌아가서 근무해야 한다.

아침 9시부터 이어질 강도 높은 업무.

저녁 6시가 되기 전까지 그에겐 자유란 없다.

있다면 점심 시간 정도?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x나 고독하네……."

 

산처럼 쌓인 꽁초 쓰레기통에다 자신이 사용한 담배를 버린 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문을 지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계단이 나온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강력계 사무실이 나온다.

강력팀, 이라는 팻말이 걸린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다.

 

"어우…속 아파……."

 

"또 먹었냐?"

 

종종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는 동료 남명성 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켰다.

그 뒤를 지나가던 이재웅 형사는, 반쯤 넋이 나간 동료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재웅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평소처럼 컴퓨터 전원을 켰다. 데스크톱이 켜지는 동안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때 마침 사무실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강력팀의 막내 정 순경이 반장 공 반장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서 투벅투벅 걸어가던 공 반장의 시선이 숙취로 고생 중인 남 형사에게 향하였다.

또 마셨냐는 듯한 눈빛. 이재웅은 눈치를 살폈다.

남명성 형사와 마주 보고 앉은 정 순경은, 힘들어하는 선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냉장고에서 숙취 음료라도 꺼내 드릴까요? 남명성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먹으면 더 나올 거 같아.

 

"그러게 내가 작작 먹으랬지…하여간 이재웅이하고 쌍으로 지x이야…지랄은!"

 

"거기서 제 얘기가 왜 나옵니까…명성이 이 새끼가 마신 거지…제가 마셨습니까?"

 

"너는…이 와중에 친구를 팔아먹냐?"

 

"닥x 새x들아! 맨날 범인 데려와서 맘에 안 들면 줘 패는 놈이나…여자 만나서 좋다고 술 퍼먹는 놈이나…에혀…

전생에 내가 뭔 원수를 졌다고 이런 놈들을 만나서……."

 

말하면 입만 아프다며 공 반장이 일어섰다 다시 앉았다.

가뜩이나 밖에선 비도 내리는데 분위기가 아침부터 영 좋지 않다.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정 순경의 자리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긴급 신고가 들어오면 받을 수 있게 설치한 수화기에서 나는 소리.

정 순경의 왼손이 앞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전화기를 들어 왼쪽 귀로 가져갔다.

 

-도봉 경찰서 강력팀 정용희 순경입니다…여보세요? 네네…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주시겠어요……?

 

통화를 이어가는 정 순경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필히 메모할 게 필요했는지 곧장 포스트잇을 한 장 뜯어서 본인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볼펜을 쥐어 글을 써내려갔다.

 

딸깍, 수화기를 내려놓은 정 순경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온갖 수모를 다 겪어본 베테랑 형사들은 알 수 있다.

긴급 신고구나.

 

"길거리에서 어느 행인이 칼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답니다……!"

 

일사분란.

강력반 전체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무실 문을 열고 뛰쳐 나간다.

 

 

 

2

 

 

"다가오면 이 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칼을 든 어떤 남성이 힘 약한 20대 여성을 인질로 삼은 채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을 협박하고 있다.

강력반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구대 경찰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

진정하고 얘기부터 합시다!

일단 흉기부터 내려놓고 차근차근 얘기부터 합시다!

범인은 오른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식칼의 끝을 여성의 목에다 겨누었다.

말 걸지마! 다 죽여버릴 거니까!

인질은 자신의 목 앞에 칼이 다가오자 소스라치듯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악-!

 

신고 전화를 받은 도봉 경찰서 강력반 팀 전원이 현장에 나타났다.

팀을 이끌 의무가 있는 공 반장이 먼저 앞으로 나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도봉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일단 흉기를 좀 내려놓으시고…저희와 좀 얘길 나누시죠!"

 

"다 꺼져, 개xx들아! 필요 없어…다 꺼지라고!"

 

"어떡하죠…반장님…우리가 함부로 움직였다간 흥분해서 인질을 찌를지도 모르는데요……."

 

"씨…남명성 좋은 방법 없냐?"

 

공 반장 곁으로 온 남명성이 수군거렸다.

어떡하면 좋으냐며 그에게 물었다.

반장은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남명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질을 구할 방법을 찾느라 어느새 숙취가 말끔히 해소된 상태.

함께 출동한 동료들이라면 방법을 알지 않을까 싶어 이재웅 형사에게 말을 걸려고 고개를 휙 돌렸다.

있어야할 그가 없다. 분명 같이 있었는데?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얘는 또 어디 간……."

 

톡, 톡.

옆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공 반장이 남명성의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동료가 어느새 범인의 뒤를 밟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야…이 칼 좀 내려놓지……?"

 

범인의 오른팔이 들썩거렸다.

 

"아아아악……!"

 

우두둑, 우두둑.

상대방 손목을 꺾어 흉기를 떨어뜨리게 만든 후 발로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형사들을 위협하느라 정작 다른 한 명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걸 깨닫지 못한 범인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재웅은 한껏 인상을 구겼다.

 

"당신을 긴급 체포…아 됐고 미란다니 머란다니 그거 알지? 묵비권 할 수 있다고…새x야……."

 

동료들의 뒤늦은 돌격이 이어졌다.

범인을 몸으로 찍어 누른 후 양팔에 수갑을 채웠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이재웅 형사는, 조금 전 현장에서 검거된 범인과 눈을 마주 보며 진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 배고프니까…빨리 하자? 왜 칼 들고 설쳤니……?"

 

"……."

 

"한 번 더 묻는다…왜 설쳤어?"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이재웅 형사의 표정.

그런 그가 혹여 또 몹쓸 짓을 할까 불안한 공 반장.

옆에 앉은 남 형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정 순경은 행정 업무를 보는 척하면서 슬쩍슬쩍 행동을 살폈다.

 

"하…나 배고프니까 빨리 하자고!"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 파일을 집어서 상대에게 휘둘렀다.

정수리 한 대, 오른쪽 뺨 한 대, 왼쪽 뺨 한 대. 총 세 대를 때렸다.

대한민국 형사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상대방의 서늘한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 그 눈빛은 나에게 하는 도발인 거지?

들고있던 파일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주먹을 쥐기 시작한다.

 

"어우…됐다…야 정 순경…나 밥 먹으러 가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해……."

 

당장 때릴 것처럼 말하고선 담배를 입에 물더니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그.

정 순경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상사가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는가?

 

경찰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창동역으로 가서 분식집을 들른 이재웅은,

주문한 김밥 두 줄이 나오자 젓가락으로 김밥 한 개를 집어 입으로 천천히 가져갔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김밥 안에 들어간 오이, 밥, 햄 등이 골고루 흩어졌다 모이기를 수십 번.

물컵을 한 잔 들이켠 그의 옆으로 발걸음이 들려왔다.

공 반장이었다.

 

공 반장의 상체가 기울었다.

 

"이모, 나도 같은 거로 두 줄 줘…야 이재웅…오늘 아무리 살인 미수 사건이었어도…피해 없이 끝났으면…

살살해도 됐었잖냐…꼭 그렇게 사람을 두드려 패야겠냐?"

 

"제가 언제 팼다고 그럽니까…말을 안 하니까 화가 나서……."

 

"정신 좀 차려라 인마…네 때문에 불려가는 내 생각은 안 하냐? 근데…오늘 그 날 아니냐?"

 

그 날.

이재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겼던 입 맛이 뚝 떨어졌는지 젓가락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공 반장은 눈치를 살폈다.

 

"너도 이제…서른 셋이다 셋…좋은 사람 만나서…아이도 낳아야지…언제까지 내 딸한테 삼촌 소리 들을래?"

 

"그만 하십쇼……."

 

"새x야, 폐인같이 살던 네 모습만 보면 내가 안타까워서 그래…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냐……?"

 

"아이 xx, 밥 맛 떨어지게…그만 좀 하시라고요!"

 

목소리를 높였을 뿐인데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하나둘 쳐다본다.

밥풀까지 튀겨가면서 그토록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공 반장의 허리가 등받이에 닿았다. 체념한 듯한 표정.

 

"그래그래…알았어…알았어…먹어먹어……."

 

안 먹어!

곧장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선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3

 

 

업무를 마친 이재웅 형사가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차종은 기x 22년식 스x어.

그는 눈동자를 슬쩍 오른쪽으로 옮겼다. 휴대전화 거치대 옆으로 액자 하나가 보였다.

예쁜 외모를 지닌 여성과 어깨동무한 채 미소짓고 있는 그.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탄 승용차가 어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멈췄다.

승강기를 탄 이재웅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층수가 점차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호흡도 점점 거칠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재웅의 발걸음이 조금씩 앞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몸을 틀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2201호.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현관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요!

 

문 틈 사이로 비친 집주인의 얼굴.

흰머리가 힐끗힐끗 보이는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친 이재웅 형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어머님…재웅입니다……."

 

"재웅이구나…고마워…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지윤이 생일날 찾아와줘서……."

 

"누가 왔어? 어어…재웅이 왔구나……."

 

흰 티를 입고선 어두운 색의 트레이닝 바지를 착용한 중년 남성이 뒤에 서 있다가 재웅의 얼굴을 확인하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윤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는다는 의미.

때 마침 굳게 닫혔던 방 문 하나가 열리고.

 

"손님이라도 왔…뭐야…이 새x는 왜 또 온 건데?"

 

"재혁아…오랜만…이다……."

 

"오랜만? 누가 오라고 했어…엄마야? 아니면 아빠야?"

 

지윤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은 딸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찾아와서 늙은 우리를 위로해주는 그에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지윤 어머니는 부엌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식사 준비 다 돼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금방 되니까.

 

지윤의 아버지, 지윤의 어머니, 그리고 지윤의 동생 '김재혁'을 사이에 두고 이뤄진 저녁 식사.

2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재웅의 그릇을 가져가더니 국자로 찌개를 퍼주기 시작한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경찰 일 하려면 잘 먹고 잘 지내야해…재웅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로 준비했어……."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혹여 무거워질까 지윤의 아버지가 그 있는 쪽으로 고갤 휙 돌렸다.

 

"요새 일은 좀 어떤가…많이 힘들지?"

 

"아닙…니다…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괜찮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지 여자친구도 못 지킨 게 무슨 형사라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친구의 남동생한테서 듣는 모진 소리.

계속 비난을 일삼는 아들을 지윤의 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만하지 못 하겠니?

 

땅-!

 

숟가락을 집어 던진 재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웅을 매섭게 노려본 뒤 방으로 돌아갔다.

 

 

4

 

 

집으로 돌아온 재웅은 대충 씻고 나와선 곧장 침실로 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가쁘게 지냈다보니 잠이 솔솔 오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이상한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왜 그때 안 받았어?

왜 그때 안 받았어?

왜 그때 안 받았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자는내내 계속 어떤 여성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멀게만 느껴졌던 목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헉……!"

 

눈을 뜬 그가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새벽 1시.

이부자리가 땀에 젖어 상당히 축축하다.

그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 후 스위치를 켰다.

그의 주위엔 진열장들이 쭉 일 자로 서있었다.

애니메이션 피규어였다.

 

"……."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진열된 장난감들을 쭉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것이지만 나의 것이 아닌 것.

 

-다음 편에 계속-

 

 

댓글 2

비에이라 2024.04.28. 20:22
오 쫌 쪼는 맛이 있넹ㅎㅎ 고독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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