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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서 이탈로 칼비노-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10년 전이다. 10년 전 민음사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들을 모으고 모아 전집을 만들던 사이에,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환상문학에 환장했던 당시의 내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먼저 내용을 간단하게 보자.

 

주인공인 핀은 정상적인 가정의 어린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한 채 어른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인물이다.

 

이런 핀은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의 언어를 듣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혹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천진함을 가지고, 작품 내에 만연한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느날 핀은 동네의 한 어른과 독일 장교의 권총을 훔친다는 내기를 한다.

 

여기서 핀에게 있어 권총이란 어른들과 관계를 맺고, 주변 아이들과의 완연한 차별성을 갖고 싶어하는 천진하고도 위험한 장치가 된다.

 

그것을 훔친 핀은 거미가 집을 짓는 오솔길에 숨겨놓는다.

 

이후 핀은 그 권총이 있기에 자신이 어른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레지스탕스들과 조우하고 숲에서 산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해당 생활 내용이 소설의 상당 분량을 차지한다.

 

(그 이후의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라)

 

1947년 칼비노의 첫 장편소설로 출간된 이 책은 추후 세계 문학의 모던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나무 위의 남작>,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 건축계에도 인상을 남긴 <보이지 않는 도시들> 등과 비교해, 민중과 레지스탕스를 다루며 파시스트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에서 민중들과 그 속에 숨은 레지스탕스들의 삶을 생경히 묘사하는,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경향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작가들은 레지스탕스 소설을 쓰는 게 의무라 생각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1964년에 소설 개정판에 서문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칼비노는 이 소설은 비록 네오리얼리즘 소설이지만 여타 네오리얼리즘 소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칼비노의 태도는 소설 내 주인공이자 어린 아이인 핀의 시점으로 명징하게 드러난다.

 

파시스트와 싸우는 영웅적 인물들로 흔히 묘사되던 레지스탕스 대신,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걸 묵시하는 요리사, 리더쉽이 결여된 리더 등의 낙오자들로 모인 레지스탕스를 어린 아이의 시점으로 묘사하며, 그들에게 있어 영웅적인 행동인 유격전 등을 동화스럽게 묘사해나가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오직 팩트만이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근거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팩트에 매몰되면 작은 사실밖에 보지 못하며 되려 총체적인 진실이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 역시 많다.

 

핀의 우스꽝스럽고, 천진한 행동에 반응하는 인물들은 분명 사실적으로 묘사된 영웅과 다르게 결여되었고, 지저분한 생김새들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핀의 논리와 상충된 모습을 지니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레지스탕스를 미화하지 않은 동화적인 분위기로 묘사해나가며 더더욱 그들의 삶이 거대정치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은,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라는 걸 부각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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