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서 식물산책을 읽고

식물 세밀화라는 말이 직관적이긴 하지만, 사실 이 말만 놓고보면, 식물 세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식물 세밀화를 영어로 하면, Botanical Art인데, 식물학적 기술 혹은 식물학적 그림 정도로 해석하는게 옳다만, 

이때는 영 어감이 그래서...

식물세밀화는 사실 과학적인 목적으로 그려진 그림인데, 

식물은 사진으로 어떤 모습을 찍었을 때, 이 사진이 그 식물의 특징을 오롯이 대표하냐는 물음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계절마다, 심지어는 낮과 밤 사이에도 모습이 바뀌기 때문이다. (색깔의 변화까지 치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식물 도감의 '그림'들은 이 식물을 대표할 수 있는 모습들로 그려져있는데, 이 그림을 '식물 세밀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물 세밀화가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나, 

유럽읭 경우는 200년 전의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져, 멸종된 식물들의 모습 혹은 변종이 우세종이 되기 전의 모습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여러 식물원들과 그 식물원들의 대표적인 식물들, 그리고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것들과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두었으며,

중간중간에 사진과 그림이 있어 보기 편하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분이 있다면, 조금 편하게 마음을 풀고 감수성의 텐션을 살짝 올린 다음에 읽기를 권한다.

글이 많진 않고, 대신 그림으로 느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책에 있는 식물 세밀화들은 제대로 그려져있지만, 사실 이 책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오롯이 보이는데,

한 식물을 찍은 사진은 대체로 작은 사이즈로 배치했으며, 식물원이나 온실의 전경은 큰 사진으로 배치해두었다.

이는 자연의 모습을 전경으로 느끼되, 그 하나하나의 식물들의 모습은 전체 '자연스러움'의 일부임을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몇군데의 식물원을 다녀본 나는, 항상 온실을 둘러보며 '왜 배치가 이렇게 깔끔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사실은 일부러 그렇게 배치해두었다는 것이 좀 와닿았다.

그 나름의 기준으로 유사한 식물들끼리 모으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살려내고, 서로가 서로를 북돋아주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에 거슬리지 않게끔하는

원예사들의 노력이 그 안에 숨어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양치식물'이었는데,

가장 오래된 식물이자 가장 흔한 식물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모습 (사실 양치식물의 잎을 뒤집어 포자를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은 

굉장히 생생하면서도 생경했다.

전체적으로 참 좋았다.

책을 읽으며, 식물 세밀화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알게 되었고, 주변의 식물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식물원에 대한 지식과 감성을 깨우쳤다.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