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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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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사놓고 확 당기지 않아 넉달 가량 책장에 눕혀져 있던 책.

 

그러다 읽을만한 소설 책이 다 되어, 손에 쥐었는데,

 

멈출 수 없는 마력으로 나를 끌어 당긴 책.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선 이 책이 최고인 듯 하다.

 

 

이 책은 나이 든 집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 스스로의 명예, 품위, 그리고 인간에 대해 성찰한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이 소설은 

 

처음 손에 든 순간부터, 놓는 그 순간까지, '품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집사는, 아주 오래된 저택의 집사로 오랜 기간을 보내며,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연결하여, 그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정의, 그리고 여기서 뻗어나가 인간의 사명과 삶에 대해 고민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며 훌륭한 행사를 치뤄낸 일,

 

사랑을 억누르고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억누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잊혀진 듯 하다) 주인의 중요한 일을 치뤄낸 것들을 회상하며,

 

스스로 성장해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은 모두가 한가지로 이뤄지지 않고 중복되며,

 

- 하필이면 아버지의 죽음과 겹쳐진 행사,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날 이뤄진 총리의 방문

 

그런 시점들에서의 스스로의 판단을 지금에와 돌이켜 보고,

 

그 때가 매우 중요한 시점들이었다는 것들을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심지어 새로운 주인인 패러데이 조차도 곧바로 알아차렸는데)인데,

 

그의 집사로서의 모든 중요한 일들에 꽂혀 있던 캔턴 양은, 단순히 집사와 총무의 관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본인만 보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 했던 '품위'라는 것은, 순간의 부와 재치에 귀의하지 않고,

 

인간의 본질과 시대의 사명에 조금이나마 부합된 일을 해내는,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집사는, 스스로 그런 일을 해내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주인에 대해, 자긍심과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스스로 자긍심을 가졌던 부분들을 이야기하지만, 이따금 주인을 외면하면서 변명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중간에 한번쯤 언급되는 '그렇다고 해서 집사인 본인의 잘못은 아니다.'라는 식의 언급이다.

 

그러다 마지막에, '주인이 초래한 잘못에 대해 자신은 잘못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자신이 스스로 '위대한 집사'인 것을 아직 부정하는 것이며, 대신 인간적인 삶을 살아왔던, 

 

'켄턴 양'의 '삶이란 부침이 있는 것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동조하게 된다.

 

때론 자신의 앞이 '허공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날이 많이 남은' 삶이 인간의 삶이란 것이다.

 

결국 여태까지 자신이 규정지었던 '위대한 집사'이기 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저녁'에 '아직도 할일이 많은' 위대함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렇게 노 집사는 지금의 주인의 유머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이 소설을 끝맺는다.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의 전율을 느꼈는데, 위에 쓴 두가지 에피소드가 시실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와 같은 문체로 쓰여진 글이 참 생소하면서도 낯익었는데,

 

낯익은 부분은, 살짝 '제인 오스틴'의 소설 느낌이 났었다는 것이고, 생소한 부분은 장면의 묘사가 환상적이었는데, 이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평이한 몇개의 문장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방식에선 이만한 작가를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려낸 풍경들은 아름다웠고, 환상적이었으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편하게 읽으려면 얼마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또 고민하며 읽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책이라,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것 같다.

 

 

댓글 2

킹쿤타랑블란쳇 2024.03.10. 18:23
이 작가꺼 클라라의 태양 읽어보고 싶던데

이책도 재밌나보군요 킵....
댓글
리나군 작성자 2024.03.10. 18:55
 킹쿤타랑블란쳇
저는 이 책이 첨 읽은건데 너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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