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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역사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10.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 키케로 편에서 전하는 이야기이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아직 둘 다 살아 있고, 두 사람의 대립이 점점 내전위기로 치닫던 시절

어떻게든 로마인들간의 내전이 또 벌어지는 것만은 막아보고자, 자기 개선식까지 포기해가며 두 사람을 설득해보려 애썼지만

영 결과가 신통찮아 근심하고 있던 키케로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800px-Paolo_Uccello_044.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꿈 속에서 누군가가 원로원 의원의 아들들을 토론의 광장으로 초대했는데, 

이는 위대한 로마의 주신, 유피테르(제우스)께서 그들 가운데 한 명을 

로마의 미래를 이끌 장차의 지도자로 택해주시기를 바래서였다.

온 로마 시민들이 소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신전 주위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800px-De_Gaulle-OWI.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신전 앞에는 소년들이 자줏빛 소매의 토가를 입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신전 문이 열리고, 소년들이 한 사람씩 들어가 유피테르 신상 앞으로 지나갔지만

신상은 그들을 한 사람씩 살펴보며, 그저 슬픈 표정만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소년이 신상 앞을 지나가자, 유피테르 신은 마침내 기뻐하며

손을 뻗어 그 소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이여, 이 소년이 로마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마침내 내란이 멈추리로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꾼 키케로는 꿈속에서 본 소년을 잊지 못하고 가슴 깊이 기억해 두었지만,

막상 그 소년이 대체 누군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키케로가 마르스 광장을 걸어 내려가는데, 한 소년이 아침 운동을 마치고 저만치서 오고 있었다.

 

 

첫눈에 그가 어젯밤 꿈에 본 소년임을 알아본 키케로는 다가가 인사하며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물어보았고,

소년이 비록 그리 별볼일없는 가문인 옥타비우스의 아들이지만, 그의 어머니 아티아는 카이사르의 누나의 딸 -

즉, 유피테르 신이 택한 꿈속의 소년은 바로 카이사르의 외조카손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마 공화국 최후의 大정치가 키케로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첫만남이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너무 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

후대에 아우구스투스가 키케로의 명성을 이용할 겸 지어낸 프로파간다가 아니었을까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약 실화라고 해도, 그냥 꿈이었을 뿐이지만 올림포스 신들의 계시를 믿는 고대 로마인이었던 키케로가

옥타비아누스를 보고서, 꿈속에서 비몽사몽중에 본 그 소년이라 지레짐작했던 거라고 하면 말은 되니까

실화였다고 치고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10.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양아버지 카이사르와 악우일지라도 평생의 벗이었던 키케로를 "아버지"라 부르며 

- 적어도 겉으로는 - 열렬히 따른 옥타비아누스가, 생전 카이사르의 심복이었던 두 집정관, 히르티우스와 판사와 함께

로마의 참주가 되기까지 한 발짝 앞이었던 안토니우스를 타도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진군할 때

키케로는 내심, 마침내 유피테르 신께서 그날밤 꿈 속의 계시를 이루신다고 속으로 환호했을 것이다.

 

 

 

 

 

 

 

 

2.pn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이대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꺾으면, (키케로의 행복회로 속에서는) 일시적 바지사장으로나마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지도자가 될" 것이고, 그 후 키케로의 계획대로 옥타비아누스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영예를 선사받고 추켜세워진 뒤 퇴장'함으로서 로마 공화정이 복구된다면, "마침내 내란이 멈출" 것이 아닌가?

 

 

물론 롬붕이들 모두 알다시피, 전혀 키케로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았다.

히르티우스와 판사가 전사한 뒤 정부군을 장악한 옥타비아누스는, 오히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야합해

"제 2차 삼두"를 결성했고, 탄핵연설 "필리피카이" 에서 키케로가 자기는 "검투사의 두뇌", 아내 풀비아마저도

"서방을 족족 잡아먹는 년"이라 조롱한 탓에 눈이 완전히 돌아가 있던 안토니우스의 강력한 요구로

살생부 맨 첫줄에 이름이 올라간 키케로는, 모가지는 물론 손모가지까지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다.

아마 키케로는, 아니 씨발 그럼 그날밤 꿈은 대체 뭐였냐고 자객들 앞에서 속으로 존나 욕했으리라.

 

 

 

 

 

 

20200518_210519.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유피테르 신이 꿈속에서 키케로에게 내렸던 계시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훗날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옥타비아누스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등극해

로마의 지도자가 되었고, 이로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가 출범해 "네 황제의 해"가 올 때까지 무려 백여 년간

마침내 내란이 멈추지 않았던가?

 

 

 

 

 

 

20190524_204900.jpg "보라, 키케로여! 바로 이 소년이 로마를 구하리로다."

 

같은 수법에 세 번 사기를 당하면 그땐 속은 놈이 잘못이라고,

유피테르 신은 공화정이 부흥한다거나 키케로 손모가지가 무사할 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또 뻔한 그리스-로마식 시즌 1469048호 원숭이손 신탁에 속은 놈이 바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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