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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감독의 권위와 정치력, 그리고 이정효를 향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못되거나 배우지 말아야 할 행동을 빨리 배우거나 심지어 선도하기까지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특징일까? 아니면 결국 전선과 거리가 먼 뒷방에서 편안하게 일하는 자들이 전생에 대한 보상 판정을 받은 덕분에 그렇게 된 것일까? 축구계에서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냉정과 열정의 타이밍을 잘 잡는다는 인상을 주는 구단 운영진은 드물다.

 

수학 못하는 자의 세금이라는 복권을 긁는 것은 한국 축구계에서 적지 않게 보이는 일이다. 한국에서 훌륭한 감독감 없다는 진술은 과학계 노벨상 왜 안 나오느냐고 따지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씨를 아예 뿌리지 않거나 씨를 뿌려놓고 하루 만에 왜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않느냐고 다그친 다음 바로 밭을 갈아엎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결국 감독의 수명을 보장하는 것은 전술적 역량만이 아니다. 성적이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감독이 살아남으려면 또 다른 종류의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선수로서의 경력 혹은 지도자로서의 경력에서 비롯된 권위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자의 영향력이 크다. 다른 하나는 구단 상부의 심기를 최소한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치력이다. 기본적으로 감독을 수시로 교체될 수 있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이른바 "02년 레전드"가 한국 축구계 곳곳에서 요직이나 중요한 위상을 확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란 사건. 그들 중 대부분이 선수로서 경험한 최고의 성취가 그것이고, 아직까지도 한국 축구에서 가장 강력한 업적으로 인정받는 사건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02년 레전드"라는 선수로서의 경력이 갖는 후광은 그들을 갖가지 위협에서 지켜왔다. 최근에 와서야 논란이 누적되고 실체가 노출되며 그 후광의 방패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의 경력이 없다면 클럽 레전드라는 이름표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한다.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느냐"며 포항 선수들을 다그친 포항 감독 황선홍은 "02년 레전드"이자 포항 레전드였다. 그의 자리에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앉은 김기동은 그 스틸러스에서도 "철인"이라 불린 사나이였다. 어디 그뿐이랴, 성남 레전드 신태용의 성남 감독 시절은 잊고 넘어가면 섭섭한 역사이다. 성과와 별개로 감독 물망에 클럽 레전드가 자주 오르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감독의 정치력은 팬 입장에서 알기 쉬운 영역은 아니다. 많은 부분은 구단 운영진과 얼마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도 클럽 내에서 인정받을 만한 경력, 다시 말해서 권위가 있다면 해결이 다소 쉬운 편이다. 어쨌든 정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감독이 마주하는 결말은 두 가지이다. 운영진과 대판 싸우고 파열음을 온 동네에 내면서 나가거나, 운영진에 질질 끌려다니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거나.

 

K리그를 휩쓸고 있는 바람의 주인공, 광주 감독 이정효의 앞날은 어떨까?

 

이정효는 선수로서 부산 원클럽맨이었다. 그러나 최근 2년 동안 바람을 몰고 오기 전까지 그의 이름이 잘 알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그의 성취는 지독할 정도의 전술 공부와 현장 적용, 그리고 행운에 가깝게 만난 지금의 광주 운영진이 빚어낸 것이다. 이제 광주의 성과와 이정효의 역량은 K리그를 통틀어 가장 폐급인 운영진도 군침을 흘릴 정도로 잘 알려졌다. 지도자로서의 경력으로 권위가 막 생긴 셈이다. 빅클럽이 탐낸다는 소문이 돈다. 대담하다 못해 저돌적인 화술과 더불어 빅클럽에서의 성공까지 있다면 정말 K-무리뉴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퍼진다.

 

하지만 이정효의 내일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만큼 아름다울지는 의문이다. 내가 물음표를 찍는 이유는 그의 정치력이다. 광주광역시청을 향한 압박은 광주 구단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면 지당하다. 당장 성적이 잘 나오고 있으니 대외적 공약과 긍정적 검토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 찾아올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주축선수들은 결국 시즌 종료 후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후에도 지금 같은 호성적을 유지한다면 투자는 기대만큼 이루어지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정당한 비판과 요구도 건방진 반란으로 취급하기 일쑤인 한국의 높으신 분들 명단에서 광주의 결정권자들 이름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잘 풀릴 때는 숟가락 꽂고 안 풀릴 때는 짐까지 뺏어가는 정치권의 행태는 언제나 경계 대상이다.

 

더구나 이번 시즌에만 이정효가 인터뷰로 상대 팀 팬들의 심기를 긁은 것만도 대충 두세 번이다(서울, 강원, 전북). 이런 행동은 서사와 캐릭터 만들기에는 최적이지만, 열광적 호응만큼이나 맹렬한 비난도 끌어내는 것임은 사실이다. 시민구단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은 결국 지자체와 그 장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해서일 텐데, 구설에 오를 만한 인터뷰가 자꾸 쌓이는 것은 구단 운영진과 그 윗선에게도 부담일 터이다. 어쩌면 이정효는 지금 자신의 능력을 믿고 눈 감은 채 외줄타기를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업구단에서 이정효를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단 알려진 바로는 광주와의 계약이 2024년까지이다. 그 다음 선택이 기업구단일 것이라는 예상은 흔하다. 문제는 기업구단의 운영진이 결코 시민구단의 운영진보다 능력이 좋거나 배포가 넓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오하려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 최근 여러 기업구단에서 증명되고 있다. 머리 큰 선수를 다루는 것은 부차적 문제일 것이다. 구단 높으신 분들과의 정치투쟁에서 감독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이정효라는 기인의 서사가 위대한 성공담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의 앞길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가 알맞은 둥지를 잘 찾아서 머물기를 바랄 뿐이다. 운영진이 적어도 인간성과 분별력만큼은 지니고 있어서 부조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지 않은 곳 말이다.

댓글 2

지축동BFC 2023.09.27. 18:29
지금까지 보여준 이정효 모습이라면 운영에 대한 전권 안주면 안갈듯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09.27. 19:50
 지축동BFC
문제는 앞으로 그럴 만한 팀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지금의 광주를 잘 가꾸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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