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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역사 기타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brazil.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1950년 월드컵 포스터

 

<브라질,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다>

 

브라질은 1950년 드디어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이 월드컵은 개막전이 한국전쟁 바로 1시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유명한 월드컵인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국의 전후복구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열린 2차대전 종전 후의 첫 월드컵이기도 했다.

 

브라질은 지금이나 그때 당시에나 축구에 대한 열기가 매우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삼바 같이 신나는 것에 열광하는 남미 사람들의 기질에도 있지만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던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축구가 가난해도 출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부는 자국에서 개최되는 첫 월드컵인만큼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해보겠다는 각오로 관련 인프라 마련에 최선을 다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 글에서 설명할 비극이 일어나기도 할 마라카낭 스타디움의 건설이 있다.

 

마라카낭.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당시 마라카낭 경기장의 풍경

 

 

마라카낭 경기장은 입석(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응원)을 포함하면 무려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든 초대형 경기장으로 설계되었는데, 공사 규모가 너무 크다보니 월드컵이 끝날때까지 완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부의 어마무시한 지원에 힘입어 결승전이 치뤄지기 직전에 완공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20만명이라는 숫자가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현재 세계 최대의 경기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페인의 캄프 누의 수용 인원이 대략 10만명 정도다.

 

이런 인프라에 더해 그 당시 브라질 선수들의 면면도 대단했다. 대표 공격수로 이 월드컵에서 8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한 아데미르, 소속된 클럽팀을 1939년부터 무려 4번이나 우승으로 이끈 베테랑 공격수 지지뉴가 있었고 골키퍼 자리에도 당시 남미 최고의 골키퍼이자 흑인 키퍼로 이름을 날리던 바르보사가 자리하는 등 말 그대로 최고의 팀이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브라질의 우승에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시작된 월드컵>

 

시작하기 전에 이 월드컵의 특이한 방식부터 보고 갈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보통 월드컵은 16개의 팀이 4개의 조로 나뉘어 예선을 치뤄 각 조의 1~2등, 즉 8팀을 8강에 진출시킨 뒤 8강전부터는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인 만큼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최대한 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 대회 방식을 고안했는데,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13개(16개였지만 전쟁의 여파로 예선을 통과해놓고 기권한 팀이 있었음)의 팀이 4개의 조로 나뉘어(4개국 조 2개, 3개국 조 1개, 2개국 조 1개) 예선을 치르는 것 까지는 같았는데 여기서 1~2위팀이 아닌 각 조의 1위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이렇게 진출한 4개팀으로 다시 리그전 방식으로 결선을 치뤄서 1위를 한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방식이다. 기존 토너먼트 방식보다 경기수가 많은 리그전을 더 치뤄서 입장료 수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대회가 시작되고, 브라질은 최강의 선수진과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압도적인 화력을 뽐내며 2승 1무의 성적으로 조 1위를 해 결선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image.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브라질의 조별리그 순위표

 

 

결선리그에 오른 브라질 국가대표팀에게 계속 행운이 따랐는데, 당초 브라질의 우승을 저지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인 잉글랜드와 이탈리아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 그보다 한 수 아래의 팀들인 스페인, 스웨덴, 우루과이 이 3팀이 결선리그로 진출하게 되었다. 브라질이 우승하기 한층 쉬워진 것이다. 그나마 브라질의 우승을 막을 만한 팀은 월드컵 우승을 1번 겪어본 우루과이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선리그가 시작되었다.

 

 

<설레발의 시작>

 

결선리그가 시작되자마자 브라질은 무려 7:1이라는 스코어로 첫 상대 스웨덴을 격파하고, 그에 반해 브라질의 맞수로 여겨졌던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격전끝에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7: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에 브라질의 국민들은 더욱 열광했다.

 

2차전, 브라질은 우루과이가 비겼던 스페인과의 경기를 치뤄 무려 6:1이라는 스코어로 스페인을 박살냈다. 우루과이는 스웨덴과 경기를 치뤄 경기 직전에 터진 골로 3:2로 간신히 승리했다.

 

마지막 1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이미 2패, 1무 1패를 기록한 스웨덴과 스페인은 월드컵 우승이 좌절된 상황이었다. 우루과이, 브라질은 각각 1승 1무, 2승을 기록한 상황이었고 브라질은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을 차지할 상황이었다.

 

화면 캡처 2021-03-13 223639.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최종전 직전 결선 순위표

 

그동안 브라질 대표팀이 보여준 압도적인 화력과 그에 반하는 우루과이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본 모두가 브라질이 당연히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중립성을 지켜야 할 국제축구연맹에서도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우승 메달에 "1950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 이라고 새겨놓고, 우승 트로피를 브라질 축구협회에 미리 전달하기까지 했다. 

 

브라질의 축구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국팀의 압도적인 성적에 크게 열광했고, 최종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브라질 전역에서 아직 확정도 되지 않은 우승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렸다. 한 가수는 브라질의 우승을 축하하는 노래까지 만들었고, 경기 시작 수 시간 전에는 경기가 열리는 마라카낭 경기장이 속한 리우데자네이루의 시장이 이런 내용의 연설까지 했다.

 

 

"나는 브라질 선수들이 토너먼트의 승자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챔피언이 되는 데는 몇 시간이 남지 않았다. 이들의 적수는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나는 이 위대한 정복자들에게 미리 경의를 표한다."

 

 

이런 분위기에 브라질의 상대인 우루과이의 선수진들은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우루과이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의 퍼포먼스는 전설로 남아있다. 그는 동료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브라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 라면서 브라질의 우승을 미리 축하하는 신문에 동료들과 소변을 누는 퍼포먼스를 했다.

 

바렐라렐라.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우루과이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

 

 

마침내 최종전이 치뤄지는 날이 찾아왔고, 브라질 전역에서 그들의 우승을 지켜보러 찾아온 축구팬들로 마라카낭 경기장은 가득 찼다.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관중이 모인 월드컵 경기로 기록에 남아있다.

 

 

<최종전이 시작되다>

 

최종전.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결승전 당시 마라카낭 경기장의 전경


20만의 관중이 모인 마라카낭에서 경기가 시작되었고, 브라질은 시작부터 우루과이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위에서 말한 지지뉴, 아데미르, 프리아사, 치쿠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우루과이에 공격을 쏟아부었는데, 우루과이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우루과이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간간히 브라질에게 역습을 가했지만 역시 골키퍼에 막히고 말았고, 전반전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당연히 처음부터 경기가 압도적으로 흘러갈 줄 알았던 브라질의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스폴리.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마스폴리 골키퍼


우루과이가 이렇게 브라질과 팽팽한 경기를 이어나간데에는 골키퍼 로케 마스폴리의 활약이 컸다. 그는 전반에만 17개의 슈팅을 모두 막아냈고, 특히 아데미르의 헤딩을 막아낸 슈퍼세이브가 벡미였다. 그는 나중에 우루과이 대표팀의 감독까지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선제골.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브라질의 선제골 장면

 

 

이렇게 시작된 후반전, 마침내 첫 골이 나왔다. 브라질의 프리아사가 골대 오른쪽을 향해 날린 슈팅이 마침내 마스폴리를 뚫고 들어간 것이다. 비겨도 우승인데 골까지 넣어 이기고 있었으니까 브라질의 관중들은 더더욱 열광했고 우루과이의 선수들은 주눅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위에서 나왔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가 다시 한 번 나선다.

 

 

"이제 저 열광하는 브라질 관중들에게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자!"

 

 

옵둘리오는 주눅 든 선수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우루과이의 선수들은 다시 사기를 되찾아 더욱 거세게 브라질의 골문을 두들겼다. 이에 반해 브라질의 선수들은 골을 넣고 풀어졌는지 경기력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동점골.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우루과이의 동점골 장면

 

마침내 우루과이의 공격은 후반 21분 결실을 맺었다. 후안 스키피아노가 알시데스 기지아의 패스를 받고 논스톱으로 날린 슈팅이 브라질의 골문에 들어간 것이다. 마라카낭 경기장은 잠시 침묵에 빠졌지만, 아직까지는 이대로 진행돼도 브라질의 우승이었기 때문에 관중들은 불안감 속에서도 응원을 이어갔다.

 

 

역전골.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우루과이의 역전골 장면

 

하지만 브라질 관중들의 열기에 찬물을 퍼붓는기세를 탄 우루과이는 더욱 더 공격을 퍼부었고, 결국 경기 종료 약 10분 전인 후반 34분 우루과이의 기지아가 왼쪽에서 때린 날카로운 슈팅이 들어갔다. 마라카낭은 완전히 침묵에 빠졌고, 급해진 브라질 선수들은 뒤늦게 공격을 이어갔으나 번번히 마스폴리에게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경기 종료 직전 브라질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오른쪽 측면에서 돌파하던 자이르는 패널티 박스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노 마크 슈팅 찬스를 놓치지 않았던 그는 곧바로 슈팅을 날렸는데...

 

그 슈팅마저도 마스폴리의 몸을 날린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공이 나간 직후 얻은 코너킥 역시 아데미르가 그만 홈런볼을 때려버리며 골킥이 됐고, 그대로 경기는 끝났다.

 

브라질 관중 멘붕.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화면 캡처 2021-03-13 233920.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1편: 설레발은 필패다, 마라카낭의 비극>

멘붕 온 브라질 관중들과 최종 순위표


 

<비극이 일어나다>

 

결국 우승은 우루과이에게 돌아갔고, 경기장은 침묵에 빠지고 브라질 전역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우루과이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경기장에서만 해도 4명이 사망했다. 2명은 경기 종료 직후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자살했고, 2명은 심장마비로 숨졌다.

 

경기장 밖에서도 그 여파가 지속됐다. 브라질 전역에 조기가 게양되고, 좌절한 브라질 축구팬들이 전국에서 폭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자살하는 축구팬들까지 속출했다. 우루과이의 선수진들은 이런 분위기에 눌려 시상식만 가지고 바로 우루과이로 도망쳤다.

 

경기가 끝나고, 브라질 축구협회는 그 당시 브라질 선수들이 입었던 흰색 유니폼을 모아다가 모두 불태워버렸고, 흰색은 항복과 패배의 상징이라며 유니폼 색상을 노란색으로 바꿔버렸다. 이 노란색 유니폼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브라질에 이 비극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당시 골키퍼로 나섰던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경기 이후 사실상 강제적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고 그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나서지 못했다. 또 바르보사가 흑인이었던 점 때문에 향후 수 십년 간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흑인 골키퍼가 기용되는 일이 없었다. 그 후 그는 다리부상까지 입어 선수 자체를 은퇴했고, 경기 후 40년이 지난 1990년대에는 축구 경기의 해설을 맡으려고 했으나 거절까지 당한데다 1993년에 국가대표 훈련장은 방문하려다 관계자로부터 당신 오면 국가대표팀 부정 탄다면서 대놓고 거절당하기까지 했다.

 

바르보사는 2000년에 죽었는데, 유언으로

 

 

"브라질에선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43년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데 나는 경기 1번 졌다고 50년을 죄인처럼 살았다" 라고 말했다.

 

 

또 다른 브라질 선수인 지지뉴 역시 그 경기가 치뤄진 날짜가 되면 전화선을 끊었는데, 그 날짜가 되면 브라질 전역에서 그때 왜 졌냐며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을 좌절에 빠뜨린 결승골의 주인공인 우루과이의 알시데스 기지아도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 경기가 끝나고 50년 뒤인 2000년대에 브라질에 여행을 갔다가 세관원이 그를 알아보고 "당신이 그때 브라질에 넣은 골 때문에 일어난 일이 우리들에겐 아직까지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모르겠냐" 라고 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64년 뒤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식에 그때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지아를 초청했는데, 이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은 독일에게 7:1로 참패하는 큰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마라카낭의 비극은 브라질인들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으며, 이 때문에 브라질은 축구경기에서 우루과이만 만나면 전의를 불태운다.

 

 

-참고자료: 당시 브라질 국영 라디오 방송의 해설, 국가 연주부터 경기 종료까지 모든 장면이 음성으로나마 기록되어있다.

 

 

다음편 예고: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가 있다?

 

출처 : https://m.fmkorea.com/702398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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