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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차대전 발발 당시의 세력균형의 변화

1차대전의 발발한 계기가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테러리스트에 의해 오스트리아 왕세자가 죽어버린 어이없는 사건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거임.

 

그러면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게

과연 그 전에는 그 정도로 외교적인 분쟁을 촉발할 계기가 없었을까?

왜 이때 이런 사소한 일로 세계대전이 터지고, 그전엔 괜찮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균형을 잡아줄 강대국의 부재로 설명해보려 해. 

그리고 그 이유는 다시 경제발전과 인구증가의 패턴으로 귀결이 되고.

 

 

 

이 표는 각국의 공업 생산량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표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니 상대적인 국력을 평가하는 용도로만 써 주기 바람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image.png 1차대전 발발 당시의 세력균형의 변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독일의 경제적인 비중이 계속 올라가는 게 보일 거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독일이 막 나갔을 때 세력 균형을 잡아줄 나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함.

 

비교를 해 보자면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개쳐바르고 독일 통일을 선포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있어.

image.png 1차대전 발발 당시의 세력균형의 변화

프랑스 황제를 사로잡고, 프랑스 주력군을 대파하고, 파리에서 개선식까지 선포했음에도 독일 통일 + 배상금 크게 삥뜯기 외에 뭘 더 얻어내지는 못했음. 더 나가면 유럽의 세력균형이 무너질 거고, 그러면 영국 같은 나라가 가만히 보지 않을 거거든. 

그래서 프랑스는 와신상담을 해서 1890년 즈음에는 독일 육군보다 앞서게 되지. 경제력의 차이가 벌어져서 우위를 계속 이어가지는 못 했지만.

 

 

 

유럽사에서 영국의 특이한 역할이, 직접적으로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의 영토를 노리지는 않으면서도 대륙의 패권국이 등장하는 건 기를 쓰고 막는다는 것임. 육지에서의 패권을 장악하면 해군에도 힘을 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방법은 영국 대신 병사들을 동원해 피를 흘리게 할 나라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음.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한 역할이지.

이런 나라들은 일단 병사를 동원할 인구빨 + (오랫동안 전쟁할 돈은 없더라도) 징집을 하면 일단 무장은 시켜 놓을 만한 경제력. 

두 가지를 갖추고 있었음.

 

그런 체급 되는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유럽 대륙에서 서로 육군의 향상을 위해 힘쓰는 동안,

영국은 유사시에 밀리는 쪽을 지원할 경제력을 가지고 바다에서 이익을 누리는 것이 영국의 정책이었음.

이런 상황이라면 유럽 대륙의 나라들도 굳이 결과가 뻔한 전면전을 벌일 유인이 떨어졌음.

 

영국의 경제력은 저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1900년대에도 독일을 견제하기에 충분했음.

그런데 대략 1905년 러일전쟁~1차대전 발발 때까지 영국이 뒷받침하는 이런 세력균형이 무너질 여지가 있었음. 그 이유는

 

1. 독일의 인구성장과 공업화 및 프랑스의 상대적인 약화

2. 러시아의 아직은 미비한 공업화

 

가 되겠음.

 

 

 

1번부터 보면, 상대적인 경제력의 차이는 위 표에 나온 것과 같이 벌어졌고 그 원인을 생각해본다면 양국의 출산율 격차가 큼.

- 프로이센 프랑스전쟁이 벌어진 1870년 양국의 인구는 모두 대략 4천만이었던 반면에

- 1차대전 발발 직전에는 대략 4천만 vs 7천만으로 차이가 벌어졌음.

 

게다가 프랑스의 자원 부족 + 중소기업과 농업 등에 대한 선호 등으로 인해 1인당 생산량에서도 좀 격차가 나는 상황이었음.

그래서 프랑스는 (1890년과는 달리) 단독으로는 독일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됨

그래서 프랑스는 러시아에 주목하게 되었음

 

그러면 프랑스 대신 러시아가 총알받이 역할을 할 여유가 되었을까? 그것도 애매함.

당시 러시아는 지금의 아프리카를 뛰어넘는 미친 출산율로 인구 1억을 돌파하는 등 군대 갈 수 있는 젊은이는 많았음.

그러나 공업화가 아직 이를 따라주지 못했고, 1차대전 중에도 병사들에게 지급할 소총이 부족한 등의 추태를 보이게 됨.

 

거기에 더해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인해 전쟁 수행 능력에 제동이 걸림.

(간단히 말하면 공업화 초기의 사회 모순이 쌓인 상태에서 러일전쟁 패배로 인해 불만이 터진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됨)

 

 

 

당시 영국과 프랑스도 러시아가 포텐셜은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특히 프랑스가 열정적이어서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차관을 빌려줘서 철도를 짓게 해 주었음.

러시아 자체적으로도 농업 개혁 및 공업화가 진행중이었고,

러시아 내에서도 '이대로 10년만 가면 볼 만할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음.

 

 

 

하지만 문제는 본격적으로 경제 개발을 이루기까지의 시간 동안

- 더 이상 영국은 자체적인 대규모 육군 없이 자금 지원만으로 세력 균형을 유지할 경제력이 되지 않았고,

- 프랑스는 노쇠하고 뒤쳐졌으며,

- 러시아는 체급에 걸맞게 싸우기에는 경제적으로 미성숙한 상황

 

이 되었다는 것이고, 그 뜻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독일이 한탕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는 것임.

이런 상황이 직접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하면 아니지만,

이런 상황 덕분에 작은 분쟁이 이토록 커질 수 있었는가? 하면 분명히 영향이 있다고 생각함.

 

내가 쓴 말은 다음 책을 많이 참고했으니까 필요하면 보기 바람. (홍보아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물론 이런저런 반박도 환영함.

image.png 1차대전 발발 당시의 세력균형의 변화

 

 

 

(인구와 경제성장의 패턴에 대한 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쓰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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