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오늘 차를 팔았다[발롱도르~]
- 고정닉
- 690
- 28
- 93
아내가 10년 전부터 몰고다니던 차를 팔았다.
진작에 팔았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주차장에 몇달 세워만 놓았다가 지난 주에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팔았다.
중고차 업자가 찾아와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바로 차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몇일 걸릴줄 알았던 거래가 단박에 이루어지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 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지금 가져간대”
차에 담긴 추억 때문인지 못내 아쉬워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쇼핑백 몇개를 챙겨 내려와 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 안을 먼저 비우고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곤 트렁크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빼서 가방에 담으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
아내의 임신을 처음 알았을 무렵, 우리는 클라이밍에 푹 빠져있었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암장으로 퇴근했고, 항상 암벽화와 하네스, 옷, 수건, 줄넘기를 차 뒤에 싣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열어본 차 뒤에는, 그날 그 옷과 신발 장비가 그대로였다.
몇년 전 실어놓았던 그 옷, 그 물건들.
시간이 거기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암장 주차장에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어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다음날 병원에 갔고, 그날부터 온 힘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아이를 키웠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임신 초기에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모성, 부성을 강요하지 말자.
사회적 압력에 굴하지도 말자.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자.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희생하지 말자.
그렇게 서로 다짐하고 또 그렇게 다가올 시간들을 미리 위무했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 몇년 전 그대로 박제된 트렁크의 물건들이
우리도 잊고있던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삶’은 우리의 일상에서 밀려나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집으로 올라와 아내에게 트렁크 안 물건들을 이야기 헀다.
아내는 “그게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네. 진짜 정신 없이 살았다.”라며 웃었다.
내가 물었다.
”너 안녕하니?”
아내가 말했다.
“안녕 못하지.”
......
동화책을 8권이나 읽어주고 나서야 아이가 잠에 들고,
내일 어린이집에 가져갈 것들을 가방에 챙겨 넣은 뒤,
오늘 처음으로 소파에 마음놓고 널부러져서 글을 쓴다.
그렇게 또 하루, 부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