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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폐허: 38라운드 수원-강원전 후기[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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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으니 직을 버리든지 그 이상의 행위로 책임을 져야 할 인간들도 입만 잘 살아서 떠들고 다니는데, 특별한 죄 없는 보통의 서포터 한 사람이 무슨 글이라도 쓴들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저기압

 

다급한 팀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경기였다. 점유율 40.2:59.8, 패스 263:483, 패스 성공률 72:84, 슈팅 7:9, 유효슈팅 3:8. 이것이 수원이 강원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다. 발생할 수 있는 9개의 시나리오 중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길이 4개였다. 다시 그중 3개는 승리하여 승점 3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원이 보여준 모습은 무기력이었다. 내려앉아 겨우 버틴 순간이 많았다. 수비 집중력으로 겨우 버틴 것, 유인수의 헤더가 골대를 맞고 나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짜임새가 부족한 패스가 끊기고 역습을 당하기 시작하면 김대원과 유인수가 이끄는 2선의 위력이 살아났다. 수원의 중원에서 한석종이 예상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고승범-한석종 조합으로 측면과 중앙 모두 빡빡한 강원의 2-3선을 당해내기는 역시 쉽지 않았다. 한석종의 자리를 후반전에 메운 김보경도 딱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 모든 분석을 부질없게 만들 방법은 있었다. 최전방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수원의 고질병이 여기에서 터지고 말았다. 웨릭 포포는 수비수를 끌고 다닐 정도는 되었지만 결정력을 발휘할 그릇은 아니었다. 안병준은 경합에서 밀리고 볼 소유에도 실패하는 등 소리 없이 공격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사니가 조금 살아나니 아코스티가 또 기대 이하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뮬리치는 장점인 킥마저 상실하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정말 오늘 뮬리치는 한숨만 나오는 모습이었다. 최전방에서 압박은 잘 못해주면서 결정적 기회는 허공에 날리니 어찌할 수 없었다. 김주찬은 빡빡한 측면 수비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순간마다 번뜩이는 모습이 있었지만 팀 전반의 공격적 움직임이 침체된 가운데 그것으로 득점을 해낼 수는 없었다.

 

강원에게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움직임을 보여준 선수가 전반전의 손호준, 후반전의 김주찬이라는 아직 신예 딱지가 어울리는 선수들인 것은 수원의 현 주소를 여과 없이 드러낸 현상이다. 그러나 개인기에 의존하더라도 최소의 조직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역시 위협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 최근 몇 경기에서 결과는 잘 들고 왔을지 모르지만 패스 정확도가 유난히 낮았던 수원은 몇 차례 잡을 수 있었던 기회도 스스로 날려버렸다. 어떻게든 하프라인 너머 상대 진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려 했지만 짜임새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볼 돌리기가 많았다. 전체적으로 낮은 속도감으로 진행된 경기는 매우 느슨했고, 강원의 뒷공간을 공략해야 할 수원이 오히려 강원에게 뒷공간을 내주며 역습을 허용했다.

 

가뜩이나 이렇게 공격 전개의 속도가 낮은 경기라면 세트피스라도 노려야 했는데, 문제는 세트피스 상황만이 아니라 경기 내내 상대 진영으로 볼을 보내는 과정에서 제공권 장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볼 소유권을 강원에게 헌납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확보되는 뒷공간 공략이라도 제대로 되면 좋았겠지만 헤더가 아니더라도 볼 낙하 지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경합에서 밀려 볼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도 반복되었다. 강원은 지난 몇 경기에서 보였던 후반전 수비 불안마저 지워낸 모습이었다. 아마 뒷공간을 노리는 수원의 공격 패턴을 읽고 철저히 대응한 듯했다. 여기에 대한 수원의 대응은 후반전 초기에 가동되던 박대원-김주원-한호강-김태환 라인을 김태환-박대원-한호강-정승원으로 교체하고 측면의 공격력을 다시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정승원의 투입이 냉정하게 말해서 손호준이 있던 전반전보다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경기가 내내 저기압이었다. 그것을 필드 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포터석에 있는 팬들은 수원의 전형적으로 안 풀리고 답답하게 승점 못 챙기는 경기를 보면 맥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빅버드 N석의 열기를 부여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 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이 못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 비참한 상황은 없다. 수원FC는 결국 제주와 동점을 만들었다. 짜임새가 한 시즌 내내 제대로 갖추어진 기간이 드물었던 수원의 막판 공세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실 이런 풍경도 시즌 내내 여러 차례 봤는데 왜 익숙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적극적으로 승부를 가져와야 할 경기에서 보여준 밋밋한 경기력, 패배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동석이라는 사람 이름 달고 있는 오물이 "지지는 않았다"는 헛소리를 했나 보다.

 

서포터

 

팀보다 위대한 팬들, 2023년 수원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적어도 이 팀의 프런트, 코치진, 선수단이 보여준 것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고 그래도 코치진과 선수단에게 어떻게든 힘을 불어넣어 38라운드까지 끌고 온 원동력은 서포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팀이 답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던 38라운드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카드섹션, 청백적 우산, 꽃가루 등 수원 서포터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는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런 서포터가 목도하고 끝내 수용해야 하는 결과가 리그 12위, 다이렉트 강등이라는 것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싸늘한 정적이 휩싸이다 온갖 고함과 욕설과 안티콜이 터져나온 빅버드 N석의 모습은 이 결과에 합당한 반응이었다. 무엇을 위해 2만 명이 넘는 팬들이 모였던가. 무엇을 위해 한 시즌 내내 온갖 모욕을 견디며 응원했던가.

 

당연히 경기장 안으로 물품을 투척하는 행위는 특히 그 물품이 홍염이나 연막탄이라면 범죄임은 틀림없다. 법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은 향후 절차가 있다면 감당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참담한 결과를 확인하고도 경기장을 떠나지 못한 빅버드 3면의 수원 팬들의 마음으로는 무엇인들 못했으랴.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처음에 구단 구성원 일동은 센터서클에 도열하고 있었다. 그러나 N석에서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그런 눈치를 봐서였을까, 센터서클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N석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전히 N석과 상당한 거리를 둔 채 도열한 그들을 향한 온갖 고함과 욕설과 안티콜, 나도 그 대열에 포함되었지만 너무나 정당한 것이었노라고 주장하고 싶다.

 

시차를 두고 벌어진 '버막' 사태는 조금 뒤에 언급하기로 하고,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진행된 뒤 허무감에 휩싸인 N석의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겨둔다. N석 상공에 흩날리던 청백적 꽃가루는 서포터의 낭만을 증언하는 마지막 흔적인 듯 바닥에 흩어져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청문회 아닌 청문회를 끝내고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사람들은 겨우 메가폰을 다시 잡은 콜리더에게 집중했다. 콜리더는 어렵사리 말을 이어나갔다. 어려운 시즌을 함께한 지지자 동료에 감사를 전하며, 내년을 향한 기약을 남기며, 구단 측에 팬들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고 확실한 답변을 받겠다며, 콜리더는 어렵게 인사를 마쳤다. "알레 알레 수원"을 외치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그렇게 N석은 겨우 정리되어갔다. 콜리더를 여러 차례 가까이에서 봤지만 직접 악수하고 개인적으로 대화하며 인사를 나눈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감정에 휘감긴 나는 어렵사리 N석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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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

 

이 남자를 논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끔찍한 아비규환, N석 앞에서 펼쳐진 청문회 아닌 청문회 혹은 구질구질한 쇼타임에서 유일하게 본인과 팬 사이에 진심을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염기훈 한 사람이었노라고 단언한다. 대표이사라는 오물에 뒤이어 마이크를 넘겨받고 앞으로 나오는 동안 눈물이 흘러내리는 염기훈을 본 수원 팬들은 절규했다. 나오지 마라, 염기훈 잘못 아니다, 수원의 사나이 염기훈은 수원 위해 왼발을 쓸 거야, 염기훈, 염기훈, 염기훈. 그가 사과하는 것은 도무지 듣고 싶지 않았다. 절규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했을 것이다. 왜 염기훈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사과해야 할 사람,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또 염기훈이 인간방패가 되어 팬 앞에 서서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염기훈과 마주선 팬들은 차마 그의 사과를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사과하는 내내 염기훈 콜이 이어졌다.

 

염기훈은 열네 시즌 동안 수원에 몸 담았다. 작년에 은퇴하려 했으나 일정을 변경했다. 이제 은퇴식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은퇴식을 거행하더라도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염기훈은 김병수 감독 경질 이후 누가 와도 어려운 자리일 수밖에 없던 수원 감독직을 받아들었다. 호사가들 입에서 입을 거쳐 숱한 설이 돌지만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일개 팬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나는 38라운드 프리뷰에서 이미 고백했다. 김병수 감독 경질, 염기훈 감독대행 선임 당시 38라운드 이전에 다이렉트 강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초짜 감독인 만큼 전술적 문제가 분명히 있었고 38라운드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그는 단기간에 놀라운 학습력과 의지를 보여주며 그래도 조기 좌초가 유력했던 팀을 마지막까지 끌고 왔다. 그랬기에 더 비참한 결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랬기에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향후 행보에 대해 팬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정식 감독이 되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이 모양인 프런트, 개런트, 더 정확하게는 오물들, 이런 인두껍 쓴 폐기물을 처리하고 사람다운 프런트를 세우지 못한다면 염기훈도 결국 그 동안 희생된 여러 감독들처럼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사라져야 할지 모른다. 수원 팬들은 전술적 준비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염기훈의 감독 조기 등판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염기훈의 거취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과연 염기훈이 결정할 수는 있을까.

 

오물들

 

프런트니 개런트니 하는 말도 아깝다. 역시나 이런 자들은 인간으로 취급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동물로 취급하자니 동물에게 모욕이다. 역시 오물이라고 지칭하는 편이 적절하다. 살면서 이 정도의 오물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볼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김병수 감독 경질에 항의하기 위해 경질 다음날 빅버드로 향했을 때의 일이었다. 수원 5적 혹은 개랑 5적으로 불리는 작자들이 웃으며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라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 덧붙여 코치 경력을 1년도 채우지 못한 초짜 지도자를 감독대행으로 세운 뒤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무리 지어 점심 먹으러 갈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 유약한 성품이라서 저 오물들처럼 거저 먹는 수준의 억대 연봉을 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오늘이 그 오물들을 비교적 근거리에서 본 두 번째 일이다.

 

작년에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 팀이다. 올 시즌 대행까지 포함하여 네 명의 감독을 썼다. 몇 년째 하강 국면에 있었던 것은 K리그 조금이라도 챙겨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매번 책임은 감독에게 전가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오물들은 오늘 기어이 '버막'으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정말 강등 가능성에 대한 생각 없이 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막중한 경기에 경찰을 고작 1개 중대만 배치되게 했다는 말인가. 그 소식을 접하고 여러 수원 팬들이 코웃음치는 것을 목격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수원 팬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과연 사달이 났을 때 1개 중대 따위로 감당이 될 사람들인가. 달리 말하자면 이 오물들은 구단의 팬덤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전혀 실감하거나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응원하는 기계, 새로운 굿즈가 출시되면 캠핑까지 하며 사는 인간 ATM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확실하다.

 

내뱉으면서 전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말 하나 더 추가한다. 이 따위 오물들의 연봉, 수당, 회식비 등으로 지출되는 금액도 상당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오물들이 삼성이라는 거함에서 임원이나 고위직이랍시고 행세한다. 선수 연봉체계도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나오는 평가이다. 수원이 다른 구단들과 비교했을 때 딱히 예산이 적게 투입되는 구단도 아니다. 그런데 이토록 방만경영을 일삼은 지 몇 해째인데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본사도 거들떠볼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 이것이 한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의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지 주력 사업에서도 잿빛의 현실 혹은 전망이 언론 보도에 오르내리고 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의 모습은 삼성 전체의 압축판이다. 숱한 사고를 치며 명성을 깎아먹고 있는 삼성은 이 사태에서 무엇이라도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니 저 오물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단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오물은 필드 위에서도 '버막' 사태 중에도 도저히 들어줄 가치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가, 그리고 삼성 임원이라는 자가 말이다. 이런 오물이 고위직을 꿰차고 들어앉아 거들먹거리고 정말 필요한 인간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책임은 회피하고 안일하게 호사를 누리는 것이 한국 사회라면, 젊은 세대가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인구 재생산에도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가. 얼마나 많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렸는지 깨닫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이 따위 오물들이 설치는 세상이라니, 설치류도 이 오물들보다는 깨끗하게 살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런 오물들은 한국이 법치와 치안 기능이 그런 대로 잘 작동하는 국가임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내일로

 

경기도, 경기장도, 구단도, 모조리 폐허가 되어버렸다. K리그2도 당연히 사람 사는 곳이고 축구가 있는 곳이다. K리그2로 가는 것 자체가 부끄럽거나 두려운 일은 아니다. 수원 팬들에게 두려운 일은 결국 이대로 계속 가라앉아 아무런 의욕도 없이 과거의 영광만 추억처럼 팔아먹고 살던 끝에 모든 찬사를 과거 완료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오물들이 보여온 행태, 삼성이라는 기업의 최근 성적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오물들은 자리 보전에 급급하고, 삼성은 이제 제대로 챙기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운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강등 이후의 반등은 그리 쉽지 않다. 제주의 사례가 자주 거론되지만 그곳은 모기업 총수의 의지가 확고했다는 점도 역시 잊히지 않고 반박에서 근거로 인용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단의 위상이 하락한다면 더러 유망주 화수분처럼 평가되곤 하는 유스의 위상도 장담할 수 없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결국 내일은 어떻게든 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 내일을 준비하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오물들을 내보낸다. 사람다운 프런트를 구성한다. 방향을 체계적으로 설정한 뒤 그에 맞는 코치진과 선수단을 구성한다. 현재 혹은 미래의 가치, 팬을 향한 충성심이 부족한 선수들을 정리한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쉽다. 그토록 쉬웠다면 저렇게 입만 살아있는 오물들 선에서도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수원 팬들뿐 아니라 K리그 팬들이라면 이런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이번 강등이 수원이 돌이킬 수 없이 추억팔이로 전락하기 시작하는 수렁이 될지, 아니면 완전히 달라진 자신을 보여주겠노라고 당당히 공언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 중심축이 누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을 향한 팬들의 지극히 정당한 분노에 대한 구단의 무응답 혹은 무성의한 대응이 지금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폐허가 재건의 기반이 될지, 아니면 먼 훗날 고고학적 발굴의 대상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마무리

 

격동의 시즌을 거치며 여러 칼럼을 썼다. 나는 속된 말로 '축알못'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축구장에 발 들인 이래 세상과 인생을 다시 보고 배웠노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오늘처럼 참지 못하고 무쌍한 욕설을 퍼부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추억이고, 또 다르게 보면 학습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를 깨닫고 느끼는 것도 중요한 일 아닐까.

 

나는 "프로라는 선언"이 아니라 "프로다운 행동"을 보고 싶다. 나는 직업적 이유로 말과 글을 많이 다루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말과 글 너머의 무엇으로 더 강력한 메시지가 전해질 때가 있다. 한 시즌 동안 경기장에서 그리 자주 볼 수 없었지만 가끔 보인 "프로다운 행동", 그리고 그것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모인 사람들의 열정이 나를 많이도 가르쳤던 것 같다.

 

지금은 참 슬프다. 하지만 행복했다고 말하련다. 행운은 찾아오는 것이지만 행복은 찾아가는 것이라는 어떤 사람의 명언을 들은 적이 있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잘 알아볼 참이다.

 

2023년의 마지막 칼럼을 통해 '축알못'의 모자란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댓글 12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2.02. 23:41
 원정석안전요원
모자란 글들 재밌게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 축잘알이 될 가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년에도 되는 대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댓글
괴즐케사 2023.12.03. 00:20
강등 당해봤던 팀으로 마음속 응어리까지 다 울음으로 흘려보내시고 화도 내시고 다 털어내셔야만 내년에도 수원을 위해서 응원할 원동력이 될겁니다 수원이라는 자존심을 다시 살리러 1부로 올라올거라 확신합니다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2.03. 00:22
 괴즐케사
감사합니다. 아직 어떻게 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시간 지나며 울고 웃고 온갖 쇼를 하다 보면 좀 추스를 수 있겠지요. 수원이 다시 올라가서 만나는 쪽으로 잘 밀어보겠습니다...
댓글
리무루 2023.12.03. 00:57
힘을 내라 수원!!

적폐 개런트는 나가고 다시 일어서서 부활하는 축구수도 수원을 기대합니다.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2.03. 01:02
 리무루
감사합니다. 축구수도가 고대 유적이 아니라 북적이는 현대 도시이기를 바라며 수련 좀 하겠습니다.
댓글
RAFA 2023.12.03. 01:14
고생했소. 지지자여.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몇시간째 잠이 안오네.
내일은 오는데 그 내일은 내가 희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보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가네.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2.03. 14:42
 트칸나양아지
참 많은 걸 본 하루였고
참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어
댓글
너의환희 2023.12.03. 11:46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이상적인 축구팀, 진정으로 실패하는 축구팀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통하는 지점들이 많은 것 같네요.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3.12.03. 14:43
 너의환희
감사합니다. 무엇이 좋은 팀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망하는 팀인지는 잘 볼 수 있는 시즌이었어요. 이 쓰디쓴 경험이 영영 독으로만 남지 말고 약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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