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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리뷰/리뷰 2부리그만도 못한 자세로 가장 중요한 경기를 대하는 팀에게 미래가 있을까

 

 전북전 전날에 2부리그 경기를 하나 보러 갔다. 워낙 심심했고, 그날 저녁에 있던 아시안게임 결승전이나 다음날 예정됐던 전북전이 모두 너무 떨려서 긴장 풀 겸 다녀왔다. 해당 경기의 원정팀을 예전부터 긍정적으로 지켜봤던 것도 보러 간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치열한 승부를 기대했건만 전반에는 홈팀 성남이 두 번이나 골망을 갈랐고, 후반 초반에는 원정팀 충남아산의 수비수 한 명이 퇴장을 당하며 싱거운 승부가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 글이 칼럼도 서울에 관련된 무언가도 아니다. 서울 칼럼에 쓸 만한 장면은 퇴장 이후에 나왔다. 충남아산이 10명으로 거의 30분 동안 11명의 성남을 몰아붙인 것이다. 단순한 내 느낌이나 감정의 영역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막판이 되니 두 골을 이겼던 성남 서포터즈 블랙리스트가 응원가나 힘을 내라는 말이 아닌 “정신차려 성남!”을 외쳤기 때문이다. 비록 결과를 바꾸긴커녕 골을 기록하지도 못했지만, 그날의 충남아산은 ‘프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경기는 상대의 실력이 더 좋거나 운이 없어서 질 수도 있다. 1위팀도 무패를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팬을 받기로 결정했다면 현격하게 지고 있는 걸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뛰고 있다는 걸 그 팬들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

 

 

 토요일의 탄천 S석은 11위팀이 경기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난 뒤 야유나 체념을 하지 않았다. 박수뿐이었다. 박동혁 감독의 콜을 진행하기도 했다. 신생팀이니 팬덤이 유순해서 그랬는지 경기 내용에 나름의 감명을 받아서인지는 충남아산 경기를 중계로나 많이 봤지 직관을 많이 간 건 아니니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경기를 지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팬들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지켜본다는 사실을 안다는 걸 알 수 있는 정도의 경기를 한다면 최소한 야유와 고성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 날 상암에서는 똑같이 0:2로 경기를 패배한 팀이 나왔다. 그러나 서포터의 반응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FC서울은 퇴장을 당하지 않았고, 전반부터 2실점한 채 무기력하게 경기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팬들의 반응은 야유와 이미 7위 위로는 갈 수 없기에 늦어버린 정신 차리라는 비명이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 걸까. 단순히 몇 년 되지 않은 팀의 팬들은 과격하지 않고 십수년을 응원해온 사람들은 악만 남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전혀 아니다. FC서울은 지고도 최소한 험악한 반응은 듣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팽개쳤다. 첫 실점 이후 이렇다 할 공격 찬스조차 만들지 못했고, 두 점을 뒤진 팀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상대의 발 빠른 선수들에게 호되게 당하며 후퇴만 했다. 그나마 있던 세트피스 또한 박스 밖으로 날아가는 부정확한 크로스나 골대 안으로 가지 못하는 각종 슛을 통해 날리고 말았다. 상대팀의 선수들은 동료가 사소한 실수만 해도 소리치며 좋은 경기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표출했고 서울 선수들은 실점 이후에도 공을 앞으로 보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상황을 매우 침착하게 받아들였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경기는 질 수도 있다. 전력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고 운이 없을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심판이 정당한 골을 무효 처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를 지는 것과 지는 경기에서 체념하는 건 명백히 다른 문제다. 팬들은 당연히 이기고 싶어서 경기장을 찾겠지만, 그렇다고 이기지 못하면 무조건 화를 내고 저주하는 건 아니다. 질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는 걸 경기장을 찾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암 N석에서 나온 야유의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결국 태도에 있다는 게 이 글의 생각이다. 전반부터 뒤집는 것은 고사하고 따라갈 수도 없는 차이를 내준다 해도 선수가 최소한 우리만큼 승부에 간절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면 팬들은 얼마든 박수를 칠 수 있는 존재다. 애정에 기반한 관계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따라가지 못한다 해서 자신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건 지켜보는 사람들이 화를 낼 만한 일이다. 끝나기 전에 포기해서 은메달을 딴 선수도 온갖 조롱을 받는데, 끝나기 전에 포기해 7위(진행 중)가 된 팀이 욕을 듣는 건 당연한 처사 아닌가. 결과도 물론 중요하고 전북전은 그게 충족되지 않았기에 무슨 내용이 나왔어도 분위기가 어두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코어 이전에 “끝까지 포기 말고 힘을 다해 싸워라”는 챈트가 지켜졌는지 모를 경기를 보게 되면 누구나 화를 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동기부여가 있어도 이따위로 하는데, 그것도 없는 파이널B 경기가 얼마나 끔찍할지 모르겠다. 볼 이유가 없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지인과 주고받은 이야기다. 서울이 한참을 뒤졌을지언정 따라잡아서 완주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파이널 B그룹으로 떨어졌대도 이런 이야기를 할 팬은 없었을 것이다. 직접 뛰어야 하는 선수들이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우리만큼은 간절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진 팀은 순위로만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을 준다.

 

 

 더 큰 문제는 절망만 주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선수단으로, 그나마 발버둥치는 선수들은 은퇴가 그리 멀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2024년에는 6개월짜리 황의조가 없다. 경기가 잘못되면 사과하고 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 선수들은 재계약을 할지 알기 어렵다. 그나마 부산에서 잔여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가 아직 젊고, 임대 연장옵션은 파악되지 않았으며 이런 절망적인 팀에 계속해서 애정을 보낸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번 시즌은 서울의 문제가 단지 순위뿐은 아님을 알게 해준 시즌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끝난 시즌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이 팀의 진짜 문제는 프로축구단이 프로답지 않음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거다. 그걸 어제가 돼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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