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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축구 칼럼/프리뷰/리뷰 어느 못난 수원 팬이 검은 옷을 준비하는 이유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시인 신경림의 시 구절이자 책 제목이다. 수원 팬이 요즘 딱 그렇다. 보통의 한국 사람, 특히 리그를 챙겨보지 않는 사람 기준으로 본다면 이런 못난 놈들이 또 없다. 왕년에 명가였다는데 건물 기둥이 다 뽑히고 지반마저 무너지는 지경인데 몸과 마음 다 상해가며 이런 집을 계속 드나들고 있으니 말이다. 급기야 이제 이 팀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똑같이 몸과 마음 다 상해가며 이런 집을 계속 함께 드나드는 동료들 때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수원 팬은 지금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울고 싶을 때 같이 울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화내고 싶을 때 같이 화낼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그러니 흥겹지 않을 수가 없다. 기저질환처럼 자리잡고 있는 팀을 향한 울분과 비애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축구를 그만 볼 수도 없고 팬 노릇을 관둘 생각도 없는 못난 수원 팬은 대전 원정을 준비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레알 수원'이 만들어지고 있는 나만의 FMM을 몇 시간 동안 진행하다 몇 시간 전 청백적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팀이 지금 초상집 같은 상황인데 검은 옷을 입고 응원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글이었다. 그런 옷도 굿즈로 만들어 팔까 두렵다고 우스갯소리로 댓글을 달았다. 그러고 몇 시간 지난 뒤 그 글이 뇌리에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래, 이건 잠깐의 농담으로 취급할 아이디어가 아니다. 2023년 9월 23일, 퍼플아레나 원정석에 검은 옷을 입고 가겠노라.

 

강등권에 있으면서 이미 안정권에 접어든 것처럼 안일하게 뛰던 선수들은 팬의 마음 속에서 죽었다. 그들의 죽음을 기념하며 이제 자신을 경기에 오롯이 바치는 선수들의 새롭고 위대한 탄생을 기다리겠다.

 

작년부터 팀의 병색은 완연했다. 올해 스스로 쇠락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소생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 남은 경기들에서 어떤 소생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면 검은 옷은 상복이 될 것이다.

 

좀처럼 가져오지 못하던 승리를 가져오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승리를 향해 모두가 모든 것을 불살랐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경기를 보여줘도 좋다. 팬의 기대가 경기장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걸 몇 번이라도 보고 싶다. 그 순간 검은 옷은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망자의 날' 같은 축제의 드레스코드가 될 것이다.

 

K리그의 팬과 시청자 여러분. 다가오는 토요일, 퍼플아레나 원정석에 검은 옷이 많이 보인다고 다른 팀 팬들이 많이 간 것처럼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수원 팬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검은 옷이 상복일지 축제의 드레스코드일지는 수원 팬의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검은 옷을 준비하고 있는 나도 이 옷이 어떤 쓰임새로 결정될지 모른다. 그저 어디라도 꿈속이라도 따라갈 뿐이다.

댓글 1

best 기성용 2023.09.20. 09:41
??? 작년 써드 입고 왔네
best 기성용 2023.09.20. 09:41
??? 작년 써드 입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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