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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축구 칼럼/프리뷰/리뷰 금요일에 술 마시고 새벽에 써보는 글[발롱도르~]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중앙공미를 매우 좋아한다.

 

축구의 템포가 빨라지고, 압박이 거세지며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는 사실상 사장된 이 마당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런 절멸위기종이다.

 

크루이프가 생전에 했던 현대축구 비판 중 이런 말이 있다.

 

“현대 축구는 전술과 체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며 역습을 노리는 전술에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체력과 전술, 경험만이 중요할 뿐이다.”

 

당연하지만 축구는 한 명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기에 여럿이서 하나의 철학을 공유해 한 몸처럼 움직일 때 더욱 큰 위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선수 시절 토탈 사커를 경험했고,감독 시절 보여준 크루이프이즘과 언젠가 다가올 “전 포지션 미드필더 화”를 예언한 크루이프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크루이프가 왜 이런 현대 축구를 비판(혹은 비난)했을까.

 

간단하다, 철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지, 기계를위한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계를 위한 철학은 결국 기계를 다루는 인간의 철학이 되므로.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자면 크루이프가 원한 전술과 선수의 조화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되, 그안에서 선수들이 생각하며 자유롭게 본인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축구를 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a를 입력하면 b가 도출되는 일대일 대응관계의기계적 인과성이 아니라, a라는 랑그와 이를 인지하는 무수한 파롤 b들을 통해 창발적인 플레이를 도출해내는 이른바 변증법적인 축구.

 

(크루이프는 이 방향을 유도하기 위해 시즌 운영 시스템 요소까지 언급했지만, 하려는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므로 넘어간다)

 

비단 크루이프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황금 사중주 중 하나였던 소크라테스도 그랬고, (반은 노이즈 마케팅일지도 모르는) 호나우두의 최근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체력괴물 시대에도 적응하고 이 시대에 알맞는 기술을 뽐내는 테크니션은 존재하며, 그런 선수는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소수는 축구판 전체를 대변하기엔 너무 국지적이다.

 

결국 많은 선수들은 본인이 생각해서 풀어가야할 부분까지 감독의 전술에 의탁해 플레이를 해나가게 되고 그것이 성과를 얻으면서 그 시스텝이 유지되는 동력에 일조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성적을 보고 즐거워하고, 팀의 기계적인 움직임이 정교할 수록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전술 하나가 통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그 전술이 통할 때까지 박치기를 하는 양상을 보면서 피로를 느끼게 되고, 이내 눈을 감는다.

 

그리고 감은 눈에서 우리는 꿈을 본다. 하나의 선수가 전술과 전술이, 압박과 압박이 부딪쳐 교착상태를 이루는 그 사이에 혼자의 창의력으로 균열을 내는 꿈을.

 

이런 꿈을 보여주는 선수를 브라질은 가장 빛나는 별, 스텔라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그 스텔라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발생할 때 가장 찬란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이제 우리 팀으로 넘어갈 차례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한승규에 대해 여러비판글을 썼고, 여러 아쉬움을 담은 글을 써왔다. 그렇기에 이런 내가 중앙 공미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낸 것에 대해 ‘네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들을 뽑을 때면 내 열 손가락 안에는 항상 그런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결코 적지 않은 비율로.

 

아울러 나 역시 서울팬이고, 한승규가 중앙 공미에 섰던 2020년 김호영 시절 잠깐 보여준 환상에 빠진 적이 있다(비록 그 이후 조오오오오온나 개못해서 감독은 빤스런하고, 이후 선수 본인도 증명한 게 하나도 없기에 선수가 잃어버린 자리지만).

 

이 자리를 앞으로 어떤 선수가 서게 될 지는 모른다. 다시 한승규가 설 수도 있고, 다른 선수가 꿰찰 수도 있고, 혹은 두 번 다시 중앙 공미를 사용하는 전술이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한승규가 됐건, 다른 선수가 됐건, 

언젠가 ‘잘하는’ 중앙 공미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잘하는’

단순히 소화할 줄 아는 게 아닌

댓글 5

깐풍기 2023.07.01. 07:08
술술 읽혔다 재밌는 글이네
댓글
블루스 2023.07.12. 02:35
펩이 축구를 ㅈㄴ게 진화시켰지만 그 옛날에 느꼈던 낭만을 뭔가 다 베려놓은 느낌
댓글
vV우리주찬쿤Vv 2023.07.12. 08:55
특별한 부품 하나보다
잘되는 부품 여러개있는거로 점점더 갈거같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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