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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1960년대 수상 총 결산[발롱도르~]

안녕하세요, 축구 역사 매니아 레드 아카이브입니다. 

 

이번에 저와 같은 축구 역사 매니아이자 축구 블로거이신 토르난테님과 함께 대형 프로젝트를 합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가 속한 크리에이터 팀, FCU의 이름을 걸고 연도별로 가상의 상을 시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연도별 최고의 자리에게 주는 상이 많지 않았으며, 상이 있어도 당시에 상을 받은 선수들의 명예와 인지도가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수상 결과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있어도 이를 재평가한 자료가 적어서 '과거에는 누가 최고였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축구 역사를 연 단위로 끊어서 최고의 자리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하고, 여러 부문에서 최고를 직접 선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평가 부문은 연도별 최고의 선수, 최고의 감독, 특별상(최고의 골키퍼, 최고의 유망주,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최고의 공격수, 최고의 주장),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최고의 팀이며 최상위권의 순위와 후보 노미네이트까지 진행합니다. 

 

시작은 1950년부터이며, 하는 김에 2022년까지 쭉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뒤에는 더 이전 시대에도 동일한 평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저희 평가자 2인의 주관(축구를 보는 관점,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등)이 반영되었으며 각 평가자의 성향은 글 하단에 간략히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각자의 주관에 맞게 스스로 평가해보시면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저희도 그러한 의견 교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연도별 최고의 선수는 두 평가자가 합동으로 평가하였고, 최고의 감독, 특별상,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은 토르난테님께서 맡아주셨고 최고의 팀은 제가 맡아서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설명을 비롯한 아래의 본문은 토르난테님께서 작성하셨고 서문과 공유는 제가 전담하였습니다. 

 

그럼 즐거운 감상과 소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1960년대가 마무리된 기념으로 1960년대 수상의 총 결산을 진행해보겠습니다. 

 

 

블로그 원문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m/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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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49-50 시즌부터 1958-59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50 시즌부터 1959 시즌까지로 잡았으며 1950년 1월 1일부터 1959년 12월 31일까지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포인트 합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3-1. 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선정- 1p 추가
최종 노미네이트 30인 선정- 1p 추가
토르난테 선정 TOTY 선정- 1p 추가 

올해의 선수 10위 선정- 1.5p 추가
올해의 선수 9위 선정- 2p 추가
올해의 선수 8위 선정- 3p 추가
올해의 선수 7위 선정- 4p 추가
올해의 선수 6위 선정- 5p 추가
올해의 선수 5위 선정- 6p 추가
올해의 선수 4위 선정- 7p 추가
브론즈볼 선정- 9p 추가
실버볼 선정- 10p 추가
골든볼 선정- 12p 추가

*특별상 부문은 추가 점수 없음

즉 골든볼에 선정하면 앞 최초 노미네이트, 최종 노미네이트, TOTY는 무조건 선정되기에 최대 15포인트를 받는데 이게 한 해 만점.

3-2. 감독

골든 바통- 10p 추가
실버 바통- 6p 추가
브론즈 바통- 3p 추가
노미네이트- 1p 추가

3-3. 클럽

골든 팀- 5p 추가
실버 팀- 3p 추가
브론즈 팀- 1p 추가

3-4. TOTD 선정 방식

모든 부문은 상술한 포인트 부분을 따릅니다.

골키퍼-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풀백- 라이트 풀백과 레프트 풀백 각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단 양측면으로 분류된 선수는 좌우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지만 한쪽 측면으로 고정된 선수의 경우에는 해당 측면에서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센터 하프-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윙 하프- 리이트 하프와 레프트 하프 각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단 양측면으로 분류된 선수는 좌우은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지만 한쪽 측면으로 고정된 선수의 경우에는 해당 측면에서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인사이드 포워드- 최고 득점자 2명 선정

아웃사이드 포워드-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 각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단 양측면으로 분류된 선수는 좌우은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지만 한쪽 측면으로 고정된 선수의 경우에는 해당 측면에서만 선정할 수 있습니다.

센터 포워드-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감독- 최고 득점자 1명 선정

3-5. 플레티넘 보이 및 플레티넘 암밴드 선정 방식

골든 보이 수상자 10명 중 신인상 수상 해에 퍼포먼스가 가장 뛰어난 선수 한 명에게만 수상합니다.

4. 이번 랭킹의 선정 기준은 특별상과 최고의 국가대표팀 부문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포인트 합산으로 선정합니다.

5. 건조폼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입니다.

 


1. Red Archive 선정 1959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플래티넘 클럽팀

 

 

 

 

산투스 FC

 

업적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8회 우승 (1960, 1961, 1962, 1964, 1965, 1967, 1968, 1969)
토르네오 히우상파울루: 3회 우승 (1963, 1964, 1966)
브라질 전국 리그: 6회 우승 (1961, 1962, 1963, 1964, 1965, 1968)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 (1962, 1963)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 (1962, 1963)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1회 우승 (1968)


1960년대 최고의 클럽 팀으로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왕조 중 하나로 불리는 "우스 산타스티쿠스" 산투스를 선정했다. 1960년부터 1969년까지 10년 동안 7번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6번의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3번의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우승,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탈 컵 우승, 1번의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업적을 달성했다. 

펠레, 주제 마시아 페페, 도르발, 지투, 멩가우비우, 마우루 하무스, 쿠치뉴, 지우마르, 오를란두 페사냐 등 당대 브라질 수위급의 선수들을 앞세워서 경기를 지배하고 화려한 공격으로 상대를 부수는 이상적인 축구를 실현했다. 경기당 평균 2.5골 이상을 득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62년에는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며 축구 역사상 최초로 전관왕에 오르는 위엄을 보였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몇몇 대회에 불참하면서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친선 경기를 가졌고 이러한 혹사 속에서도 브라질 무대에서 강력함을 유지했다. 만약 제대로 된 관리를 받으며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면 더 많은 우승을 이뤄냈을 것이다. 

 

1위 플래티넘 국가대표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업적

1960 타사 두 아탈란티코 우승
1962 칠레 월드컵 우승
1962 타사 오스발도 크루즈 우승
1963 로카 컵 우승
1968 타사 오스발도 크루즈 우승

 

1960년대는 브라질의 시대였다. 브라질 땅에서는 화수분처럼 최고의 재능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모인 브라질 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으며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대표팀이었다. 막강한 전력을 갖춘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1962년 월드컵을 우승하였다. 비록 10년 동안 메이저 대회 우승은 1회에 불과하지만, 그 우승을 통해 세계 축구의 패권이 브라질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에 가치가 높다. 브라질은 명실상부 1960년대 최강의 국가대표팀이었으며 선수층과 리그의 수준도 정상에 오른 엄청난 축구제국이었다.

 


2.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골키퍼

 

 

 

이름: 레프 야신
출생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소련
평가 기간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1950년대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던 야신은 1960년대에는 한층 더 발전한 활약을 펼치며 1960년대에도 지난 10년간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1966년 소련 올해의 축구선수 수상자 야신은 1963년에 소속팀의 소련 탑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지난 10년간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며 당대 소련 탑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소련 대표팀에서도 초대 UEFA 유로 우승 및 유로 1964 준우승을 이끌며 두 대회에서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련 대표팀의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소련 스포츠계의 영웅으로 군림헸다.

 

 

1960년대 최고의 골키퍼 선정 결과

 

 

 

 

 

센터백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평가 기간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53년에 헝가리에게 대패한 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은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 원인은 지나치게 클래식한 고전적인 축구에 있었다. 그러나 자국에서 열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크게 반등했는데 이 중심에는 클래식한 고전적인 축구라 불리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신개념의 축구를 펼친 바비 무어가 있었다.

위대한 주장 무어는 최후방 수비수였음에도 적극적인 롱패스로 팀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하며 잉글랜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도 1963-64 시즌 FA컵 우승과 1964-6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센터백

 

 

 


이름: 로베르토 페르푸모
출생일: 1941년 10월 3일
국적: 아르헨티나
평가 기간 소속팀: 라싱 클루브


아르헨티나에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2선 플레이메이커와 최전방 공격수가 많았다. 그에 비해 브라질의 도밍구스 다 기아, 우루과이의 호세 나사치나 호세 산타마리아에 견줄만한 월드클래스 수비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령관이라 불리는 라싱 클루브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페르푸모는 지금까지의 아르헨티나 센터백들과는 달랐다.

라싱 클루브의 사령관 페르푸모는 소속팀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67년에는 남미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침체기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리더로 견고한 수비를 펼치며 선전했다. 잉글랜드를 너무 일찍 만난 게 아쉬운 대목이었지만 말이다.
 

 

1960년대 최고의 센터백 선정 결과

 

 

포인트와 TOTY 선정 횟수가 모두 동률인 경우에는 작성자가 임의로 선정했음을 밝힌다.

 

 


라이트백

 

 

 

 

이름: 자우마 산투스
출생일: 1929년 2월 27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50년대에도 세계 최고의 라이트 풀백 자리에 선정되었던 자우마 산투스가 포백의 시대에서도 특유의 바위와 같은 수비력과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에 올랐다.

그의 소속팀 파우메이라스는 산투스의 대항마로 이름을 날리며 1960년대 브라질 전국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1962 칠레 월드컵 우승에 기여한 부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레프트백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50년대에도 니우통 산투스나 브란코 제베치와 같은 선수들이 풀백의 공격 가담을 이끌었지만 그 누구도 공격 전개 상황에서의 정교함에 한해서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레프트백 지아친토 파케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끈 에레라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던 파케티의 체계적인 오버래핑은 1960년대 중반을 인테르의 시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1965-66 시즌에는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해결사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침체기에 있던 아주리에서도 UEFA 유로 1968 우승을 이뤄낸 파케티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멕시코에서 열리는 월드컵뿐이다.

 

 

1960년대 최고의 좌우 사이드백 선정 결과

 

 

 

 

 

인콘트리스타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평가 기간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약관의 젊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두 세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골키퍼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동시에 바비 찰튼과 같은 플레이메이커를 완벽하게 봉쇄하면서 오크비르크와 지지를 능가하는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겸비했다면 믿겠는가?

선수 생활 6년 차에 벌써 역대 최고의 하프백으로 평가받는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가능했다. 베켄바우어는 하부 지역리그에 있던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이 1964-65 시즌 지역리그 우승으로 승격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1968-6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포함해 DFB포칼 3회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상술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서독의 결승행을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최고의 인콘트리스타 선정 결과

 

 

 

 

 

플레이메이커

 

 

 

 

이름: 바비 찰튼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평가 기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비 무어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잉글랜드 축구의 특징은 클래식함이다. 클래식한 축구에서는 플레이메이커는 수비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라운드의 노동자는 그런 틀에 갇히지 않았다.

2선 플레이메이커였음에도 경기장 전역을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볼을 빼앗고 받았던 찰튼의 삼사자 군단은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유로에서도 3위에 오르며 축구 최강국 브라질의 대항마로 우뚝 섰으며 그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58년의 악몽을 극복하고 풋볼 리그 2회 우승과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으로 부활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찰튼은 엄청난 공을 세우며 1965-66 시즌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1960년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선정 결과

 

 

 

 

 

라이트윙 포워드

 

 

 


이름: 가린샤
출생일: 1933년 10월 28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보타포구, 코린치안스, 포르투게자 카리올라, 아틀레티코 후니오르, 플라멩구


소아마비로 인해 양쪽 다리의 길이가 크게 다른 사람이 1962년 한 해만큼은 펠레를 제치고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렸다. 축구선수로 뛰는 것부터 상상이 가지 않았던 조건에서 축구의 신이라 불렸던 펠레보다 잠시나마 위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소설이자 전설로 느껴진다.

하지만 가린샤의 이 신화는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가린샤는 도리어 양쪽 다리가 크게 다른 점을 이용해 자신만이 할 수 있었던 드리블을 창조했고 그 드리블에 수많은 수비수들이 썰려나갔다. 1962년 보타포구의 6관왕을 이끈 가린샤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펠레가 부상으로 빠진 암울한 상황에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우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레프트윙 포워드

 

 

 


이름: 조지 베스트
출생일: 1946년 5월 22일
국적: 북아일랜드
평가 기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3-64 시즌, 만 17세의 자유분방한 윙어는 유나이티드의 주전으로 나섰다. 마치 산투스의 펠레처럼 빠르게 주전자리를 꿰찼으며 그다음 시즌에는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했으며 1968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로 공인받았다.

이 이야기는 천재적인 드리블과 센스 넘치는 킬패스, 그리고 준수한 득점력을 겸비했으며 좌우 양쪽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인 조지 베스트의 이야기이다. 어린 나이부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으로 올라선 베스트는 유나이티드에서 풋볼 리그 2회 우승과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1967-68 시즌 리그 득점왕과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천재의 품격을 보였다.

 

 

1960년대 최고의 좌우 윙 포워드 선정 결과

 

 

 

 

 

센터 포워드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산투스 FC


펠레를 빼놓고 이 주제를 논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타공인 축구황제 펠레는 산투스에서 1960년대에만 22회의 공식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수많은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5개의 친선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비록 부상으로 초반에 이탈했지만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펠레는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대표팀과 산투스를 합해 공식전 409경기에 출전해 457골을 득점했으며 비공식전을 포함하면 675경기 725골을 득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센터 포워드

 

 

 

 

이름: 에우제비우
출생일: 1942년 1월 25일
국적: 포르투갈
평가 기간 소속팀: SL 벤피카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괴력의 득점력의 사나이 에우제비우를 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리그 득점왕 5회, 유러피언 컵 득점왕 3회, 그리고 타사 포르투갈 득점왕 5회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총 14회의 득점왕에 오른 에우제비우는 실제로도 슈팅 기술만큼은 펠레와 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강력한 득점력을 바탕으로 에우제비우는 벤피카에서 정규리그 7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3회 우승, 그리고 타사 데 오르나 데 리스본 5회 우승과 1961-6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벤피카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60년대 최고의 센터 포워드 선정 결과

 

 

 

 

 

1960s TOTD 베스트 일레븐

 

 

 

 

 

1960s TOTD 세컨드 일레븐

 

 

 

 


3. 토르난테 선정 1960년대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글러브

 

 


이름: 레프 야신
출생일: 1929년 10월 22일
국적: 소련
평가 기간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보이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평가 기간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60년대 플레티넘 보이에는 찰튼마저 무력화시킨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야신을 당황시킨 중거리 슈팅, 그리고 팀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천재 미드필더이자 1966년 골든 보이 수상자인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뛰며 승격팀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3위와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대표팀에서도 서독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아군의 골대부터 상대의 골대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했는데 첫 경기 스위스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음에도 멀티골을 득점하는 등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5-0 대승을 이뤄냈다.

토너먼트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펼치며 우루과이전에서는 페드로 로차를 막아냄과 동시에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했으며 소련전에서도 야신의 완벽한 선방을 뚫어내고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하며 결승진출을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도 상대의 에이스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지워냈지만 연장 혈투 끝에 아쉽게 패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소파스코어 평점 8.15점을 받으며 바비 무어보다도 높은 평점을 받았음은 물론 소파스코어 포함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6개 매체에서 모두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미드필더 부문 월드클래스 등급과 센터백 부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동시에 받았다.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쉴드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평가 기간 소속팀: 인테르 밀란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렌즈

 

 

 

이름: 바비 찰튼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평가 기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에로우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산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플래티넘 암밴드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평가 기간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역사적으로 항상 강력한 전력을 구성했음에도 클럽에서의 라이벌리가 타국에 비해 과해 대표팀의 조직력에도 영향을 미쳐서 조직력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웨스트햄의 주장 바비 무어는 대표팀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아울렀으며 맨유의 주장 바비 찰튼과 리즈의 터줏대감 잭 찰튼 마저도 그를 리더로 인정하며 충실하게 따르게 했으며 조직력 문제가 사라진 잉글랜드 대표팀은 효율적이며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날개 없는 기적을 이뤄내는데 일조했다.

웨스트햄에서도 어린 나이부터 주장 완장을 찬 바비 무어를 1966년을 넘어 1960년대 최고의 주장으로 선정한다.

 

 

공로상: 축구 외교관상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산투스 FC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을 앞두고 지역예선 과정에서 FIFA 측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하나로 묶어서 티켓 1장을 주고 지역예선을 치르도록 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아프리카의 15개 국가가 모조리 기권하며 아프리카 축구계와의 교류가 끊길 위기에 쳐했다. 그러나 펠레의 산투스가 1967년에 세네갈과 가봉, 콩고민주공화국, 코트디부아르, 콩고를 방문해 친선 경기를 치르며 아프리카 대륙과 다른 대륙의 축구 교류가 재개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1969년에도 콩고와 콩고민주공화국, 그리고 알제리, 가나, 니제르 등을 방문하며 친선 경기를 치르며 아프리카 대륙과의 축구 교류에 물꼬를 텄다.

이후 FIFA는 1970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게 1장씩의 티켓을 지급했으며 아프리카 대표로 모로코가 월드컵에 참가한다. 아프리카와 세계 축구계의 교류의 장을 다시 열었으며 아프리카인들의 영웅이 된 펠레에게 공로상인 축구 외교관상을 수여한다.

 

 

공로상: 영웅상

 

 

 

이름: 자이메 그라샤
출생일: 1942년 1월 30일
국적: 포르투갈
평가 기간 소속팀: 비토리아 세투발, SL 벤피카

 

1966년 12월 5일, 벤피카 구단에서 관리하는 공중목욕탕에서 욕조 안쪽에 수중마사지를 설치했는데 이 욕조가 갑작스레 누전이 되어버리며 7명의 선수들이 전기충격에 습격당했다.

그중 에우제비우, 자이메 그라샤, 조아킴 산타나는 서둘라 빠져나와 화상에 그쳤지만 뒤늦게 행동했던 네 명의 선수는 의식을 잃은 채 욕조에 둥둥 뜬 상태였다. 이들을 구한 건 프로 데뷔 이전 전기 기사로 일했던 자이메 그라샤로 욕조에서 빠져나온 뒤 신속하게 욕조의 전원공급기를 차단하여 네 명의 선수 중 루시아누 페르난데스를 제외한 세 명의 선수들의 목숨을 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자신이 가진 기술로 사고로부터 여러 사람을 구한 영웅인 자이메 그랴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에게 공로상인 영웅상을 수상한다.

 


4. 토르난테 선정 1960년대 최고의 축구감독

 

 

1960년대 최고의 축구감독 선정 결과

 

 

 

 

토르난테 선정 1960년대 플래티넘 바통

 

 


이름: 엘레니오 에레라
국적: 아르헨티나, 프랑스
평가 기간 소속팀: 인테르 밀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AS 로마

 

업적

FC 바르셀로나

1959-60 라리가 우승
1958-60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인테르 밀란

1962-63 세리에 A 우승
1963-64 유러피언 컵 우승
1964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4-65 세리에 A 우승
1964-65 유러피언 컵 우승
1965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5-66 세리에 A 우승
1966-67 유러피언 컵 준우승

AS 로마

1968-69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60년대 최고의 감독에게 수상하는 플래티넘 바통은 포인트 합산 결과 엘레니오 에레라가 선정되었다.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라리가 2연패에 성공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까다로운 강팀들을 여럿 만났음에도 16강 AC 밀란과의 두 경기에서는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했으며 홈에서는 5-1로 승리하며 도합 7-1 대승을 이뤄냈으며 8강에서는 잉글랜드의 제왕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 만나 홈에서 4-0 완승을 거뒀음은 물론 원정에서도 5-2 대승을 거두며 도합 9-2 대승을 이뤄냈다. 비록 숙적 레알 마드리드에게 모두 지며 4강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승승장구해서 인테르 밀란을 홈에서 4-0, 원정에서 4-2로 대파했으며 4강에서는 베오그라드 연고의 올스타팀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 1차전 버밍엄 원정에서도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하며 홈에서의 대승의 기반을 쌓으며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으며 구단측이  남미와 헝가리에서 여러 용병을 영입했는데 문제는 한 경기에 기용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수는 제한된 상황에서 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남미의 용병 에바리스투와 에울로히오 마르티네스를 중용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는 코치슈와 졸탄 치보르를 중용하는 이른바 로테이션 제도를 최초로 시도했다.

인테르 시절에는 라리가와 다소 다른 세리에 A 무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적응을 마친 뒤에는 이탈리아산 카테나치오와 자신의 스위칭 플레이를 결합해 원조보다 더 원조답고 정교한 카테나치오를 들고 나왔는데 파케티의 좌측면 오버래핑과 자이르 다 코스타의 우측면 수비가담을 토대로 변화무쌍하게 상대를 공략했으며 또 막아내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3-64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피하며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자이르 다 코스타를 토르난테, 즉 수비형 윙어 역할을 맡기며 공격형 레프트백 파케티와의 균형을 맞췄으며 최대 여섯 명이 수비하는 견고한 수비 전술을 만들어내며 유럽 무대와 세계 무대를 평정하며 자신의 시대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1964-65 시즌에는 변형 카테나치오를 앞세운 인테르는 뛰어난 수비력은 물론 리그에서 가장 많은 68골을 득점하며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이 득점한 AC 밀란 및 피오렌티나보다 무려 16골을 더 득점하는 등 공격력에서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완벽한 작전을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선수 에우제비우를 완벽하게 지워버렸으며 그렇게 이탈리아 챔피언이자 유럽 챔피언, 그리고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비록 다소 엄격한 방식 때문에 쿠발라와의 불화도 있었고 AS 로마에서의 사고도 있었지만 가는 곳 마다 트로피를 획득했음은 물론 축구 전술사에 발전을 이뤄내며 앞서가던 남미축구를 강력하게 추격했으며 F.C.U Football Award가 수상하는 골든 바통을 4회나 수상하며 시대 최고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5.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6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196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선정 결과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60년대 플래티넘볼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평가 기간 소속팀: 산투스 FC

 

196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FCU 어워드 골든볼 6회 수상
196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FCU 어워드 올해의 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0회 선정
1960년대 토르난테 선정 FCU 어워드 Team Of The Year XI 9회 선정

 

총 133포인트를 획득한 펠레가 2위 에우제비우와 3위 바비 찰튼이 획득한 포인트를 합한 것보다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며 명실상부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의 자리에 올랐다.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능가하는 활약을 펼친 펠레는 살인적인 공식경기 및 친선경기 일정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량을 발산했는데 펠레 본인이 가공할 득점력을 자랑했음은 물론 팀원들의 득점력도 대폭 상승시켜 주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겸비했다.

1969년에도 개인 통산 1000호 골을 득점하며 최고의 선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펠레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개인 통산 3회째 월드컵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하 펠레의 업적은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선정 1960s Team Of The Decade 항목 참조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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