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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여 (장문주의) 나의 작은 레플리카 스토리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축구의 모든 부분을 사랑한다. 전술적 움직임, 화려한 개인기, 열정적인 팬들, 그를 둘러싼 국제적 담론... 그 '모든 부분'에는 물론 축구 용품도 포함된다. 불행히도 나는 공인 아싸라 축구를 실제로 할 기회가 별로 없어 축구화를 고를 기회는 적었지만, 그 오돌토돌한 스터드를 바라보고있자면 가슴 깊은 곳 무언가가 끌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머플러는 또 어떻고. 응원 용품으로도 딱에, 패션 아이템으로도 적절하다. 각 팀이 경쟁하듯 다양한 디자인의 머플러를 내는 것, 감히 전 세계의 셰프가 경쟁하듯 에피타이저를 내놓는 것에 비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앙트레는 역시, '유니폼'이리라.

 

유니폼. 아,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세 글자의 마스터피스여. 내가 이 소악마에 처음으로 마음을 뺏긴 날이 새록새록하다. 라스베가스의 아울렛, 아디다스 오피셜 샵이었다. 14살이었던 나는 아직 빅클럽과 한국 국대 정도만 좋아했던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그 빅클럽의 범주에는 당연히 뮌헨이 들어갔으며, 뮌헨의 유니폼은 당당히 아디다스 샵에서 판매 중이었다. 그 농염한 빨간 빛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마수는 작은 코찔찔이로 하여금 명절 용돈을 그에게 쓰도록 만들었다. 

 

빨간색에 로벤이었나 뮐러였나 이젠 가물가물한 하얀색 마킹을 달고 있던 이 아이는, 아쉽게도 이젠 장롱 한 구석에 쳐박힌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불성실한 관리 탓에 마킹이 다 헤진 것은 덤. 행방을 찾을 수 없어 오늘의 콜렉션에 넣지 못한 것에 대해 그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내 레플 인생의 포문을 연 그를 기억하며, 콜렉션을 시작하겠다. 순서는 구매 순 (과거 -> 현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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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욕시티 15시즌 레플, 맥나마라 마킹

 

찜통더위의 뉴욕 지하철과 수많은 인파를 오직 '피를로와 램파드, 비야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만 견딘 게 벌써 3년 전이다. 처음 양키 스타디움에 들어갔을 때 그 독특함과 분위기에 압도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5년, 그 쯤의 나는 여행 계획에 '축구경기 직관'을 넣어야만 만족할 정도의 축빠가 되어있었다. 비슷한 시기 뉴욕 여행이 잡혔었고, 뉴욕시티의 세 슈퍼스타 피를로•램파드•비야는 내 욕구를 부모님께 설득하기에 충분한 협상카드였다.

 

결국 성사된 직관. 상대는 몬트리올 임팩트였다. 막 드록바가 이적했을 시기라 그가 출전하길 바랐으나 나오지 않아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경기는 몬트리올의 3:2 승. 명경기였다. 이런 경기를 봤으니 레플 구매는 당연지사.

 

뉴욕시티 레플을 입은 사람들의 80%는 피를로, 램파드, 비야 마킹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20%중 태반은 현재 울산에서 뛰고있는 믹스의 마킹을 하고 있었고. 여기서 나의 초급 마이너 기질이 발동한다.

 

"남들이 하는 마킹은 거부할거야!" 16살, 어렸던 나의 작은 선언이었다.

 

결국, 그 날 준수한 활약을 보였던 상대적 무명 선수, 토미 맥나마라의 이름을 박기에 이른다. 그와중에 Mc에 쓸 작은 c가 없어 큰 C를 쓴 게 포인트. 2% 부족한 유니폼이었음에도 좋다고 입고 다녔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이 역시 관리 소홀로 뮌헨 레플과 동일한 길을 걷기 일보 직전이다. 사이즈는 작아졌고 마킹은 너덜너덜해졌다. 이제 이 작은 친구와도 작별인사를 할 때가 다가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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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C서울 16시즌 레플, 아드리아노 마킹

 

난 인생의 80%를 서울에서 보낸 명예 서울 토박이이다. 우리 외할머니 댁은 망원동이고. 이 두 가지 요인은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FC서울 경기를 챙겨보게끔 했다. 

 

2016년, 외국에서 손님이 온 날이었다. 그 분들은 축구를 좋아했다. 열성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 경기를 보고 싶다는 분들을 위해, 난 그들의 손을 잡고 상암으로, 상암으로 향했다.

 

상대가 어디였는지는 명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나의 흐릿한 기억은 인천을 가리키고 있다. 상대팀은 안개가 낀 듯 어렴풋해도, 스코어는 확실히 기억난다. 3:1. 서울의 완승이었다.

 

동행한 외국인 손님은 경기에 만족했다, 고 생각한다. 경기 후 팬 샵에서 긴 팔 자켓을 흔쾌히 구매했으니, 만족했다고 내멋대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지.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자켓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레플, 오직 레플만이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맞는 사이즈를 고르고, 패치는 전부 다. 마킹은 당시 엄청 센세이셔널했던 아드리아노로 정했다. 비록 금전이 물 새듯 빠져나갔지만, 그에 반비례하게 나의 행복도는 엄청난 속도로 채워졌다. 그랬다. 그땐 그렇게도 행복했다. 착용하기 전까진.

 

너무 꽉 끼었다. 분명 맞는 사이즈를 샀을텐데. 검빨의 코르셋은 나의 몸통을 행주 짜내듯 꽉 쥐어짰으며, 그 압박은 거진 전성기의 이탈리아 국대를 방불케했다. 마킹을 아드리아노로 했는데도 이정도라니. 아디로 했으면 난 쥐포가 되어 죽었으리라. '외출복으로 쓰기 부담스러움' 판정을 내린 나는, 그 후 이 옷을 잠옷으로만 쓰고 있다. 10만원짜리 잠옷. 난 부르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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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이랜드 16시즌 유니폼, 미첼 마킹

 

위의 아드리아노 유니폼 구매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또 다른 외국인 손님을 데리고 인생 첫 서울이랜드 경기를 보러 갔다. 그 전 FC서울 경기는 대접의 목적이었다면, 이 이랜드 경기는 순수한(?) 자기만족에 죄없는 외국인을 끌고 간 것에 가깝다. 물귀신과도 같구나.

 

당시 이랜드는 지금만큼의 막장은 아니었다. 막 갓틴갓니가 경질되고 박건하 감독이 부임했을 시점. 타라바이와 주민규, 미첼이 팀을 이끌던, '아직은' 정상적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상대는 경찰청. 경기는 2:0 이랜드의 승리였다. 득점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심상민의 활약이 어마어마했던 건 기억난다. 경기장 분위기에도 만족했고, 경기도 재미있었다. 마침 돈도 있겠다, 레플을 지르기로 결정했다.

 

삭막했던 한 구석의 팬 샵, 저번 유니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여러번 입어보고 신중히 고민했다. 마킹은 내 최애였던 미첼. 유니폼 질도 좋았고 크기도 적절했다. 가격도 서울의 유니폼보다 약간 저렴했고. 거의 매일매일 입을 것 같다, 고 그 당시엔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생각보다 입는 날이 매우 적었다. 절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른 옷보다 우선순위가 밀린 것이 그 이유이라. 

 

자주 입지는 않지만, 자주 꺼내는 본다. 미첼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레니 감독의 안부를 묻기 위해, 그래도 1000명은 넘었던 당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슬프고도 잔인했던, 그 외국인 손님의 말을 되새김질하기 위해.

 

"프로 스포츠면 관중이 좀 많아야지."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공허하게 울려퍼진, 그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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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8시즌 AFC 앤아버 유니폼, 마킹 없음/등번호 9번

 

앤아버라는 도시를 들어보았는가? 인외마경 디트로이트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30여분만 달리면 나오는, 나무가 굽이치고 강물이 흐르는 평화로운 동네이다. 유일한 박사께서 수학하신 곳으로 유명한 미시간 대학교가 이 도시에 위치해있다. 나는 이 도시에서 1년여 째 유학 중이다.

 

인구 12만명의 이 소도시에도 축구팀이 존재한다. 물론 프로팀은 아니다. 미국 4부리그격인 NPSL에 참가하는 아마추어팀 AFC 앤아버가 그들이다. 14년에 창단해 아직 시작 단계인 그들은 그러나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또 독특한 마케팅으로 무럭무럭 성장해나가고 있다.

 

18시즌 시작 전, 난 이 팀의 시즌권을 구매했다. 본격적으로 내 지역 팀을 서포팅하기 위해. 동봉된 머플러와 스티커는 내 애정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계속 이 팀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유니폼 공개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금새 행사장으로 튀어나갔다.

 

지역 인도어 축구장에서 열린 유니폼 공개회는, 솔직히 별 것 없었다. 구단주와 감독이 나와서 새 영입 선수 몇 명을 소개하고 새 시즌 유니폼을 공개하는 것. 그게 다였다. 사실 유니폼 공개회보다는 그 이후에 진행된 어린이 팬들 대상 행사가 주였다. 하지만 규모가 큰 팀만을 보아온 나는 이렇게 소규모의 팬 앞에 일명 '구단 고위직'이 나와 직접 소통하는 이 광경이 매우 신기했다. 행사장 옆엔 작게나마 굿즈 좌판이 열렸고, 당연히 구매를 결심했다.

 

미국이라 역시 사이즈는 넉넉했다. 가볍게 입을 수 있는 티셔츠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름 마킹은 불가했으며, 번호 마킹은 이미 되어있었다. 9번, 구단의 주장이자 에이스이자 레전드, 카일 브라이트마이어의 번호였다.

 

사실 올해에는 AFC 앤아버 경기를 생각보다 많이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는 날마다 열광적인 분위기와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었고, 이는 이 구단에 대한 내 애정에 불을 지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지역 팀이다. 서포팅을 자주 못한 것에 사과하며, 내년, 내후년, 더욱 열성적인 응원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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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718시즌 잠비아 국대 유니폼, 마킹 없음

 

얼마 전, 잠시 한국에 놀러갔었다. 약 한 달 반 동안. 방문 기간동안 여러 축구경기를 관람했고, 많은 굿즈를 구매했다. 유니폼 빼고.

 

머플러는 참 많이 샀는데, 이상하게 유니폼은 살 기회가 없었다. 돈이 없어서, 질이 안좋아서,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구시렁구시렁.

 

그래도 온라인으로 두 벌은 주문했다. 하나는 K3 베이직의 부산FC 유니폼, 피델 마킹으로. 하지만 배송이 너무 늦어졌다. 분명 7월 초에 주문했는데 그저께 배송 출발한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아쉽게도 컬렉션에 포함시키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잠비아 국대. 국축갤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마이너 덕후다. 홍콩, 필리핀, 인도, 몰디브 등등, 축구로 유명하지 않은 나라들의 축구를 소비한다. 잠비아 축구도 내 레이더 안에 있다. 에녹 음웨푸, 엠마누엘 음불라, 팟손 다카, 망가니 반다의 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경제와 인프라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은데도 어떻게 유망주가 이리도 끊임없이 나오는 걸까. 경외감이 들 정도다.

 

그래서 주문했다. 잠비아 국대 유니폼. CFS에서. 70000원 정도가 들었지만, 난 이에 150000원이어도 쓸 의향이 있었다. 내 손에 들어온지 이제 1주일 정도 된 따끈따끈한 아이이다. 이 아이와는 무슨 추억을 쌓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뮌헨 유니폼에 강렬히 사로잡힌 아이는, 잠비아 국대 유니폼을 구매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결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기분 좋은 '레플 귀신'이 내 옆에서 흐뭇한 웃음을 짓고있는 것이 보이는 듯 하다. 

 

앞으로도, 이런 귀여운 아이들이 내 품속으로 많이 들어오기를.

댓글 26

아방뜨 작성자 2018.08.11. 13:48
 고정닉
ㄹㅇ 어렸을 땐 샤이북패였..
댓글
Viceversa 2018.08.11. 15:44
한때는 비교적 정상적인 아이었는데 
왜 마이너의 길로 빠져가지고...
댓글
CEO 2018.08.11. 17:29
정성보소..ㄷㄷㄷ
댓글
히이라기카가미 2018.08.12. 13:24
앤아버 유니폼 보고 든 생각은 유니폼에 사인해주면 그게 과연 보일까...네여 
댓글
아방뜨 작성자 2018.08.13. 16:35
 히이라기카가미
받을 일 없어서 ㅎㅎ
댓글
아방뜨 작성자 2018.08.14. 14:56
 침투하는아린
저 밴 권한 업슴
댓글
아방뜨 작성자 2018.08.14. 14:56
 슬레이어스박서
ㅇㄱㄹㅇ
댓글
슬레이어스박서 2018.08.14. 14:58
 아방뜨
근데 님 급식맨이었음? 마이너함은 거의 10년차 아잰데
댓글
아방뜨 작성자 2018.08.14. 14:58
 슬레이어스박서
저 00임 ㅋㅋㅋㅋㅋㅋㅋ
댓글
슬레이어스박서 2018.08.14. 14:58
 아방뜨
저 내년에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잘 할수있을치 춈큼 떨리네요오빠
댓글
아방뜨 작성자 2018.08.14. 15:00
 슬레이어스박서
? ㅈㄹ ㄴ
댓글
G930 2018.08.14. 15:03
잠비아 치트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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