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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작년 이맘때 잠깐 써봤다가 뒤를 못 이은 글

  평일 낮, 오산역에서 탑승하는 수도권 1호선 전철에는 매우 묘한 냄새와 떨림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노인에게서 나오는 쉰 냄새라고 하지만, 소영은 팔의 솜털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미세한 떨림과 냄새가 노인뿐만 아니라 ‘일을 하지 않는 모두’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도 지금 향수로 잠깐 가렸을 뿐이지 냄새가 온 몸에 절어있는 상태라는 것도. 이를 인지하게 된 건 그가 평일 낮마다 전철을 탄 지 어느덧 일년이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앉아있는 사람의 옷과 얼굴만 보고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또래에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줄어갔다. 그가 앉은 전철 3번째 칸은 소영을 제외하곤 전부 노인이었다.
 

  전철은 크게 세 역에서 탑승객이 바뀐다. 금정역과 신도림역, 마지막으로 구로역. 이 세 역에서는 저마다 주파수가 다른 떨림을 느꼈고, 냄새 또한 여러 가지가 뒤섞여 코가 서서히 마비된다. 세 역을 모두 거치면 남은 하루는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 소영은 항상 신도림역에서 발을 뗐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2호선을 타야 했던 건 아니고, 할 일이 없을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노선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신림역같이 주거지 인근 역에서 내렸다면 근처 카페에 앉아 하굣길을 걷는 학생을, 시청역에서 내린다면 늘 무언가에 불만을 가지고 시위하는 사람을,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리면 매일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줄무늬 내지 군청색 유니폼을 입고 오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영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고, 무언가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었으며 학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제 그는 정부 통계에서도 실업자로 집계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부모님에겐 면접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차비를 받아 별 의미 없는 서울의 모습을 눈에 담기만 했다. 그 어떤 소유욕도 느껴지지 않는 두 눈동자로.

 

  그는 어느 역에 내려도 항상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다니며 카페로 향했고, 오늘의 종착지는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를 고작 2000원에 파는 프랜차이즈 커피집이었다. 그러나 커피를 홀짝이며 골목길을 뛰노는 어린 아이와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별 이유 없는 불쾌함을 느껴 15분도 안되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다. 이유 없는 불쾌함과 알코올의 쾌락은 매일같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치뤘고, 승부는 언제나 쾌락 쪽에서 먼저 손을 놔 불쾌함이 꽈당 넘어지며 승리를 쟁취했다. 엉덩방아를 찢은 불쾌함이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사오면 쾌락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술잔을 따라주며 화해의 건배. 그러나 부모와의 건배나 화해는 멋쩍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 새해 계획표 단골손님이 된지도 오래였다.

퇴근시간 이전, 신도림역에서 탑승해 오산역으로 향하는 1호선 급행열차엔 칸마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대학생의 산뜻한 냄새와 부드러운 떨림이 있다. 수원역만 지나면 전부 사라져 30분 남짓 느껴보는 풋풋한 신기루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탑승객 모두가 충분히 평일 대낮과는 다른 감각을 느꼈으며 소영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오산역 플랫폼에 발을 딛는 순간 몰려오는 무기력감에 얽매여 행동력은 전부 소진된 상태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단 마음은 전철에서 내릴 때 간격이 넓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쏙 빠트린다. 떨어트린 분실물은 늘 하나의 소망, 이뤄질 수 없단 걸 알기에 이루고픈 마음도 딱히 없는 삿된 소망이었다.

 

 

  역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15분 남짓 타면 나오는 30년 된 낡은 주공아파트 단지. 5살 때부터 만들어진 소영의 세계관에서 단지 앞 버스정류장은 세상의 끝이었으며, 지난 1년간 매일 세상 끝에서 발을 내딯어 세계를 몇 시간 남짓 벗어났다가 돌아온다. 단지 입구에는 잊을만하면 전기구이 통닭 봉고차가 와 커다란 꼬치에 꿰인 통닭을 두 마리 만삼천 원에 팔았고, 소영은 오늘도 통닭 두마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20여년 전, 그의 아버지가 월급날마다 피자나 치킨을 사왔던 것처럼 이력서를 제출한 적도 없는 면접을 간 척 예감이 좋다며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 물론 전부 알면서도 속아준다는 것과 부모라고 언제까지나 속아주진 않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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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정말 이미지만 떠오를 뿐이라 뭘 못쓰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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