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ㅅㅍ) 바튼 아카데미 간단한 리뷰

“이 여백을 어떻게 다 채우죠?”

“그냥 한 글자씩 적는거죠.”

 영화 ‘바튼 아카데미’가 풍기는 진한 사람 냄새는 배고플 즈음의 고기 굽는 냄새처럼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람 사는 공간에 사람들이 뱉고 듣는 말들, 드러나는 표정들,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그 만큼의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들려오는 엔딩 곡의 제목 ‘Crying, Laughing, Loving, Lying'처럼 울다가도 웃고, 사랑하다가도 거짓말을 건네는 것이 인생이다. 영화는 그 끝에 다다라서 이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여운이 깊고, 이끌리는 것이다.

 영화는 메리와 앵거스, 그리고 폴이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메리는 아들을 잃고 슬픔에 사로잡힌 학교의 식사 담당-우리로 치면 영양사 정도일까-이다. 앵거스는 만사가 불만인데다 공격적인 학생이다. 폴은 작중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인물이며, 그 탓에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외톨이 역사 선생-전통을 강조하는 그가 고대 문명사라는 보편적으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과목 담당인 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작중 폴은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닌, 현재의 답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짧게 언급되는 과거사와 보스턴에서 만난 하버드 동기와의 대화를 통해 추측하건대 여전히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처럼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인물이 되었을 터. 과거를 통해 현재의 답을 찾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폴 허넘은 역설적으로 그 문장과 가장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앞서 언급한 세 인물 중 현재의 답을 가장 늦게 찾아나서는 이가 바로 폴이었다.

 앵거스는 이혼 가정의 자식이며,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폴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사로잡힌 인물인 셈이다. 앵거스의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학생이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선생과 사이가 좋을 수는 없다. 이 두 사람의 적대적 관계는 흥미롭게도 비슷한 과거를 가진 두 인물의 현재가 충돌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알아가고, 과거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함에서 비롯된다. 같은 극끼리는 서로를 밀어낸다지만, 결국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자석처럼. 이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였고, 또 물리적으로는 다시 작별한다. 메리는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먼저 현재의 답을 찾아나서는 인물이다. 자식 잃은 슬픔에 잠겼던 메리는 여동생이 낳을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며 슬픔을 과거로 보낸다. 폴과 앵거스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를 제시하는 표지판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역설로 가득하다. 영화는 찬송가로 시작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폴은 신을 믿지 않는다. 폴은 바튼맨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폴은 동기 앞에서 막힘없이 거짓을 뱉는다. 앵거스는 학우에게 외톨이라며 공격적인 말을 뱉는다. 앵거스는 작중 누구보다 외톨이인 학생이다. 메리는 크리스마스에는 예쁜 말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메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누구보다 슬퍼하며 화를 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바튼 아카데미를 자신의 삶 그 자체라고까지 했던 폴 허넘이 바튼 아카데미를 떠나는 장면을 통해 영화 전체의 ‘아이러니’를 완성시킨다.

절대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네 단어. 울고, 웃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는(Crying, Laughing, Lovin, Lying) 노래가 울려퍼지면서.

- 왓챠피디아에 올려둔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