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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글챌린지 러시아와 중국, 가장 본질적 차이 - 박노자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인구에 회자된 푸틴의 터커 칼슨 인터뷰를 들으면서, 저는 한 가지 아주 뚜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그야말로 "절친", 일종의 "가치 동맹"을 맺은 나라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앞으로 굉장히 복잡할 수 있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준동맹은 얼마든지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본질적인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문화적 배경'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의 문화이자 권역입니다. 한나라 시대 이후부터 아편 전쟁 시절까지 줄곧 유라시아의 경제적 중심이었던 권역이고,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 인류사에 가장 많은 발명을 이룬 권역인 만큼,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 완결성이 강한 중국권에서는, 외래 문화가 들어와도 바로 중국화됩니다. 개개인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탈을 얻어 생노병사의 고통을 멀리 해야 한다는 초기 불교와, 효자, 효녀들이 부모님들의 정토왕생을 기원하고 49일재를 지내는 중국적 정토 신앙을 한 번 비교해보시죠. 이게 사실 서로 두 개의 다른 종교라고 보셔도 됩니다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 둘 사이의 "거리"만 말씀드리죠). 마찬가지로, (노동자도 아닌) 학생들을 학부 과정부터 입당을 시켜주고 간부로 키워주는 중국 공산당의 당 문화는,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입당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었던 소련의 당 문화와도 굉장히 다릅니다.

모택동에게는, 가장 중요한 역사 인물은 중국을 통일시킨 진시황제 (秦始皇帝)이었고 가장 중요한 인생의 책은 <수호지>와 함께 사마광의 <資治通鑑>이었습니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세계사상 최초의 귀족 없는, 능력주의적 관료 선발 본위의 관료 제국이었죠. 마찬가지로, <자치통감>이 서술하는 당나라 말기까지의 통치술은 그 당시로서는 "선진 문화" 그 자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천하를 재통일하고 근현대의 세계적인 관료 제국을 세운 모택동으로서는, 진시황제나 사마광에 대해 계승 의식을 가지는 건 아마도 당연했을 것입니다. 중국 문화의 자기 완결성은 일면 중국이라는 국가의 하나의 "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문화에 바탕을 둔 관료 기구들은, 중국 자본주의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관리, 주도합니다. 그런데 중국 문화와 역사 본위의 이 자기 완결성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타자"에 대한 포용을 더 상당히 어렵게 만들 수 있죠. 신강이나 티베트 상황을 보시면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겁니다.

반면, 러시아에는 중국과 같은 "세계 중심"으로서의 과거는 없습니다. 푸틴이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는 고대 키이우 루시를 무슨 중앙집권적 국가처럼 묘사했지만, 이건 솔직히 "국뽕"입니다. 모스크바 공국의 초보적 관료화는 약 15세기쯤에 시작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비잔틴 제도의 영향과 함께 몽골대제국의 하나의 계승 국가이었던 킵차크 한국 (欽察汗國)의 영향도 컸습니다. 킵차크 한국의 모델 중의 하나는 원나라이기도 했고요. 비잔틴, 킵차크 한국, 그리고 그 뒤에는 터키 등 유라시아 대국들의 "제자" 격이었던 러시아는, 18세기 초반부터 서구의 경제, 문화적 주변국으로서 완전하게 편입하기에 이릅니다. 실은 경제적 차원을 따지자면 이미 16세기 중후반부터 러시아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 각종의 자원 (모피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유럽의 첨단 화기 등을 수입하는 주변부 국가가 된 것입니다. 반면에, 명나라가 영국이나 네덜란드에 수출한 것은 자원이 아닌 완제품 (자기, 비단, 차 등)이었습니다. 단, 피터 대제 시기인 18세기부터는, 서구에 대한 경제적 주변국으로서의 편입에다 러시아는 서구 문화를 "표준"으로 받아들여 문화적 편입까지 완수했습니다. 자기므 러시아인들에게 "고전"이 되는 것은 <자치통감>과 같은 11세기의 책이 아니고 19세기의 푸쉬킨의 시 같은 겁니다. 한데 푸쉬킨이 벤치마킹했던 것은 다름이 아닌 바이런 같은 영국 시인이었죠. 푸쉬킨의 습작 시절의 시들은 아예 불어로 돼 있습니다 (그 당시 러시아 귀족들의 일상 언어는 불어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서구 문화를 모르면 푸쉬킨의 시 세계도 사실 이해 못하죠.

그래서 러시아로서는 늘 가장 희망적인인 것은 "서방으로부터의 인정"입니다. 그래서 예컨대 소비에트 시대에는 (상당수 일급 지식인들이 입당돼 있기도 한) 이태리, 프랑스 등을 비롯한 유럽 공산당들을 지원해주는 것은 주요 국책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l'Unità 같은 이태리 공산당 기관지나 l'Humanité 같은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에서 소련을 호평해주는 것은, 소련 지도자들에게는 그 "위신" 자체이었습니다. 기술 같은 차원에서도 정밀 기계 기술을 서독에서, 자동차 생산 기술을 이태리에서 이미 소비에트 시대에도 각각 계속 수입했죠. 지금 러시아의 국가 이념이 좌파에서 (극)우파 민족주의로 바뀌어서 지원을 해서 키우는 유럽의 "친구 정당"들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 조직들이지만, 좌우간, 미국이나 유럽의 "친러파" 존재는 러시아 지도부로서는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푸틴은 내부적인 통치 명분도 강화시킬 수 있었죠. "구미권에서도 알아준다"는 것은 그의 신민들의 입장에서는 그의 통치를 정당화시키는 측면이 큽니다.

통치 명분도 그렇지만, 사실 구미권으로부터의 기술 이전 등에 대한 수요도 러시아에서 아주 큽니다. 마찬가지로, 걸포 지역 등 "우호적" 국가들의 투자만 가지고 외부로부터의 투자들에 대한 러시아 수요를 다 커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아마도 오랫동안 지속되겠지만, 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일정한 조건 (동유럽 일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우월적 지위의 비공식적 인정 등)하에서 앞으로 구미권 지배자들과의 "야합" (?)을 저지를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한데 이와 같은 구미권과의 "재유착"은 결국 안보꾼 출신 관료들의 억압적 국내 통치를 장기화시킬 것입니다. 그런 "재유착"을 원천으로 해서 독재가 힘을 얻어 그 기간이 길어질 겁니다.

 

[출처] 러시아와 중국, 가장 본질적 차이|작성자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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