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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도서/음악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10번 e단조 Op.93[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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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itri-Shostakovich-1958.jpg

(1958년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53,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었다.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소련의 공업화를 통하여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던 것과 동시에

공포정치로 감히 대항하거나 비방하는 자들은 모조리 검열하고 잔혹하게 숙청한, 

그 강철의 독재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스탈린의 죽음을 깊게 슬퍼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바로 소련의 대표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였다.

 

Iosif_Stalin.jpg

 

640px-Stalin',s_funeral_procession_on_Okhotny_Ryad.jpg

(스탈린의 초상화와 장례식 사진)

 

어느덧 2차세계대전이 종전한지 3년이 지난 1948, 쇼스타코비치는 

일련의 교향곡 9번으로 트집을 잡혀 인해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겪게된다. (즈다노프쉬나 사건)

승전을 기념하는 찬란한 대승리의 음악을 가장 써야 할 때 뜬금없게도

옛 고전파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를 회상하는 가볍고 심플한 신고전주의풍 교향곡을 썼다는 이유였다.

여기서 더 자기 맘대로 음악을 발표하면 정말로 죽을거다라고 생각한 쇼스타코비치는

한동안 자기가 원하는 음악은 접어둔 채 자아비판 성명서를 내고 공산당과 스탈린을 찬양하는 프로파간다음악을 써내려가면서 

숙청대상에서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게 된다.

이미 "맥베스의 므첸스크 부인" 사건으로 겪을데로 다 겪어본 쇼스타코비치의 능숙한 처사를 옅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프로파간다 음악의 뒤에서는 몰래 차기작들의 스케치를 조금씩 해나가기도 했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프로파간다 음악을 써내려간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53년, 자기를 지독하게 감시하고 억압해온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게 되었다.

 

Muddle_instead_of_music_Pravda.png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 간의 깊은 갈등의 대표 상징인 1936년의 프라우다 "음악이 아닌 혼돈" 기사)

 

이 소식은 그에게 있어 지긋지긋한 정치적 억압과 목숨의 위협이 끝날수도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기도 하였다.

그는 스탈린의 죽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행동을 통하여 스탈린에 대한 반감을 조용히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 그의 장례식을 향하였던 것과 달리 (똑같은 고난을 겪은 절친 하차투리안도 참석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공교롭게도 스탈린과 정확히 같은 날짜에 죽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장례식의 참석하면서

젊었을 적의 롤모델이자 같은 고비를 넘긴 동료 음악가의 의리를 지킴과 동시에 스탈린에 대한 반감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집에 돌아와서 갑자기 고삐라도 풀린 말마냥 무시무시한 속도로 작곡을 시작하더니

같은 해 1953년 가을에 교향곡 9번 이후 8년만의 후속작 10번째 교향곡을 덜컥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

누가봐도 스탈린이 죽는걸 기다리고 발표한 것 같은 곡이었기에 교향곡 10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혹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말러가 넘어서지 못한 "교향곡 9번 징크스"를 깨부수기도 한 작품이기도 하여 이도 큰 화제였다.

그리하여 195312, 쇼스타코비치의 페르소나 지휘자 예브기니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대화제작 교향곡 10번의 초연이 이뤄진다.

 

shostakovichprokofievkhachaturian.jpg

(소련의 세 거성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의 모습)

 

이 초연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음악의 내용이 대단히 의미심장하고 모호해서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게 된 것이다.

뭐가 어찌됐건 잘 만들어진 명작이다라는 옹호 반응과 

인민의 낙관성과 긍정적인 사고를 해친다, 스탈린에 대한 조롱이다라는 비난 반응이 매우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정말 수많은 뜨거운 토론이 오가면서 소련 음악계에 거대한 화제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아예 쇼스타코비치 본인까지 데려와 이 곡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따질 정도였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내가 이 곡에서 표현하고 싶었던건 그저 인간의 감정과 열정이었습니다", 

"각자의 해석에 맡기겠습니다"라는 모호한 답변으로 응수했다.

 

소련 내부에서의 격렬한 반응 덕분에 해외에서도 이 교향곡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역시 서방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오갈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심지어 "매카시즘"의 광기에 물들고 있던 미국에서도 이 곡의 연주와 관련해서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매카시즘이 곧 끝나면서 연주가 이뤄졌다)

그래도 소련에 비해서는 호평쪽의 의견이 더 우세한 편이었으며

특히 평소에 쇼스타코비치를 그다지 안 좋아했던 유명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이 곡에 크게 열광하여서

"내가 곡을 쓴다면 이 곡을 썼을 것이다"라는 등의 찬사를 남겼다.

카라얀은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교향곡에서 오로지 10번만을 자신의 레퍼토리와 음반에 남겼다.

워낙 화제의 곡이었다보니 곳곳에서 너도나도 이 곡을 연주하려고 하였으며

점차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과 자웅을 겨룰정도로 그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으로써 명성이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끝나고,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많은 재평가가 이뤄지게 된 지금에 와서는

화제성이 많이 줄어들고 그 사이에 다른 교향곡들이 치고 올라와 사알짝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자주 연주되는 쇼스타코비치의 인기곡중 하나이다.

 

그러면 이제 이 화제의 음악의 내용물을 살펴보자면,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인 면모는 없는, 교향곡의 전통적 구성인 4악장 구성으로 이뤄진 음악이다.

전체 연주에는 약 47~50분정도로 쇼스타코비치의 곡중에서 살짝 짧은 축에 속한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후기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꽤 중요한 음악이다.

젊은 시절에 한창 쓰다가 스탈린 집권 후 포기했었던 전위적인 성향이 조금씩 재등장 하고 있으며

특히 후기 음악을 관통하는 중요한 동기인 "D-S-C-H 동기"가 이 곡에서 최초로 대놓고 드러나고 있다.

D-S-C-H는 독일식 음계를 통하여 "레 - 미플랫 - 도 - 시"로 이룬 멜로디인데

이 DSCH는 쇼스타코비치의 풀네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독일식으로 썼을 때 나오는

"Dmitri Schostakowitsch"에서 D,S,C,H 글자를 가져와서 만들었다.

즉, 자신의 이름을 상징하는 동기러고 할 수 있는데 어째서 이런 동기를 만들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아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같은 일종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다.

 

1. Moderato

 

1악장은 약 20분가량의 소나타 형식 악장으로 교향곡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마치 교향곡 8번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상당히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악장이다.

시종일관 답답할정도로 음산하고 어두운 음악이 조용히 연주되며 음악적으로 폭발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빌드업을 쌓아 클라이맥스가 크게 폭발하는 부분은 중반의 발전부인데

쉬고있던 금관악기와 타악기들이 모두 합류하면서 장대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워낙에 앞 부분이 음산하고 답답한 분위기였다보니 꽤 감동적이고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지만

하지만 이 클라이맥스마저도 전작들마냥 압도적인 파워를 갖고 있는 편은 아니다.

발전부의 클라이맥스가 진정되면 다시 처음의 음산하고 조용한 음악이 돌아오면서 조용히 재현부를 펼치고

그리고 마지막은 복조성으로 섬뜩하게 연주되는 플루트의 솔로 속에 음악을 고요하게 끝맺는다.

 

스탈린 사후에 냅다 발표된 곡의 첫 오프닝 악장이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어둡고 우울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떤 이는 1악장에 대해 "스탈린에게 억압받으면서 살아온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을 그린다고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2. Allegro

 

2악장은 이 곡에서 가장 짧은 악장으로 일종의 스케르초이지만 상당히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시종일관 답답하기만 한 1악장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냅다 풀어버리면서 그야말로 과격한 광란의 질주를 하는 악장이다.

마치 겁에 질려서 정신없이 도망가는 인간을 보듯 현악기와 목관악기는 발작하듯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타악기와 금관악기는 저 인간을 쫒는 괴물처럼 시종일관 위협적이고 강압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없는 분위기속에서 고음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면서 음악을 뚝 끝맺는다.

상당히 파격적인 구성은 쇼스타코비치가 점점 다시 젊었을 적의 전위성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2악장은 이 교향곡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악장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악장일 것이다.

마치 겁에 질린 인간을 보는 듯한 2악장의 내용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중 하나인 

"증언"에서 "스탈린에 대한 음악적 초상"이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주변의 반박이 많아 다소 불확실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광란과 혼돈의 악장을 왜 작곡한 것일까?

정말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드는 악장이다.

또한 처음 발표되었을때에는 내용은 그렇다쳐도 너무 악장이 짧아서 음악의 균형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도 밸런스가 안맞는다고 수긍하였지만 정작 악보는 단 하나도 고치지 않았다.

 

3. Allegretto

 

강렬한 2악장을 뒤로 하고 느린악장이 나와야 할 3악장에서는 뜬금없이 "왈츠"풍의 음악을 들고온다.

하지만 왈츠는 어딘가 삐그덕대고, 멜로디도 상당히 모호하고 수수께끼같은 느낌이라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앞서 말했듯이 중요한 DSCH 동기도 이 악장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대놓고 등장하거나 아니면 멜로디 속에 섞여 숨어있는등 강박적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보니 이 곡이 지닌 의미심장한 느낌을 더욱 더 강화한다.

중반에는 새로이 호른이 큰 소리로 연주하는 선율이 섞이면서 약간 트리오격의 에피소드가 전개되는데 (4분 18초쯤)

선율이 다소 끊겨져있고 반주도 없는데다가 중간중간 탐탐이 고요히 울리기도 하여 상당히 공허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이 호른의 선율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 오마쥬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어느정도 반주가 천천히 돌아오고 그리고 이렇게 다시 활발해지다가

갑자기 오케스트라 전체가 확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초반의 왈츠를 화려하게 재현하면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 클라이맥스가 진정하면 다시 아까의 트리오 에피소드가 공허히 울리고 음악을 이대로 고요하게 끝낸다.

 

미스테리하고 모호한 분위기를 가진데다가 DSCH 동기가 활용되고 있는 의미심장한 악장이다보니

역시나 앞 악장들처럼 꽤 논쟁거리가 될만한 악장이다.

어떤 이는 이 악장이 스탈린이 없어진 지금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무엇을 해야하나 하고 묻는 심오한 악장이라고 하지만

역시 아무런 말이 남겨져있지 않아 진실은 모른다.

 

4. Andante - Allegro

 

마지막 피날레인 4악장은 서주가 딸린 일종의 론도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는 1악장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음악인데

어딘가 애절한 느낌의 목관악기들의 선율이 새로 등장하고 있어 살짝 다르다.

목관악기의 선율중 클라리넷의 솔로를 마지막을 한 뒤 갑자기 템포를 크게 끌어올리면서 주부로 들어간다.

주부는 마치 발레음악을 연상시키는 경쾌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러시아의 춤곡 "고파크"풍의 음악이다.

상당히 어두웠던 앞 악장들과는 너무나도 대조가 되는 신명나고 경쾌한 음악이라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마냥 밝은 곡은 아니고 후반부에는 갑자기 공포의 2악장의 선율을 회상하더니 

3악장에서의 D-S-C-H 동기가 재등장한다.

이후 분위기가 다소 착 가라앉게 되지만 다시 기세를 되찾아 경쾌한 춤곡으로 돌아와서

D-S-C-H 동기와 2악장의 멜로디가 섞인 채 화려한 코다를 맞이하면서 음악을 강렬하게 끝맺는다.

이 후반부의 전개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의 피날레와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다. (어쩌면 모델?)

 

여태까지 그토록 어둡고 모호하던 음악이 갑자기 이렇게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즐거운 춤곡으로 

마무리 짓는다는 것도 역시나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다.

게다가 4악장에서 주로 사용한 "고파크"는 무려 스탈린의 고향인 "조지아"의 전통 춤곡인데다가

여기에 공포의 2악장의 선율과 D-S-C-H 동기도 섞인 다는 점도 상당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격렬한 논쟁끝에 피날레의 결말은 "낙관적인 비극"이라는 다소 모순되는 말로 매듭을 지은 채 논쟁이 종료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4개의 악장들이 하나같이 논쟁을 일으킬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문제작들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내가 이 곡에서 표현하고 싶었던건 그저 인간의 감정과 열정이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음악을 살펴보면 이게 생각보다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애초에 저 말도 그냥 토론에서 빠져나가고 싶어서 대충 얼버무려 말했을 가능성도 존재하기도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만약에 소련이 더욱 더 부드러운 태도로 쇼스타코비치를 잘 구슬렸다면 말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사망으로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냥 이 곡에 대해서 각자 알아서 해석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논쟁을 다 떠나고 음악 자체를 살펴봐도 아주 잘만들어진 걸작 교향곡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생각없이 들어도 좋을 듯 하다.

 

음반정보

Conductor : Kirill Kondrashin

Orchestra :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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