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설정

아무글챌린지 일극? 다극? 무극? 파편화되는 세계질서와 윤석열 정부 - 박노자

이번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러시아가 "고전"을 한다든가, (전쟁의 애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이미 사실상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꼭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말로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니 "탈군사화"니 거론했지만, 크렘린의 본래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사실상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복종"시키는 게 목표이었죠. 이 목표의 달성에, 러시아는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복종"하긴커녕 서방 측과 더더욱더 밀착한 게 푸틴 침략의 결과입니다. 이 실패를 직면한 푸틴은, 지금 우크라이나 영토를 조금씩 점령, 강탈해가면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가 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기약 없는 전쟁의 장기화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침략국의 "실패"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거죠.

한데 러시아가 실패하고 있다고 해서 과연 "대리전"으로서의 성격도 농후한 이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고 있는 건가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본래 목표의 달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본래 목표는, 미국의 "후국" 후보국이 된 우크라이나를 침략함으로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교란"시킨 러시아의 경제를 제재 등으로 말라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침략 개시를 앞두고 미국 측이나 유럽연합 측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할 경우 러시아 경제가 10%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무역이 거의 차단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사상 최강의, "지옥으로부터의" 제재를 미리 준비한 셈이었죠.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 실패했듯이, 미국도 러시아와의 경제전의 전장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광의의 서방 (유럽연합, 일본, 한국, 싱가포르, 북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포함)은 대러시아 제재를 결의했지만, 거기까지이었습니다. 서방과의 무역이 줄어든 만큼 러시아의 대인도, 대중국, 대중동 등의 무역이 갑자기 팽창해버렸습니다. 오일 등을 과거에 비해서 아시아쪽으로 훨씬 더 많이 판 덕에, 2022년에 러시아의 수출총액은 2021년에 비해 오히려 19,9%나 성장한 것입니다. 제재와 서방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의 철수로 2022년 경제 전체는 마이너스 2,1%의 성장을 했지만, 2023년에 플러스 2%대의 성장률이 예상됩니다. 미국의 노림수는 대러시아 제재를 통해서 러시아 경제의 폭락, 그리고 푸틴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민심 이반, 궁극적으로는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그 계획 역시 푸틴의 침략 계획만큼이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푸틴도 바이든도 실패한 이유는 사실 비슷합니다. 양쪽이 자신의 힘을 과신한 것이죠. 푸틴이 우크라이나 군사력이나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에의 의지,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 의지 등을 과소평가하고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대 평가했다면, 바이든은 서방 바깥의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일 등)이 대러 제재를 했다고 해서, 중국이나 인도는 물론이거니와, 걸프 국가들이나 터키, 심지어 미국의 우방 중의 우방인 이스라엘 (!)마저도 대러 제재 대열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러 제재 체제 가담 압박도 무용했지만, 대러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우회, 면탈을 돕지 말라는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압박 역시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구소련 국가 중에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도 서방과도 매우 활발한 관계를 발전시켜온 카자흐스탄의 대유럽 무역은 2022년에 27%나 늘어난 것인다 그 추가분의 상당 부분은 카자흐스탄을 통한 러시아의 유럽으로부터의 "우회 수업"이라는 점을 관계자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걸프 국가나 이스라엘은 그렇다 치고, 카자흐스탄이나, 2023년5월에 러시아와의 항공 연결을 재개한 조지아 등마저도 미국의 말을 그다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경제 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민심 이반"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어려움을 적어도 아직까지 겪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외의 많은 분석가들이 미국 중심의 일극 세계체제가 지금 다극화되어간다고 진단합니다. 미국의 경쟁 초강대국인 중국이나 여타의 대국인 인도 등의 상대적 부상이 가시화된 만큼 그런 분석도 나올 수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현재 세계체제의 더 현저히 보이는 특징은 일종의 "무극"이라고 할 파편화 경향입니다. "미국의 말"도 과거와 같은 절대적인 힘을 지니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도 꼭 미국이 약해지는 만큼 강해지는 법도 없습니다. 미국의 우월성이나 패권이 상대화된 세계체제에서는 각자도생, 즉 국가마다의 다면적인 "실리 추구"가 보편적인 생존의 법칙이 되어갑니다. 그러니까 파편화되어 가는 세계체제에서는 터키처럼 나토 회원국의 입장을 견지하여 우크라이나에 무인기 등을 지원하면서도 러시아와도 정상 무역하고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까지 계속 건설하는 것은 차라리 "정상"에 가깝습니다. 중동의 대국인 터키는 그렇다 치고, 발틱의 소국인 에스토니아도 - 우크라이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 대러시아 무역을 계속 합니다. 에스토니아의 대러 수출은 2022년에 2021년에 비해 1% 정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제품을 사주는 5위 파트너입니다.

사실 이처럼 각국의 대외적인 다변화, 관계의 다면화, 다각의 실리 추구가 대세인 요즘의 세계에서는, 윤 정부의 미국에 대한 "충성어린" 태도를 보면 볼수록 신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도대체 그에게 미국과 일본이 무엇이기에, 그가 이처럼 한반도 평화의 희망도 한국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손쉽게 희생시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망국 외교를 한국의 시민 사회가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큰 비극의 서곡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출처] 일극? 다극? 무극? 파편화되는 세계질서와 윤석열 정부|작성자 박노자

댓글 1

휘모리 2023.06.01. 19:02
러시아 군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고
러시아 경제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았다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이벤트 헌혈 이벤트 5 jacksonville 283 18
공지 미디어/도서/음악 갤러리 통합 규칙 8 리나군 739 20
이벤트 도서 구입 / 영화 예매 / 음반 구매 / 공연 및 전시 인증 이벤트 3 리나군 724 7
공지 후원내역 (2024/04/28) 리나군 562 3
공지 추천시 최소한의 정보는 주세요 안녕안녕반가워 873 15
인기 2연타로 노란색만 뜨면 당황하게 된다 잼아저씨 18 8
인기 푹 자고 일어났다 리나군 9 6
아무글챌린지
기본
고정닉 19 9
아무글챌린지
기본
취급주의 35 9
아무글챌린지
기본
시나모롤 49 9
아무글챌린지
기본
리나군 16 6
아무글챌린지
기본
고정닉 91 18
아무글챌린지
기본
Jarrett 27 8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39 8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17 6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46 9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28 8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26 6
아무글챌린지
기본
운석열 63 7
아무글챌린지
기본
데미안 2 [도르~]
사도요한 124 13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우리들 2 [도르~]
사실은이렇습니다 58 12
아무글챌린지
기본
리나군 40 6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45 9
아무글챌린지
기본
비빔냉면 36 8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31 9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운석열 59 7
아무글챌린지
이미지
사실은이렇습니다 2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