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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글챌린지 푸틴 전쟁과 독재, 그리고 지식인

한국의 1970-80년대 지식인 사회를 보면, "냉전 시대의 원로"와 "진보적 신진파"들의 대결 구도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신 독재와 신군부 독재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하고 강한 거부감도 불러일으켰지만, 분단과 6.25를 거쳐서 보수 진영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해, 1970년대에 이르러 "원로"가 된 일부 지식인 사회 거두들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편에 서주긴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이승만 시절부터 "문단 권력"을 손에 쥐기 시작한 김동리나 조연현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1970년대에 이 둘은 서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친정부"라는 차원에서는 하등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종화나 전숙희 등 일부 보수적인 원로 작가들이 1970년대에 통일주체국민회의로 진출하기도 하고, 1980년대에 서정주는 이 시로 영원히 그 이름을 더렵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시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 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

1987년 1월, 그러니까 6월 항쟁이 발생되기 몇개월 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독재자에게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와 같은 찬사를 바쳤다는 것은 지금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가 힘든데, 엄연히 사실이었습니다. 한데 동시에 이런 문단 권력자나 친권력 "협력"에 공들여온 "원로"와 달리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등 새로운 저항 문학 주체들이 탄압과 시련 속에서 "탈냉전/반독재 문학"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는 고은이나 황석영 등은 1990년대 이후에는 또 새로운 문단 권력으로 떠올랐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좌우간,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문단은 친독재 냉전 문학과 반독재 탈냉전 문학으로 양분돼 있었고, 이 두 성향을 나누는 여러 요인들은 "나이"나 역사적 체험, 권력에 대한 태도 등이었습니다.

그러면 푸틴 시대 말기, 우크라이나 침공 시대의 러시아 문단은 과연 어떤 상태인가요? 저는, 문단을 포함해서 러시아 지식인 사회 전체에서는 신체적 "나이"나 어떤 정치적 "성향"보다도, 친독재와 반독재, 그리고 주전과 반전의 의견이 갈리는 중요한 지점은, 차라리 "국가에의 의존"의 여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는 냉전 시대 한국과의 중요한 차이가 보이는 것이죠. 월탄 박종화나 황순원 선생 같은 분들이 비록 매우 내지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었으나, 사실 정권 없이도 충분히 문학 시장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만큼의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만큼의 스스로의 기반이 탄탄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반공 성향이란 결국 단순한 민족주의적 보수성으로부터 시작돼 분단, 6.25의 대립 속에소 굳어진 것입니다. 이와 달리, 순수하게 "이념" 차원에서 푸틴 정권과 그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의 "시장 경쟁력이 있는 작가"는 극소수입니다. 최근에 친우크라이나 세력들에게 폭탄 테러를 당할 만큼 열광적인 전쟁 옹호론으로 악명을 떨친 자하르 프릴레핀 (Zakhar Prilepin)이나 체첸 출신의 게르만 사둘라예프 (German Sadullaev)등을 들 수 있는데, 극소수일 뿐입니다. 대체로 "민족 보수적" 성향의 에브게니 보돌라즈킨 (Evgeny Vodolazkin)같이 이 진영을 대표하는 작가들은 아예 전쟁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반대 진영인 자유주의 쪽에서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Lyudmila Ulitskaya)나 보리스 아쿠닌 (Boris Akunin), 그리고 드미트리 글루코브스키 (Dmitry Glukhovsky) 같은 주요 작가들이 외국에 망명하는 등 "전쟁/독재 반대"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국의 극우 정권들에게는 적어도 "반공주의" 코드를 공유하여 친정권이나 중립의 자세를 취할 만한 문단 권력 내지 지식계가 있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으로는 푸틴 정권은 지식인 사회에서 "민심 이반"을 초래해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작가 등 지식인 사이에서의 어떤 헤게모니적 권위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푸틴에게 남은, 즉 전쟁을 지지하는 작가들이란 누구인가요? 개전 초기에 러시아의 <문학신문> (Literaturnaya Gazeta)은 "작가 500인 선언"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서명한 이들 중에서는 일단 독자 사이에 알려진 이름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각종의 작가 협회들을 통해 국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에 의존해야 하는 문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국고 보조금 없이 문단 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은 국가가 벌이는 전쟁에 대해서 - 싫든 좋든 -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시장력이 있는, 즉 국가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한 작가들은 전쟁 옹호 발언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일을 - 그 성향과 무관하게 - 극적으로 피하는 추세입니다. 즉, 좌파든, 자유주의 신념이든 혹은 (온건) 민족 우파든, 전쟁을 벌이는 독재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러시아에서 이제 "작가"로서 참아 할 수 없는, 최악의 부끄러운 일이 된 것이죠.

작가들의 민심이 떠났다고 해서 물론 러시아라는 관료 국가가 전쟁을 당장에 그만 둘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데 문단의 그런 반응은 의미심장합니다. 현재 러시아의 군국주의 국가는 그람시가 이야기한 "헤게모니", 즉 지식인 등에 대한 설득력/호소력을 상당히 결여하고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은 헤게모니 결여를 공포 정책이나 물질적 시혜 등으로 만회해보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러시아 권력층이 어떤 길을 택할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2230952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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